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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02일 06시 58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2월 02일 14시 12분 KST

박대통령 부녀와 닮은 숙질(叔姪) 정치인?

박근혜 대통령께서는 아마도 기후변화 세계 정상회의를 마치시고, 오늘(12월 2일) 그 회의가 열렸던 프랑스 파리를 떠나 다음 해외 순방지인 체코로 향하시지 않으실까 싶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오늘은 박근혜 대통령과 가장 닮은(응?) 대통령이 바로 이 프랑스 파리에서 의회를 무력화시킨 쿠데타를 감행한지 164주년이 되는 날이다. 무슨 말인가 싶기도 하실 텐데, 1851년 12월 2일은 당시 프랑스 제2공화국의 대통령이던 루이 보나파르트가 자신의 연임을 가능하게 할 개헌안을 통과시켜 주지 않았던, 당시 프랑스 의회를 적으로 상정하여 친위 쿠데타를 감행한 날이다. 그리고, 루이 보나파르트는 1년 후 삼촌 나폴레옹 1세에 이어 황제로 즉위하니, 그는 역사상 나폴레옹 3세로 알려졌다. (아무도 관심없겠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다음 열가지(!) 이유 때문에 나폴레옹 1세 및 3세 숙질(叔姪) 간은 독재자 박정희와 박근혜 대통령 부녀 간과 가장 닮은 정치인들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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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1세.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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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3세. © 위키피디아

첫째, 무엇보다도 나폴레옹 3세는 자신의 삼촌인 나폴레옹 1세 즉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후광 덕분에 대통령이 되었고, 나중에 황제로까지 즉위할 수 있었다. 이 점은 박근혜 대통령이 아빠인 독재자 박정희의 후광 덕분에 대통령이 되었던 점과 닮았다.

둘째, 나폴레옹 3세의 삼촌 나폴레옹 1세는 원래 이탈리아 도시국가 제노아의 땅이었다가 프랑스 영토에 뒤늦게 편입된 코르시카 섬 출신으로 식민지 모국(母國) 격인 프랑스에서 군사교육을 받고, 프랑스군의 하급장교로 복무하였으며, 자신의 동족인 코르시카인들의 독립에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프랑스에서 출세할 길을 찾았다.

박근혜 대통령의 부친인 독재자 박정희도 일제시대 일본의 식민지였던 조선 땅에서 태어났지만, 식민지 모국인 일본에서 출세하고 싶어 일제의 괴뢰국가인 만주국 군관학교를 거쳐 일본 육사를 나왔으며, 일제의 하급장교로 복무하여 (아마 앞으로 쓰여질 "올바른 국사 교과서"-웃음-에 의하더라도, 최소한 겉으로는) 우리나라의 해방에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일제 치하에서 출세할 길을 찾았다.

셋째, 나폴레옹 3세의 삼촌 나폴레옹 1세가 처음 출세길을 달리게 된 것은 프랑스 대혁명이 과격화되었을 때, 급진파인 산악당(山岳黨)의 유력자인 로베스피에르의 동생의 눈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산악당이 몰락한 후, 한때 감옥에 갇히는 고초도 겪고 난 다음에는 당시 프랑스 군부의 우익 인사로 변신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부친인 독재자 박정희도 해방 직후 처음에는 좌익에 가담하여 남조선로동당의 국군 내 세포로서 활동하다가 나중에 체포된 다음에 전향하여 동료들을 밀고하고 살아 남은 다음에는 반공(反共)주의자로 변신한다.

넷째, 나폴레옹 3세의 삼촌 나폴레옹 1세는 비겁한 민간 정치인인 바라스와 시예스승(僧)과 손을 잡고 프랑스 총재 정부를 무너뜨리는 쿠데타를 일으켰고(1799년 혁명력 브뤼메르 18일의 쿠데타) 이를 통하여 통령정부를 세워 프랑스의 독재자가 되었으며, 이어 국민투표를 통해 프랑스 제1제정의 황제로 즉위한다. 나폴레옹 1세는 독재자로서 17년 간 장기집권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부친 독재자 박정희도 1961년 5.16 군사쿠데타를 통하여 당시 민주당 정부를 무너뜨렸고, 이러한 군사쿠데타의 성공에는 당시 민간 정치인인 윤보선 대통령, 장면 총리 및 장도영 육군참모총장의 무능력 또는 묵인이 기여한 바가 컸다. 박정희는 그 후 18년 간 독재자로서 장기집권했다.

다섯째, 나폴레옹 1세는 독재자이기는 하였으나 프랑스의 민법전을 정비하고, 근대적 토지소유권을 확립하는가 하면, 프랑스 대혁명의 유산을 계승하여 프랑스를 근대화시켰다는 평을 받는다. 또한, 나폴레옹 1세는 군사적 승리를 통해 유럽을 석권하기도 하였다.

박정희 역시 재임 기간 중에 우리나라를 근대화시켰으며, 경제발전을 이룩하여, 그동안 북한에 비해 뒤져 있던 남한이 북한을 따라잡고, 결국 추월하게까지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여섯째, 그럼에도 나폴레옹 1세는 대외적으로는 당시의 초강대국이었던 영국과 불편한 관계를 계속하였으며, 결국 영국 웰링턴 공작과의 워털루 전투에서 패해 몰락하고 만다.

박정희 역시 임기말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과의 사이가 좋지 않았으며, 특히 당시 미국 대통령인 카터와 불편한 관계였다. 나중에 박정희의 암살에 미국이 관여했다는 유언비어까지 나돌 정도였다.

일곱째, 나폴레옹 1세는 이렇게 몰락했으나, 나폴레옹에 대한 향수는 프랑스의 농민들을 중심으로 하여 강력하게 살아 남았으며, 프랑스는 1848년 혁명을 통해서 민주화가 되었으나, 이렇게 수립된 프랑스 제2공화정에서 보통선거를 통해 나폴레옹 1세의 조카인 루이 보나파르트(뒷날의 나폴레옹 3세)가 나폴레옹 사후 27년 만에 대통령으로 선출된다.

박정희는 부하인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암살되었으나, 박정희에 대한 향수는 남한의 고령층과 대구경북 지방 등을 중심으로 강력하게 살아 남았으며, 남한은 1987년 6월 항쟁을 통해 민주화 되었으나, 이렇게 민주화된 우리의 제6공화국에서는 민주화 후 25년 만에 독재자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 대통령을 직접선거를 통해 대통령으로 선출한다.

여덟째, 나폴레옹 3세는 삼촌이 몰락한 후 어린 시절에 프랑스를 떠나 해외에서 머무는 바람에 프랑스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한다는 비난을 받아 왔다.

박근혜 대통령의 한국어에 대해서는 (이하 생략)

아홉째, 나폴레옹 3세는 이렇게 삼촌 나폴레옹 1세의 후광을 입고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이윽고 1851년 12월 2일(삼촌 나폴레옹 1세가 1804년에는 프랑스 황제로 즉위한 날이고, 1805년에는 아우스테를리츠 전투에서 러시아와 오스트리아 황제의 연합군을 격파한 날)에는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 그 1년 후에는 대통령이 되었으나, 임기 중에는 실정을 거듭하였다.

박근혜 대통령도 아빠인 독재자 박정희의 후광을 입어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대통령 임기 중 현재까지는 경제는 더욱 어려워졌고, 우리나라는 외교적으로도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일본에게 휘둘린다는 평을 받는가 하면 각종 사고가 빈발하며, 민주주의는 후퇴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열째, 나폴레옹 1세의 조카인 루이 보나파르트가 대통령에 당선이 되고난 후 쿠데타를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당시 그의 반대파이던 의회 내의 프랑스 부르주아지들이 지리멸렬하고 국민들의 신뢰를 잃었던 탓이 컸다고 당시 정치 상황을 분석한 팜플렛인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을 쓴 칼 마르크스는 분석한다.

박근혜 대통령 치하에서도 현재까지 제1야당인 새정련은 박근혜 대통령의 여러 실정(失政)에도 불구하고 무기력한 모습만을 노정하고 있다.

두 사람의 닮은 점은 여기까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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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끝으로, 나폴레옹 3세는 1871년 보불전쟁에서 프로이센에 패했고, 개인적으로는 프로이센군의 포로가 되어 결국 황제의 자리에서 쫓겨났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저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이라도 나폴레옹 3세를 닮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