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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15일 11시 34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0월 15일 14시 12분 KST

'경제학'에서 배우는 올바른(?) 교과서의 조건

폴 사뮤엘슨의 경제학 교과서 [경제학]은 국정(응?)은커녕 검정 교과서도 아니었다. 시장에서의 자유경쟁을 금과옥조로 삼고 있는 경제학이란 학문의 성격에 너무나 잘 부합하게도 그의 교과서를 채택하고 말고는 전세계에서 경제학을 가르치고 배우는 교사와 학생들의 전적인 선택에 맡겨져 있었다. 세계 정치와 경제를 좌우하는 초강대국 미국의 힘으로 강제할 법도 한데(뭐래니?) 미국 정부는 손끝 하나 대지 않았고 사뮤엘슨의 교과서는 오로지 이렇게 개방적인 자세로 끊임없이 소통하며 균형잡힌 내용을 교과서에 담기 위해 노력한 저자 사뮤엘슨의 노력만으로 시장에서 압도적으로 다른 교과서들을 누르고 오랫동안 올바른^^ 교과서로 선택되었다.

한때 전세계에서 모인 경제학자들의 공통점은 그들이 모두 폴 사뮤엘슨의 [경제학(Economics)]으로 경제학 공부를 시작한 것이었던 때도 있었다. 아직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필자가 처음 경제학을 공부할 때만 하여도 1948년에 초판이 나온 사뮤엘슨의 이 교과서^^는 여전히 베스트셀러였고 가장 표준적인 경제학 교과서였다. 비록 그 무렵 노년(老年)의 사뮤엘슨은 젊은 노르드하우스를 공저자(共著者)로 끌어들였고, 이제 그가 세상을 떠났기에, 사뮤엘슨의 경제학보다는 맨큐 같은 이의 교과서가 경제학 입문서로 쓰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사뮤엘슨의 책은 무려 반세기 가까이 전세계적으로 요샛말로 올바른(웃음) 경제학 교과서로 군림하여 온 것이다. 요새 온나라가 역사 교과서 문제로 양진영으로 쫙 갈려서 시끄러운 지경인지라 양 진영 모두 사뮤엘슨의 [경제학]이 미국을 넘어 전세계를 석권하며 그렇게 오랫동안 교과서로 군림할 수 있었는지 궁금해 할 법도 하여 오늘은 그 비결(응?)을 한번 풀어볼까 한다.

폴 사뮤엘슨의 [경제학]이 교과서로 각광을 받았던 이유에 대한 교과서적인(쿨럭;) 설명은 그가 전통적인 신고전파 경제학을 미시 경제학으로, 그리고 1929년부터 시작되어 1930년대 내내 계속되다시피한 세계 경제대공황 때 대두한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경제학을 거시경제학으로 종합한 이른바 신고전파종합경제학을 완성하였다는 점이다. 다들 아시다시피 세계 경제대공황에 직면하여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전통적으로 시장 기능을 중시하여 온, 당시 경제학계의 지배적인 입장인 신고전파주류(主流)경제학의 입장에 정면으로 반발하여 [고용, 이자, 화폐의 일반이론]이라는 저작 등을 내었고 이는 경제학계는 물론 세계 경제 및 정치에도 큰 논쟁을 불러 왔다. 치열한 논쟁 끝에 현실 세계에서는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 등으로 케인스의 주장이 수용되었으며, 말하자면 폴 사뮤엘슨은 그런 케인스의 입장을 기존의 경제학 주류의 입장과 잘 버무려 교과서로 만들어 내었다.

그러나 사뮤엘슨의 교과서 역시 널리 퍼지기 전까지 결코 저항 없이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 사뮤엘슨은 어떻게 그의 책이 널리 수용되는 표준적인 교과서가 되었는지에 관하여 그 비밀(뭐래니?)을 털어 놓은 일이 있는데 변형윤 교수님의 [반주류(反主流)의 경제학]에 실렸던, 사뮤엘슨의 일본에서의 강연 내용을 읽었던 기억을 되살려 그 비밀을 전해 드리고자 하니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논쟁에 참여 중인 양진영께서는 잘 살펴 보시기를(그럴 리가 전혀 없겠지만;;) 바란다.

배경을 좀 더 설명하면, 사뮤엘슨이 일본에서 이 강연을 할 때는 사뮤엘슨의 교과서 [경제학]이 이른바 진보적인 세력으로부터 엄청난 공격을 받고 있을 무렵인 1970년대 초반이었다. 세계경제대공황을 케인스 경제학을 이론적 바탕으로 하여 극복하였던 세계 경제는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고 나서는 유례없는 사반세기 가까운 대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그러한 경제호황은 1970년대 들어서면서 오일 쇼크 등으로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고, 물가 상승과 실업률 증가가 결합한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새로운 현상까지 겹치자 그간 표준적인 경제학 교과서로 받아 들여졌던 사뮤엘슨의 이론에 대한 도전도 거세졌다. 심지어 1970년대 후반에는 사뮤엘슨의 경제학 교과서를 하나하나 반박한 저작이 출간될 지경이었다.

사뮤엘슨은 그러한 비난들에 대하여 이론적으로도 재반박하였지만, 이 일본 강연에서는 아무래도 글로 쓰는 것이 아닌 말로 하는 것이라 그랬는지(사실 경제학이나 철학 같이 어려운 학문의 경우에도 어떤 학자도 말을 글보다 어렵게 하기는 쉽지 않기에 개인적으로는 이런 강연록 같은 것을 통해 그 기본적인 내용이라도 이해하려고 하는 편이다) 필자가 보기에는 아주 흥미로운 일화를 청중들에게 소개한다.

paul samuelson

폴 사뮤엘슨. (1961년)

때는 사뮤엘슨이 그의 교과서 [경제학]의 초판을 출판한 1948년으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 어느 날 사뮤엘슨이 봉직 중이던 대학의 학장(총장?)이 젊은 교수 사뮤엘슨을 찾았다고 한다. 학장의 말인즉 대학에 많은 기부금을 내고 있는 동문(?) 사업가 중에 한 사람이 사뮤엘슨을 만나서 식사하며 그의 책 [경제학]에 관하여 "토론"하고 싶다고 하는데 그 사업가와 저녁식사를 함께 하여 달라는 것이었다. 사뮤엘슨은 어쩐지 직관적으로 불길한 예감이 들어(제안 자체만 보아도 요새 미국을 정계를 난장판으로 만들고 있는 어느 사업가 같은 종류의 필이 딱 나지 않는가ㄷㄷㄷ) 거절하려고 하였으나 대학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동문이니 한 번 시간을 내달라는 학장의 권유에 결국 자리에 참석했다고 한다.

그 사업가는 역시나 사뮤엘슨을 만나는 자리에 아마도 빨간 줄을 숱하게 치고 페이지 여백에는 잔뜩 메모를 하여서 너덜너덜해졌을 사뮤엘슨의 [경제학] 교과서를 들고 나왔다고 한다. 사뮤엘슨은 그걸 보고 아마도 속으로 '아 정말 잘못 걸렸다. 오늘은 정말 밥도 제대로 넘어가지 않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겠지만 학장님 말씀을 두 번 세 번 주문을 외우듯 되새기며 최대한 예우를 차려서 그 사업가에게 "제 책 중 어느 부분이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으시나요?"라고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그러자 꼼꼼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그 사업가는 "당신의 책이 전반적으로 다 마음에 안 들지만 특히 이 삼백 몇십 페이지(페이지 수는 사뮤엘슨도 강연에서 제대로 기억 못했음, 쿨럭;)에 나와 있는 이 그래프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래서 사뮤엘슨은 그 사업가가 가리키는 부분을 살펴 보았는데, 거기에는 역사적으로 미국 정부의 재정지출이 미국 국민총생산(Gross National Product)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착실히 늘어났음을 예쁜(뭐래니?) 그래프가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서 사뮤엘슨은 기가 막혀서, "선생님, 이건 사실(fact)을 기술한 것입니다"라고 대꾸하였다고 한다.

그러자 그 사업가는 (사뮤엘슨에 의하면 그가 평생 잊지 않았던 아주 소중한 교훈이 될 만한) 답변을 하였다고 한다. "그렇죠, 당신 말대로 미국 정부의 지출이 지난 세월 동안 계속해서 늘어난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올바른 경제학 교과서의 저자라면^^) 그런 사실을 말하면서 이는 정말 통탄할 만한 일이라며 개탄하여야 되는 것인데 당신은 너무나도 (말하자면 무심한듯 시크하게, 쿨럭;) 건조한 사실만 기술했단 말이요!"

말하자면 그 사업가는 자유시장경제를 신봉하는^^ 기업인으로서 경제학이란 정부의 시장에 대한 개입을 비판하고 자유로운 기업활동을 옹호하는 것을 사명으로 하여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던 사람이었는데(아마도 지금까지도 미국이나 우리나라에서도 이른바 업계의 입장을 대변하는 입장일 것이다) 사뮤엘슨의 교과서 [경제학]이 실상은 세계경제대공황 이후로 미국에서조차 더욱 심화된 정부의 경제에의 개입 증가를 그저 현상으로서만 기술하고 자신이 정하여 놓은 이상적인 경제학의 모습에 맞지 않으니 심지어 사실의 기술 부분까지 그렇게 비난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영민한 사뮤엘슨은 "사실이라도 그걸 말하면서 몹시 분개하면서 말해야 한다"는 그 사업가의 이 반응에서 그의 교과서가 반세기 넘게 전세계에서 롱런한 베스트셀러가 된 비결을 뽑아낸 것이다. 사실을 말하더라도 그걸 정치적인 의도로 충만해 있는, 진영논리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전달하여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라고나 할까^^

그래서인지 사뮤엘슨은 보수주의 경제학자로 그를 매섭게 비판한 밀튼 프리드먼을 두고서는 "없었으면 우리가 만들어 냈어야 할 사람"이라고 "격찬"하는가 하면, 왼편에서 그를 공격한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조앤 로빈슨 교수와 같은 이들과도 미국 케임브리지(MIT) 대 영국 케임브리지 간의 자본 논쟁을 벌이며 토론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사실 주류 경제학자들은 진보성향의 경제학자들을 무시하고 말을 섞는 것까지 꺼려왔다는 점에 비추어 보면 이것만 해도 대단한 것이 아닌가 싶다). 오랫동안 전세계에서 널리 팔리고 읽힌 중요한 학문의 교과서를 집필한 사람에게 필요했을 덕목인 열린 자세를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어쩌면 사뮤엘슨이야말로 그 사업가에게 단단히 한턱 내야 하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책과 그 저자를 동일시하여야 하는지 아니면 분리하여 볼 수 있느냐는 자못 흥미로운, 그리고 결론이 나지 않는 계속되는 논쟁거리이지만, 경제학 교과서의 저자 사뮤엘슨은 이렇게 적대자들과 소통(?)하는 법을 익힌 후 그의 자식이라 할 수 있는 교과서에 이를 반영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앞에서 보았듯이 사뮤엘슨은 처음에는 이단학설 취급받던 케인스 경제학을 그의 교과서에 수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사뮤엘슨 경제학을 공부한 학생들은 그런 케인스의 유효수요론이 실은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지만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인구론]이란 틀린 주장을 한 것으로 알려진 맬서스한테 빚지고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나아가 사뮤엘슨은 요새는 신자유주의의 첨병 노릇을 하는 것으로나 알려진, 국제무역에서의 비교우위론을 주장한 리카르도가 실은 자본주의는 망할 것이라던 칼 마르크스에게 이론적 기초를 제공한 사상적 스승이었다는 점을 알리는데도 그의 교과서의 지면을 아끼지 않았다. 사뮤엘슨은 임대료를 함부로 통제한 동독 사회가 건물들의 신축, 재건축이 안 이루어져 2차 대전 중 독일이 연합국 폭격을 받을 때에 못지 않게 도시가 망가졌음을 지적하면서도 그런 공산주의 체제를 70년이나 돌렸던 경제적 이념의 기초와 작동원리가 무엇인지를 자세히 전달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사뮤엘슨은 비판자들의 지적들도 계속해서 반영하여 그의 교과서 [경제학]을 끊임없이 고쳤다. 1948년에 초판이 나온 이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혔을 교과서는 필자가 읽었을 때는 12판이었고(쿨럭;) 지금은 19판까지 나왔다. 즉 지난 67년간 열 일여덟번을 고쳐 쓴 셈이다.

폴 사뮤엘슨의 경제학 교과서 [경제학]은 국정(응?)은커녕 검정 교과서도 아니었다. 시장에서의 자유경쟁을 금과옥조로 삼고 있는 경제학이란 학문의 성격에 너무나 잘 부합하게도 그의 교과서를 채택하고 말고는 전세계에서 경제학을 가르치고 배우는 교사와 학생들의 전적인 선택에 맡겨져 있었다. 세계 정치와 경제를 좌우하는 초강대국 미국의 힘으로 강제할 법도 한데(뭐래니?) 미국 정부는 손끝 하나 대지 않았고 사뮤엘슨의 교과서는 오로지 이렇게 개방적인 자세로 끊임없이 소통하며 균형잡힌 내용을 교과서에 담기 위해 노력한 저자 사뮤엘슨의 노력만으로 시장에서 압도적으로 다른 교과서들을 누르고 오랫동안 올바른^^ 교과서로 선택되었다.

사뮤엘슨은 그의 [경제학]에서 우리나라를 교육에 관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장기적인 성장 잠재력 확충에 노력하는 모범사례로 꼽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국사(國事)에 신경 쓰기보다는 국사(國史) 교과서에 온 정신을 쏟고 있는 작금의 우리나라의 상황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교과서의 저자 사뮤엘슨이 보았더라면 또 그의 교과서를 어떻게 고쳤을까 생각하니 좀 등골이 서늘해진다.

뭐랄까 고대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의 말처럼, 중요한 국사(國事)를 제쳐 놓고 국사(國史) 교과서 논쟁 중인 분들께 "이름만 바꾸면 당신 이야기"라고 들려주고 싶은 느낌적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