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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9월 22일 06시 48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9월 22일 14시 12분 KST

장인(사돈) 시각에서 본 사도세자 이야기

얼마 전 개봉한 영화 [사도]의 흥행 기세가 만만치 않은 모양이다. 영화평론가 듀나님의 좀 유보적인 평이 있어서 볼까말까 했었는데, 이 기세라면 또 하나의 관객 천만 영화가 되지 않을까 싶어 나중에는 지인들과의 대화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보아야 되지 않나 싶다. (아무도 관심 없겠지만) 영화 [사도] 감상평은 나중에 영화를 보게 되면 올리든지 하고, 오늘은 사도세자가 아버지 영조의 명으로 뒤주 속에 갇혀있다 죽은 이 임오화변(壬午禍變)을 사도세자의 장인, 영조의 사돈, 정조의 외할아버지, 혜경궁 홍씨의 친정아버지인 홍봉한의 입장에서 내 나름대로 한 번 살펴 볼까 한다. 실은 이 글은 작년에 존경하는 김의성 배우님께서 홍봉한 역을 맡게 된 지인인 배우분께 "아는 척"하시겠다고 요청하셔서 내 트위터에서 연작 트윗 형식으로 써 보았던 글을 다시 정리한 것인데, 최근에 김 배우님께 여쭈어 보니, 그 때 말씀하신 지인 배우분은 김 배우님과 같은 회사에 계신 박원상 배우님으로 이번에 영화 [사도]에서 바로 홍봉한역을 맡으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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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도]에서 홍봉한역을 맡은 박원상 배우님.

18세기에 살았던 홍봉한 이야기의 '지금•여기'에서의 적실성은 과연 무엇일까? 우선 지금 우리 사회사람들이 작년부터 아마도 뼈저리게 느끼고 있으리라 생각되는,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이라는 재상, 요새로 치면 국무총리라는 자리가 갖는 허망함과 반면에 권력자와 누가 더 가까이 있느냐에 따라 권력의 (뭐랄까 특히 2인자의 권력의) 진정한 크기가 결정된다고 하는, 특히 전근대(前近代) 동아시아 사회의 특성에 관한 일종의, (어찌 보면 예외라고도 볼 수 있는) 관찰 사례로서 홍봉한이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은 느낌적 느낌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홍봉한은 외척(外戚)이다. 전근대 동아시아에서(일본은 아무래도 예외가 될듯 싶지만) 외척은 환관과 함께 군주에 대한 접근권이라는 점에서 권력의 양대 소스이고 서로에 대한 강력한 경쟁자였다. 중국사에서 후한 말기에 외척인 대장군 하진과 환관인 십상시(十常侍)의 경쟁, 아니 그보다 훨씬 전인 사실상 중국대륙 최초의 통일왕조인 진제국에서 환관 조고에게 밀린 승상 이사, 삼국지연의에서 조조가 자신의 권력의 완성을 외척 복완을 제거하고 후한의 마지막 천자인 헌제에게 자신의 딸을 시집 보냄으로써 이룬 것 등등 권력의 크기는 알량한 승상이니 하는 타이틀에 달린 게 아니라 누가 문고리 권력을 쥐고 있고 누가 천자를 더 자주, 더 많이 알현할 수 있느냐에 달린 예들이 수두룩하다.

그럼 누가 군주를 가장 가까이에서 자주 접하는가? 군주와 잠자리를 같이 하는 황(왕)후/후궁의 아빠/오빠/남동생인 외척과 거세되었기에 궁궐에서 살면서 군주와 황(왕)후/후궁의 시중을 들었던 환관들이 자연스럽게 권력의 핵심에 떠오르게 되었던 것이다. 심지어 이는 군주가 여자인 경우도 예외가 아니어서 우리 역사에서도 통일신라 진성여왕 시절의 각간 위홍, 기나긴 중국사에서 세 명뿐인 여자 지배자 중의 한 명인 측천무후 시절의 이른바 남첩들, 심지어 동성애 성향의 고려 공민왕 때의 자제위에 이르기까지 하여간 군주의 측근에 있는 것이 체고이신-_- 것이었다.

홍봉한은 외척이었고, 이건 그가 현재 왕의 사돈이며 그의 사위가 장차 왕이 된다는 것이었으며 그의 딸이 앞으로 왕에게 베갯머리 송사(응?)를 할 수 있기에 왕에 대한 거의 무제한의 액세스가 가능하다는 의미가 된다. 실제로 홍봉한의 외손자인 정조의 사돈인 안동 김씨(壯金)의 김조순 대부터 안동 김씨는 외척으로 세도정치를 펼쳐서 같은 외척인 풍양 조씨에게 잠시 흔들린 것을 제외하고는 근 60년간 권력을 휘둘렀다.

그런데 홍봉한은 이런 화수분 같은 외척이 되고서도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자기 딸의 남편 사도세자가 아버지 영조에 의해 뒤주 속에 갇혔다 죽는 참혹한 상황이 벌어져도 이를 방관했고 심지어는 조장했다는 비난까지 받고 있다. 도대체 이런 일견 바보 같고 어처구니 없는 짓을 그는 왜 했을까?

그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면 홍봉한의 사돈 영조의 아버지인 숙종의 난잡한(뭐래니?) 사생활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하지만, 모두가 다 아실 그 얘기를 끄집어 내기 전에 우선 홍봉한이란 사람이 그에게 꿀딴지를 안겨 줄 수도 있었을 외척이 되기 전에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잠시 살펴 보기로 한다. 철저한 신분제 사회인 조선에서 왕의 사돈이 된 집안이니 홍봉한의 집안이 꽤 좋은 편이었을 것이란 것은 당연히 짐작이 가는 것일 것이나 홍봉한 개인이 능력이 있었는지는 조금 의문스러운 느낌적 느낌이다.

홍봉한은 숙종말에 태어났고 장래의 사돈인 영조 치세 초기인 20대초에 과거의 (요새로 치면)예비고사 격인 생원시에 합격한다. 진사시와 생원시 중에서 진사시가 시문 창작 능력을 테스트하고 생원시가 경전 암송 능력을 시험 하기에 조선시대에는 대개 진사시에 합격한 이들이 좀 더 뛰어난 이들로 여겨져 왔다고 한다. 그러니 홍봉한은 문재가 그닥 뛰어나지는 않았던 셈. 그런데 아무래도 집안이 좋았던 덕분인지 요새로 치면 본고사에 해당할 대과에 합격하기 전에 홍봉한은 음서제 덕을 보았는지 하급직이지만 관직을 꿰어차며 환로(宦路)에 오른다.

흥미로운 것은 이 상황에서 홍봉한의 어린 딸인 혜경궁 홍씨가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사도세자의 부인이 된 것. 말하자면 아버지가 반쯤 실업자 내지 직장을 취미로 다니는 상황에서 그 딸이 세자빈이 된 것. 바꿔 말하면 본인의 실력과 무관하게 홍봉한 집안이 그만큼 빵빵(응?)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겠고. 거기에 딸이 세자빈까지 되니 홍봉한의 출세길이 더 트여서 그는 혜경궁 홍씨가 사도세자의 부인이 된 직후에는 드디어 대과에 급제한다. 이는 생원이 되고 나서 이미 여러 해가 지나서인데 고시에 거듭 떨어지거나 고시를 몇 년 안 치던 낭인이 갑자기 딸을 왕가에 시집 보내고 나서 덜컥 붙은 셈이니 뭔가 경력 세탁 내지 부정의 스멜이 나지 않는가?

한국사 전공자로 보이는 가명의 작가 정은궐님의 역작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규장각 각신들의 나날]에도 생생히 그려졌듯 조선이 자랑하던 공정한 관료 선발제인 과거제도 위 소설들의 시대 배경인 홍봉한의 외손자인 정조대나 홍봉한이 시험을 치던 그의 사돈 영조대에는 이미 엉망이 된 상태; 물론 홍봉한이 실력으로 과거에 터억 합격했을 수도 있겠지만 생원시 합격 후 여러 해가 지났고 음서제로 관직에 이미 나갔던 이가 외척이 된 다음 해에 과거에 급제했다니(그 때가 30대 초이니 당시 기준으로는 늦은 것은 아니었음) 암만 해도 삐딱히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여간 딸이 빈궁이 되고 그 덕이든 아니든 자신도 대과에 합격한 홍봉한은 이제 출세길만을 걸었어야 했을 것 같은데 뜻밖에도 그의 앞에 최대의 암초가 나타나니 그건 바로 그에게 황금알을 낳아주는 거위였어야 할 사위 사도세자;

사도세자도 그렇고 연산군도 그렇고 서양으로 가면 마리 앙트와네트와 루이 16세도 그런 게 이렇게 왕국의 상속자가 될 정도의 레벨이 되면 그가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고 가정사의 비밀이 어떤 게 있다더라 하는 것이 한 나라나 세계(!)의 운명까지 좌우하게 된다는 것ㄷㄷㄷ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홍봉한에 대한 내 공부가 깊지 않아(언제는 깊었나 뭐ㅠㅠ) 모르겠으나 홍봉한의 사위 사도세자가 소싯적에 그를 길러준 궁인들 중에서는 당시 조선왕조의 야당인 소론계 세력들이 많았던 모양. 당시 집권당인 노론에서 자기들의 명운을 좌우할 장래의 군왕인 사도세자의 주변에 소론들이 활개치게 왜 내버려 두었는지는 진심 의문이지만 (어린 시절에 그렇더라도 일찍 장가를 가서 노론계 부인이랑 같이 살면 문제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지-_-) 하여간 어린 사도세자는 자신의 아버지 영조가 노론의 정의롭지 못한 도움을 받아 왕위에 올랐고 이 과정에서 소론 세력이 부당하게 탄압을 받았다는 주변 궁인들의 속삭임을 들어가며 길러졌다고 한다.

이런 게 흠좀무인 게 어린 마리 앙트와네트도 프랑스에 시집온 것이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왕가와 프랑스 부르봉왕가의 화해를 위한 정략결혼으로 온 건데 진정한(응?) 결혼의 성사가 남편 탓에 늦춰져서 심심한(뭐래니?) 중에 "가장 크리스트교적이신" 시할아버지 루이 15세의 난봉질을 참지 못하던 그의 비혼녀 딸들과 마리 앙트와네트가 말동무가 되다 보니 급기야 마리 앙트와네트가 시할아버지의 총애를 받던 마담 뒤바리를 디스해서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의 동맹관계가 파탄 일보 직전까지 가는 사태가 벌어진 적도 있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소론은 무슨 억울한 일을 당했길래 어린 왕자 사도세자에게 "아 내가 물려받게 될 자리는 아빠가 부당하게 훔친 자리구나"하는 햄릿 뺨치는 고뇌를 심어주는데 성공하였을까? 이걸 살펴 보려면 이번에는, 아까 잠시 미루어둔 사도세자의 할아버지 숙종의 난봉질(쿨럭;)로 거슬러 올라가야; 함.

다 아시다시피 사도세자의 조부 숙종이 주로(응?) 사랑한 여자만 셋임; 인현왕후, 장희빈, 숙빈 최씨. 그 중 장희빈에게서 얻은 아들이 경종, 무수리-_- 출신이라는 소문이 있던 숙빈 최씨가 낳은 아들이 사도세자의 아빠인 영조. 남인은 장희빈을 밀었고 서인은 처음에는 인현왕후 나중에는 영조의 엄마를 밀었음. 숙종은 이 세 여자 사이를 왔다갔다 하면서 정권을 바꿨고(한숨). 그럼 소론과 노론은 뭔가? 서인이 정권을 잡았을 때 노론의 두목이 되는 송시열과 소론의 우두머리가 되는 윤증이 성리학에 대한 스콜라적 논쟁을 벌이다 분당이 됐는데 거기에 아마도 남인의 씨를 말려 버리자-_-;는 입장과 좀 너그럽게 살살 대하자는 입장 차이까지 겹쳐져 완고한 노장파와 유연한 소장파 비스무래한 개념 정도의 정파로 나뉜 것이 노론과 소론. 둘 다 장희빈 덕;에 권토중래한 남인한테 밀렸다가 숙빈 최씨 덕분에(쿨럭;) 가까스로 복귀. 장희빈이 왕비에서 다시 후궁으로 내려 앉았다가 죽은 인현왕후를 저주한 것이 드러나 사사(賜死)되고 나서 장희빈의 아들 경종과 숙빈 최씨의 아들 영조를 놓고서 소론과 노론은 다시금 격돌.

애당초 남인에 너그러운 편이었던 소론은 장희빈은 사사되었어도 숙종의 장남인 경종이 왕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었고, 노론은 말하자면 장희빈의 더러운 피(응?)가 섞인 경종이 아닌 차남 연잉군(장래의 영조)에게 줄을 선 것. 일단 숙종 이 바람둥이-_-는 장희빈을 죽여 졸지에 엄마를 잃게 한 게 미안했는지 경종에게 왕위를 물려줌. 그런데 노론은 가뜩이나 엄마가 죽을 때 했다는 특정 행위 때문에(웁!웁!웁!) 몸이 허약하다는 소문이 있는(쿨럭;) 경종더러 후사를 이복동생인 연잉군(영조)로 정하라고 난리를 치기 시작함. 이게 경종 입장에선 정말 짜증나는 말일 수 있는 것이 당신은 애를 못 낳을 사람이니(왜에에에에에?-_-) 이복동생한테 왕위를 물려주라는 얘기니 참ㅠㅠ 어쨌거나 경종은 그악스럽게 난리치는 노론의 성화를 이기지 못하고, 연잉군을 왕세제로 정함. 그런데 노론은 거기서 더 나가서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알고-_-) 경종더러 이번에는 아예 정사를 왕세제 연잉군에게 다 맡기는 대리청정을 하라고까지 난리를 치기 시작. 경종은 참다참다 폭발하여 이렇게 주장한 노론 4대신을 처벌하고 소론이 집권. 그런데 경종은 재위 4년만에 죽었고-_- 그의 이복동생 연잉군이 왕위에 올라 영조가 되니 세상은 다시 한 번 뒤집혀서 노론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영조 입장에서도 자신이 이복형 경종 밑에서 눈칫밥 먹을 때 열성적으로 지지해주다가 왕의 눈밖에 나서 귀양도 가고 사약까지 받은 사람도 나왔던 노론이 고맙지 않겠는가? 그래도 영조는 초기에는 소론도 등용하고 하는 탕평인사(탕평책이란 말을 실은 영조가 처음 사용함)를 실시하려 했으나 정권을 잃은 소론은 이인좌가 영조를 쫓아내려고 반란까지 일으켰으니 이제는 영조가 완전히 빡쳐서 소론을 탄압하기에 이름.

그런데 어인 일로 그렇게 영조한테는 감정이 안 좋고 소외된 소론 세력이 영조의 아들인 사도세자쪽으로 스멀스멀 침투해 그를 세뇌시켜 흑화 아니 소론화시켰다니 사실이라면 참으로 아이러니함; 사도세자 속에 이렇게 부글부글 끓고 있는 분노에 찬 소론적 사고방식이랄까 그런 게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 아마도 잘 알려지지 않은 채 그는 노론 꼴통(쿨럭;)인 홍봉한의 딸과 정략결혼한 것이 아니었을까? 정말 그랬다면 사도세자는 부인이 얼마나 미웠을까?

반면 사도세자의 아빠인 영조 입장에서는 무수리의 몸에서 태어난 자신을 왕세제로 올려주고 대리청정하게 해달라고 자신의 이복형한테 떼를 쓰다가 떼죽음;을 당하고 귀양;까지 갔던 노론집안 외에 자신의 아들을 장가보낼 곳을 달리 찾기 어렵지 않았을까?

그래서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의 결혼생활은 불행하지 않았을까 싶은 느낌적 느낌-_-; 둘 사이에 아들 정조가 태어나기는 했으나 사도세자는 밖으로만 돌았던 모양이고ㄷㄷㄷ 악의적 왜곡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하여간 사도세자가 할아버지 숙종의 피를 받아서인지 문란하고 방탕하며, 심지어 거리낌 없이 주위 사람들을 함부로 죽이기까지 한 생활을 한 것은 대강 사실이었던 모양이고 장인 홍봉한으로서야 딸이 독수공방 신세가 된데다가 사위가 이제 보니 정치적 견해도 자기네랑 정반대니 자칫 사위가 왕이 되면 자기네야 혜경궁 홍씨 덕에 어찌어찌 살아남을 수 있겠지만 자신과 친분이 있는 같은 당인 노론 사람들이 모조리 몰락해 버리겠다 싶으니 입맛이 무척 썼을 듯.

그리고 사도세자야 자라면서 소론계 궁인들에게 말하자면 체험 없이 의식화;가 된 것이라면 사도세자의 아빠 영조는 자신이 무수리 아들로 태어나 험난한 궁중에서 죽을 고비를 넘길 때 노론은 자신을 목숨까지 버려가는 중신들이 나오며 지켜준 터이고 소론은 자신을 왕위에서 쫓아내려고 했던 역당(逆黨)도 섞여있었던 넘들이란 이미지였는지라 아들이 영 덜 떨어지고 못미덥게 보였을 터.

그러다 (이 부분은 베일에 싸여 있는데) 아마도 사도세자가 영조를 상대로 한 쿠데타를 획책했던 것 같고 그게 발각이 되어 영조는 사도세자더러 자결하라고 하였으나 듣질 않자 뒤주 속에 가둬서 굶겨 죽인; 그러니까 아버지가 자식을 뒤주 속에 가둬놓고 죽여버린 어마어마한 대형 참사가 일어난 것이다-_-; 그런 사태에 이르기까지는 사도세자가 왕위에 오르면 자신들은 모두 죽는다는 두려움에 떨었던 노론측의 음모도 물론 어느 정도 작용했던 것 같고.

사도세자의 장인 홍봉한은 그 와중에 사위 사도세자의 구명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고 비판을 받는 모양이나 글쎄 자신의 딸이 난봉질하는 사위 때문에 독수공방 신세가 되고 사위 놈이란 게 조상들 및 자신이 몸 담고 있는 당파를 파멸시킬 것이 뻔한 상황이라면 그리고 그 사위가 사돈인 현재 왕한테 완전 눈밖에 난 상황이라 괜히 사위 역성을 들었다가는 왕한테 찍혀서 뼈도 못추스릴 상황이었다고 한다면 차라리 눈을 질끈 감고 딸이 과부가 되는 상황을 용인하는 것이 홍봉한으로서는 합리적인 선택이 아니었을까?

홍봉한은 정작 사도세자가 이렇게 죄인으로 죽고나서 그 아들인 세손 정조의 왕위계승도 위태로워졌을 때 외손자인 세손을 구출하기 위해서 나선 걸 보면 괜시리 홍봉한에 대한 변명을 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딸을 과부로 만들고 외손자가 아비 없이 커야 하는 기막힌 상황이었다ㅠㅠ 과부조차도 개가(改嫁)를 못하는 성리학 탈레반 사대부가 지배계급인 조선시대였고 그게 아니더라도 세자빈이 세자 사후 개가라니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위를 구하려고 나섰다간 집안이 망했을 거고 그 잘난 사위 따라다니다가 소속 당파가 폭싹 망할 지경이었으니;; 홍봉한 이 양반 눈물을 머금고 사위를 버리고 딸하고 외손자랑 집안을 구하는 대규모 사석(捨石) 작전을 쓴 게 아닐까?

사도세자의 죽음이 비참하고 끔찍하지만(왕위계승권자인 세자가 왕에 의해 좁은 뒤주에 갇혀 나오지도 못하고 서서히 아사(餓死)했다니ㄷㄷㄷ) 그가 저지른 난봉질과 패악, 그리고 부친에 대한 쿠데타 음모가 사실이라면 또 이렇게 부인과 장인마저 그에게서 등을 돌릴 지경이라면 어쩌면 우리는 조선시대 사극에서 이제 광해군과 함께 양대 최애캐가 되어버린(쿨럭;)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에 관해서도 죽음 찬성파 내지는 묵인파의 입장은 어떤 것이었는지 한번쯤 살펴 볼 때도 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생물학적 아버지나 어머니가 죄를 받아 죽으면 그 아들의 왕위계승권이 위협받게 되는 건 조선왕조 내내 있어 온 일이다. 당장 앞에서 보았듯이 정조의 큰아버지 경종이 모친 장희빈의 사사 때문에 시달렸었고, 연산군은 어머니 폐비 윤씨 문제로 사단을 일으켰다가 왕이 되고 난 후에 쫓겨났다. 정조가 죄인 사도세자의 아들이고 연산군의 전례가 있었으니 노론쪽의 반대가 분명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즉위해서 이십여년 왕위에 있다가 적어도 공식적 기록상으로는 자연사한 것이 과연 친할아버지 영조가 아들을 죽인 후회와 손주 정조에 대한 미안함만으로 가능했을까?

거기에 사위는 갔지만 자기 피도 섞인 외손자를 지켜야 한다는 그래서 딸 혜경궁 홍씨가 남편의 비명횡사에 이어 자식이 자신보다 먼저 죽는 참척(慘慽, 작년 4월 16일 이후로 이 땅에서는 이제 입에 담기도 조심스러운 단어)을 겪게 하고 싶지 않다는 홍봉한의 절박함이 작용하지는 않았을까? 홍봉한이 이렇게 울타리가 되어준 것도 작용해서인지 세손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가 죄인으로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사히 친할아버지 영조의 왕위를 계승하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홍봉한은 큰 짐을 덜었다는 안도감에서 맥이 탁 풀렸는지 그 두어 해 후에 사망한다.

뭐 참 쉽게 산 조선시대 집권당 노론의 그렇고 그런 중신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요새 우리는 그렇게 어마어마한 부잣집에서 태어났어도 삽질 아니 즙질(쿨럭;)하는 분도 있는 걸 목격했던지라 사위가 뒤주 속에 갇혀 죽었지만 딸도 구하고 손자를 왕위에 올리는데 성공한 이 노인네 홍봉한의 성취가 작은 것이었다고 감히 말하기에 주저된다.

아 그리고 이 홍봉한은 결정적으로 행복한 사람이었던 것이 외손자인 정조마저 죽은 다음에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그의 딸 혜경궁 홍씨가 자신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회상한 저술 [한중록]을 남겼기 때문. 정사 [삼국지]의 저자 진수에 대한 포슷팅에서도 썼듯이 나는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 아니고 기록하는 자가 승자라는 주의인지라 사도세자는 물론이고 시아버지 영조, 친정아버지 홍봉한, 아들 정조까지 다 죽고 나서도 살아남은 괴력의(쿨럭;) 여자 사람 혜경궁 홍씨한테서, 그러니까 자기 딸한테서 그렇게 옹호를 받은 홍봉한이 특히나 오늘^^ 딸자식을 둔 남한의 아빠들에게는 부러운 사람이 아니겠나 싶은 생각이 든다.

특히나 혜경궁 홍씨에게는 개차반 같은 남편 넘을 없애주었다고는 하지만, 역시나 정신이 솔까말 온전한 것 같지는 않은 시아버지의 마수에서 나하고 내 자식을 지켜준 친정아버지 아니겠는가?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이 만들어 놓은 미치광이 사도세자와 비련의 여인 혜경궁 홍씨와 그녀의 친정의 모습은 너무도 강력하였기에 남한에서 20세기말에 이덕일이인화라는 한 때는 유력했던^^ 반론이 제기되기 전까지는 우리는 어쩌면 모두 홍봉한의 딸 혜경궁 홍씨가 쓴 [한중록]에 깜빡 속았는지 모르겠다.

딸딸이 아빠로서는 그저 부럽고, 또 무척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 나름 데미지를 최소화한 위기관리능력을 보여준(이것도 얼마나 힘든 테스크인지 우린 지금 목격 중-_-;이다) 홍봉한에게 질시를 보내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