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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9월 16일 12시 50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9월 16일 14시 12분 KST

조국과 아르키메데스

twitter.com/patriamea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형법을 가르치고 연구하면서 최근에는 새정치연합의 혁신위원으로 활동하며 주목을 받고 있는 조국 교수가 어제 트위터에 갑자기 다음과 같은 트윗을 올렸다.

조국 교수가 트위터에 언급한 대로 이는 고전 고대의 수학자이자 과학자인 아르키메데스가 한 말인데, 과연 아르키메데스는 어떤 맥락에서 이 말을 한 것일까? 그리고 조국 교수는 무슨 의도로 갑자기 아르키메데스의 그러한 말을 인용하여 트윗을 한 것일까? 조국 교수는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고, 조국 교수의 트위터에서의 발언들에 대해서는 "열심히 분석"하는 언론 기사들이 많이 나왔음에도 이 트윗과 관련된 기사는 없는 듯 싶어 (아무도 관심 없겠지만) 내가 한번 다음에서 그 맥락과 이유를 살펴보았다.

아르키메데스는 목욕 중에 부력의 원리를 발견하고, 알몸으로(쿨럭;) "유레카(Eureka, 발견했어)"라고 외치며 거리를 뛰어다녔다는 것으로 유명한, 고전 고대에 (지금은 이탈리아에 속하는) 시칠리아섬 시라쿠사에 살았던 그리스계 수학자 겸 과학자이다. 그 외에도 아르키메데스는 자신에게 적당한 위치와 도구만 주어진다면 지구라도 움직여 보이겠다고 장담하여 지렛대의 반비례 법칙을 설파하는 등 고전 고대뿐만 아니라 동서고금을 통틀어서도 손꼽히는 빼어난 수학자이자 과학자였다.

그런데, 시칠리아가 로마와 카르타고가 맞붙은 제2차 포에니전쟁에서 카르타고의 한니발 편에 서게 되자, 시라쿠사는 로마군의 공격을 받게 되었고, 학자 아르키메데스는 적극적으로 현실정치에 개입하게 된다. 아르키메데스는 자신의 과학 지식을 적극 활용하여 시라쿠사를 포위한 로마군을, 자신이 개발한 투석기, 기중기, 반사경 등 각종 기묘한 무기들을 활용해 도륙하는 것에 큰 도움을 준다. 그러나 중과부적(衆寡不敵)이었는지 시라쿠사는 결국 로마군에 의하여 함락당한다.

시라쿠사가 함락된 후 성 안에 몰려온 로마군은, 로마의 시라쿠사 원정군 사령관인 마르쿠스 클라디우스 마르셀루스 장군이, 아르키메데스의 재능을 아껴, 그를 죽이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아르키메데스를 살해한다. 아르키메데스는 죽기 직전에 땅에 도형을 그려 기하학 문제를 푸느라 골몰했다고 하며 몰려온 로마 병사들이 군화로 그를 방해하자 바로 조국 교수가 위 트윗에서 인용한 대로 "noli turbare circulus meo!(나의 원을 지우지 마라!)"고 외쳤다고 한다. 그러나 고대 세계에서 승리한 군대가 누리는 이른바 "승자의 권리(무제한의 약탈/살육 권한ㄷㄷㄷ)"를 행사 중이던, 시라쿠사를 점령한, 로마군에게 그런 "학자"의 외침이 들렸을 리가;; 결국 고전고대 세계의 가장 빛나는 지성이었던 아르키메데스는 그렇게 사라진다.

조국 교수는 최근 새정치민주연합에서 당권을 쥐고 있는 친노 계파의 수장인 문재인 의원에 의하여 구성된 혁신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이른바 혁신안들을 마련하였으나 새정치연합의 안철수 의원을 비롯한 비주류 의원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친 상태였다. 이와 관련하여서 특히 조국 교수는 안철수 의원이 혁신안을 따르지 않을 것이라면 당을 떠나라는 취지의 강경한 발언까지 하여 물의를 빚기도 하였다. 이러한 일들을 겪으며 조국 교수는 이제는 학문연구에 전념하겠다며 여의도 쪽에는 눈길도 돌리지 않겠다고 페이스북에 소회를 털어 놓기도 하였는데, 아마도 아르키메데스가 한 마지막 말을 인용한 위 트윗도, 위대한 지성의 학문 연구를 영원히 가로막은 무지막지한 로마군의 일화를 통하여 자신의 선의를 이리저리 해석하고 재단하는 정치권에 대한 불편한 심경을 토로한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우선 조국 교수가 인용한 아르키메데스의 일화로 돌아가, 아르키메데스를 살해한, 역사에 이름도 남지 않은 그 로마군인들의 자세가 꼭 잘못된 것이기만 한 것인지 나는 의문이 있다. 그들은 아르키메데스가 개발한 희한불금의 병기(!)에 의해 그들의 전우들이 탄 배들이 불타고, 죽고, 어쩌면 그들 중에는 큰 부상을 당하고 간신히 목숨을 구한 자들조차 있었을지 모르겠다. 이런 피칠갑을 하고 눈이 뒤집힌 로마군에게 아르키메데스는 세계적인 수학자/과학자이기는커녕 내 전우들을 죽인 살인마에 불과할 뿐이었을 것이다. 비록 그들의 대장이 아르키메데스의 목숨을 구해주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한들 그들의 로마 군인으로서의 전우애와 양식이 이를 허용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숱한 로마군을 불귀의 객으로 만들고도 아르키메데스가 다시 "묵언안거(默言安居)"를 하겠다며 고고한 학문의 세계로 돌아간다고 한들 글쎄 그에 의해 선혈이 낭자한 채 죽어간 전우를 지켜 본 평범한 로마군인들이 과연 이를 용납하였을까? 아르키메데스도 정녕 그의 학문연구를 계속하고 싶었다면 로마군을 그리 많이 살해하며 "현실 정치에 개입"해 놓고서 이제는 "현실 정치에 눈길도 돌리지 않겠다"고 기하학 문제를 연구한답시고, 자신을 찾아 온 로마군들을 상대로 시비를 걸 것이 아니라 조용히 자숙하고 있어야 할 것이었다.

실제로, 고전 고대 세계에서도 알렉산더 대왕이 테베를 점령하고 시인 판다로스의 집은 건드리지 말라고 명령했을 때에 그런 명령이 지켜진 예도 있었으며, 한니발을 결국 패퇴시킨 로마의 장군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경우에는 한니발의 본진이라고 할 수 있는 이베리아 반도의 카르타고령인 노바 카르타고를 정복한 후에 자신에게 바쳐진-_-; 약혼 중인 젊은 처녀를 약혼남에게 돌려 준 일도 있었다. 즉 암만 정복자에 의한 무자비한 "승자의 권리"가 통용되던 고전 고대에도 순수한 문화, 예술에 종사한 경우는 피정복민이라도 안전하였던 예도 있었고, 정복자 입장에서 가급적 도의적인 선을 지키려고 한 예도 있었다. 그러나 아르키메데스의 경우는 결국 치열하게 대립하는 전쟁의 와중에 중립적인 학자로서 학문연구에 전념한 것이 아니라 "혁신"적인 방식으로 공격 아이디어를 제공하였기에 애초에 살아남기 어려웠던 것이 아닐까?

더군다나 아르키메데스는 당시 지중해세계 최강국인 로마에 대항하여 자기 동료 시민들을 지켜내기 위해 일종의 산학협동을 하다가 목숨을 잃은 셈인데, 제1야당 당권파의 든든한 지원을 받으며 비주류들을 찍어내는 방안을 마련하였다는 취지의 비판까지 받고 계신 조국 교수가 설마 자신의 학문적 업적은 말할 것도 없고 사회적 실천까지 아르키메데스의 그것에 견주신 것인가 싶으니 솔까말 좀 등골이 오싹해지기는 한다. 조국 교수의 짧은 트윗에 대한 나의 이런 기다란 설명이 부디 오독이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