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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7월 06일 13시 55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7월 06일 14시 12분 KST

이후락과 이병기의 평행이론(?)

이후락, 이병기

최근 우리 정계는 박근혜 대통령이 '배신의 정치'라는 격한 말을 써 가면서 사실상 사퇴를 종용한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사퇴할 것인지 여부로 시끄러운 상태이다. 가뭄이 완전 해갈되지 않은 상황에서 메르스라는 중동발 역병의 불길이 아직 잡히지 않고 있으며 그리스의 유로존으로부터의 탈퇴 여부로 대외 경제여건도 좋지 않은 상황에서 청와대와 여당의 이런 권력 다툼은 국민들을 불안하고 짜증나게 만들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대안이 되어야 할 제1야당의 형편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아 더욱 답답하기 그지 없고.

그런데 이런 하극상 내지는 대통령의 삼권분립 침해의 드라마 중에 유승민 원내대표가 상임위원장으로 있는 국회운영위원회에서 청와대 등 결산심사를 하면서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을 부르고, 이병기 비서실장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는 것을 보면서 필자는 문득 현재 유승민 의원이 취하고 있는 스탠스와 정반대의 입장을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그에 맞추어 골라왔던 것 같은 이병기 비서실장의 행적이 떠올라서 그의 이야기를, 특히 그와 비슷한 행적을 걸어 온 박근혜 대통령의 부친 시절 대통령 측근 이후락의 경우와 견주어서, 한 번 끄적여 보았다.

이후락은 이승만 정권에서 군문에 들어가 장군으로 예편한 다음 4.19 민주 혁명 직후의 민주당 정권 시절에 중앙정보부의 전신인 정보기관의 책임자로 일하고 있었다. 그는 5.16 군사쿠데타로 민주당 정부가 무너지고 나서 전 정권 관계자라고 하여 처벌받을 위기에 있었으나, 이를 모면하고 정보기관 책임자로의 전문성(응?)을 인정받아 오히려 중앙정보부를 만들어 정치공작에 활용하고자 하였던 박정희와 김종필 같은 군부세력에 의해 발탁된다.

이후락은 쿠데타 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란 지위에서 정부 수반 노릇을 하던 박정희의 대변인을 거쳐서 그의 비서실장까지 지내게 된다. 특히 박정희가 당시 헌법에 정해져 있던 재선 임기를 마치고도 세 번째로 대통령에 출마하기 위해서 3선 개헌을 1969년에 강행했을 때 이후락은 당시 중앙정보부장이던 김형욱과 함께 적극적인 정치공작에 나서서 여야 국회의원들을 회유하고 협박하여 이를 달성하는데 큰 공을 세운다.

이후락과 김형욱의 이런 정치 공작은 야당과 국민 뿐만 아니라 당시 여당이던 공화당 내에서도 큰 불만을 사게 되었고 그 결과 3선 개헌이 달성되고 난 후 박정희는 공화당의 건의를 받아 들이는 형식을 취해서 3선 개헌의 일등 공신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두 사람을 경질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김형욱이 이 때의 갑작스러운 경질에 대한 분노를 참지 못하고 상상하기 어려운 대응을 하기에 이르지만, 이후락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대변인 시절부터 박정희의 심기를 잘 읽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여서 그랬는지 조용히 경질을 감수하고 주일대사로 가 있었다.

박정희는 3선 출마를 했던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온갖 부정을 저질렀으나 야당의 40대의 젊은 대선 후보인 김대중 전 대통령님께 불과 94만표 차이로 신승(辛勝)하자 "다시는 여러분에게 표를 달라고 할 일이 없을 것"이라던 유세기간 중의 약속(응?)을 지켜 대통령 직선제를 없애고 영구 집권의 길을 연 10월 유신이라는 친위쿠데타를 감행한다. 앞에서 본 것처럼 박정희와 김종필 같은 5.16 군사쿠데타 세력들이 정치공작을 위해서 중앙정보부를 창설하기도 전에 이미 그 전신인 정보기관의 책임자로 일했던 능숙한 이후락이었던지라 그는 대통령 비서실장에서 물러난 후에 다시금 중앙정보부장으로 복귀하였고 친위 쿠데타인 10월 유신을 비밀리에 준비하는 작업을 막후에서 진행한다. 또한 이후락은 박정희가 10월 유신의 명분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추진했던 남북대화를 위해 평양을 몰래 방문하고 김일성의 동생인 김영주를 상대방으로 하여 남북 조절위원회를 통해 남북대화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렇게 독재정권의 유지를 위해 대통령의 측근과 정보기관의 장으로 맹활약했던 이후락은 박정희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서 일본에서 반독재 투쟁을 하던 김대중 전 대통령님을 납치하여 바다에 수장(水葬)시키려는 공작까지 벌이다가 들통이 나서 끝내 물러나고 만다.

그러나 운명의 1979년 10월 전직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은 실종되고, 당시 현직 중앙정보부장이던 김재규님이 박정희와 경호실장 차지철을 살해하는 10.26 사건 같은 경천동지할 일들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이후락은 "떡을 만지다 보면 떡고물이 묻기 마련"이라며 유유히 자신의 부정축재를 합리화하더니만 천수를 누리고 죽었다. 중간에 이후락이 1987년 6월 항쟁 후 민주화가 되었을 때는 당시 군부정권에 비판적이던(응?) 월간지 신동아와 월간조선에 김대중 전 대통령님 납치사건에 관해 증언하겠다고 하자 중앙정보부의 후신이자 국정원의 전신인 당시 안기부 직원들이 이 월간지들의 인쇄를 막아 주기까지 하는 등 전직 중정부장으로서 톡톡한 전관예우(뭐래니?)를 받기까지 하였다.

이후락이 이렇게 중앙정보부의 전신인 정보기관의 책임자 → 대통령의 측근 → 비서실장 → 주일대사 →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장의 경력을 거치는 방식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부친 시절의 온갖 추잡한 정치공작의 이면에 있었다면 박근혜 대통령에 의해 국정원장에서 대통령 비서실장에 임명된(즉 이후락의 코스를 거꾸로 밟은 셈인) 이병기씨 역시 대통령의 측근 자리들과 국가정보원의 포지션들을 번갈아 거치면서 (그리고 심지어 이후락처럼 주일대사까지 거치면서ㄷㄷㄷ) 그리 떳떳하다고만은 할 수 없는 경력을 쌓아 온 사람이다.

즉 이병기는 신군부 집권 시절인 1985년에 당시 집권당인 민정당의 총재(전두환)의 특별보좌역을 지냈고, 대통령 친구였다가 대통령이 되었으나 나중에는 전임자와 사이가 나빠진 노태우 시절에도 의전수석 비서관을 지내는 등 변함없이 신군부 출신 대통령들의 측근이었다. 심지어 이병기는 군부정권에서 문민정부로 바뀌었다는 김영삼 정권 시절에는 중앙정보부의 후신인 국가안전기획부 부장 제2특보로 자리를 옮긴 후 1996년부터 98년까지 안기부 제2차장을 지내기도 했다. 이병기의 이러한 경력은 민주당 정권의 정보 책임자이다가 쿠데타 후 군부독재 정권 세력에 가담해 대통령 측근으로 일했던 이후락의 경력의 데칼코마니 같은 느낌적 느낌이라고나 할까ㄷㄷㄷ

앞에서 살펴 보았듯이 대통령 비서실장 및 중앙정보부장으로 있던 시절의 이후락이 3선 개헌이나 10월 유신, 김대중 납치사건 등의 정치공작으로 악명이 높았듯이 이병기도 안기부 제2차장 시절에는 1997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재미사업가인 윤홍준씨를 사주하여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가 북한으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취지의 허위사실을 기자회견을 통해 폭로하게 한 이른바 북풍 사건에 관여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다. 나아가 그는 2002년 대선 때는 한나라당 이회창 대선 후보의 정치특보를 지내면서 이 후보 지시에 따라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해 자민련에 입당한 이인제 의원 측에 정치 자금 5억원을 전달했다는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았고, 그에 따라 벌금형(1천만원)에 처해지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병기는 자신이 몸 담았던 신군부의 전두환, 노태우 군부정권이나 김영삼의 이른바 문민정부가 끝나고, 자신이 모셨던 이회창이 두 번이나 대선에서 석패하였고 그 와중에 위와 같은 불미스러운 일들에 관여하였다는 의혹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보수 측이 정권을 잡은 이명박 정부 때는 주일대사로 복귀하였으며 박근혜 정부에서는 국정원장을 거쳐서 청와대 비서실장까지 지내게 되니 이 역시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내다가 3선 개헌의 무리한 추진이 문제가 되어 후퇴하였다가 주일대사를 거쳐 다시 중앙정보부장으로 복귀했던 이후락의 관운을 연상시킨다.

물론 1987년 민주화 이전 군부독재 정권 시절의 중앙정보부와 그 이후의 국가정보부를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는 없겠으나 특히나 지난 번 대선 때 국정원이 사이버상에서 적극적으로 여당 후보인 현 대통령을 적극적으로 도운 대선개입 의혹이 법원의 판결에 의해 인정된 현 상황에서 두 번의 대통령 선거에 불미스럽게 개입하고 한 번은 처벌까지 받았으며 얼마 전까지 바로 그런 국가정보원 원장으로 있었던 이를 다시금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발탁한다는 것은 앞에서 본 것처럼 이후락과 같은 이를 정보기관의 장과 측근으로 번갈아 기용하면서 정치공작을 통해서 권력을 유지하여 온 부친의 정치 수법과 닮았다는 인식을 주게끔 박근혜 대통령이 자초한 것이 아닌가 싶다.

중국 5대 10국 시대(907년~979년)의 재상 풍도는 5왕조, 8개의 성씨, 11명의 천자를 섬기며 고위 관리로 30년, 재상으로 20여 년을 지내어 과거에는 지조 없는 간신의 전형으로 욕을 먹어 왔지만, 소설가 복거일 선생님에 의하면 명나라의 이지(이탁오) 같은 이는 풍도가 충신 노릇을 한답시고 지조를 지켰더라면 백성들은 더 큰 고통을 받았을 것이라는 취지로 그를 옹호했다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 부친 시절 항상 살아 남으며 부귀영화를 누렸던 이후락에 대하여 풍도를 이지가 재평가했던 것 같은 일이 나올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아직 대통령 비서실장이라는 현직에 있는 이병기씨는 이후락과 데칼코마니형으로 닮은꼴인 늘 살아 남는 사람이라는 식으로나 기억되지 않을 (아마도 마지막일) 기회가 남아 있지 않을까? 그가 자리에 연연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의 말을 얼마나 지킬지, 그리고 그에게 자리에 연연해 하지 말고 대통령에게 충언을 하라는 주변의 '권고'를 따를지 지켜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