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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6월 26일 15시 02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6월 26일 14시 12분 KST

객지에서 고생 중인 삼권분립의 완성 비화

존 마샬 대법원장은 그 후 200년 이상 미국에 아니 전세계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친 내용을 슬쩍 삽입해 두는데 그것은 미 연방대법원이 미국의 최고 법원이기 때문에 미 의회가 만든 법률이 미 연방 헌법에 어긋나는지 아닌지를 심사할 권한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나중에 위헌법률심사권이라 불리게 될 이러한 당시로서는 가히 혁명적인 주장은 미 연방헌법에는 제대로 나와있지 않고 바로 이 마버리 대 매디슨 사건에서 정말 세계사적 천재라고 할 수밖에 없는 존 마샬 당시 미 대법원장이 혼자 창작해 낸 것이었음ㄷㄷㄷ

삼권분립이 최근 들어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는 것 같아 그에 관해 끄적거리고 싶지만, 나야 뭐 삼권분립의 주창자인 프랑스의 몽테스키외도 잘 모르고, 삼권분립의 원칙이 규정되어 있다는 우리나라 헌법은 더더욱 모르는 관계로 십여년 전에 읽은(응?), 미국의 연방대법원이 어떻게 하여 (삼권분립의 작동원리인 견제와 균형의 매커니즘 중 사법부의 핵심적 권한인) 위헌 법률 심사권을 확보하게 되었는지에 관해 기술한, 제임스 사이먼(James Simon) 교수의 [What Kind of Nation]이라는 책 한 권 달랑 읽은 것에 의지해 한 번 썰을 풀어 보기로 한다.

이 책은 미국의 존 마샬 대법원장과 미국의 제3대 대통령인 토머스 제퍼슨 간의 역사적 라이벌 관계를 그린 책인데 사실 그 전까지 토마스 제퍼슨을 꽤 존경하던 나는 이 [What Kind of Nation]을 읽고 그에 대한 존경심이 좀 뿌옇게 되었고, 그 전엔 자세히 몰랐던 존 마샬 대법원장이 대단한 위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제퍼슨과 마샬은 정파가 달랐다. 제퍼슨은 리퍼블리칸(Republican)이라 불렸으나 지금의 미 공화당과는 정반대로 민주당에 가까운 정파의 수장 격이었고, 마샬은 페더럴리스트(Federalist)라 불린 정파 소속이었다. 제퍼슨은 소규모 자작농들이 중심이 된 민주주의와 주의 권한이 연방의 권한보다 강한 정체(政體)를 꿈꾸었지만 마샬이 속한 페더럴리스트들은 연방정부가 강력한 힘을 가진 시스템을 구축하고 싶어했다. 이 페더럴리스트 중에선 미국 초대 재무장관인 알렉산더 해밀턴(현재 미국 10달러 지폐의 도안 인물이다)이 제일 유명하고, 미국 제2대 대통령 존 애덤즈, 그리고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도 속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페더럴리스트들은 미국의 제3대 대통령 선거에서 제퍼슨의 리퍼블리칸들에게 패하여 정권을 잃는다. 페더럴리스트인 미국의 제2대 존 애덤즈 대통령의 레임덕 기간(즉 선거에 패한 대통령이 후임 대통령 취임 전까지의 남은 기간) 중 페더럴리스트인 마버리라는 사람이 정치적으로 임명되는 아주 하급직인 보안관이나 치안판사쯤 되는 자리를 한자리 하려고 시도한다. 그런데 당시 국무장관이던 존 마샬(쿨럭;)의 실수로 마버리는 제대로 서명된 임명장을 받아가지 못한다. 제퍼슨이 대통령으로 취임한 후 국무장관이 된 매디슨은 마버리가 자신을 치안판사 자리에 앉혀 달라고 주장하자 임명절차에 잘못이 있다면서 이를 거부한다.

한편 국무장관 자리에서 물러난 마샬은 이제 공직에서 완전히 물러나서 변호사나 하며 지내려고 고향으로 가는 길에 초대 대통령이었던 조지 워싱턴에게 인사나 드리려고 조지 워싱턴이 은퇴 후 살고 있던 그의 생가 마운트 버넌에 들린다. 마샬이 이제 정치 관두고 돈이나 벌겠다니까 조지 워싱턴은 이를 말렸고, 하루 자고 가라고 한 후 다음 날 아침 이 백전노장이자 미 합중국의 초대 대통령을 지낸 노인네 조지 워싱턴은 자신이 미국 독립전쟁 때 대륙군(=미국 독립군) 총사령관으로 있을 때의 군복을 다시 꺼내 입고서는(!) 이른바 완전군장을 하고, 존 마샬에게 페더럴리스트 정파나 미국을 위해서라도 공직생활을 계속해 달라고 다시 청한다. 백발이었을 노전사 겸 초대 대통령의 그런 간곡한 청을 받고 감동한 존 마샬은 공직 은퇴 계획을 접고 워싱턴DC에 남기로 한다. 그리고 마셜은 이미 제퍼슨과 그 지지자들이 행정부와 의회를 다 장악한 상태에서 그 당시에는 별볼일 없는 자리로 여겨졌던 연방대법원의 수장이 된다. 나중에 존 마샬이 대법원장이 되어 벌어진 일들에 비추어 보면 조지 워싱턴은 과연 나중에 세계 초강대국이 된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자 당시 세계 초강대국이던 대영제국을 미국 독립전쟁에서 꺾은 위인답게 선견지명이 있었다고 할 수밖에.

대법원장 존 마샬에게 맡겨진 사건이 바로 아까 얘기한 불운한, 페더럴리스트 후원자인 마버리가 리퍼블리칸 국무장관 매디슨을 상대로 자기 치안판사 자리 좀 인정해 달라고 낸 소송이었다. 사실 그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막판에 사면을 아니 임명장을 남발하다 실수한 매디슨 전임 국무장관 존 마샬(쿨럭;). 잘은 몰라도 이 정도 사정이면 존 마샬은 대법원장으로서 이 사건을 재판하긴 좀 거시기하니까 사건을 맡지 않아야 할 것 같은데 천조국도 이 때는 건국 초기라 여러 가지 제도가 미비한 탓인지 존 마샬이 그냥 사건을 진행한다.

페더럴리스트들은 정권도 잃은 터라 같은 정파의 존 마샬이 대법원장으로 이 사건을 맡자 제퍼슨의 리퍼블리칸에게 한방 먹일 기회가 왔다며 환호작약한다. 반면 제퍼슨의 리퍼블리컨 측은 존 마샬 이 자가 엉뚱한 판결을 내릴까봐서 예의 주시한다. 그런데 존 마샬은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창조경제적 결론을 낸다. 우선 결론적으로 마버리는 치안판사 자리에 임명되지 못하였다. 그 후의 사건들에서도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패턴인데 존 마샬 미 대법원장은 결코 삼권분립의 침해(웃음)라는 논란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자신이 이끄는 사법부의 권한을 무작정 확장하지 않았다. 그래서 존 마샬 대법원장이 미 연방대법원을 운영할 때의 판결들은 결론에서는 중립적이거나, 심지어 그의 재임기간 초기의 집권당(존 마샬의 반대당)인 토머스 제퍼슨 미 대통령의 리퍼블리칸의 입장을 따른 것들도 상당수 있었다. 이 마버리 대 매디슨 사건에서도 존 마샬 당시 미 연방 대법원장 사건이 한 것도 그러한 결론은 중립적이거나 반대파 것을 수용하여 마버리의 치안판사 임명을 거부한 것이었다.

그러나 여기에 덧붙여 존 마샬 대법원장은 그 후 200년 이상 미국에 아니 전세계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친 내용을 슬쩍 삽입해 두는데 그것은 미 연방대법원이 미국의 최고 법원이기 때문에 미 의회가 만든 법률이 미 연방 헌법에 어긋나는지 아닌지를 심사할 권한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나중에 위헌법률심사권이라 불리게 될 이러한 당시로서는 가히 혁명적인 주장은 미 연방헌법에는 제대로 나와있지 않고 바로 이 마버리 대 매디슨 사건에서 정말 세계사적 천재라고 할 수밖에 없는 존 마샬 당시 미 대법원장이 혼자 창작해 낸 것이었음ㄷㄷㄷ

이게 왜 혁명적인지는 지금도 행정부의 대통령과 의회와는 달리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사법부(우리 헌법상으로는 대법원 외에도 특히 헌법재판소의 경우)가 어찌하여 의회가 만든 법률이 헌법에 맞느냐 맞지 않느냐를 따질 수 있느냐며 난리를 치는 일들이 이 반도에서도 심심찮게 벌어지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럼 그런 선례도 전혀 없고 헌법에 위헌법률심사권도 규정 안된. 200여년 전에 존 마샬 당시 미 연방대법원장은 이런 위헌법률심사권을 자신이 가진다고 어찌 스스로 선언한 것인가? 앞에서도 썼듯이 그는 이런 혁명적 선언을 한 마버리 대 매디슨 사건에서 결국은 존 마샬 자신의 탓이라고도 할 수 있는-_- 자기네 정파 후원자 마버리를 물을 먹이고 아니꼽지만 반대파인 제퍼슨이 임명한 매디슨 당시 미 국무장관 손을 들어준 것. 하지만 존 마샬 대법원장은 마버리가 그렇게 패소하게 된 논리를 구성하며 마버리의 요청이 가능하게 한 법률이 미국 헌법을 위반하고 있으며, 법을 적용해야 하는^^ 미국 연방대법원은 이렇게 법률과 헌법이 충돌하게 될 경우에는 헌법에 따라서 판결하여야 한다고 해서 대법원이 위헌법률심사권(judicial review)를 행사해야 한다고 슬쩍 끼워 넣었다. 즉 마샬은 이 한 건에서는 제퍼슨 편을 들어 주었지만 앞으로 두고두고 의회가 만든 법률에 대해 대법원이 간섭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은 셈. 말하자면 존 마샬은 전투에서 지고 전쟁에서는 승리하는 길을 고른 셈이다.

존 마샬 (wikipedia)

하지만 암만 이렇게 슬쩍 위헌법률심사권이란 제도를 창조(쿨럭;)했다고 한들 존 마샬 당시 미 연방대법원장이 보여준 탁월한 정치력이 없었다면 이런 혁명적 제도가 자리잡기는 어려웠을 것이라 생각한다. 존 마샬은 일단 국민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노력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미국 판사들은 식민지 모국 영국의 판사들처럼 가발을 쓰고 화려한 법복을 입고 재판을 했다고 한다. 이걸 오늘날 우리나라의 법원에까지 도입된 검은 검소한 법복으로 바꾼 것이(그리고 이는 반도에까지 이어짐) 바로 존 마샬 대법원장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존 마샬 대법원장은 정적인 제퍼슨 대통령(토머스 제퍼슨과 존 마샬은 서로 만나는 것도 피했을 정도로 상호 엄청 혐오한 사이)이 미 연방대법관들을 못살게 굴기 위해 이들더러 순회법원(Circuit Court) 판사직도 겸임하라면서 미국 각지를 돌며 재판하라고 한 것도 묵묵히 따른다. 이건 좀 설명이 필요한데 순회법원은 나중에는 연방 항소법원이 되고 미국 각 지역을 관할하는, 대법원 바로 아래의 2심 법원이 되는데 미국 건국초인 이때는 판사 수가 부족하고 시설도 미비해선지 문자 그대로 순회(circuit)하면서 미국 대륙 전역을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면서 재판을 했다. 그런데 여기 땜빵;을 연방대법관들더러 한 것이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 어느 모로 보나 자기 맘에 안 드는 야당 출신 존 마샬 대법원장의 연방대법원을 물 먹이려는 것이 분명한 처사이건만, 그리고 어찌 보면 대법관이 그 아래 단계 법원 재판관을 겸임하는 것은 법적으로도 분명 문제가 있는 일이지만 존 마샬 대법원장은 말하자면 "나라가 세워진 지 얼마 안 되어 판사들을 더 뽑기에는 나라 살림 형편상 어려우니(아 천조국도 이런 때가!) 우리가 그냥 합시다"하면서 광활한 미 대륙 이곳저곳에서 풍찬노숙을 하면서 국민들이 가져오는 시정의 이런저런 온갖 잡스럽고 소소한 분쟁들까지 들어 주며 재판을 하였다. 이런 순회법원 판사 임무까지 주면 대법관들이 분명 거부하고 반발할 테니 그걸 빌미로 연방대법원을 탄압할 구실을 찾으려 했던 당시 미국 대통령인 토머스 제퍼슨이 오히려 머쓱해졌다고나 할까.

행정부와 의회를 모두 장악한 대통령한테 시달리던 연방대법원의 위상을 이렇게 지켜나가기 위해 존 마샬 당시 미 대법원장이 취한 또 다른 방책은 내부 단결. 존 마샬의 순회법원 판사겸임 결정 같은 것은 당연히 동료 대법관들의 큰 반발을 살만한 일이었다. 대법관이 그 아래 단계 법원 판사 일까지 떠맡게 되는 건 법적으로도 문제가 심각하지만 일단 대법관들의 몸을 힘들게 만드는 일. 처리해야 하는 사건 수도 늘어나고,맨날 여행짐을 싸서 (비행기도 자동차도 철도도 없던 19세기 초의 이야기임) 마차를 타고 미국 대륙 이곳저곳을 떠돌아 다니면서 순회법정에서 재판을 해야 하는 일이니 판사 입장에서는 얼마나 피곤하고(응?) 짜증나는 일이었겠는가;

존 마샬은 동료 대법관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 우선 대법관들이 한군데 모여서 일을 할 수 있는 공간부터 제대로 마련했다. 즉 미국 건국초 미 연방대법원은 독립된 건물에서 집무를 볼 형편도 안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걸 존 마샬은 일단 누추하지만 대법관들이 한 건물에 모이게 조치하고 또 그렇게 모인 대법관들이 밖으로 다니면서 다른 정치인들이나 유력자들에게 접대 받는 일이 없도록 대법관들끼리 모여서 식사하는 전통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대법관들끼리 같이 근무하고 서로 식사하며 자주 보니까 이들은 서로 친해지고 존 마샬 당시 미 연방대법원장은 검소한 검은 법복으로의 교체나 순회법원 판사직 겸임이라는 법 체계상으로도 이상하고 대법관들에게는 격무가 될 일들까지 받아 들이게 설득하는데 성공했고, 연방대법관들은 존 마샬 원장 주위에 단결할 수 있었다. 이는 나중에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이 연방대법원을 탄압하기 위해 자신에게 비판적인 사뮤엘 체이스 대법관에 대한 탄핵시도를 했을 때ㄷㄷㄷ 존 마샬 대법원장이 이를 저지하는 데에도 큰 힘이 되었다.

존 마샬은 이렇게 위헌법률심사권을 창조하고 연방대법원 권한을 강화하는 데만 신경을 쓴 것이 아니라 토머스 제퍼슨 정권의 탄압을 받는 이들을 보호하는데도 힘을 쏟는다. 제퍼슨 당시 미 대통령에 의해 반역죄로 몰린 아론 버 부통령(그는 알렉산더 해밀턴 초대 미 재무장관을 결투 끝에 죽인 걸로 악명이 높은데 미국 영토 일부에서 독립국을 세우려 한다는 의심을 토머스 제퍼슨에게서 샀음) 구명도 존 마샬 대법원장이 해냈다. 존 마샬은 심지어 제퍼슨과 같은 정파로 제퍼슨에 의해 그 다음 대통령이 된 매디슨(마버리 대 매디슨 사건에서 국무장관을 한 바로 그 매디슨)마저 자신의 정치력으로 동지로 만든다. 매디슨은 알렉산더 해밀턴과 함께 페더럴리스트 페이퍼를 집필했을 정도로 페더럴리스트와 친화력이 있는 구석이 있었지만 그래도 제퍼슨 대통령의 절친(웃음)으로 그의 덕분에 대통령 자리까지 물려받은 매디슨마저 중립화 내지는 우호적인 세력으로 만들다니 존 마샬 당시 미 대법원장의 정치력은 가히 만렙이라 할만 하다.

반면 대통령에서 물러난 토머스 제퍼슨은 후임자이자 자신의 절친 매디슨이 정적 존 마샬과 희희낙락하는 꼴 사나운 모습을 보면서 열통 터져하다가 그간 그의 저택과 농장이 있는 몬티첼로에서 사치한 생활을 한 탓에 말년에는 빚에 눌려지내다가 세상을 떠난다. 민중들의 지지에 바탕을 둔 토머스 제퍼슨의 기동전 전략을 존 마셜의 진지전/참호전 전략이 이긴 셈이라고나 할까. 삼권분립 얘기를 하다가(응?) 이렇게 존 마셜 미 대법원장 위헌법률심사권 창조 과정까지 얘기하게 된 셈인데 삼부 중에 두 부를 반대정파에게 점령당하고 제일 약한 사법부만 있는 상태에서 수십 년간의 투쟁 끝에 전세를 역전시킨 이 존 마샬 당시 미 연방대법원장 사례는 삼권분립이란 그저 헌법에 규정된 고정된 게임의 규칙이 아니라(존 마샬은 사법권 중 핵심이 된 위헌법률심사권이 없던 상태에서 심지어 만들어 냈음!) 그걸 담당하고 있는 사람의 정치력과 노력에 의해 얼마든지 유동적으로 그 역관계가 바뀔 가능성이 있다는 걸 잘 보여준다.

존 마샬 미 연방대법원장이 그런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가발과 화려한 법복을 버리고 검소한 법복을 채택하고 국민들의 소소하고 보잘 것 없는 분쟁들을 처리해 주는 고단한 순회법원 판사일도 마다하지 않으며 정권에게 탄압받는 이들도 보듬어 안아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주장이나 자기가 속한 연방대법원의 권한을 확장하는 일을 하면서도 그걸 부드러운 방식으로 서서히 진행시켰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 헌법에도 없던 기상천외한 권한인 위헌법률심사권 같은 걸 만들어 내어도 문제가 없었던 것 아니었나 싶기도 하고. 또한 존 마샬은 미국 연방정부의 기틀을 이룰 판결들을 많이 내려서 건국 초기 미국의 초석을 다지는데도 크게 공헌했다.

이런 존 마샬 대법원장 같은 일들은 하나도 안하면서 구중궁궐 속의 히키코모리 같은 모습이나 보이다가 매달 해외 유람이나 다니는 인식이나 주고, 국정 평론가처럼 여야가 어렵게 합의한 안에 대해서 "삼권분립 위반"이라면서 거부권을 행사하면 그게 씨알이나 먹히겠나 싶다. 에효;; 그야말로 존 마샬 미 연방대법원장이 위헌법률심사권이란 마지막 퍼즐을 맞춰 완성시킨 삼권분립의 원칙이 반도라는 객지에 와서 고생한다고 할 수밖에ㅜㅗㅜ 물론 앞 두 문장에 주어는 없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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