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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02일 12시 25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2월 01일 14시 12분 KST

나라 망친 '문고리 권력'과 어리석은 임금

'문고리 권력' 즉 최고 권력자의 측근으로서, 최고 권력자에 못지 않은 권력을 행사한 이로는 중국 최초의 통일제국 진(秦)의 환관 조고(趙高)가 대표적이지 않을까 싶다. 조고는 진시황(秦始皇)의 측근으로 있으며 심지어 진시황이 후궁들과 갖는 잠자리까지 지켰다고 한다. 절대권력이란 권력자의 눈까지 멀게 하는지, 진시황은 자신의 가장 은밀한 부분(응?)까지 환관 조고에게 내보이면서도 "조고는 환관이지 사람이 아니다"라는 괴이한 논리로 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고, 나중에는 신하들과의 접견조차 거부하고 조고에게 명령을 내리면 조고가 그걸 진시황의 명령이라면서 중신들에게 전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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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고리 권력' 즉 최고 권력자의 측근으로서, 최고 권력자에 못지 않은 권력을 행사한 이로는 중국 최초의 통일제국 진(秦)의 환관 조고(趙高)가 대표적이지 않을까 싶다. 조고는 진시황(秦始皇)의 측근으로 있으며 심지어 진시황이 후궁들과 갖는 잠자리까지 지켰다고 한다. 절대권력이란 권력자의 눈까지 멀게 하는지, 진시황은 자신의 가장 은밀한 부분(응?)까지 환관 조고에게 내보이면서도 "조고는 환관이지 사람이 아니다"라는 괴이한 논리로 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고, 나중에는 신하들과의 접견조차 거부하고 조고에게 명령을 내리면 조고가 그걸 진시황의 명령이라면서 중신들에게 전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진시황은 자신이 통일한 중국 구석구석까지 도로를 닦는 거대한 토목공사(쿨럭;)를 일으켜서 그 도로를 통해 해외 순방하기를 아니; 중국을 순행(巡行)하기를 좋아하였는데 그러다 그 와중에 갑자기 사망했다. 진시황의 장남인 부소(扶蘇)는 진시황 눈밖에 나서 진시황의 또 다른 대형토목공사인 만리장성 공사를 30만 대군을 거느리고 시행 중이던 몽염(蒙恬)장군에게 반쯤 유배격으로 보내졌기에 그의 유언장을 본 것은 당시 국무총리(물론 모국(某國) 국무총리보다는 훨씬 권한이 많았다)격인 승상 이사(李斯)와 진시황의 둘째 아들 호해(胡亥), 그리고 진시황 곁을 계속 지켜 온 환관 조고였다.

이 진시황 유언장에는 맏아들 부소에게 황제 자리를 물려주겠다고 적혀 있었고 승상 이사와 둘째 아들 호해는 처음에는 당연히 이에 따르려 하였다. 그러나 환관 조고는 승상 이사와 진시황의 차남 호해더러 장남 부소가 황제가 된다면 전 황제의 측근이던 승상과 잠재적 경쟁자인 호해는 제거될 가능성이 높고 현재 부소를 모시며 30만 대군을 거느린 몽염이 실권을 잡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며, 진시황의 유서를 조작해 호해를 황제로 세우고 부소와 몽염을 한꺼번에 제거해 버리자는 엄청난 제안ㄷㄷㄷ을 한다. 아마도 이미 황제의 눈과 귀를 가리는 이가 조고였음을 부소가 잘 알고 있었기에 조고 자신이 계속해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해 그런 제안을 먼저 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여간 생명을 보전하고 권력을 계속 누리려는 욕심에 승상 이사와 진시황의 차남 호해는 진시황이 사람도 아니라고 봤던 환관 조고의 말에 동의하였다. 공모자가 된 이들은 우선 진시황의 죽음을 숨기고 진제국의 수도인 함양(지금의 섬서성 서안)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고, 진시황 시체가 썩는 냄새는-_- 진시황이 생선을 먹고 싶어 생선을 조달해 같이 싣고 가서 나는 것이라 속였으니 중국을 역사상 최초로 통일하고 무한한 권력를 한몸에 누리며 불로장생(不老長生)까지 꿈꾸었던 진시황은 죽어서는 그 시신이 썩어 문드러져 나가도 몇 달 간 장례도 못 치르는 기막힌 신세가 되어 버렸다. 이는 춘추시대 첫 패권국가가 되었던 제나라 환공의 시신이 후계자 싸움이 일어나는 통해 장사도 지내지 못하고, 구더기에 파먹힌 사건이나 전국시대 강국 초 도왕의 시신이 재상을 지내던 오기(吳起, 오자병법의 저자)가 자신을 죽이려던 이들의 화살을 피하느라 화살받이로 쓴 것과 유사하다고 하겠다. 그러고 보니 모국(某國)에서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계신 분도(웁!웁!웁!).

그리고 이들은 진시황의 칙서를 위조해서 만리장성 건설현장을 지휘하던 몽염장군과 함께 있던 진시황의 장남 부소더러 자결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효자(역시 만고에 쓸데없는 족속임;) 부소는 몽염이 확인해 보자고 말렸음에도 덜컥 자살했음ㅜㅗㅜ

환관 조고의 꾐에 넘어간 승상 이사와 진시황 차남 호해는 진제국의 수도 함양에 돌아와서야 진시황의 죽음을 공표했고, 호해가 진시황에 이은 2세 황제로 즉위(이들은 몽염장군도 제거한다). 조고는 이사를 부추겨 진시황의 다른 측근들도 모두 숙청한다. 이어서 환관 조고는 2세 황제 호해에게 승상 이사가 반역을 꾀한다고 거짓으로 일러 바쳐 이사마저 제거한다. 그리고 호해에게 사슴을 보여주고서는 말이라고 우기니 이미 조고의 위력에 겁먹은 진제국의 중신들은 거의 모두 말이라 답하고;(지록위마, 指鹿爲馬) 소수의 용기 있는 신하만이 사슴을 사슴이라고 했으나 그들은 모두 조고가 몰래 처단해버렸다. 아주 총명한 임금은 아니지만 그래도 바보는 아니었던 2세 황제 호해는 이 일이 있은 다음엔 완전히 스스로의 판단력에 대한 신뢰를 상실해서 바보가 되어 버렸다고 한다;

그 이후에는 환관 조고는 사실상 진제국의 최고 권력자가 된 셈이나 진시황 밑에서 숨죽여 오던 깨어 있는 시민들 아니;; 6국(진시황은 진나라와 함께 전국칠웅(戰國七雄)이라 불리던 한/위/조/초/연/제(韓/魏/趙/楚/燕/濟) 여섯나라를 멸망시키고 중국을 역사상 처음으로 통일) 유민(遺民)들이 이때부터 반란 일으키기 시작하였다.

정말 XX 두쪽도 없으면서-_- 중국대륙의 최고 실권자의 자리까지 오른 영악한 환관 조고인지라 진제국에 반대하는 반란의 물결이 중원을 휩쓰는 상황임에도 그는 나름 침착하게 장한(章邯)이라는 이를 선발해 반란진압에 나서게 한다. 놀랍게도 장한은, 왕과 제후와 장군과 재상은 씨가 다르다냐면서(왕후장상영유종호, 王侯將相寧有種乎) 나중에 고려 최씨 무신정권 최고 권력자 최충헌의 노비 만적(萬積)을 비롯한 전근대 동아시아의 모든 평민과 천민 반란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 말) 진제국에 대하여 최초로 반란을 일으킨 진승과 오광 등 상당수의 반란군들을 격파하는 성과를 거둔다.

그러나 장한이 이끌고 간 진제국 최후의; 주력군은 항우라는 산을 뽑고 기상은 세상을 덮을 만하다는(역발산기개세, 力拔山氣蓋世) 옛 초나라 땅에서 태어난 맹장에게 패퇴해 포로로 잡힌 후 생매장 당하였다ㄷㄷㄷ한편 항우가 진제국 주력군과 이런 힘겨운 일전을 벌이는 동안 초나라의 별동군을 거느린 유방은 진제국의 심장인 관중(關中, 지금의 섬서성)에 접근하고 있었으니 환관 조고는 이번에도 머리를 굴려 2세 황제 호해를 살해;하고 자영(子嬰)이란 황족을 왕으로(응?) 추대하려고 하였다.

조고의 꼼수는 진나라의 임금이 더 이상 황제를 칭하지 않고 다른 6국의 독립을 허용하고 다시 왕으로 내려 앉으면 나라도 보존하고 자신의 부귀영화도 계속하리라는 것이었다. 조고는 자영에게도 황제가 아닌 진나라 왕으로 즉위하는 것이라고 주지시켰으나 자영이 조고가 맘대로 요리했던 진시황/호해 같은 호구가 아니었고 나라를 망친 조고에 대한 깊은 원한을 가진 이인지라, 자영은 권력을 농단하던 조고를 처단했다. 그러나 이미 문고리 권력자 조고를 죽여서 문제가 해결되기에는 그간의 '적폐'가 너무나 심했고, 기울어진 제국을 살리기엔 너무 늦어 진은 유방에게 멸망했다. 진의 마지막 임금 자영도 항우에게 주살되었다.

참고로 조고와 이사, 호해 간의 모의 내용은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 재현되어 있는데, 사실 조고와 호해가 이사를 죽이고, 호해는 조고 손에 죽고, 조고는 나중에 자영에게 죽으니(헥헥;) 목격자가 있을 수 없을 터인데 사마천은 이를 어찌 생생하게 기록하였을까? 당대인들이 알았던 것은 진시황이 순행 중에 죽었으나 그 죽음이 함양에 돌아 와 공표된 것, 그의 장남 부소가 제위를 잇지 못하고 자살하고 차남 호해가 승계한 것, 그 후에 잘 나가던 이사가 호해/조고에게 제거된 것일 것이다.

사마천은 [사기]를 쓰면서 이런 주어진 정보를 토대로 말하자면 조고와 이사, 호해 간에 밀약이 있었다고 합리적인 추측을 하며 상상력을 발휘한 것이 아닐까 싶다. 실제 당시 백성들 사이에선 부소가 억울하게 죽었단 소문이 퍼졌었으며, 진제국에 대항하여 첫 반란을 일으킨 진승과 오광도 처음에는 부소를 자처하기도 하였다. 즉 착한 부소가 나쁜 조고 꾐에 빠진 바보 호해에게 죽을 뻔했으나 달아나 거병했다는 서사가 민중들에 퍼진 건데 그런 것까지 반영해 사마천은 역사를 쓴 것이 아닐까?

그나저나 사마천과 같은 훌륭한 역사가의 소재가 되어 그가 이렇게 민중들의 서사를 반영하여 좋은 역사책을 쓰는 일은 솔직히 바라지 않으며(당시의 백성들은 얼마나 괴로웠겠는가?), 혹시라도 문고리 권력이라는 것이 있었다면, 하루라도 빨리 뿌리가 뽑혀, 조고의 예처럼 나라를 망하게 하고 백성들을 더욱 도탄에 빠트리기 전에 정리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물론 이 문장은 주어가 없으며, 모국(某國)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는 특정 사실과 전혀 무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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