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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07일 04시 41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1월 07일 14시 12분 KST

러시아 혁명 | 성공(?)한 쿠데타

97년 전에 일어났던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은 프랑스대혁명이나 우리나라의 1987년 6월 항쟁처럼 시민들이 체제에 저항해서 자발적으로 일으킨 혁명이 아니라 소수의 직업혁명가들이 무력을 동원해서 기존 정부를 무너뜨린 군사쿠데타에 가까운 사건이다.

한겨레/길제공

11월 7일은 1917년 러시아에서 10월 혁명(볼셰비키 혁명,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난 날이다. 인터넷 한구석이기는 하지만 나름 순정 수꼴(콜록;)을 자임하는 이 블로그 주인장으로서는 (아무도 관심 없겠지만) 몇 마디 끄적거리지 않을 수 없겠다.

우선 11월에 일어났는데 왜 '10월' 혁명이라고 하는지부터. 혁명 전 러시아에서는 구력(舊曆, 율리우스력)을 썼기 때문에 11월 7일에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역법에 따라 10월 혁명이라고 부른다. 이 '혁명'으로 당시 레닌과 트로츠키가 이끌었던 볼셰비키당은 러시아에서 케렌스키가 이끄는 임시정부를 몰아내고 정권을 잡았으며 소련을 건국하였다.

그러나 97년 전에 일어났던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은 프랑스대혁명이나 우리나라의 1987년 6월 항쟁처럼 시민들이 체제에 저항해서 자발적으로 일으킨 혁명이 아니라 소수의 직업혁명가들이 무력을 동원해서 기존 정부를 무너뜨린 군사쿠데타에 가까운 사건이다. 심지어 '혁명'을 주도하였고 그 성공 후에 집권당이 된 볼셰비키당 내부에서 지도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지노비예프와 카메네프 같은 인사들조차 이런 무력 쿠데타의 방식으로 정권을 장악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봉기 전에 공개적으로 반대했다(덕분에 그들은 일종의 원죄를 지게 되어 나중에 독재자 스탈린에 의해서 숙청되었다). 또한 당시 국제사회주의 운동의 주요한 인물이었던 칼 카우츠키나 로자 룩셈부르크 같은 저명한 이들도 레닌와 트로츠키가 사용한 것과 같은 방식의 무력 쿠데타로 정권을 잡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이유로 비판했다.

무엇보다도 이 볼셰비키 혁명은 이른바 과학적 사회주의(공산주의)의 창시자인 칼 마르크스의 이론에도 부합하지 않았다. 즉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한 나라에서 프롤레타리아혁명이 일어나리라고 보았으나 당시 러시아는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한 나라가 아닌, 후발 자본주의국가에 불과했고 프롤레타리아 즉 산업노동자들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독일이나 다른 서구 선진자본주의 국가에 턱없이 못 미치는 형편이었다. 물론 마르크스도 생전에 러시아의 여성 마르크스주의 혁명가 자술리치로부터 러시아에 과거부터 존재하던 미르(농촌공동체)가 프롤레타리아혁명의 맹아가 될 수는 없는지, 러시아와 같은 후진 농업국에서도 사회주의혁명의 가능성이 있을 수는 없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고서는 러시아에서 짜르 체제를 무너뜨리는 혁명이 유럽 전체에서의 사회주의혁명의 일부로서 일어난다면 아주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취지로 상당히 흥미있는 방식으로 답변한 일은 있었다. 그렇지만 그 역시 나중에 볼셰비키혁명과 같은 군사 쿠데타에 가까운 방식의, 그것도 한 나라에서만 일어난 고립된 혁명을 예상한 것이 아니었음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300년 넘게 계속된, 강고해 보이던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짜르체제가 어떻게 하여 이런 소수의 음모가들의 위와 같은 쿠데타에 의하여 무너지게 되었을까? 역시 가장 큰 원인은 1914년에 발발한,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으로 불렸던, 제1차 세계대전에 있지 않았나 싶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러시아는 영국 및 프랑스와 함께 3국협상 측에 가담하여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상대로 하여 참전했지만 동부전선에서 독일에게 거듭 패하게 되면서부터 흔들리기 시작한다. 급기야 1917년 2월 혁명으로(역시 구력은 2월이나 실제로는 3월에 발생) 전쟁에 염증을 느낀 러시아 국민들의 시위대에 이들을 진압하여야 하는 짜르의 군경이 합류하기에 이르자 짜르 니콜라이 2세는 퇴위하기에 이른다. 이 2월 혁명이야말로 시민/민중들이 자발적으로 일으킨 명실상부한 혁명이라고 할 만하다.

이렇게 2월 혁명으로 만들어진 자유로운 공간을 활용하기 위하여 짜르 시절에는 각국에 망명해 있었던 러시아 혁명가들이 귀국하기에 이른다. 레닌의 경우 재빨리 돌아오기 위하여 당시 러시아의 적국인 독일 군부와 협력-_-;하여 봉인열차를 타고 러시아로 귀국한다. 레닌이 귀국하기 전 2월 혁명으로 짜르는 물러났으나 짜르체제를 대체한 임시정부는 국제적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제1차대전에서 연합국 편에 가담해서 (인기 없는) 전쟁을 계속하고 있었으며,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 내에서도 온건파인 멘셰비키는 마르크스의 입장에 충실하게 현 단계에서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을 해야 된다면서 임시정부에 협력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레닌은 병사들에게는 평화를, 농민들에게는 토지를, 노동자들에게는 빵을 약속했고, 부르주아들에게 일단 정권을 넘기고 순서를 기다린 다음에(응?)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하자는 멘셰비키의 주장은 언어도단이라며 당장 권력을 노동자/병사/농민 소비에트에 넘기고 제헌의회를 소집하라는 주장을 전개한다. 레닌의 이런 뜻에 따라 볼셰비키는 1917년 7월에 봉기했으나 실패한다. 만약 이 1917년 7월 봉기가 성공했으면 어쩌면 이는 민중들의 자발적 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봉기는 실패했고 레닌은 핀란드로 피신한다.

이 7월 봉기의 실패로 볼셰비키와 레닌의 운세도 다 하는 듯했으나 전선의 러시아군이 붕괴하고 임시정부를 무너뜨리려는 코르닐로프 장군의 쿠데타를 진압하는 데 볼셰비키가 공을 세우자 권력의 균형추는 볼셰비키쪽으로 급격히 기울게 된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아까 언급한 대로 봉기 직전 지노비예프와 카메네프 같은 볼셰비키당의 지도적 인사들마저 이러한 봉기에 공개적으로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레닌은 트로츠키와 함께 군사 봉기를 획책했고 결국 케렌스키가 이끌던 임시정부를 몰아내고 정권을 잡는데 성공한다.

그런데 임시정부가 무너진 후 레닌이 오랫동안 주장해 온 제헌의회가 소집되었으나 볼셰비키가 전체의석의 겨우 1/4 밖에는 차지하지 못하자 레닌은 이를 강제 해산ㄷㄷㄷ하고 볼셰비키 1당 독재를 시작한다. 그리고 레닌은 자신을 러시아까지 데려다 준 독일 군부와 타협하여 브레스트 리토프스크 조약을 체결하여 엄청난 러시아 영토를 독일에게 넘겨주고는 전쟁을 끝냈으며, 러시아 내부에서의 반혁명세력(백군)의 반란과 외세의 간섭으로 벌어진 내전에서 승리해 권력을 지킨다.

그러나 이렇게 시작된 공산주의 70년의 실험이 끔찍하고 가공스런 인명피해를 남긴 채 참담한 실패로 끝나고, 러시아가 다시 자본주의로의 길을 걷고 있는 지금 입장에서 보면, 사회경제적 여건이 성숙하지 못한 상태에서 소수의 직업혁명가들이 사회구성원들의 총의를 무시한 채 일으켰던 러시아혁명은 결국 처음부터 실패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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