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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21일 13시 25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12월 21일 14시 12분 KST

'햇볕정책'이라는 이름의 착각

생각해 보면 중국이 개혁과 개방으로 나서게 된 것도 외국과의 교류를 통해서 중국 공산당 정권이 바뀐 것이 아니라 중국 공산당 내부에서 모택동이 죽고, 그의 비호를 받던 극좌세력인 4인방이 몰락한 다음에 집권한 등소평이 개혁·개방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즉 개혁·개방은 권력 내부의 변화의 결과였지 원인은 아니었던 셈.

한겨레

지난 번에 박정희의 유신 독재에 관하여 이 블로그에 글을 썼더니만 페이스북을 중심으로 참으로 신박한(응?) 댓글들이 주루룩 달린 가운데 이 블로그 주인장이 좌빨이라고 오해(쿨럭;)하시는 분들이 꽤 있으신 것 같아 블로그 주인장이 순정 수꼴(뭐래니?)임을 밝히기 위해 이른바 햇볕정책을 까는 글을 올린다. 그리고 참고로 내 글들은 기자의 기사가 아니라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서 사이버 공간을 내 주어 싣는, 원고료 한 푼 받지 않는, 블로그 포스팅일 뿐이므로 "기자의 기사가 왜 그러냐"는 식의, 형식이나 문체를 비난하는 번지수를 잘못 찾은 댓글들도 사양한다. 또한 이 블로그 포스팅 역시 기존 내 글들과 마찬가지로 투명하게 편파적인 글이 될 예정인 것도 미리 밝혀둔다.

우선 복거일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듯이, 햇볕정책이란 용어부터 어처구니가 없다. 그 말이 나온 이솝우화에서, 옷을 잔뜩 껴입은 사람에게 햇볕을 쪼인 일은 그 사람을 괴롭힌 일이었다-_-;; 햇볕이 쨍쨍 내리 쬐는 상황에서 두터운 외투와 옷을 껴입은 사람(북한 정권을 상정한 것 아닌가?ㅋㅋ)은 땀을 비오듯이 흘리며 얼마나 괴로웠을까ㅠㅠ 그런 짓을 하겠다며 그걸 떡하니 정책의 이름으로 해서 그 목적을 공공연히 밝힌 정책이 제대로 될 리가 있나? 차라리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이나 노태우의 북방정책이라면 모를까 정책의 이름 자체부터 상대를 어떻게 보고 있으며 뭘 하겠다는 것이 이리 빤히; 들여다 보이는 정책이 잘 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 아닐까?

그리고 햇볕정책은 실제로도 잘 되지 않았다. 북한은 핵실험을 했고 3대 세습을 강행했으며, 남한은 납북자 한 명 데려오지 못했고 북한은 연평도 포격과 천안함 폭침, 박왕자님 살해사건을 저질렀다. 햇볕정책 말고서 대안이 있느냐는 식으로 아직 햇볕정책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분들은 말하는데 그에 대한 내 답변은 무슨 대안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런 상황에서 계속 햇볕정책에 집착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지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일개 기업이나 개인도 성과가 안 나는 일은 중단은 하고 담당자를 교체하고 심지어는 부서를 없애거나 직장이나 직업을 바꾸기도 한다. 그런데 어느 정파가 두 번의 대선에서 지고 총선을 말아먹고도 거기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삽질 중 하나인 햇볕정책에 계속 집착한다는 것은 그저 기이할 뿐이다.

햇볕정책이 성공했다고 우기는, 햇볕정책 찬성론자들의 중요한 가정 중의 하나는 햇볕;을 계속 쪼이면, 즉 북한정권에 경제적 지원을 계속하고 그들과 교역을 계속하면 그들이나 북한주민들의 태도가 바뀔 것이라는 것인데 전체주의적이고 폭압적인 체제가 그렇게 교역으로 인해서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체제로 바뀔 수 있다는 전제 자체를 난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오히려 역사적으로는 중동부 유럽의 재판농노제나 미국 남부의 노예제도처럼 자본주의적 세계 교역체계에 압제적인 체제들이 완벽하게 통합되어 있으면서 압박받던 농노들이나 흑인 노예들이 아닌 프로이센의 융커들이나 미국 남부의 노예농장주들만이 교역의 과실을 향유했던 선례들이 존재한다. 나는 햇볕;정책 하의 북한정권과 북한주민의 관계가 그런 선례들과 얼마나 다른지 모르겠다. 프로이센의 재판농노제가 사라지기 위해서는 나폴레옹 전쟁이라는 충격이 가해져서 융커들의 지배체제가 큰 타격을 입어야 했고, 미국 남부의 노예제도가 사라지기 위해서는 남북전쟁으로 미국 남부의 인종차별주의적 지배계급이 몰락해야만 했다. 단순히 그들이 세계교역체제에 참여한 것만으로는 그들의 폭정은 결코 종식되지 않았다.

그리고 문화대혁명기의 중국처럼 서구와 일본의 일급의 지식인들까지 속인(李泳禧교수는 남한에서 속은; 경우겠고) 전례가 있는 걸 보면 전체주의 사회의 정보 통제는 생각보다는 훨씬 더 철저하게 이루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햇볕정책과 같은 방식의 상호교류정책을 계속 실시한다고 해서 남한 등 외부사회의 정보가 북한주민들에게 알려져서 궁극적으로 북한사회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기대 또한 그다지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생각해 보면 중국이 개혁과 개방으로 나서게 된 것도 외국과의 교류를 통해서 중국 공산당 정권이 바뀐 것이 아니라 중국 공산당 내부에서 모택동이 죽고, 그의 비호를 받던 극좌세력인 4인방이 몰락한 다음에 집권한 등소평이 개혁·개방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즉 개혁·개방은 권력 내부의 변화의 결과였지 원인은 아니었던 셈.

또한 핵포기와 평화체제구축에 햇볕정책만이 유일한 방식이라 햇볕정책 지지자들은 강변하시지만 제재와 봉쇄를 통해서 핵을 포기시키고 체제 변화까지 끌어낸 남아프리카 공화국 백인정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란 선례도 있고 현재 이란의 경우에도 국제사회의 경제제재가 없었다면 과연 작년에 온건중도파 하산 로하니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그가 국제사회와 핵문제 잠정타결에 합의할 수 있었을지 진심 의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햇볕정책을 부여잡고 이의 상징인 6.15 선언이나 10.4 선언을 존중하시겠다는 분들이야 어쩌겠나, 그리 사시는 수밖에. 하지만 (아무도 관심 없겠지만) 나는 그런 분들에게 공직선거에서 나의 표를 드릴 마음은 추호도 없다. (역시 아무도 관심 없겠지만) 한때 지지했던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전 대표님에 대해서 크게 실망했던 것도 그 분께서 그 부분에서 또렷한 반대입장을 내어놓지 않은 탓이기도 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