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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7월 17일 05시 29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09월 16일 14시 12분 KST

제헌절만큼 기구했던 첫 헌법의 운명

어떻게 삽시간에 정반대의 대통령중심제헌법을 만들어 내나 하고 끙끙 앓던 유진오님에게 어느 날 섬광처럼 떠오른 생각은 의원내각제로 되어 있는 건국헌법 초안의 '국무총리' 권한에 해당하는 부분을 모두 '대통령'으로 바꾸는 것이었음-_-;; 당시 MS Word 프로그램이 있었다면(쿨럭;) 유진오님이 이를 쉽게 바꿀 수 있었겠지만, 어쨌든 수기(手記)로라도 고칠 수가 있었다; 이렇게 난폭하게ㅠㅠ 의원내각제헌법이 대통령중심제헌법으로 하루아침에 바뀌어지니 건국 초기 헌법의 이런 모습은 그 후에 독재자들의 입맛에 따라 누더기가 되어 가는 대한민국의 헌법이 겪게 될 운명의 전주곡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ㄷㄷㄷ

제헌의회 / 연합뉴스

얼마 전 내 트위터 타임라인은 작년과 마찬가지로, 제헌절이 공휴일이 아니라는 것을 뒤늦게 확인한 트친분들의 탄식으로 넘쳐 났다. 정말 청와대와 국회에 66주년 제헌절이라는 커다란 현수막만 걸어 놓을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하루를 편히 쉬면서 차분히 헌법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서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안타깝기 그지 없다. 억지로 우겨보자면 제헌절의 이런 운명은 1948년 7월 17일에 만들어진 대한민국의 첫 헌법의 기구한(?) 운명과도 닮아 있을지 모르겠다. 아래에서 짚어 보는 대한민국의 첫 헌법이 만들어지는 어처구니 없는-_-; 과정은 달리 하이퍼링크를 건 부분이 아니면 소싯적에 부모님께서 헌 책방에서 구해 주신 방송작가 김교식님의 [광복 20년]이라는 책을 읽고 본 기억을 되살려서 쓰는 글이라 (뭐 내 블로그 포스팅이 다 그랬다만;;) 구체적인 레퍼런스에 대한 태클은 죄송하지만 사절하겠다.

건국초기 헌법의 초안을 만든 이는 소설가로도 이름을 떨쳤던 천재라 불린 법학자 유진오님. 유진오님은 한국민주당;과 깊은 관계에 있었는데, 해방 후의 미 군정 시기에 경기도 경찰청장(조선일보 독자권익 위원장 조순형님의 부친인 조병옥님) 및 수도경찰청장(장택상님)의 자리를 당원들이 굳건하게 장악하며 '이승만 대통령 만들기'에 매진했던, (그러나 친일파 지주들이 많이 참여했다는 비난도 받아온) 한국민주당은 자신들이 제1공화국에서 여당이 될 것이라 철썩 같이 믿고, 이승만은 상징적 대통령으로 남게 할 의원내각제 헌법을 구상하였다.

그러나 이는 한국민주당이 너무 안이했다고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해방정국 3년을 거치고도 자신들의 정치적 동맹자 이승만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고나 할까? 그게 중경 임시정부 주석 김구 선생님이 되었건 부주석 김규식 선생님이 되었건 달면 삼키고 쓰면 뱉었으며 현지주둔군사령관 하지의 좌우합작운동에 호의적인 뜻에 거슬려 가면서까지 남한을 소련의 팽창주의에 맞선 반공의 보루로 만들어야 한다고 미국 본국 정부를 설득하여 본인의 의지를 관철시켰으며ㄷㄷㄷ 남한 우파를 반탁(反託)운동으로 결집시켜 무언가 의미있는 애국운동을 한다는 의식을 불어 넣어 주고(응?) 그걸 이용해 1948년 남한만의 단독 총선거인 5.10 총선과 대한민국 건국까지 이끌어 낸 영감이 이승만인데 한국민주당은 기껏해야 그들의 경찰력에 얹힌 노친네로만 착각하였던 것이다;

대통령이 될 이승만에게는 껍데기 권위만 주고 아마도 한국민주당의 인촌(仁村) 김성수가 되리라고 예상했던 국무총리에게 모든 권력을 몰아주는 형태의 유진오님의 의원내각제 헌법 초안을 받아 본 이승만은 당연히 노발대발-_-;해 당장 대통령중심제 헌법으로 뜯어 고치라고 난리를 쳤는데 한국민주당:은 여기서 또 다시 판단 미스를 저지른다. 그들은 일단 이승만 얘기를 들어 주고 나중에 초대 내각을 구성할 때 자기네 장관들을 다수 입각시켜서 실질적으로 의원내각제를 구현하면 되리라고 착각한 것이다.

그나저나 이 순간에 제일 불쌍한ㅠㅠ 이는 헌법초안을 만든 유진오님. 이승만의 고집 때문에 하루 아침에 의원내각제 헌법을 대통령 중심제로 뜯어 고쳐야 했으니-_-;; 이승만은 얼마나 난리를 쳤을 것이며 물색모르는 한국민주당은 이것만 들어 주면 정권 잡는 줄 알고 얼마나 유진오님을 몰아쳤겠는가ㅠㅠ

나름 각국 헌법을 오래 연구하고 시행착오 사례들을 검토해 정성스레 만든 의원내각제 헌법일 터인데 유진오님은 얼마나 황당했겠는가-_-; 어떻게 삽시간에 정반대의 대통령중심제헌법을 만들어 내나 하고 끙끙 앓던 유진오님에게 어느 날 섬광처럼 떠오른 생각은 의원내각제로 되어 있는 건국헌법 초안의 '국무총리' 권한에 해당하는 부분을 모두 '대통령'으로 바꾸는 것이었음-_-;; 당시 MS Word 프로그램이 있었다면(쿨럭;) 유진오님이 이를 쉽게 바꿀 수 있었겠지만, 어쨌든 수기(手記)로라도 고칠 수가 있었다; 이렇게 난폭하게ㅠㅠ 의원내각제헌법이 대통령중심제헌법으로 하루아침에 바뀌어지니 건국 초기 헌법의 이런 모습은 그 후에 독재자들의 입맛에 따라 누더기가 되어 가는 대한민국의 헌법이 겪게 될 운명의 전주곡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ㄷㄷㄷ

한편 과연 한국민주당은 이승만이 해 달라는 대로 의원내각제헌법을 대통령중심제헌법으로 하루아침에 둔갑시켜 주고 나서 원하는 대로 국무총리 등 8명의 각료 입각을 받아냈을까? 그건 개뿔;이고 이승만은 한국민주당 출신 중에선 김도연님 단 한 명(!)만 재무장관으로 입각시켰다;

뿐만 아니라 이승만은 한국민주당의 경제적 기반이던 지주제도를 근간에서 뒤흔들 토지개혁을 실시하기 위해 조선공산당 출신이다가 조선공산당 당수 박헌영을 비판하며 우파로 전향한 조봉암 선생님을 농림부장관으로 임명했고, 조봉암 선생님이 기틀을 잡은 농지개혁안은 유상몰수/유상분배의 방식이기는 했지만 결국 6.25 직전인 1950년 4월경에 아슬아슬하게 실시되어서 남침한(!) 북한 인민군이 '무상몰수 무상분배의 토지개혁'을 남한에서 실시한다고 하자 남한 농민들은 "이미 토지는 밭갈이 하는 자들에게 다 돌아 갔는데 뭥미"하는 반응을 보여-_-; 농민들이 인민군측에 호응하는 일을 막아서(농지개혁에 실패한 러시아, 중국, 베트남이 끝내 공산화 되었던 것과 비교해 보면 정말 등골이 서늘한 일이었다) 6.25의 승패를 갈랐다. 또한 지주들이 토지를 유상으로 인도하고 받은 지가증권은 6.25로 인한 인플레이션으로 그 가치가 폭락하여 6.25를 거치며 남한 사회에서는 유의미한 정치적 이해집단으로서의 지주계급은 몰락하게 된다(이 또한 아직까지도 필리핀 같은 나라에서는 과두 지주계급이 정권을 주고 받는 실정인 것에 비추어 보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서 다행한 일이 아닐까 싶다).

이승만이 6.25 발발 후 서울을 버리고 내빼며 서울시민들에게 안심하라는 녹음방송을 하고서는 한강인도교를 끊어 버렸으며 나중에 복귀해서는 서울에 남은 시민들을 북한군 부역자로 몰아버린; 천인공노할 짓을 저지른 자이기는 하지만 그는 친일지주들이 중심이 되었다는 비난을 받아 왔던 한국민주당 세력을 (헌법에 대한 폭거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굳히는데 활용하고 나서는 그들의 정치적 권력과 경제 기반을 모두 분쇄하였으니 이 점은 평가해 줄 만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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