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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6월 30일 10시 39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08월 30일 14시 12분 KST

"오늘은 기쁜 날"을 다시 볼 수 없음을 아쉬워(?) 하며 - 6.29 선언 이야기

아무도 관심 없었겠지만, 어제는 1987년에 노태우가 이른바 6.29 선언을 한 날이었다. 당일 아침 가택연금 중이시던 김대중 전 대통령님께서는 (6.29선언을 보고는) "인간에 대한 신뢰가 번뜻 떠올랐다"라고까지 기자들에게 말씀하심. 그리고 서울의 어느 커피숍 여주인께선 27년 전 6월 29일, "오늘은 기쁜 날"이라고 가게 앞에 써 붙이시고는 그 날 하루 손님들로부터 돈을 받지 않았다. 천인공노할 죄악을 저지른 자들이지만 적어도 신군부는 뭐랄까 이런 패기 비스무래한 것이라도 있었고 6.29선언이라는 도박을 걸어 결국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 셈인데 이 신군부 세력도 섞여 들어간 지금의 박근혜 정권은 이거 뭐 민심을 읽는 능력도 상실한 것 같고 하다못해 있는 국무총리 자리조차 제대로 채우지 못할 지경이니 그저 한숨만 나올 지경이라고나 할까.

한겨레

아무도 관심 없었겠지만, 어제는 1987년에 노태우가 이른바 6.29 선언을 한 날이었다. 같은 달 10일부터 전국에서 계속된 대통령 직선제 개헌 요구 및 독재 타도 시위에 대해 당시 집권세력인 신군부가 강경진압까지 검토하다가 시국 수습책으로 제시했던 이 6. 29 선언으로, 지금까지 남한 정치의 틀을 이루고 있는 제6공화국 헌법, 이른바 87년 체제가 태동하게 되었다.

전두환과 노태우의 신군부는 1985년 2.12 총선에서 늘 2등에 만족하던 관제 야당 민주한국당이 몰락하고 총선민의로 새로이 등장한 신민당과 합당하게 되어 정부•여당을 매섭게 몰아치자 일단 후퇴하여 더 이상 대통령 간선제를 유지하지 않고 개헌하겠다고 약속하였다. (대통령 간선제는 1972년의 유신체제 이후 도입되어 사실상 찬반투표에 가깝게 운영되었고, 소위 대통령선거인단이 체육관에 모여서 '투표'했기에 '체육관 선거'라는 비아냥을 들어 왔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이 이 때의 개헌논의에서 당시 여당인 '민주정의당'에서는 의원내각제 개헌을 주장했고 야당인 신민당은 대통령직선제를 주장했던 것. 야당쪽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님과 김영삼이라는 걸출한 대선후보급 대중 정치인이 있었으나 여당에는 '대통령의 친구'라는 것 밖에는 내세울 것이 없는 노태우가 차기 주자였으니 대통령직선제는 어떻게든 피하고 싶었던 것. 그러나 신군부의 권력 연장 속셈이 빤히 보이는 의원내각제에 국민과 야당이 동의할 리 만무했기에 개헌논의는 헛바퀴만 돌았고 1987년 4월 13일에 전두환은 이른바 4.13 호헌조치를 발표해 그 해에 자신의 후임을 뽑는 대통령선거는 종전처럼 '체육관 선거'로 하겠다고 발표했고 1987년 6월 10일에 '민주정의당'은 그 '선거'에 나설 후보로 노태우를 선출하였다.

그러나 그 날 체육관 밖의 도심은 매캐한 최루탄의 연기로 뒤덮였다. 2년여전의 2.12 총선으로 표출되었던 민심은 성고문, 물고문까지 저지르며 막장으로 치닫던 신군부가 또 다시 '체육관선거'를 치르고 집권을 연장하겠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기에 호헌철폐와 독재타도를 외치며 6.10 항쟁을 시작하였던 것이다.

당시 신군부가 고를 수 있는 시국수습책은 세 가지 정도였는데 우선은 군 투입ㄷㄷㄷ 전두환은 당시 계엄을 선포하고 군을 투입해 상황을 '정리'하겠단 말을 꽤 뇌까리고 다녔고 특히 부산에서의 시위를 보고 군부대에 출동명령까지 내렸다는 증언도 나중에 있었다. 이런 전두환의 발목을 잡은 건 1980년 광주학살의 기억과 당시 미국 레이건행정부의 반대 그리고 그가 유치해 이듬해 열릴 예정이던 서울올림픽이 아닌가 싶은 느낌적 느낌.

잘 알려지지 않은 또 하나의 수습책은 선택적 국민투표. 선택적 국민투표는 당시 여당의 안인 의원내각제 개헌안과 야당의 대통령직선제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붙여 다수가 지지하는 방향으로 개헌하자는 것(호헌안과 직선제 간에 고르는 국민투표를 하자는 안도 있었다고 기억). 원로 언론인 최석채님 같은 분이 주장했었던 것이 이 선택적 국민투표 방안으로 기억. 그래서 실은 27년 전 어제 여당인 민정당의 당 대표이자 대선 후보인 노태우가 중대발표를 한다고 했을 때 아마도 이 선택적 국민투표 방안을 수락한다고 하는 내용이 아닐까 하는 예측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

그러나 노태우가 1987년 발표한 6.29 선언은 이러한 예상을 가비얍게 뛰어넘는 것이었다. 대통령 직선제를 수용하겠다는 것이었으며 가택연금 중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님을 사면•복권 시키겠다는 내용과 언론자유 보장 등의 민주화 약속이 담겨져 있었다.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신군부측의 이런 양보가 나오자 전국을 휩쓸던 시위는 거짓말처럼 주춤해졌고 당일 아침 가택연금 중이시던 김대중 전 대통령님께서는 (6.29선언을 보고는) "인간에 대한 신뢰가 번뜻 떠올랐다"라고까지 기자들에게 말씀하심. 그리고 서울의 어느 커피숍 여주인께선 27년 전 6월 29일, "오늘은 기쁜 날"이라고 가게 앞에 써 붙이시고는 그 날 하루 손님들로부터 돈을 받지 않았다.

이런 감동적인 6.29 선언을 발표함으로써 노태우는 '대통령의 친구'로 손쉽게 체육관 '선거'로 대관식을 거쳐 대통령이 되려는 자에서 단박에 대중성을 가진 전국적 정치인으로 떠올랐음. 노태우의 6.29 선언은 어디까지나 대통령인 전두환에 대한 건의를 국민들 앞에 공개발표하는 형식이었기에 대통령인 전두환의 재가^^가 남은 상태에서 노태우는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짓고 국립묘지를 방문하는 등의 일정을 소화하며 기다리는 상황을 (나중에 알고 보니) 연출했던 것으로 기억. 야당과 재야세력으로서야 6.29 선언을 환영하며 전두환더러 이를 수용하라고 촉구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음. 그리고 이틀을 기다린 끝에 전두환은 노태우의 건의를 수용한다고 함. 그리고 전국을 뒤덮던 시위는 고 이한열열사의 장례식 노제를 피날레로 하여 잠잠해짐(그 해 7, 8월을 달궜던 노동자 대투쟁은 그 자체만으로도 완전 다른 스토리니 오늘은 생략).

물론 야권 분열 및 관권 개입이라는 요소가 아주 크게 작용했지만 하여간 노태우는 이 6.29 선언을 자신의 정치적 자산으로 활용해서 그해 12월의 직선제 대통령선거에서 제6공화국의 첫 대통령으로 뽑힘. 대부분 동원된 군중이기는 했어도 백만명의 인파를 모은 노태우의 서울 유세에서 집회 참가자들에게 음료를 제공한 여당측 부스(?)들의 이름이 바로 '오늘은 기쁜 날'이었다고 한다. 신군부가 6.29를 어떻게 영리하게 이용했는지를 보여주는 예.

당시에 노태우를 보좌하며 이 선거의 브레인으로 활동했던 이가 바로 이병기-_-; 그 후에도 1997년 대선, 2002년 대선에 절대 알홈답지 않은 방식으로 나타났던 그는 이제 27년이 지난 오늘은 국가정보원장 지명자의 신분으로 인사청문회에 선다고 하니 정말 징글징글하다는 생각만 들 뿐임;

하여간 '대통령 친구'라는 것밖엔 내세울 것이 없었던 노태우한테 대중 정치인으로 데뷔할 멋진 자소서꺼리를 만들어 준 이 6.29는 국민과 야당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소통한 알홈다운 사례로 남을 것 같았고 심지어는 마봉춘에서는 6.29를 소재로 한 당시의 인기단막극 베스트셀러극장을 방영하기도. 서울 특파원이라는 제목의 단막극이었는데 무려 당대의 인기 탈렌트 박순애님이 여주였고 남주는 탈렌트 이효정님이었으며 일본 방송사의 서울특파원이 주인공이었고 원작자는 조갑제 기자(응?).

그런데 전두환은 친구 노태우에게 대통령 자리를 물려주면서 일종의 상왕, 일본 에도 막부의 설립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쇼군 자리를 물려주고도 막후에서 실권을 그대로 쥐고 있던 걸 지칭하던 오고쇼 같은 구상을 했던 것 같고 국가원로자문회의니 일해재단 같은 것들이 그런 구상의 연장선상으로 보임. 그러나 권력은 부자 간에도 숙질 간에도 나누기 어려운 것인데 기껏 친구 사이에 그게 가능했겠는가! 그리고 노태우가 1987년 야권분열 및 관권개입의 덕을 보아 대통령에는 당선되긴 했어도 그 이듬해 총선에선 김대중 전 대통령님의 평민당이 호남과 수도권에서의 약진으로 제1야당이 되는 등 여소야대 국회가 구성되었고 야권 3당은 광주항쟁과 5공 비리에 대한 청문회를 통하여 신군부세력을 거세게 밀어 붙여서 상왕 노릇을 하려던 전두환의 꼼수는 결국 불발함.

이 와중에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자신을 챙겨주지 않은 노태우에 대한 전두환측의 불만이 폭발하고 결국 6.29 선언은 노태우의 고독한 결단이 아니라 전두환이 사실상 주도한 신군부의 치밀한 재집권 플랜이었음이 폭로된다. 20세기에 조선조의 사관같이 대통령의 일거수 일투족을 기록하던 비서인 김성익님의 존재를 월간조선의 조갑제 기자님은 특종으로 발굴하여 "전두환의 육성 증언"이라는 이름으로 보도. 주저하며 머뭇거리던 노태우의 등을 전두환이 떠밀어서 대통령직선제를 수용하게 하고 대중성 없던 대통령친구 노태우를 김대중 전 대통령님과 김영삼이라는 탁월한 대중 정치인과 맞서게 하기 위해서 6.29 선언이란 쇼를 만들어 내었다는 점이 백일하에 폭로되고 만 것이다.

노태우측은 강하게 부정했지만 적어도 6.29가 신군부 내의 사전 합의에 의해서 준비된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만은 이제는 일반적으로 받아 들여지지 않나 싶다. 하긴 총칼로 정권을 잡고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을 학살하고 정권을 잡았던 전두환이 순순히 정권을 내놓고 물러날 리가 만무했고 전두환이랑 항상 보조를 맞춰왔던 노태우가 고독히 결단했다는 것은 그야말로 개뿔;;이었을 것이니 이렇게 사전 각본을 짜고 6.29선언이라는 것을 내어 놓았으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짜고 치는 고스톱이든 뭐든 그래도 신군부의 전두환과 노태우는 12.12군사반란과 5.17 내란 그리고 5.18 광주학살이라는 씻을 수 없는 큰 죄악을 저지르기는 했어도 민심이 들끓고 자기네가 업적으로 내세웠던 88올림픽이 자칫하면 유혈진압으로 얼룩질 위기에 처하자 그렇게 받기 싫어했던 대통령직선제도 수용해서 한 번 건곤일척의 승부를 걸어볼만한 깜냥은 있었던 것.

까짓 직선제 받고 말자, 양김씨는 마음을 비웠고(김영삼) 불출마선언을 했다지만(김대중 전 대통령님) 결국 직선제라는 장이 대선에서 열리면 단일화는 못하고; 각자 출마할 거다 그리고 우리에겐 어용 방송-_-과 관권 개입이 있고ㅠㅠ '안정 희구 세력'(신군부가 자신들의 지지 세력을 불렀던 이름으로 당시 전체 유권자의 35% 정도로 보았음)이 있는데 겁날게 무엇이냐!하는 식으로 말하자면 밀어 붙인 것.

천인공노할 죄악을 저지른 자들이지만 적어도 신군부는 뭐랄까 이런 패기 비스무래한 것이라도 있었고 6.29선언이라는 도박을 걸어 결국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 셈인데 이 신군부 세력도 섞여 들어간 지금의 박근혜 정권은 이거 뭐 민심을 읽는 능력도 상실한 것 같고 하다못해 있는 국무총리 자리조차 제대로 채우지 못할 지경이니 그저 한숨만 나올 지경이라고나 할까. 27년 전 어제 김대중 전 대통령님과 평범한 카페 주인 분까지 정말 살큼 감동하게 한 이벤트를 만들어냈던 자들보다 더 무능력한 이들의 통치를 받는 '미개한 국민'이라 짜증날 따름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