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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2월 16일 11시 00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2월 16일 14시 12분 KST

마이너스 금리, 그 치명적 유혹

gettyimagesbank

돈을 빌리는 데는 돈이 든다.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 돈을 받은 이는 돈값을 지불해야 한다. 우리가 이자(利子·interest)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 거꾸로 돈을 맡기면 돈을 내야 한다. 이자를 받는 것이 아니라 내고 예금을 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 직관에 어울리지 않는다. 오랜 금융 관습과도 맞지 않다. 하지만 이런 유례없는 일이 전세계적으로 벌어지려 하고 있다. 주요 경제권 중앙은행들이 잇달아 취하거나 취하려 하고 있는 '마이너스 금리'(negative interest rate) 정책이다.

우선 실질적인 마이너스 금리와 마이너스 금리정책은 구분해야 한다. 일본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실질 금리가 마이너스 상태가 된 적이 몇 차례 있다. 은행의 명목 금리는 0에 근접해 가고 물가상승률은 그보다 높았을 때였다. 이럴 때도 은행 예금자들은 이자를 받았다.

마이너스 금리정책은 예금자들이 아예 은행에 이자를 제공하도록 하는 것이다. 여기서 예금자는 일반 예금자일 수도 있고, 중앙은행에 돈을 맡기는 시중은행일 수도 있다. 전자의 경우는 은행 이용자가 안전한 예금에 대한 대가를 내야 한다. 후자는 시중은행이 중앙은행에 지불하는 방식이다.

지난 1월 말 일본 중앙은행은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 금리정책을 도입했다. 시중은행이 중앙은행에 맡긴 돈 일부에 대해 -0.1% 금리를 적용하기로 했다. 시중은행이 1천원을 중앙은행에 맡겼을 경우 1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내는 셈이다. 그렇다고 시중은행이 맡긴 돈 전부에 대해서 이자를 내는 것은 아니다. 2015년 기준으로 평균 잔액에 대해서는 중앙은행이 0.1%의 이자를 준다. 지급준비금에 대해서는 0% 금리가 적용된다. 그 이상의 금액에 대해서만 역금리가 적용된다.

일본 중앙은행이 이런 정책을 편 이유는 명백하다. 은행이 돈을 쌓아두지 말고 거의 무료로 대출을 해주도록 독려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개인과 기업의 소비와 투자를 늘리자는 취지다. 이 정책은 전통적인 통화금융정책은 아니다. 보통 경기가 나빠지고 물가가 하락하기 시작하면 금리를 낮추거나 유동성을 공급하는 확장적 통화금융정책을 편다. 하지만 물가하락 압력이 너무 강하면 이런 정책이 아예 통하지 않을 때가 있다. 금리가 사실상 제로 수준까지 떨어져도 대출이 증가하지 않는 경우다. 개인과 기업은 돈을 모아두기만 할 뿐 소비하거나 투자하려 하지 않는다. 마이너스 금리정책은 이 때 돈을 은행에 넣어두는 것이 실질적인 손해가 되도록 하려는 충격 요법이다.

마이너스 금리정책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70년대 초 스위스나 2009~2010 년께 스웨덴과 덴마크가 사용했다. 하지만 이 두 번의 경험은 오늘날 같은 장기 불황에 대한 대책과는 거리가 있었다. 자국으로 몰려드는 외국 투기자본을 막기 위해서였다. 세 나라 모두 비교적 안정적인 경제와 통화를 자부하는 나라들이었다. 70년대에는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을 피하기 위해 국제 자금이 스위스로 몰렸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에는 북구 국가들이 안전한 피난처였다. 자국 통화의 지나친 평가절상으로 골머리를 앓던 이 나라들은 마이너스 금리정책으로 지나치게 유입되는 자금을 차단하려 들었다.

유럽의 경험 그리고 일본의 도박은?

2014년 유럽중앙은행(ECB)은 물가하락의 악순환에 대처해야 했다. 이 지역은 2010년 봄부터 시작된 재정위기를 잇단 구제금융으로 간신히 벗어났다. 하지만 경제는 살아나지 않고 있었다. 이자율을 실질적으로 제로 수준까지 낮추고 유동성을 끊임없이 공급했지만 소용없었다. 확장적 통화금융정책에도 물가는 추가로 하락할 기미를 보였다. 이 당시 유럽중앙은행이 꺼내든 카드가 은행 예금에 대한 마이너스 금리정책이었다.

그렇다면 유럽중앙은행의 당시 실험은 성공했을까? 아직 평가하기에 이른 시간이기는 하다. 하지만 투자와 소비 증가세가 뚜렷하지는 않았다. 개인이나 기업에 대한 금융기관의 대출도 크게 증가하지 않았다. 반면 은행간 대출은 약간 줄었다. 그렇다고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지도 않았다. 마이너스 금리정책 하에서 개인이나 기업들은 예금을 할 이유가 없다. 예금으로 인한 비용이 지속적으로 증가할 경우, 그 돈을 써버리는 것이 아니라 돈을 모두 현금화해서 묵혀둘 수도 있다. 화폐의 퇴장 현상이 발생하면 마이너스 금리정책은 경제 활력을 부추기기는커녕 더욱 위축시키게 된다. 이는 당초 정책 의도와는 정반대의 시나리오다. 유럽에서는 그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정책 효과가 여전히 불투명한 마이너스 금리정책을 왜 유럽에 이어 일본마저 도입했을까? 그리고 일부 유럽 국가들이 도입을 계획 중이고, 경제가 괜찮은 미국마저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을까? 세계 주요 경제권이 마이너스 금리정책의 당초 목적과는 다른 효과를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자국 통화가치를 떨어뜨려 인플레이션을 유도하려는 계산이다. 어떤 나라의 환율이 인상되면 수입품 가격 역시 크게 뛴다. 이는 물가 하락의 악순환을 앞둔 경제권에 물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한다. 수출을 포함한 경제 전반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이는 중국의 노골적인 평가절하 정책과 달리 간접적인 방식이다.

더욱이 세계 각국은 채권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양적완화정책을 더 이상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이 점점 더 부담스러워 지는 데다 유동성 공급 효과가 별반 나타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 마이너스 금리정책은 이미 풍부해진 시중의 자금 풀(pool)을 적극 활용할 수 있게 해준다. 중앙은행이 시중은행들의 넘쳐나는 자금을 시장에 풀도록 유도하는 정책이이서 그렇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글로벌 경제와 금융시장 상황에서 세계 각국의 잇단 마이너스 금리정책은 예상치 않은 부작용을 불러올 수도 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어떤 의미에서 이미 시작된 세계 각국의 환율전쟁을 극적으로 심화시키는 것이다. 모든 나라들이 자국 통화가치를 떨어뜨리려고 하면 무역분쟁의 악순환이 거듭될 수 있다. 이는 1930년대 대공황 당시 세계 각국이 국제 공조에 실패하면서 이미 경험한 바 있다.

마이너스 금리정책의 보다 직접적인 부작용은 은행산업 부실화다. 은행은 자금의 여수신으로 이익을 내는 존재다. 그런데 마이너스 금리로 자금 흐름이 바뀌면 은행들이 직격탄을 맞는다. 수익성 있는 분야에 돈을 빌려주고 돈을 벌 기회가 거의 사라지고 만다. 돈을 개인과 기업에 거의 공짜로 빌려주는 대신 중앙은행에는 이자를 내가면서 맡겨야 한다. 1월 말 일본 중앙은행의 마이너스 금리정책 발표 후 일본 증시가 폭락한 것도 은행주에 대한 불안감에 기인했다.

금융위기가 어느 정도 진정된 후에도 글로벌 금융산업은 지뢰밭이나 마찬가지다. 미국은 유가 하락과 에너지 산업에 대한 지나친 대출로 은행 부실화 우려에 직면해 있다. 재정위기 이후 부실화 한 은행들을 통폐합하지 못한 유럽 역시 안전하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다. 현재 전세계 중앙은행들은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 경제를 위해 어쩔 수 없다는 듯 마이너스 금리정책 카드를 꺼내들고 있다. 하지만 주요 경제권이 모두 비슷한 결정을 했을 때 벌어질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해서는 짐짓 외면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마이너스 금리정책은 단순한 고육지책이라기보다 치명적 유혹이다. 결과에 대해서는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면서 너도나도 빠져들 수밖에 없는 선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