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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9월 18일 12시 41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9월 18일 14시 12분 KST

과연 노조가 한국 경제를 함정에 빠뜨렸을까?

연합뉴스

신흥국과 관련해 중진국 함정(middle-income)이 다시 화제다. 이는 고도성장 하던 경제가 특정 소득대에서 경기 지체나 침체를 맞는 현상을 말한다. 이 용어는 2007년 세계은행(World Bank) 소속 두 경제학자가 공론화 시켰다. 당시 이 기구는 브라질과 남아프리카공화국 같은 곳이 국민소득 1만달러에서 1만2천달러 선에서 쉽사리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사실을 우려했다. 최근 이 말이 다시 회자되는 이유는 물론 중국 때문이다. 국민소득 1만달러 달성을 앞둔 중국은 요즘 금융 불안과 성장 둔화세가 완연하다.

우리나라 안팎에서는 중진국 함정과 관련해 두 가지 시각이 상존한다. 나라 안에서는 주로 우리가 중진국 함정에 빠져 있다고 본다. 국민소득 자체는 3만달러에 육박하지만 성장이 정체되는 양상이 뚜렷해서다. 반면 외국에서는 한국이 중진국 함정을 효과적으로 벗어난 나라라고 간주한다. 예를 들어 1960년부터 2008년까지의 국민소득 지표를 바탕으로 할 때, 고소득(high-income) 국가로 거듭난 나라는 우리나라를 필두로 13개국에 불과하다(영 <이코노미스트> 3월27일자).

2012년 3월 아시아개발은행(ADB)이 발표한 중진국 함정과 관련한 광범위한 분석 작업의 결과도 마찬가지다. 이 기구는 1만1천750달러를 고소득 국가의 기준으로 삼았다. 우리나라의 국민소득은 2천년대에 들어서면서 이 수준을 넘어섰다. 이 기구는 우리나라의 중진국 함정 돌파 배경으로 수출을 꼽았다. 수출이 특정 분야에 집중된 국가들과 달리, 우리는 다수의 복잡한 상품에서 경쟁 우위를 지녔고 서로 잘 연결돼 있다는 것이 강점이라는 주장이었다(지저스 펠리페, <중진국 함정을 추적하다>).

최근 들어 경제학계 내에서는 중진국 함정이라는 말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전 미 재무 장관이자 하버드대 석좌교수인 로렌스 서머스 같은 이가 대표적이다. 그는 1인당 국민소득이 한 나라의 경제 수준을 대표하는 지표로 적절치 않다고 지적한다. 무엇보다 성장 둔화는 고도성장에 따른 필연적 결과라 지적한다. 경제 수준이 낮은 나라는 높은 경우보다 성장을 하기가 쉽다. 혁신보다는 모방이 훨씬 더 쉽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제 수준이 고도화 될수록 성장은 더뎌지기 마련이다. 만일 이 자연스러운 현상을 '함정'이라는 자극적 용어로 묘사하게 되면, 잘못된 정책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정책 당국으로서는 함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뭔가 충격 요법을 쓰고픈 욕구를 느낄 수밖에 없다.

이런 유혹이 이 땅에서 고스란히 현실화 되고 있다. 국민소득 2만달러의 덫에 빠진 것은 누군가의 책임이라는 주장이 횡행하고 있다. 그들이 책임을 져야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논리도 통용되고 있다. 노동개혁을 주창하는 정부와 여당은 노동계, 특히 노조를 특정했다. 여당 대표는 지난 2일 국회 교섭단체 연설 직후 기자들과 만나 역설했다. '대기업 강성 노조가 매년 불법 파업을 일삼고, 공권력이 투입되면 쇠파이프로 그 공권력을 두들겨 팼다. 그런 불법행위가 없었더라면 우리나라가 3만달러를 넘겼을 것이다.' 그 이튿날도 노동시장 개편을 소득 2만달러의 덫을 벗어나 3만달러 시대를 여는 필수조건으로 꼽았다. 동시에 노조를 성장의 발목을 잡는 세력으로 규정했다. '기업이 어려울 때 고통을 분담하기는커녕 노조가 제 밥그릇 늘리기에 몰두한 결과 건실한 회사가 아예 문 닫은 사례가 많다.'

그가 든 예들이 정말 노조가 회사 문을 닫게 한 경우인지, 아니면 노동 탄압을 위해 위장 폐업한 경우인지는 제쳐두자. 대기업과 공권력이 합작으로 온갖 불법과 편법을 동원해 노조를 억압한 과거사마저 잊어버리자. 하소연할 방법 없는 노동 운동가들이 목숨을 걸고 크레인에 올라야 하는 현실도 없는 일로 치자. 더 나아가서 그의 주장처럼 우리 일부 대기업에 이른바 '귀족 노조'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여기자. 그래도 노조 때문에 우리 경제가 2만달러의 함정에 빠졌다는 주장은 극단적 침소봉대(針小棒大)다.

그가 2일 국회 교섭단체 연설에서 한 말에서 공감이 가는 대목이 없는 것은 아니다. '노동시장 양극화로 소득 격차가 커지고 저소득층과 비정규직들의 고용 불안과 생활 불안이 가중되면서 국민통합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는 인식이다. 그 말에 이어 그는 '전체 노동자의 10%에 불과한 노조가 파업을 일삼으면서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만 골몰하고 있다'고 했다. 비정상적 노동시장과 불안한 경제, 위기의 국민 통합에 대한 상황 인식에 대해서는 공감한다. 하지만 귀책 사유를 모두 극소수의 귀족 노조로 돌리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하다. 아마 제 밥그릇 챙기기에 골몰할 수 있는 대기업 노조원은 전체 노조원의 10%도 안 될 것이다. 태산명동 서일필(泰山鳴動 鼠一匹)도 이런 경우가 없다.

과거 인건비에 목숨 걸던 기업인들의 논리 재탕

한 나라의 경제 수준이 고도화 되면 경제 성장이 자연스레 더뎌지는 것처럼, 노동권이 강화되고 임금은 높아진다. 단순히 임금 격차만으로 경쟁력을 확보하던 임가공업은 임금이 더 낮은 곳으로 넘겨줘야 한다. 대신 부가가치가 더 높은 산업으로 옮아가야 한다. 그것이 국제 분업의 논리다. 그런 점에서 노조에만 책임을 돌리고 압박하는 여당 대표의 논리는 주로 '인건비 따 먹기'식 임가공 사업에 골몰하던 과거 우리 기업인들의 논리를 여과 없이 수용한 결과에 다름 아니다.

현재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노동개혁이 개혁이라는 말에 합당했는지도 훗날 따지자. 개혁 자체가 그렇듯, 노동개혁은 목표가 아니다. 그것은 경제 재도약이라는 목표를 위한 수단일 따름이다. 나머지 3대 개혁(공공·금융·교육) 역시 마찬가지다. 네덜란드의 바세나르협약이나 독일의 하르츠 개혁처럼 과잉 홍보된 몇몇 나라의 경우가 있긴 하지만, 몇 가지 단편적 개혁으로 경제가 다시 비약한 예를 찾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개혁이란 이름을 빌려 이념 편향의 정책을 폈다 훗날 되돌린 사례가 적지 않다. 사실 경제는 사회문화적 수준을 포함해 한 나라의 제반 여건이 성장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면서 지체되거나 침체된다.

경제 전문가들은 실제로 독일, 미국, 네덜란드, 북유럽 국가들처럼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한 나라들에게서 찾을 수 있는 공통점으로 대개 네 가지를 꼽는다. 지속적인 산업구조 고도화와 낮은 인플레이션, 강한 수출, 그리고 불평등 해소다. 앞의 세 가지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에서도 그간 꾸준히 신경써왔다. 하지만 불평등 해소가 지속적인 성장의 조건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낯설어 하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단지 사회적 공정성 확보를 위한 분배나 복지 정책 차원에서만 불평등 해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성장을 위해서도 불평등이 줄어들어야 한다는 의미다. 중산층이 안정되고 저소득층의 소득이 늘어야, 소비도 늘고 경제도 성장한다. 이 점은 우리 경제 재도약에서도 필수 요건이다.

하지만 오랜 이념 전쟁의 후유증 탓인지, 우리나라에서는 불평등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마저 금기시된다. 이런 분위기를 조성하는 사람들은 성장은 1%의 부자와 대기업이 주도하는 것이고, 90%의 근로자는 개혁의 대상일 뿐이라고 단언해버린다. 1980년대 대서양 양안(兩岸)을 사로잡았던 보수 대혁명이 뒤늦게 우리나라에 수입돼 이런 이념적 편향을 낳았다. 정부와 여당부터 한 번 생각해볼 때다. 우리는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흘러간 옛 노래를 너무 반복해서 부르는 것이 아닐까?

* 이 글은 데일리한국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