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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9월 17일 12시 27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9월 17일 14시 12분 KST

못난 남자들의 공화국

gettyimagesbank

지금 인터넷에는 포연이 자욱하다. 공격하는 쪽은 주로 남성들이다. 그들이 여성을 비하하며 올린 글이나 댓글들로 도배돼 있다. 아예 대놓고 여성 혐오를 표방하는 사이트나 커뮤니티도 적지 않다. 이런 곳에서 우리나라 젊은 여성은 '김치녀', 주부는 '맘충'으로 비하된다.

처음에는 여성 혐오가 인터넷에 만연한 이른바 '초딩'(초등학생) 댓글 문화의 일부인 줄만 알았다. 미성숙한 소수가 벌이는 예외적인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터넷을 벗어나 주류 문화에서도 공공연히 표출되는 것을 보면서 청년층에 만연한 사고임을 깨달았다. 과거 기성세대가 여성을 차별했다면 지금 청년들은 여성을 혐오한다.

속사포처럼 쏘아대는 힙합을 보자. 가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아서 망정이지 활자화된 가사는 차마 눈 뜨고 못 볼 정도다. 여성을 노골적인 납치와 강간, 살인의 대상으로 묘사한다. 여성 혐오가 극에 달했던 것은 얼마 전 논란이 됐던 한 성인 잡지 표지다. 사진도 충격적이었지만 화보의 제목이 더 자극적이었다. 여성을 상대로 한 극한 범죄를 묘사하면서 여성을 극도로 조롱하는 제목을 달았다. '여자들이 나쁜 남자를 좋아한다고? 진짜 나쁜 남자는 이런 거다. 좋아 죽겠지?'

대상이 부당한 거대 권력과 불공정한 사회 구조일 때 진정한 저항과 풍자가 성립된다. 약자 집단을 공격하는 것은 따돌림이나 괴롭힘일 뿐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언제부터 저항이나 풍자의 대상이 상대적 약자인 여성들이 됐을까?

2000년대 들어서 본격화 된 이른바 '된장녀' 논란이 시발점이 됐을지도 모른다. 당시 젊은 남성들은 비싼 커피전문점 커피를 즐겨 마시는 또래 여성들을 재수 없는 여자들이라는 뜻으로 된장녀라고 불렀다. 된장녀 논란은 후에 여성들과 만나는 과정에서 남자들만 밥이나 음료, 술을 사야 하는가 하는 논란으로 번졌다. 군 가산점제 부활 논란도 젊은 남성들이 뭉치는 계기가 됐다. 군필자에 공무원이나 공기업 시험에 가산점을 부여하는 이 제도는 1999년 위헌 판결로 폐지됐다. 하지만 남성들은 그간 부활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아왔다. 반대하는 여성들에게는 '아니꼬우면 군대를 가든가'라는 치졸한 대응으로 일관해왔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 혐오의 시발점이 된 두 가지 사안을 들여다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여성들이 상대적인 약자가 아니라 강자일지 모른다는 남성들의 현실 인식에서 비롯됐다는 점이다. 단지 여성의 권익이 높아져서만은 아니다. 페미니즘(feminism·여성권익 회복운동)의 부산물만은 아니라는 의미다. 그보다는 우리 사회의 현실적 사정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 여성들은 어디서건 남성보다 더 두각을 나타낸다. 학교 성적도 여성들이 낫고 회사 입사 시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거나 기업 면접위원으로 참여하면, 여성들이 상위권을 싹쓸이하다시피 해서 당혹스러울 때가 많다. 입사 시험 합격자가 모두 여성이길 바라는 기업은 아직 드물다.

이런 상황에서 남성들은 점차 피해의식을 갖고 노골적인 우대를 바란다. 군대를 다녀온 것에 대해 보상받기를 원한다. 전과 달리 남녀가 같이 버는 처지니, 연애와 결혼 과정에서도 같이 분담하자고 주장한다. 여기까지야 남녀 역할이나 위상 변화에 따른 과도기적 현상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 젊은 남성들은 한 발 더 나아갔다. 여성을 자신들의 일자리를 뺏어갈 막강한 경쟁상대로 보는 것이다. 성장의 한계에 봉착한 탓에 성공 기회가 점차 줄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이 점이 여성에 대한 공격 성향으로 표출되고 있다.

여성 혐오를 표현하는 것도 언론의 자유라는 남성들의 항변이 있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는 자유의 한계를 넘어섰다. 자유는 상대나 공공이 피해를 입지 않는 선에서 누려야 한다. 젊은 남성들의 여성 혐오는 '어려운 집 밥상에 같이 숟갈 얹은 오누이에게 욕을 퍼붓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잠시 속이 시원해질지 모르겠지만, 자신이 못난 사람임을 자인하는 일에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