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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2월 16일 06시 47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2월 16일 14시 12분 KST

섹스, 맛 그리고 다이어트

sex

영양성분표가 없던 시절

그 시절에는 입으로 들어가는 게 그대로 똥이 되어 나오는 물질인지,

먹으면 생명에 위협이 되는 독인지

아니면 에너지가 되는 물질이 판단할 수단이 전혀 없었다.

여기서 쾌감의 본질은 출발한다.

바로 즐거운 감각이 우리를 생존으로 이끈다는 것이다.

사실 섹스를 하지 않아도 우리는 죽지 않는다.

섹스는 에너지 소모가 많은 중노동에 가깝기에,

에너지 관점에서는 오히려 죽음을 재촉하는 일이다.

게다가 자연 상태에서의 섹스에는 많은 위험부담이 따른다.

무방비상태로 임해야 하므로 포식자의 공격에 취약해질 뿐만 아니라 소리가 나기 때문에

오히려 주변의 생물들에게 자신의 위치를 노출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게다가 임신 중에는 활동이 제한되고,

아이의 양육에는 시간과 비용이 배로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섹스를 하는 건, 섹스가 쾌감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섹스에서 아무런 쾌감을 얻지 못한다면

에너지 소모와 각종 위험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이 중노동을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번식을 하려면 섹스를 할 수밖에 없다.

번거롭고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이지만 반드시 필요한 일이 섹스인 것이다.

쾌감은 그 과정에서 발명된 생물학적 현상인 셈이다.

즉, 단기적인 만족을 제공함으로써

번식과 생존에 필요한 번거로운 일들을 굳이 하게끔 만드는 것이 쾌감의 본질이라는 말이다.

쾌감, 즉 즐거움은 번식과 생존에 연관된 모든 현상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가령 섹스를 할 때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걸을 때,

아이에게 젖을 먹일 때와 같은 출산과 양육의 현장이 그렇다.

맛 역시 그런 관점에서 쾌감의 일종이다.

쾌감이 섹스의 본질이 아니듯 맛도 음식의 본질은 아니다.

즉, 쾌감이 번식을 유도하는 것처럼, 맛은 생존을 유도한다.

맛있는 음식일수록 더 먹으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맛을 느끼는 메커니즘도 다른 진화의 산물들처럼 자연선택의 거름망을 거쳐 왔을 것이다.

가령 지방에서 별 맛을 못 느낀 쪽은 에너지가 모자라 죽었을 것이고,

지방을 맛있다고 느낀 쪽은 살아남아 지방의 맛을 느끼는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내려 보냈을 것이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현시대의 인류다.

이러한 맛에도 예외 없이 에너지의 효율을 추구하는 법칙이 녹아 있다.

부피가 같으면 칼로리가 풍부한 음식이 생존에 유리하므로

지방은 엄청난 스펙트럼의 맛으로 다가온다.

분자 단위에서 더 잘게 쪼개진 음식일수록 소화에 드는 에너지가 줄어들기 때문에

현미보다는 백미가, 백미보다는 설탕물이 맛있게 느껴진다.

grill

불에 닿은 음식은 분자 결합이 끊어져 있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불맛'이라고 하는 탄소의 맛은 매혹적일 수밖에 없다.

즉, 맛있는 음식은 본질적으로 칼로리가 높거나 소화흡수율이 높은 음식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맛이 있으면서도 칼로리가 낮은 음식 같은 건 있을 수가 없다.

다이어트를 하는 우리는 맛있는데 칼로리가 낮은 음식을 찾아 헤매지만,

맛의 본질이 칼로리를 탐닉하는 몸의 반응인 이상,

맛을 택하고 싶다면 다이어트는 포기해야 한다.

다이어트는 애초에 인류의 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가장 해괴한 행동이다.

양질의 칼로리를 골라서 먹은 다음 최대한 쌓아두는 방향으로 걸어 온 인류에게,

칼로리를 제한하고 활동량을 늘려 살을 빼는 행동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애당초 진화의 방향을 역행해서 걸어가는 만큼,

우리가 음식에서 택해야 할 전략 또한 진화의 방향을 그대로 따라 가면 안 된다.

정말로 살이 빼고 싶다면 일단 맛있는 것부터 줄여야 한다.

맛에 남은 진화의 흔적은

당신이 따라가야 하는 방향이 아니다.

-피톨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