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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용준

영화 저널리스트·'ESQUIRE KOREA' 피처디렉터

영화웹진 '무비스트'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한 뒤로 '프리미어', 'beyond', 'ELLE KOREA' 등의 매거진에서 영화와 대중문화, 인터뷰 기사를 작성하며 밥벌이를 해왔다. 지금은 'ESQUIRE KOREA'에서 피처 디렉터 직을 맡고 있으며 여전히 영화와 대중문화를 비롯한 세상만사에 참견하며 글을 쓰고 말을 한다.

'1987' 그토록 뜨거웠던 순간

1987년에 촉발된 거대한 변화를 이끌어낸 다양한 이들의 얼굴을 나열하고 그들의 내면 속에 켜켜이 쌓여가는 열망이 하나의 방향을 가리키다 끝내 다다르는 것을 확인하게 되는 결말부에선 '1987'이 1987년이라는 시대 자체를 캐릭터처럼 제시하는 영화임을 확인하게 된다.
2018년 01월 05일 14시 42분 KST

MBC는 그리고 우리는

MBC에서 노조가 탄생한 건 1987년 12월이었다. 1987년은 6월 항쟁이 일어난 해다. 새로운 시대적 갈망이 꿈틀대던 그해에 MBC 노동조합이 설립됐다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을 거다. 노동조합의 탄생은 공정한 방송 보도를 지향하고 국민에게 진정한 알 권리를 제공하고자 하는, MBC 내부자들의 열망에서 비롯된 것 이었다. 흥미로운 건 9월 4일 총파업을 시작한 지금의 MBC가 그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에 직면해 있다는 사실이다.
2017년 09월 28일 15시 12분 KST

<아이 캔 스피크> 공감의 온도

'아이 캔 스피크'는 가능한 한 위안부 문제라는 무거운 소재를 짊어지는 시간을 미뤄둠으로써 그 주제 의식에 확실하게 공감하고 이입할 수 있는 여지를 확보한다. 그리고 민족적 채무처럼 끌어안고 있었던 위안부 문제라는 역사적 엄중함을 산뜻한 이야기에 담아 간편하게 떠먹인다. 무엇보다 위안부 문제라는 엄중함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에 공감하라고 강요하지도 않고, 응당 그래야 하는 것이라고 단정짓지도 않는다.
2017년 09월 28일 09시 23분 KST

〈공범자들〉 언론의 미래를 막지 마라

우리는 망가진 것을 손쉽게 조롱하고 비난하지만 정작 그 조롱과 비난에 어울리는 당사자들은 죄책감을 느낄 양심이 없고, 관심도 없다. 정작 그런 조롱과 비난에 직면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건 그럴 필요가 없는 이들이다. 어쩌면 여기서 우리는 또 다른 어떤 질문과 맞닥뜨린다. '우리는 정말 언론이 필요한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언론을 지킬 수 있을까?' 그렇다. 어쩌면 우리는 타락한 언론사를 외면해버리면 그만이라고 믿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비난하고 손가락질해서 광장에서 밀어내버리면 끝나는 일이라고 단정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타락한 공영방송사는 독버섯처럼 방치될 뿐이다.
2017년 08월 30일 15시 03분 KST

우린 1980년 이후에도 수많은 5·18을 목격해왔다

1980년 5월 18일로부터 37년이 흐른 지금 그나마 세상은 좀 더 나아졌을 것이다. 그날의 광주는 5·18 폭동에서, 5·18 사태로, 5·18 민주항쟁 혹은 5·18 민주화 운동으로 조금씩이나마 제자리를 찾아갔다. 그렇게 한동안 하소연할 곳이 없던 광주를 향해 귀를 여는 사람이 생겼고, 늘었고 그날의 광주는 조금씩 명예를 회복해가고 있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아직도 누군가에게 그날의 광주는 북한 간첩에게 놀아난 폭동에 불과할 것이다. 올해에도 공무원 학원가엔 5·18 유공자들이 가산점을 받는 특혜를 누리니 아무리 공부해도 공무원이 될 수 없다는 전단지가 유포됐다.
2017년 08월 11일 15시 26분 KST

〈택시운전사〉 우리는 왜 광주로 가는가

1980년 5월의 광주는 지금까지 답이 없는 물음으로 존재해왔다. 답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답을 해야 할 사람들에게 답을 할 의무와 책임을 명확하게 강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1980년 5월의 광주를 소재로 한 영화는 대부분 억울한 표정을 짓거나 비통한 울음을 터트려야만 했다. 그럼으로써 1980년 5월의 광주를 기억해달라고 호소해왔다. 그런 탓에 1980년 5월의 광주를 이야기하는 영화는 영화로 즐긴다기보다는 목격해야만 하는 어떤 증거처럼 여겨졌다. 〈택시운전사〉에서도 1980년 5월의 광주는 아프게 다가온다. 하지만 차이가 있다면 그런 통증을 외부인의 시선을 통해 한 차례 거르는 과정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2017년 08월 04일 14시 56분 KST

봉준호가 찾은 〈옥자〉

〈옥자〉는 경계가 낮은 화두를 품고 있다. 〈옥자〉를 본 대중은 당장 "고기를 먹어도 되는 것인가?"라는 단순한 질문에 직면할지도 모른다. 혹은 "우리가 소비하는 육류는 어떤 방식으로 유통되는가?"라는 물음을 던지고 싶어질 수도 있다. 그러니까 이건 국가와 민족과 인종의 경계를 쉽게 뛰어 넘는 질문인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옥자〉는 봉준호가 만든 영화 가운데 가장 대중적인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감상적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미자가 옥자를 찾는 건 집을 나간 반려동물을 찾는 심리와도 유사하다. 특별히 이유를 물을 필요가 없다.
2017년 07월 07일 15시 55분 KST

〈히든 피겨스〉 중력을 이긴 여자들

영화의 제목이 의미하는 '숨겨진 인물들(hidden figures)'은 나사의 '유색인종 컴퓨팅 그룹(Colored Computing Group)'에 소속된 흑인 여성들인데 이 영화는 그들의 투쟁적인 일화를 담고 있다. 투쟁이라 하니 광장에 나가 구호라도 외친 것인가 싶겠지만 그들에게 광장이란 자신들이 앉아 있던 사무실이고, 투쟁이란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었다. 호흡하듯 자연스러웠던 차별을 감내하면서도 자신들이 '앞서나갈 기회가 생길 때마다 결승선을 옮기는' 백인들을 상대하기 위해 끊임없이 전력 질주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2017년 04월 07일 15시 22분 KST

〈로건〉 장엄하고 숭고한 마침표

"로건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거대한 악당도, 파괴된 세상도, 자신의 죽음도 아니다. 바로 사랑이다. 일종의 '정' 말이다. 그래서 그를 불편하게 만들기로 했다. 두뇌가 점차 퇴화하는 찰스를 병든 아버지처럼 돌보고, 우연히 만난 딸을 아버지로서 보호하도록 내몰았다." 〈로건〉을 연출한 감독 제임스 맨골드의 말이다. 그러니까 〈로건〉은 울버린의 마지막 여정이자 최후의 부성애에 관한 영화다.
2017년 03월 29일 14시 57분 KST

〈문라이트〉 기억할 수 있는 오늘을 산다는 건

〈문라이트〉에는 더욱 비극적으로 부연할 수 있는, 훨씬 애절하게 채색할 수 있는, 보다 극적으로 강조할 수 있는 순간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문라이트〉는 담담하고 묵묵한 영화다. 상황을 묘사하고 심리를 추측하게 만들지만 감정을 고양시키지 않는다. 세 개의 개별적인 서사는 저마다 품고 있는 감정선을 독립적으로 유지하면서 전체적인 서사로 떠밀려 보내지 않는다. 기승전결의 맥락 속에서 감정을 고양시켜 끝내 폭발시킬 뇌관 자체를 끊어버린 것처럼 보인다.
2017년 02월 27일 17시 02분 KST

어른들이 사라졌다

어른이 된다는 건 가혹한 형벌일지도 모른다. 어른이 되면 필연적으로 책임감을 등에 업고 살아가야 한다. 개인의 삶을 건사해야 한다는 책임감뿐만 아니라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도 점점 무거워져야 마땅하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그런 책임감을 슬며시 내려놓는다. 서서히 망가지는 세상과 자신의 일상을 분리하며 살아간다. 가끔씩은 원래 세상이 그런 것이라 합리화하기도 한다. 세상을 망친 주범이 있다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자신이 세상을 망치는데 일조한 공범이라 여기진 않는다.
2017년 02월 08일 16시 28분 KST

〈더 킹〉 대한민국은 과연 어떤 나라인가

대한민국 현대사의 하이라이트가 데칼코마니 형상의 몽타주로 스크린에 나열된다. 12·12 쿠데타, 88서울올림픽, 6·15 남북공동선언, 2002 한일 월드컵, 노무현 대통령 탄핵. 그리고 그 간극을 채운 대통령의 얼굴들. 전두환과 노태우, 김영삼과 김대중, 노무현과 이명박. 그 뒤로 스크린이 암전 되고 〈더 킹〉이라는 제목이 떠오른다. 〈더 킹〉은 대한민국 현대사를 주름잡은 어떤 권력들을 주목한 영화다.
2017년 01월 23일 17시 44분 KST

〈라라랜드〉 다시 꿈꾸고, 사랑하기 위하여

아이러니한 일이다. 서로의 꿈이 서로를 사랑하게 만들었지만 사랑을 지키기 위해 꿈을 포기했다는 진심이 되레 사랑을 무너뜨린다. 본래의 진심은 속절없을 뿐이다. 〈라라랜드〉의 결말이 가슴을 저미는 건 그래서다. 우연히 들어선 클럽에서 오래전 자신이 응원하던 꿈의 징표를 보게 된 미아의 얼굴에서, 클럽의 무대에 올라 객석에 앉아 있는 미아를 발견하고 잠시 말문을 잊게 되는 세바스찬의 얼굴에서 지나간 계절이 떠오른다.
2016년 12월 26일 14시 00분 KST

[어떤人터뷰] '죽여주는 여자'의 이재용 감독

아무래도 나는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걸 달가워하는 타입이 아닌 것 같다. 내 관심사를 공유하고 싶을 뿐이지, 사람들을 계도하고 싶진 않다. 어떤 주의나 의식을 웅변하고 자각하게 만들겠다는 의지가 없다. 물론 그들의 삶에 비참한 단면이 있을 거다. 하지만 매일을 지옥처럼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히려 그럴수록 어떻게든 살아갈 구실을 만들어내고, 작은 온기에서도 삶의 동력을 얻을 거라 생각한다.
2016년 11월 11일 15시 47분 KST

[어떤人터뷰] '립반윙클의 신부'의 이와이 슌지 감독

우리는 가족이란 관계가 필연이고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처럼 생각하는데 사실 가족 또한 우연히 만들어진 관계 아닌가. 혈연으로 이어져있다 하지만 그것이 정해진 운명에 놓인 관계라고 볼 수 없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니까 싸움이 일어난다. 그 운명적 관계 안에서 내가 너를 지배해야 한다는 알력이 형성된다. 사실 그런 관계란 인간과 인간이라는, 개인과 개인 사이에선 존재할 수 없는 폭력 아닌가. 그래서 누구를 만나면 사람이 행복한 것인지, 누구와 함께할 때 사람이 행복할 수 있는지, 결국 그런 행복이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나게 되는 것인지 누구도 알 수 없다는 것을, 이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 동시에 그런 행복이란 결국 우리의 주변에 널려 있다는 걸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2016년 10월 08일 13시 27분 KST

[어떤人터뷰] '밀정'의 김지운 감독

사실 '밀정' 이전까지 내가 영화를 대하던 태도는 '세상이 이렇게 흉측하고 힘들고 어두운데 뭐가 저렇게 밝고 즐겁니?'라는 식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현실이 영화보다 더 어둡고, 끔찍하다 보니 영화에서까지 실패한 역사를 말하고 다루고 싶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다루는 인물의 태도까지 크게 바뀌는 건 아니지만 실패한 역사라 해도 그걸 딛고 앞으로 전진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다. '밀정'과 관련은 없지만 세월호 참사 같은 일을 겪게 되는 현실이니까. 어떤 식으로든 전진해 왔다고 믿었던 세대로서 처음으로 시대가 퇴보한다는 기분을 느꼈을 때의 충격이 내게도 있었던 것 같다.
2016년 09월 24일 13시 54분 KST

[어떤人터뷰] '최악의 하루'의 김종관 감독

"<최악의 여자>라는 제목에 애정이 있었지만 <최악의 하루>도 괜찮았다. 사실 이 영화에는 최악의 여자도 없고, 최악의 하루도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은희(한예리)를 괴롭히던 두 남자에게 되레 그녀가 최악의 여자로 몰락하는 것이고, 그렇게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는 여자가 돼버린다는 의미에서 <최악의 여자>라는 제목에 좀 더 엣지가 있지만 결과적으론 좋은 선택이었다." | 민용준
2016년 09월 02일 17시 50분 KST

[어떤人터뷰] '덕혜옹주'의 감독 허진호

열네 살의 나이에 일본으로 끌려간 뒤로 급격하게 어두워졌다고 한다. 결국 타국에서 어머니의 죽음을 전해 듣고, 강제로 결혼도 하고,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이혼당하고, 딸까지 자살하고, 정말 비극적인 삶을 살았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영화화를 생각한 건 아니었다. 다큐멘터리에서 덕혜옹주가 37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오는 광경이 나왔는데 '아기씨'라 부르며 덕혜옹주를 마중하는 상궁들의 모습이 깊게 각인됐다. 당시 50대 중반에 다다르는 할머니가 된 상궁들이 과거 궁에서 입던 옷을 차려 입고 덕혜옹주에게 절을 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움직였다.
2016년 08월 18일 14시 03분 KST

[어떤人터뷰] '부산행'의 감독 연상호를 만나다

"보통 사람들에게서 악마성 같은 기질이 관성처럼 터져 나오는 순간들이 있는데 그런 관성을 보여주고 싶었다. 후반부에서 느껴지는 처연함도 거기서부터 출발하는 감정이라 생각했고. 방금 가족을 잃은 사람에게 윽박을 지르는 보통 사람들이란 우리가 평소에 인간적이라 생각하는 모습이 아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일은 종종 일어난다. 그런 순간이 피해자나 피해자의 가족들 입장에선 굉장히 슬프게 다가올 거라 생각했다."
2016년 08월 01일 13시 45분 K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