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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울

자유기고가

돼지띠. 오랜 은둔 생활 끝에 비교적 늦게 오프라인 게이 커뮤니티에 입문했으며, 애인과 동거 중이다. 학부 때 문학과 역사를 배웠고, 현재 대학원 재학 중이다. 몇몇 시민단체에 몸담으며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다. 이성애자와 동성애자 사이 이해의 끈을 마련하는 데에 관심이 있다. 프로필 이미지는 고야의 'I am Still Learning' : 1824-28.
모두가 맨얼굴이다 | 영화 〈위켄즈〉

모두가 맨얼굴이다 | 영화 〈위켄즈〉 리뷰

모두가 맨얼굴이다. 한두명을 제외하고, 지미집 카메라로 담은 무대 위 지보이스 단원들의 얼굴엔 블러도 모자이크도 없다. 서른 명이 넘는 게이들의 얼굴이 이렇게 한꺼번에, 아무 위장이 안된 채로 스크린에 담긴 적은 처음이다. 저 각각의 얼굴들은 곧, 그 한 사람이 촬영동의서를 쓸 때의 고민과 두려움과 결단의 무게에 값한다. 이들은 어째서 그럴 수 있었을까. 이 영화가 품고 있는 거대한 수수께끼 중 하나다. 그리고 이 수수께끼는, 관객층을 전혀 제한하지 않는 매해 지보이스 정기공연 때마다 반복되는 일이다.
2016년 12월 26일 11시 53분 KST
안 보인다고 없는 것이 아니다 | 어느 HIV/AIDS 감염인의

안 보인다고 없는 것이 아니다 | 어느 HIV/AIDS 감염인의 이야기

동성애자들의 저 가없는 자긍과 자기확신과 시대의 물결 앞에, 감염인들이 설 자리는 왠지 적어 보입니다. 그들의 자리가 협소해 보이는 까닭은, 그들의 삶이 어떠한 것인지, 아니 그들이 대체 어디에 어떻게 존재하는지조차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알지 못하는 이유는 감염인들 스스로가 자신의 병증을 말하기 어려운 까닭이겠고, 그것은 그들의 책임이 아닙니다. 감염인들이 그런 주체 없는 책임의 주체가 되어 살아갈 때, 그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은 아무도 모르게 세상을 떠나고는 하였습니다. HIV/AIDS 감염인의 죽음 중 상당수는 가족이 배석하지 않고, 빈소가 꾸려지지 않고, 장례식이 치러지지 않는 식으로 수습됩니다. 그들은 죽어서도 자신을 드러낼 수 없었던 셈입니다.
2015년 12월 01일 12시 33분 KST
세상을 용서하는 게이코러스

세상을 용서하는 게이코러스 "지_보이스"

지_보이스의 공연이 결코 뭇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기 쉬운 '착한 게이'의 모습만을 부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령 동성애자를 말할 때 '성애'의 측면을 빼놓고 말할 수 없고, 퀴어퍼레이드의 참가자들에게 '성애'적인 측면을 드러내지 말라는 것이 그래서 어리석은 일이듯, 이들의 공연은 뭇사람들에게 낯설 수밖에 없고 손가락질 받기 좋을 '성적'인 이야기를 피해가지 않고 당당히 드러냅니다. 이 가운데 특히 표적으로 즐겨 찍히게 될 '여성스런' 게이의 모습 또한 예외 없이 표출되지요. 이렇듯 게이들의 일상에서 '성애'를 탈색하지 않고 그것을 드러냄으로써 '가짜' 평온함보다 불편한 '진짜'의 모습을 택하는 것은, 지_보이스의 공연이 갖는 중요한 정체성 가운데 하나입니다.
2015년 10월 08일 10시 48분 KST
동성애와 이성애, 연애와

동성애와 이성애, 연애와 비연애

이성애 또한 나쁘지는 않은 것이지만, 반드시 그렇게 하고 살지 않아도 된다. 그 전제 위에서 누굴 공연히 배제하지 않는 건강한 이성애가 자리잡힌다. 마찬가지로 연애란 좋은 것이지만, 반드시 그렇게 하고 살지 않아도 된다. 반드시 연애를 해야만 한다는 강단 위에서가 아니라, 바로 저런 전제 위에서 건강한 연애가 꽃핀다. 연애 바깥의 삶이 상상되어야 연애도 삶도 바로설 수 있다. 게이가 동성'애'자로 개념되지만, 게이 이전의 보통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생각할 때, 섹슈얼리티보다 삶이 광대하다는 말은 이런 맥락으로 되새겨질 필요가 있다.
2014년 12월 24일 11시 41분 KST
패배하지

패배하지 않기

사람 사이의 정은 칼과 같아서, 상대가 먼저 성큼 자신을 털어놓을 땐 더 이상 아무 일도 없을 수가 없는 상황이 옵니다. 남의 비밀을 들었으면 나의 비밀도 토해내는 것이 상도이지요. 그런 교호가 없이는 관계가 더 이상 진전되지 않는 때가 옵니다. 그럴 땐 내가 즐기고 위장해온 가면과 실제 나의 모습 사이의 낙차만큼,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게 되지요. 그러나 대책없는 순간은 어김없이 찾아오고, 많이 망설였던 시간은 어찌보면 간단할 수도 있는 결단으로 치닫습니다. 그리곤 던지는 마음으로 입을 떼지요. 나 사실 게이야. - 순간 나와 그를 둘러싼 공기가 바뀌고, 그제야 비로소 둘 사이에는, '아무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2014년 11월 28일 11시 19분 KST
성소자聖召者와

성소자聖召者와 성소수자性小數者

내 섹슈얼리티의 문제가 거기서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으리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성에 대한 폐절 앞에서 이성애자와 동성애자가 평등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 태도가 내 섹슈얼리티를 성찰하는 과정에서가 아니라 그것을 회피하는 식으로 작동할 수 있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던 것 같다.
2014년 11월 19일 12시 46분 KST
기독교도와 동성애자가 서로를 이해하는

기독교도와 동성애자가 서로를 이해하는 방법

나는 동성애자 가톨릭 교도다. 가톨릭과 개신교를 통틀어 기독교라고 하므로 기독교도라고 해도 좋겠다. 내가 동성애자이면서 기독교도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말할 때마다 뜨악한 반응에 부딪친다. 한쪽에서는 신을 믿는다는 사람이 어찌 감히 참람된 짓에 몸을 담그고도 신앙인을 자처하느냐고 닦아세우고, 한쪽에서는 성소수자를 제대로 사람 취급을 하지 않는다는 교회와 신 안에 머물면서 무슨 비위로 신앙을 논하느냐고 따져묻는다.
2014년 11월 10일 09시 34분 K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