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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현

카피라이터이자 작가

에세이 '누구에게나 그런 날' 의 저자
추운 날, 소주 한 병, 그리고 설렁탕 한

추운 날, 소주 한 병, 그리고 설렁탕 한 그릇

지난 회식 자리. 내게 선택권이 돌아왔다. 이번엔 막내가 좋아하는 가게로 가 보자며 부담 갖지 말고 마음껏 골라보라는 말에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종로에 있는 단골집으로 팀원들을 안내했다. "넌 어린애가 이런 곳은 어떻게 알고. 이제 보니 아저씨 입맛이네."
2018년 01월 29일 16시 18분 KST
가능성이 달아나 버리기

가능성이 달아나 버리기 전에

반 년 만에 보는 얼굴. 그녀는 처음 본 그때처럼 싱그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근래 있었던 좋은 소식들을 주고받고 나니, 대화는 자연스럽게 회사 이야기로 흘러갔다. 그녀는 그날, 함께 일하고 있는 20년 차 카피라이터 분의 소식을 들려주었다.
2018년 01월 22일 16시 55분 KST
택시기사님이 보낸

택시기사님이 보낸 문자

마음의 여유가 조금도 없던 날이었다. 재밌게 했을 일도 모두 짐으로 여겨질 뿐, 예정보다 2시간가량 당겨진 녹음도 그날은 달갑지 않았다. 곧바로 보이던 빈 택시조차 30분 넘게 잡질 못했다. 이런 날은 뭘 해도 안 되는구나. 불만만 쌓여갔다.
2018년 01월 15일 16시 45분 KST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

"언제고 다시 보면 되지. 이제 따로 보기도 좋고. 영원히 못 볼 사람처럼 왜 그래." 누구보다 자연스럽게 이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마음 만은 아니었다. 이렇게 모이는 게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2018년 01월 08일 16시 09분 KST
고양이 데리고 비행기 탄 날에 생긴

고양이 데리고 비행기 탄 날에 생긴 일

내내 힘을 주고 있던 탓인지 한쪽 어깨가 욱신거렸다. 조마조마한 마음에 시선은 발 밑에 둔 케이지를 떠날 줄 몰랐다. 앞좌석을 모두 확인한 한 승무원이 자리에 가까워지자 내내 조용하던 케이지에서 미야 미야, 염려했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2018년 01월 02일 16시 06분 KST
어떤

어떤 기다림

백화점이나 마트에 갈 때면 이거 사달라, 저거 사달라 떼쓰는 아이들을 눈여겨보게 된다. 아직 먼 미래의 일인데도 매번 그 상황을 걱정스럽게 바라본다. 내가 마주쳤던 부모들은 대개 냉소적인 표정으로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거나 어르고 달래 얼른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거나 했다.
2017년 12월 26일 14시 11분 KST
이 계절이 가기

이 계절이 가기 전에

서른의 나이에도 어김없이 12월이 찾아왔다. 겨울방학이 낯선 단어가 된 내게 유학을 간 지인이 전화를 했다. 그는 오늘 부터 방학이라며,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그저 발 닿는 곳으로 무작정 걷다 마음에 드는 카페를 발견하면 거기서 느긋하게 끼니를 때울 참"이라고.
2017년 12월 19일 15시 06분 KST
당신이 생각하는

당신이 생각하는 나는

얼마 전, 나를 바짝 긴장하게 만든 자리가 있었다. 처음 보는 분이 나를 글로 먼저 만났다며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그런 경우는 처음이라 조금 당황했다. 회사 밖에서 내 이름을 밝히고 글을 쓰는 일은 거의 없는 데다 일상이 고스란히 담긴 글을 읽었다니 행동 하나 말 하나까지도 조심스러웠다.
2017년 12월 12일 15시 59분 KST
지인 아닌

지인 아닌 친구

사회생활 좀 해봤다는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이 정도 나이에, 이 정도 연차되면 친구보다 지인이 더 많아진다고. 친구라고 소개하기엔 그 사람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는 것 같고, 모른다고 하기엔 또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것 같은 사람들이 매해 부지런히 늘어난다. 대신 친구의 수는 자꾸 줄어드는 느낌이다.
2017년 12월 04일 18시 13분 KST
실은, 동의하지

실은, 동의하지 않아요

"여긴 자몽에이드가 맛있어요." 유난히 날씨가 좋았던 평일 오후. 처음 인사를 나눈 분들과 식사를 하고, 근처에 있는 카페에 도착했다. 그때 한 직원이 평소에 자주 오는 곳이라며 선뜻 메뉴를 추천해주었다. 메뉴판을 골똘히 보고 있던 모두는 일제히 같은 대답을 했다. "그럼 전 자몽에이드."
2017년 11월 27일 16시 01분 KST
우리는 누군가의

우리는 누군가의 전부

아이가 자라 또 다른 아이를 낳고 키워내는 과정이 반복되는 건 받았던 사랑을 고스란히 돌려주는 경험을 하기 위함도 있겠지만, 어쩌면 어른이 된 우리에게도 이렇게 옴팡 사랑받은 시절이 있었다는 걸 잊지 않게 함이 아닐까.
2017년 11월 20일 17시 50분 KST
그 가게여야 하는

그 가게여야 하는 이유

남편은 김치 한 조각을 입에 넣자마자 눈이 동그래졌다. 커다란 고무 대야에 갓 담근 듯 아삭하면서도 달짝지근한 맛이었다. 우리는 국수가 나오기도 전에 접시의 절반을 비워버렸다. 식사를 하는 사이, 비워진 그릇들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척척 채워졌다.
2017년 11월 13일 18시 20분 K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