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석천

판사

판사
인터넷, 그리고

인터넷, 그리고 한글

정보 유통의 혁신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저는 한글 역시 혁신 매체라고 생각합니다. 20세기 들어 식민지 운영의 경험 없이 경제 발전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나라는 우리밖에 없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한글이 중요한 기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한글은 분리된 자음과 모음을 합쳐서 소리를 만듭니다. "ㄱ + ㅏ = 가"가 되듯이, 수학 방정식 같습니다. 발음할 때 입술 모양, 혀의 형태, 성대 모습까지 실증 분석해서 자음의 모양을 만들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한글은 곧 과학입니다. 천지인(天地人) 사상을 투영해서 하늘, 땅, 그 사이에 선 사람의 모습으로 모음을 형상화했습니다. 우주 원리와 인문학까지 투영했습니다.
2015년 10월 09일 14시 10분 KST
시인과

시인과 달빛

나의 누추한 방이 달빛에 잠겨 아름다운 그림이 된다는 것보담도 오히려 슬픈 선창(船艙)이 되는 것이다. 창살이 이마로부터 콧마루, 입술 이렇게 하여 가슴에 여민 손등에까지 어른거려 나의 마음을 간지르는 것이다. 옆에 누운 분의 숨소리에 방은 무시무시해진다. 아이처럼 황황해지는 가슴에 눈을 치떠서 밖을 내다보니 가을 하늘은 역시 맑고 우거진 송림은 한 폭의 묵화다. 달빛은 솔가지에 솔가지에 쏟아져 바람인 양 솨―소리가 날 듯하다. 들리는 것은 시계소리와 숨소리와 귀또리 울음뿐 벅적거리던 기숙사도 절간보다 더 한층 고요한 것이 아니냐? (윤동주 <달을 쏘다>)
2015년 09월 25일 17시 10분 KST
우리가 사는

우리가 사는 모습

다른 세대도 젊었을 때 그랬단 말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상황이 다르니까. 삼포세대, 헬조선. 더 노력하고 열심히 살라는 말은 못하겠습니다. 이미 충분히 열심히 살고 있으니까요. 다만 한 가지, 이런 말 속에 서린 비관은 바람에 날려버렸으면 합니다.
2015년 09월 14일 17시 35분 KST
무엇을 버릴 준비가 되어

무엇을 버릴 준비가 되어 있나요?

법적으로 난민(refugees)과 이주민(migrants)은 구분해야 합니다. 이 둘을 구분하는 기준은 '절박함', 그리고 '선택의 여지가 있었는지' 여부입니다. 단순하게 말하면 난민은 여권과 비자 문제를 야기하지 않는 인류 보편의 국제법 영역이고, 이주민은 여권과 비자를 챙겨야 하는 국내법의 문제입니다. 지금 시리아를 떠나 유럽으로 향하는 사람들에게 이 기준을 대입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들은 절박할 뿐더러,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입니다.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이주를 선택한 집단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국경에서 그들을 상대로 여권과 비자 검사를 하겠다고 하기가 어색해 보입니다.
2015년 09월 04일 10시 48분 KST
저작권 이야기(2)

저작권 이야기(2) 사진

최근에 주변에서 제게 많이 물어봤던 사안이 있습니다. 자연 풍경 사진에 관한 것인데요, 동일하거나 유사해 보이는 두 장의 사진이 있는데, 후작이 전작의 저작권을 침해한 것 아니냐는 질문이었습니다. 자연 풍경, 사건, 사실은 그 상태대로 '존재'하는 것이지, 창작이 아닙니다. 그래서 자연 풍광은 모두의 것, 즉 공공재(public domain)이고 특정인의 소유가 될 수 없습니다. 누군가 풍경을 담은 멋진 사진을 보고, 그 사진과 비슷한 시간에 같은 지점에 가서 유사한 구도로 같은 장면을 찍었다고 해도 나중에 찍은 사진이 그 전에 찍은 사진의 저작권을 침해한 것은 아닙니다.
2015년 08월 06일 16시 32분 KST
저작권 이야기 (1)

저작권 이야기 (1) 저작권이란

저작권은 저작자가 자신의 사상이나 생각을 세상에 알릴 때에 그 노고를 보상해 주는 제도입니다. 베낀 작품은 세상에 공헌한 것이 없습니다. 베낀 대상은 이미 세상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공헌한다는 표현을 쓰기는 했지만 거창한 것은 아닙니다. 창작의 정도는 아주 낮아도 됩니다. 베끼지만 않았다면 말이죠. 다만 '베낀다', '표절한다'는 의미가 완전히 똑같이 베낀 것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개개 사건마다 판단이 필요하고, 그 기준과 관련해서 어려운 이론과 논쟁들이 있습니다.
2015년 07월 03일 15시 58분 KST
반성하는

반성하는 미래

과거를 시인하고 바로잡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 사실 쉽지 않다. 진정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 이면에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잘못을 감추고 싶어하는 심리가 작용한다. 처음부터 순순히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는 사람은 드물다. 증거를 들이대고 설득에 설득을 거듭해야 잘못을 시인하는 경우가 더 많다. 갈수록 사건이 복잡해지면서 법정에서도 피고인의 자발적인 반성을 기대하기가 예전보다 더 어려워졌다. 그래도 설명하고 설득하면 대부분 잘못을 시인하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인다. 이렇게 설득까지 해가면서 얻어낸 반성에 의미를 둘 수 있을까?
2015년 06월 23일 16시 37분 KST
동화 속 법 이야기 | 혹부리

동화 속 법 이야기 | 혹부리 영감

혹부리 영감은 도깨비들에 둘러 싸여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자신의 혹을 노래주머니라고 거짓말해서 혹을 떼어 주는 대신 도깨비 방망이를 받아 부자가 되었습니다. 혹부리 영감이 도깨비를 속여 도깨비 방망이를 가지게 된 것은 죄가 될까요? 나중에 도깨비들이 몰려와 재물을 돌려달라고 하면 돌려줘야 하나요?
2015년 03월 02일 16시 22분 KST
사법부의

사법부의 길

국회는 국회의 길이, 대통령과 행정공무원들은 그들의 길이, 그리고 사법부는 사법부의 길이 있습니다. 사면권은 대통령이 행사하고, 가석방은 행형(行刑)을 담당하는 법무부장관의 소관입니다. 헌법과 법률이 정한 주체가 법률이 정한 기준에 따라 자신의 책임 아래 할 일들입니다. 특히 사면권 행사나 가집행은 자의를 배제하고 법에 따른 보다 엄격한 기준에 의해 이뤄져야 합니다. 엄정한 소송절차에 따라 확정된 판결에 대한 견제 장치이기 때문에 그 행사 역시 정치보다는 법에 의해 이뤄져야 국민은 비로소 수긍할 것입니다.
2015년 01월 05일 13시 36분 KST
아마존이 '작품 시장'에 지핀 불꽃과 저작권의

아마존이 '작품 시장'에 지핀 불꽃과 저작권의 기원

Ann여왕법의 정식 명칭에 나오다시피, 저작권은 'the Encouragement of Learning'을 위해 탄생한 개념입니다. 말하자면 작품을 접할 수 있는 대중의 권익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작가의 권리를 인정해서 작가로 하여금 작품을 세상에 공표하게 하고 출판업자와 서적판매상들이 시장을 형성하게 해서 작품을 세상에 퍼뜨리게 하는 이유는 대중이 그 작품을 보게 하려는 데에 있습니다. 작가의 만족이나 수익, 출판업자나 서적판매상들의 수익이 진정한 목적이 아닙니다.
2014년 11월 13일 17시 22분 KST
프라이버시(privacy)에

프라이버시(privacy)에 대해

예전에 미국 정보기관 FBI가 공중전화박스 바깥쪽 벽에 도청장치를 설치해서, 피고인이 LA에서 Miami와 Boston에 도박 정보를 알리는 통화를 도청한 다음, 그 도청 자료를 증거로 제출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피고인 Katz는 영장 없이 프라이버시를 침해한 채 수집한 도청 자료이므로 유죄 인정의 증거로 채택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미국연방대법원은 항소심 판결을 뒤집으면서 7:1의 다수의견으로 Katz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2014년 10월 10일 16시 55분 KST
한글, 최고의

한글, 최고의 자산

스마트폰 자판을 칠 때마다 천지인(天地人) 사상을 생각하고, 컴퓨터 자판에 모음과 자음이 완벽하게 분리되어 좌우의 손이 교대로 글을 완성해 가는 모습을 보면서 한글에 담긴 창의력과 예지력에 감탄하곤 합니다. 한글의 기본 구성 원리인 천지인 사상이 현대의 스마트폰 자판의 구성 원리로 그대로 적용될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2014년 10월 09일 10시 24분 KST
사상의 자유

사상의 자유 시장

각자의 사상을 자유롭게 펼치고 정당한 논쟁을 보장하는 것은 진실을 좀 더 진실되게, 의견을 좀 더 의견답게 만들어 주는 기반입니다. 서로가 귀를 열고 좀 더 들으면서 논쟁했으면 합니다. 사상의 자유 시장을 전제로 한 대법원 판결을 소개하면서 글을 마칩니다. [정확한 논증이나 공적인 판단이 내려지기 전이라 하여 그에 대한 의혹의 제기가 공적 존재의 명예보호라는 이름으로 봉쇄되어서는 안되고 찬반토론을 통한 경쟁과정에서 도태되도록 하는 것이 민주적이다.] 대법원 2002. 1. 22. 선고 2000다37524, 37531 판결.
2014년 09월 22일 16시 57분 KST
민주주의의

민주주의의 추억

2002년 6월 18일 저녁, 나는 서울시청을 향해 달렸다. 시청 앞 지하도 계단을 반쯤 올라 헉헉대며 출구를 올려다보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 자리에 얼음처럼 멈춰 서서 땅을 내려다 봤다. 땅이 내려앉는 줄 알았다. 땅이 꺼질 뻔한 이유는 안정환 선수의 패널티 킥 실축 때문이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 모두가 한꺼번에 한숨을 내쉬었고,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쉰다."는 말이 어떤 뜻인지 몸소 실감했다. 그때 느낀 두려움은 아직도 내 뇌리에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다. 그때 나는 민중의 한숨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 알게 되었다.
2014년 08월 15일 15시 56분 KST
퍼블리시티(publicity)권에

퍼블리시티(publicity)권에 대해

유명인의 얼굴, 신체의 특성, 독특한 걸음걸이(찰리 채플린), 독특한 말투(개그맨들의 유행어)처럼 '잘 알려진 사람의 특성'을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퍼블리시티권이라고 합니다. 상업성과 관련해서 미국에서는 '수익을 얻을 능력'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일본에서는 '고객흡입력'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내가 가진 나만의 것, 나만의 독특한 특성을 상품화해서 시장에 유통시킬 권리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하고 있을까요? 논의가 좀 복잡합니다.
2014년 08월 11일 10시 39분 KST
배심재판에 대한 어떤

배심재판에 대한 어떤 대화

"그때는 모든 걸 다할 수 있었죠. 변호사는 물론이고, 심리학자, 최고 의사에 동물학자까지 동원했으니까요." O.J. Simpson 형사사건 변호인단에 속했던 Gerald Uelmen 교수가 강의 때 했던 이야기다. Major(소령) White이라는 분이 있었다. 해병 법무관이었다. "심슨이 한국에서 재판 받았다면 결과가 어땠을까? 나는 미국 헌법 초안자들이 'trial by jury'를 잘 넣었다고 생각해. 하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도 맞는 제도인지는 모르겠어. 우리도 가능하면 한국 같은 법관 제도를 운영했으면 좋겠어." 일반 국민과 판사 중에서 누가 더 사실을 잘 파악할까? 증거에 대한 신빙성 판단은 누가 더 잘할까? 법 공부를 하면서 스스로에게 던져 온 질문들이다. 사실 나는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답이 없을 수도, 모두 답일 수도 있다.
2014년 07월 04일 15시 46분 KST
아름다운

아름다운 법정

"아름다운 것은 쓸모 있는 것만큼이나 유익하지요." 소설 레미제라블에서 미리엘 신부가 한 말입니다. 온화하게 대화 분위기를 만들고, 차분하게 자신의 잘못을 돌아볼 수 있게 하려면 때로 아름다운 것을 유익하게 쓸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창원지방법원에서 진행하는 '예술법정'을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2014년 05월 23일 15시 42분 KST
'화원에 꽃이 핀다'를

'화원에 꽃이 핀다'를 읽으며

"내 것 입어." "너는?" "나? 가져와야지." "엄마 사랑해요, 아빠 사랑해요." 저는 지금 아이들이 우리에게 보낸 메시지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 아이들은 희생을 실천했고 마지막 메시지에 '사랑'이라는 말을 담았다는 사실입니다.
2014년 05월 03일 11시 35분 KST
걸으면

걸으면 현명해집니다

"내가 치는 음표는 다른 피아니스트와 다를 게 없다. 하지만 음표 사이의 정지, 그렇다. 바로 그곳에 예술이 존재한다." 피아니스트 아투르 슈나벨의 말입니다. 음표 사이 정지가 예술의 차원을 올리듯이, 생활에서 쉼표가 삶의 차원을 높여줍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께 걷기를 권하면서, 인류가 걸으면서 현명해졌음을 보여주는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할까 합니다.
2014년 04월 11일 16시 22분 KST
지식재산, 바로 우리가 사는

지식재산, 바로 우리가 사는 모습입니다.

우리는 30년 이상 철강, 자동차, 조선, 반도체 같은 만질 수 있고 눈에 보이는 산업으로 먹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들 산업기반을 하나씩 다른 나라에 내주고 있습니다. 이제는 문화산업이라고 해도 좋고, 지식산업이라고 해도 좋고, 서비스산업이라고 해도 좋은, 그런 말랑말랑(소프트)한 산업에 눈을 돌려야 합니다. 손으로 잡을 수 없고, 눈으로 볼 수 없어서 오히려 그 경계를 정할 수 없고 또 정할 필요도 없는 그런 지식산업에 눈을 크게 떠야 합니다.
2014년 03월 28일 10시 54분 K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