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세훈

고려대 공공행정학부 명예교수.

저서로 『영국노동당사』(1999), 『국가와 복지』(2003), 『복지 한국, 미래는 있는가』(2007), 『영국정치와 국가복지』(2011) 『조지 오웰 : 지식인에 관한 한 보고서』(2012)가 있고, 역서로 『페이비언 사회주의』,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있다.
'제왕적 대통령' 담론

'제왕적 대통령' 담론 유감

한국정치 문제의 본질은 정부형태도 '제왕적' 대통령도 아니다. 민주주의가 정당정치 위에 서 있는 한 우선 관건은 선거제도에 비례대표원리를 전면적으로 도입하여 권력 자체의 대표성을 확립하는 일, 곧 기존의 보수양당구조를 뛰어넘는 개방적 정당체제를 만드는 일이다. 다행히 우리에겐 종교, 인종, 언어 등 정체성정치를 부를 갈등요인이 없기 때문에 극단적 정치세력이 발호할 가능성은 지극히 희박하다. 정치권의 기득권이 현실적 장애라면 현 체제에 더하여 비례대표 지분을 대폭 늘리면 된다. 의원 수가 급격히 늘 수 있겠지만 가령 영국의 경우 하원의원 수가 19세기부터 줄곧 650명 내외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2017년 09월 06일 16시 35분 KST
코빈 죽이기, 코빈의

코빈 죽이기, 코빈의 복수

코빈은 자신의 실제 모습을 숨기거나 사회주의 신념을 타협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담대했고 집요했으며 구호는 단순했다. "중도사민주의는 끝났다. 체제를 변혁하기보다는 관리하려 했기 때문이다." 노동당 선거강령에 담긴 정책들(대학등록금폐지, 보편적 무상급식, 철도와 우편 등 재국유화, 부자 증세, 최저임금인상 등)은 진지했고, '나토탈퇴와 일방적 핵비무장'의 포기를 공약함으로써 상대진영의 안보장사를 선제할 정도로 실용적이었다. 이런 약속들은 마르크스주의보다 케인스주의에 훨씬 친밀했으니, 코빈을 위험한 극좌라며 법석을 떨었던 일도 실은 영국사회가 얼마나 깊게 신자유주의에 침윤돼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었다.
2017년 07월 11일 10시 42분 KST
호명(呼名), 공동체를 세우는

호명(呼名), 공동체를 세우는 일

조지 오웰은 그런 세상을 전체주의에 빗댔다. 그는 파시즘과 스탈린주의가 마각을 드러낼 무렵, "노예제가 돌아온다"고 관찰하며 노예제에 근거했던 고대문명들이 4천 년 동안이나 지속됐다는 섬뜩한 사실을 환기시킨다. 특히 그를 전율케 했던 것은 엄청난 세월의 문명이 수천만 노예들에 의해 만들어졌으면서도 그들에 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는 점이다. "우리는 그들의 이름도 모른다. 그리스, 로마를 통틀어 우리가 이름을 아는 노예가 있는가. 내겐 두세 명의 이름만 떠오른다. 스파르타쿠스, 에픽테토스, 이솝.... 나머지는 완전한 침묵 가운데 사라져갔다."
2017년 05월 24일 16시 34분 KST
진보정치의

진보정치의 길

갤브레이스가 민주주의를 "상쇄력의 제도화"로 정의했을 때 그는 "자본(이 우위를 점하는 위계적 권력현장인 시장)에 대한 노동의 상쇄력을 시장안팎에서 정치적으로 제도화하는 체제"를 넌지시 가리킨 것이다. 가령 정치마저 사회경제적 약자를 편들지 못하고 가장 큰 생산자집단인 노동을 배제한다면, 정치의 존재이유는 무엇인가. 진보정치의 본령은 약자의 목소리가 수렴, 표출되는 제도적 장치, 곧 계급간 권력적 길항의 제도화를 마련하는 데 있다. 빈곤과 불평등이 심화되고 시장안팎에서 소외된 노동이 늘어나는 작금의 상황은 진보정치의 회생을 위한 호기여야 한다.
2017년 04월 12일 16시 03분 KST
선진국 극우정치, 파탄의

선진국 극우정치, 파탄의 한국정치

작금의 우파 포퓰리즘이 주도하는 대서양 양안의 반세계화 흐름이 우려되는 것은, 그것이 인종, 종교, 성 등 원천적으로 타협 불가능한 정체성정치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국가로의 회귀 조짐이 계급권력의 타협을 전제하는 민주주의의 복귀를 시사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2017년 02월 14일 18시 02분 KST
우리에게 도덕은

우리에게 도덕은 가능한가

평소 '법과 원칙'을 앞세우며 점잖게 인간의 도리를 훈계했을, 가지고 배우고 누린 자들의 청문회 증언과 청와대의 대응이란 걸 보면서, 우리에게 과연 도덕은 가능한가라는 회의가 밀려온다. 말(馬)마저 들고일어날 시국에, 말(言)의 귀환을 외치는 함성에 온 나라가 요동쳐도, 말의 파산에 앞장섰던 이들의 거짓은 단호하고 거침없다. '하지 말라' 하면 없던 욕망도 생긴다 했으니, 죽은 법조문을 입에 달고 살던 자들의 탐욕이 각별하다 한들 뭐 그리 대수이랴 싶기도 하다.
2016년 12월 27일 13시 59분 KST
더는 슬픔을 낭비할 수

더는 슬픔을 낭비할 수 없다

"조지, 가서 아프간 테러리스트들과 싸워라.", "조지, 가서 이라크 독재를 종식시켜라." 9.11 직후 조지 부시 대통령이 들었다는 하나님 음성이다. 당시 백악관은 부인했지만, 부시는 그 명령을 실행에 옮겨야 한다는 종교적 신념에 따라 이라크파병을 결정했다고 말한 것으로 외신은 전했다. 현대사에서 이라크전쟁은 한 개인의 환상에 매몰된 계시가 얼마나 큰 재앙을 가져왔는가를 보여주는 가장 비극적인 예일지 모른다.
2016년 11월 01일 16시 37분 KST
우병우 사태를

우병우 사태를 보며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놓겠다고 호언하며 시작한 정권이었다. 섬뜩하고 불길했으되 세월이 말해주려니 했었다. 그 3년여, "밴드는 없고, 트럼펫은 소리 나지 않았다. 모든 것은 녹음이다. 테이프다." (데이빗 린치 감독, '멀홀랜드 드라이브(Mulholland Dr., 2001') 정치는 저 혼자 배회하고 민주주의는 제멋대로 표류하는데, 우리 대통령은 호된 편견과 막무가내 외길만을 줄기차게 고집한다. 마름도 좋고 홍위병도 마다치 않는 저 검고 두꺼운 얼굴들 부류가 청와대건 청문회건 권력주변 어디서나 서성이는 것이 그래서 우연일 리 없다.
2016년 09월 07일 15시 11분 KST
보수의 탈선, 브렉시트의

보수의 탈선, 브렉시트의 맥락

영국이 신자유주의 선봉장 역할을 자임한 지 40년, 전통적 보수의 가장 큰 미덕인 수용과 포용, 곧 선한 부분은 점차 사라지고 악한 요소는 갈수록 극악해졌다. 무릇 강자는 차이를 명백히 한 후라야 약자에게 친밀감을 보인다. 그러나 그것도 서로 섞여 있을 때 얘기다. 계급들이 지역/문화적으로 아예 격리되면 친밀성마저 불필요하다. 불평등은 더 노골화되고, 피해자(이주민, 복지수급자, 하층계급)를 가해자로 둔갑시키는 '비난전가의 정치' 혹은 '희생양의 정치'가 득세한다. 이것이 영국의 신흥(新興)보수가, '노동계급의 악마화'(Chav) 담론이 범람하는 가운데도, 잉글랜드북부 노동자들의 환호를 이끌어내며 브렉시트 소동을 도발했던 맥락이다.
2016년 07월 14일 15시 50분 KST
한국 정치의

한국 정치의 위장(胃腸)

이 땅의 많은 지식인이 권력의 후광을 빛내는 장식적 역할을 자임해 온 것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갈고닦은' 전문성을 발휘하기 위해 반드시 정치 일선에 뛰어들 필요는 없을 터인데,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서 기어이 벼슬을 해야 직성이 풀린다. 결과는? 저마다 출사의 변은 거창할지언정 번번이 소리 없는 불명예 퇴진을 하기 일쑤다. 파우스트의 일탈은 인식적 탐구를 끝까지 밀어붙인 후 도달한 절망적 탄식과 더불어 왔다.
2016년 05월 18일 16시 25분 KST
완장의

완장의 나라

정치의 공적 책무는 홀대받고 공적 정치는 타기의 대상일망정, 총선을 앞둔 최근의 공천과정이 보여주듯이, 운동선수, 교수, 언론인, 판검사, 연예인 등 웬만한 유명인이면 누구나 정치판을 기웃거리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그리하여 보통사람도 낯 뜨거울 수준의 후흑한(厚黑漢)들이 정계에 두루 포진해 있다한들 놀랄 일이 아니거니와, 한국정치의 몰골이 그래서 선연하다. 정치가 사적욕망들이 각축하는 최종게임이 될수록 극성을 부리는 것은 완장들의 활갯짓이다. 변절자로 지목된 조직원은 감옥에서라도 처형해야(execute!) 하는 갱단의 행태가 백주에 공공연히 횡행하는 것이 가능한 이유이다.
2016년 03월 22일 14시 00분 KST
'반복지의 덫'에 갇힌

'반복지의 덫'에 갇힌 한국사회

복지의 필요성과 국가의 복지의지 간의 현격한 괴리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에는 반(反)복지담론들이 넘친다. 예컨대 우리는 성장보다 빈곤과 불평등을 더 심각히 체감하면서도 정부정책이 성장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고, 성장이 분배의 전제라는 담론에 매우 친숙하다. 물론 성장은 분배의 필요조건도 충분조건도 아니다. 서유럽국가들이 복지국가를 발진시킨 것은 종전의 폐허 위에서였고, 오늘날의 한국에 비해 소득수준이 뒤지던 1980년대에는 국가복지 수준이 이미 완숙 단계에 들어섰다. 아마 미국이 복지국가의 반열에 들지 못한 이유를 성장의 부족 탓으로 돌릴 만큼 대담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2016년 02월 06일 14시 32분 KST
영국정치를

영국정치를 생각한다

영국정치에서 보수당/자유당, 그리고 20년대 초 이후 지금까지는 보수당/노동당 양당체제의 근간은 대체로 굳건했거니와, 요란한 팡파르와 함께 거기에 균열을 가하려던 좌우의 시도들은 모두 무위에 그쳤다. 그러면서도 분당과 탈당은 당사자 정치인들이 개인적 정치생명을 담보로, 철저하게 이념과 정책적 소신에 따라 감행한 것이었으니, 오늘날까지 영국 유권자 누구도 그런 정치인들을 '철새'로 내치거나 비아냥하는 일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2016년 01월 15일 11시 07분 KST
역사의

역사의 기시감(旣視感)

가령 20세기의 전체주의 정부들을 추동하고 추인했던 기만의 선봉에는 늘 지식인들이 서성댔다고 관찰한 조지 오웰은 변화의 동력은 오직 보통사람들(의 품위)에서 나온다고 확신했다. 그가 한 꼬마가 거대한 짐마차 말(馬)을 마음대로 부리는 것을 보고는, 동물이 자신의 힘을 알게 된다면 인간은 결코 그들을 지배하지 못할 것이라며 냉소했을 때, 그는 바로 그 점을 빗대고 있었다. 우리는 4·19혁명, 부마 투쟁, 6월 항쟁 등 한국 현대정치에서 격변의 전기를 마련했던 사건들을 어렵지 않게 기억해 낼 수 있다.
2015년 11월 23일 15시 20분 KST
혼자 갈 수 없는

혼자 갈 수 없는 길

'소유한다(own)'는 단어는 '빚진다(owe)'는 말과 중세적 어원이 같다. 요컨대 소유한 자는 빚진 자이며, 지식이건 부건 많이 소유하고 있다는 말은 그만큼 더 많이 빚지고 있다는 말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의 지식이란 것도 우연히 물려받은 두뇌 혹은 인류가 이미 축적해 놓은 지식 위에서 가능했고, 나의 재력도 상속받거나 그 축적 과정에 수많은 이들의 협력이 불가피하게 개입되는, 사회적 산물일 뿐이다. 우리는, 성찰 없는 지식인과 준비 안 된 부자가 이 사회에ㅡ왕왕 그 개인에게조차ㅡ얼마나 큰 재앙을 초래하는지 정말 지겹도록 반복해서 경험해왔다.
2015년 09월 16일 14시 39분 KST
한국 민주주의, 그 이중의

한국 민주주의, 그 이중의 수난

돌아보면, 지역감정과 독재에의 향수가 여전히 무시 못할 정서일 때, 선거여왕이란 칭호는 전략가에게나 어울릴 수사이며 나라의 진운을 놓고 공부하고 고뇌하며 불철주야 소통해야 하는 최고권력자를 '기리는' 언어로는 애초에 모멸적이어야 마땅했다. 그나마 선거 과정의 온갖 잡음 속에서 창출된 정권 아닌가. 허다한 문제들 앞에서도 꿈쩍 않던 우리의 대통령은 정해진 절차에 따라 당선된 자당의 원내대표를 겨누어 느닷없이, 과연 선거의 여왕답게, 선거에서의 심판 운운하며 날선 몽니를 보이고는, 요동하는 정국에 아무런 반응도 피드백도 없이 다시 홀연히 무대 뒤로 사라졌다.
2015년 07월 24일 11시 05분 KST
제도와

제도와 심성

제도가 빗나가면 많은 구체적 삶들이 고단해진다. 제도의 파급력은 광범위하고 무차별적이어서 그것이 체계적으로 양산하는 고통의 규모는 사적인 연민이나 자선만으로는 도저히 감당해 낼 수 없다. 정말 심각한 일은 왕왕 제도(혹은 그 부재)가 개인들의 심성 자체를 타락시켜 집단적으로 죄의식을 마비시킨다는 점이다. 가령 국가가 노예제를 허용하면, 사람들은 인간을 소유하고 매매하면서도 아무런 가책을 느끼지 못하며, 히틀러체제하에서는 수많은 기독교도를 포함한 독일 중산층 사람들이 대거 잔혹한 인종정책에 기꺼이 앞장섰다. 토지공개념이 제도화되지 않으면 땅 투기는 매우 유용한 재태크가 될 것이며, 사유재산이 가장 우선적 가치로 신성시되는 사회에서 노동의 경영참여는 천부당만부당한 요구일 뿐이다.
2015년 06월 09일 10시 06분 KST
독해야 살아남는

독해야 살아남는 세상

혹자는 정책검증을 해야 선진정치라는 볼멘 소리를 해대지만, 선진국 정치인의 검증이 정책에 초점이 맞춰진 이유는 도덕적으로 문제될 만한 사람들은 애초에 후보군에서 제외되는 것이 상식화됐기 때문이다. 최근에 있었던 현직 총리와 야당 당수의 TV 토론도 흥미롭다. 질문자는 송곳 질문으로 유명한 방송앵커 제러미 팩스만이었다. "당신은 아직 내 질문에 답변을 안 하고 있다." 한 인터뷰어에게 열두 차례나 같은 질문을 한 전력이 있던 그가 가장 많이 던지는 질문이다. 한국의 지난 총리청문회(인터뷰가 아니다)와의 대비가 단계 단계마다 너무도 극명해서 차라리 허망해진다. 당시 한국 언론은 후보자의 자질을 파헤치는 당사자라기보다는 청문회 통과여부를 점치는 관전자 내지 해설자에 더 가까웠다는 것이 내 기억이다.
2015년 04월 09일 10시 49분 KST
불통, 냉전의

불통, 냉전의 유산

정작 문제는 '소통의 부재'란, 어디서 기인했건, 결코 중립적이 아니라는 데 있다. 무엇보다 그 부재가 온존, 강화되는 사이에 한 사회의 권력과 부의 배분상황은 갈수록 뒤틀린다. 가령 우리는 분단 70년이 우리 사회의 기득권 구조를 어떻게 고착시키고, 기득권층과 사회경제적 약자 간의 권력적 편차가 어떻게 제도화되는지를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 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우리는 가난이 개인의 성품문제가 되고 불평등이 성장과 효율의 이름으로 방어되고 정당화되는 풍토와 관행에 슬며시 익숙해져 있다. 잘못된 구조가 낳은 가장 큰 폐해는 피해자마저도 가해자 윤리를 추종하게 만든다는 점일 것이다.
2015년 02월 06일 13시 25분 K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