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철

카피라이터, '모든 요일의 여행', '모든 요일의 기록' 저자

공식적인 직업은 광고회사 TBWA KOREA 카피라이터. 여행을 좋아하고, 관광을 싫어한다. 여행 계획 짜는 걸 좋아하고,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을 좋아한다. 숙소 고민을 좋아하고, 호텔보다는 남의 집 빌리는 걸 좋아한다. 작은 도시 여행을 좋아하고, 하루라도 현지인처럼 사는 걸 좋아한다. 여행 사진 찍는 걸 좋아하고, 노인 사진과 낡은 벽 사진을 특히 좋아한다. 여행 가서 글 쓰는 걸 좋아하고, 돌아와서는 결코 마무리 하지 않는 버릇이 있다. '모든 요일의 여행', '모든 요일의 기록' ‘우리 회의나 할까’라는 책을 썼다.
예쁘지 않은 팀장이 된다는

예쁘지 않은 팀장이 된다는 것

'그런 사람들은 너무 많잖아. 너는 그냥 너처럼 하면 돼." 그 답을 받고 나는 지하철 몇 대를 보내며 승강장 의자에 한참이나 앉아 있었다. 망치로 한 대 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쩌자고 외모를 먼저 생각한 걸까. 여자를 외모로 평가하는 것에 그토록 분노하는 나면서, 왜 정작 스스로를 외모로 평가한 걸까. 외모에 신경을 쓰는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콤플렉스가 있는 것도 아닌데 왜 그랬을까. 왜 '카피라이터'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니 낯선 직함 앞에서 늘 외모부터 떠올렸을까. 생각은 복잡해졌다.
2017년 03월 09일 15시 29분 KST
저기요, 거울 하나

저기요, 거울 하나 빌려드릴까요?

친구들은 모두 술을 마시고 취해 나자빠지는데, 나는 취하지도 못했다. 이놈의 거울이 나를 끝없이 감시하고 있어서. 사람들 앞에서 망가진다는 걸 상상만 해도 머리 꼭대기까지 빨갛게 달아오르는 느낌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궁금했다. 나는 도대체 취하면 어떻게 변하는지. 얼마나 헛소리를 지껄이는지. 혹은 그냥 잠들어버리는지. 혹은 갑자기 과장된 진심을 내뱉는지. 거울이 사라진 나는 어떻게 행동하는지 궁금했다.
2016년 12월 07일 17시 03분 KST
대화가 된다고

대화가 된다고 생각해?

아, 이 한심한 세상이여. 아직도 대화가 된다고 믿는 불쌍한 중생들이여. 내가 조만간 나의 위대한 사상을 발표하여 세상을 놀라게 하리라. 서로 다른 사랑의 언어 때문에 지금 이 순간에도 싸우고 있는 지구상의 모든 연인들을 구원하리라. 우리 사이에 대화가 불가능하다는 사실만 깨달아도, 이 세상 대부분의 싸움은 일어나지도 않을 텐데. "지금 그게 무슨 말이야?", "어떻게 나한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혹은 "내 말이 그 말이 아니잖아" 등의 말로 시작하고, 그 말들을 반복하면서 끝없이 고조되는 수많은 싸움들.
2016년 10월 28일 14시 41분 KST
책을 따라 떠나는

책을 따라 떠나는 여행

이태리행 비행기 티켓을 결제하자마자 책 한 권을 꺼냈다. 드디어 때가 되었다. 10년 전에 읽은 책, 빌 버포드의 '앗 뜨거워(heat)'에 나오는 고기의 신을 만날 때가. 뉴요커의 기자였던 저자는 고기의 신이라 불리우는 다리오 체키니에게 고기의 모든 것을 배우기 위해 이태리시골, 판자노로 떠난다. 그리고서는 방금 짜낸 올리브유와 방금 낳은 붉은 달걀, 그 지역의 포도로 만든 키안티 와인 그리고 대량생산으로 길러지지 않은 가축들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는 그곳에서 7개월을 보낸 후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은 그곳에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
2016년 08월 05일 10시 25분 KST
유용한 여행, 무용한

유용한 여행, 무용한 여행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한껏 무용해지자 마음을 먹는다. '아무것도 안 할 거야.'라며 짐짓 호탕하게 말해본다. 하지만 여행지에 도착하는 순간, 마음에는 다시 유용함이란 기준이 자리 잡는다. '언제 또 올 수 있겠어?'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그것도 못 보면 아깝잖아.' 등등 유용함은 각종 핑계를 달고 여행 한 가운데에 뻔뻔하게 자리 잡아 버린다. 그리하여 '무용하자'라는 다짐이 무색할 정도로 여행자의 스케줄은 봐야 할 것, 가야 할 곳, 먹어야 할 것, 사야 할 것 등등 유용한 것들로만 빼곡히 들어차게 된다. 무용하고 싶지만 무용한 시간을 견딜 힘이 우리에겐 없는 것이다.
2016년 07월 29일 11시 05분 KST
키스자렛(Keith Jarrett)의 피아노가 멈추던

키스자렛(Keith Jarrett)의 피아노가 멈추던 순간

회사를 9년이나 다니지 않겠다는 내 계획은 무산되었지만, 한 달짜리 휴가는 꼼꼼하게 계획했다. 정보에 정보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그리고 그 중에 내 눈에 들어오는 네 단어들이 있었다. '여름밤, 야외, 고대 로마극장, 재즈연주'. 이 네 단어를 더하는 것만으로도 갑자기 낭만이 들끓였다. 여름밤에, 야외의 고대 로마극장에서 재즈연주를 듣는다니! 거기에 '키스자렛 트리오'라는 단어가 더해졌다. 무조건 가야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30주년 기념 공연'이라는 말까지 더해졌다. 남편과 나는 리옹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여름밤 리옹의 고대 로마극장에서 노을이 지는 것을 보며 키스자렛 트리오의 30주년 기념 재즈연주를 듣기 위해.
2015년 07월 21일 15시 31분 KST
어느 벽 중독자의

어느 벽 중독자의 고백

벽중독자에 가까운 내게 가장 완벽한 한 도시를 꼽으라면 포르투갈 리스본을 꼽을 것이다. 리스본에서도 알파마지구를 꼽을 것이다. 1755년, 27만 명의 리스본 시민 중 무려 9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리스본 대지진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언덕 위의 동네, 알파마지구.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골목들 앞에서 지도는 무기력해지고, 목적지를 바쁘게 향해가던 관광객들은 길을 잃는다.
2015년 07월 10일 11시 43분 KST
좋은 술은 여행하지

좋은 술은 여행하지 않는다고?

기네스 하나만을 위해서도 아일랜드는 충분히 갈 만하다. 처음, 아일랜드에 도착해서 기네스를 마시는 순간 말했다. "뭐야, 지금까지 내가 먹은 기네스는 다 가짜였잖아." 물론, 여행 마지막 날 더블린 기네스 팩토리에서 기네스를 마신 이후에도 같은 말을 했다. "뭐야, 지금까지 내가 먹은 기네스는 다 가짜였잖아." '좋은 술은 여행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입증하듯 기네스는 더블린 기네스팩토리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맛이 없어졌다.
2014년 12월 10일 15시 27분 KST
신혼여행 비행기를

신혼여행 비행기를 놓치다

별의 별 생각들이 초광속으로 흘러갔다. 처음엔 돈이 아까웠다. 전체 여행 예산부터 시작해서 가져온 현금까지 머리 속으로 다시 계산했다. 아무리 계산해도 답은 같았다. 어쩔 수 없다. 어쩔 수 없다. 어.쩔.수.없.다. 답도 안 바뀌는 계산은 그만두기로 했다. 그 담부턴 속상함이 밀려왔다. 처음엔 찰랑찰랑. 갈수록 출렁출렁. 믿을 수가 없었다. 시작부터 이토록 틀어져버리다니. 마치 다른 삶 하나를 준비하는 것처럼 모든 책과 인터넷을 그토록 뒤지며 준비했는데, 이제 겨우 도착했는데, 기껏 버스 하나 잘못 탔다고 이렇게까지 취약하게 무너져버리다니. 그리고 문득 어떤 책의 한 구절을 생각해냈다.
2014년 07월 22일 17시 07분 KST
뮤지션 여섯, 손님 둘, 단골집

뮤지션 여섯, 손님 둘, 단골집 하나

남자의 무대가 끝나니 비로소 여자가 코트를 벗고, 핸드백을 내려놓고 혼자 앞으로 나와 노래를 몇 곡 불렀다. 나는 여자의 그 목소리에 넋을 잃어버렸다. 여자의 목소리에 담긴 그 감정을 다 소화하기도 전에 또 다른 공연이 이어졌다. 준비된 공연도 아닌데, 틈도 없이 노래가 이어졌다. 이번엔 호르헤와 또 다른 기타리스트의 합동공연이었다. 분명 손님은 나와 남편 둘밖에 없는데 뮤지션은 어느새 5명이었다. 끝나지 않길 간절히 빌었던 그 겨울의 그 따뜻한 공기를 뚫고 성큼성큼 부산스럽게 한 남자가 뛰어들어왔다.
2014년 06월 11일 10시 25분 KST
리스본 그

리스본 그 단골집

여행에서도 단골집을 만들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라고 대답했을지도 모른다. 마르셀로를 알기 전까지는. 여행지에서의 단골집이 의미가 있을까? 무의미하다, 라고 대답했을지도 모른다. 마르셀로의 누노와 호르헤를 만나기 전까지는.
2014년 04월 04일 15시 13분 KST
결코 여행지에 도착하지 않기

결코 여행지에 도착하지 않기 위하여

단 며칠짜리 집이라도 우리 집이 필요했다. 비슷하지만 하나도 비슷하지 않은 도시마다의 시장에 갔다가 돌아올 골목이 필요했다. 양손 가득 낯설고 궁금한 재료들을 사서 돌아올 대문이 필요했다.
2014년 03월 19일 16시 15분 KST
여행을 떠나다 일상에

여행을 떠나다 일상에 도착하다

회사 갈 걱정에 이불 속에서부터 소리를 지르지 않아도 되는 일상, 출근 길에 삼각김밥이나 우유를 입에 쑤셔 넣지 않아도 되는 일상, 집에 들어오기 전에 내일 먹을 음식을 간단하게 장볼 수 있는 일상, 피곤하다며 멍하게 TV 앞에 앉아있지 않아도 되는 일상...
2014년 03월 04일 20시 37분 K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