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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욱

문학평론가, 인제대 영문과 교수
블랙리스트와 '이면헌법' 없는

블랙리스트와 '이면헌법' 없는 세상을

박근혜정권의 블랙리스트는 과거 독재정권의 검열과는 달리 신체적 위해를 가하지 않는 반면 철저하게 제도적 불이익을 준다. 열악한 조건에서 창작하는 문화예술인에게 정부 지원을 끊고 외부 지원을 차단하는 저급한 검열방식인 것이다. 블랙리스트의 명분을 여전히 종북·좌파세력에 대한 대응에서 찾고 있으나 실제와는 너무 큰 괴리가 있다는 것도 눈에 띈다. 언론에 공개된 9473명의 블랙리스트 명단은 세월호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거나 선거에서 문재인과 박원순을 지지한 사람들로 알려졌는데, 이들 모두를 종북·좌파로 규정하는 것은 우스꽝스러울 따름이다.
2017년 02월 23일 06시 47분 KST
트럼프 정치의 동력과

트럼프 정치의 동력과 파괴력

세계는 위험해지고 취약해지겠지만 트럼프는 개의치 않을 것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실용주의자이되 돈 외의 가치에는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는 점에서 트럼프는 이명박이나―아리엘 도르프만(Ariel Dorfman)이 지적했듯이―윌리엄 포크너(William Faulkner) 소설에 등장하는 플렘 스놉스(Flem Snopes) 같은 인물을 연상시킨다. 그러니 그의 정치가 인간적인 존엄과 품격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기대할 수 없다.
2016년 12월 08일 11시 23분 KST
'계속해보겠습니다'와

'계속해보겠습니다'와 바틀비

나나의 '계속해보겠습니다'와 바틀비의 '안하고 싶습니다'는 각각의 말이 나오는 시공간이 너무 다른데다 정반대의 삶의 태도를 함축하고 있어서 둘 사이를 관련짓는 것 자체가 어쩌면 엉뚱하달 수 있다. 나나의 말은 점점 망가져가는 최근 한국사회에서 혼전에 임신한 한 여자가 용기를 내어 아이를 낳기로 하면서 스스로를 다짐하는 말이고, 바틀비의 말은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확립되던 19세기 중엽 미국 월가의 한 변호사 사무실에 고용된 필경사(筆耕士)가 고용주의 모든 요청을 거절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멀리 떨어진 소설 속의 두 말이 순식간에 마음으로 다가와 삶과 죽음, 지속과 멈춤의 감각을 고스란히 되살려놓은 것이다.
2015년 03월 06일 06시 17분 K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