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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아

黃靜雅. 문학평론가. 서울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고 2003년 동대학원에서 「D. H. Lawrence의 근대문명관과 아메리카」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HK교수로 재직중이다. 역서로 『도둑맞은 세계화』 『쿠바의 헤밍웨이』 『이런 사랑』 『종속국가 일본』(공역) 『내게 진실의 전부를 주지 마세요』 등이 있으며, 최근 논문으로 「묻혀버린 질문: ‘윤리’에 관한 비평과 외국이론 수용의 문제」 「‘거울’의 마술과 역사 다시 쓰기: 쌀만 루쉬디의 『자정의 아이들』」등이 있다.
차라리 감정 없는

차라리 감정 없는 삶?

그녀가 주는 가장 큰 낯섦은 폭력 앞에서, 그리고 폭력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사회적' 금기 앞에서, 도무지 두려움이 없는 점이다. 과거의 어떤 이유로 경찰을 불신하는 그녀는 모든 문제를 자기 손으로 처리하는 길을 택하는데, 그 과정 하나하나가 만일 경찰에 신고했더라면 강간 '피해자'로서 그녀가 어떤 사회적 시선을 겪어야 했을지 역으로 환기시킨다.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강간은 강간이고 따라서 처벌받아야 한다는 건 바로 그녀 자신이 심판하는 주체였기 때문에 지켜진 원칙이며, 이 심판을 그토록 주도면밀하게 진행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보다 그녀가 두려워하지 않는 인물이라는 데 있다.
2017년 08월 11일 13시 19분 KST
돌봄의 위기와 '사라진

돌봄의 위기와 '사라진 여자'

얼마 전 행정자치부가 어이없게도 출산지도라는 이름으로 '가임기 여성수'라는 항목을 만들어 셈한 일이 많은 이들의 분노를 샀다. 아이들을 낳고 오래 보살피는 일, 그들이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지켜보고 돕는 일 모두가 행복하고 보람있어야 하며 또 긴밀히 이어진 하나의 과정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궁극적으로 우리 모두의 삶이 행복하고 보람있는가 하는 차원과 관련되어 있기에 여성만의 일일 수는 더더욱 없다. 그런데도 이런 유의 몹쓸 헛발질이 거듭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른 헛발질들이 그렇듯이 이 역시 문제가 실재하고 따라서 아무것도 안할 수는 없지만 정작 해야 할 일은 절대 하지 않으려는 데서 나온 결과로 보인다.
2017년 01월 12일 12시 10분 KST
가족을

가족을 내버려두라!

'소박하고도 진실한' 이 가족 이야기를 보며 오히려 가족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정신분열적인 데가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가족을 추켜올리는 시도는 가족의 수난을 은폐하거나 예고한다. 쉽게 가치를 부여하면서 쉽게 내팽개치며, 해체의 위협을 가하고 있을 때 가장 숭배를 바친다. 무엇보다 우리는 가족을 공동체의 원형으로 소환한 다음 곧장 공동체의 실패를 떠안겨버린다. 공동체와 가족의 실제 관계는 정확히 그 반대다. 공동체가 가족의 원형이며 가족의 고난은 공동체의 실패를 보여주는 증상이다. 그러니 사회적 삶의 문제를 더는 가족에게 미루지 말아야 하며 그 무거운 짐으로부터 가족을 내버려두어야 한다. 특히 '남아 있는' 가족들에게는.
2016년 10월 06일 11시 45분 KST
현재 위치에서 반드시 이동하라, 단 1%의

현재 위치에서 반드시 이동하라, 단 1%의 힘으로

다른 많은 것들이 그러하듯 우리 사회에서 말의 자리 또한 안전과는 거리가 멀었다. 청산되지 못한 역사를 맴돌며 죽음을 모독하는 숱한 망언처럼, 밝혀지지 않은 진실을 비웃듯 바닥을 드러내며 뒤집힌 채 선내방송은 아직도 되풀이된다. 아이들이 철이 없어 위험을 감지 못했다는 특별조사위원회 청문회에서의 어느 해경의 말로, 생각하는 습관이 없어서 사고를 당했다는 어느 교수의 말로, 정말 가만히 있었네,라며 거듭 되돌아오고 있다.
2016년 03월 24일 11시 12분 KST
예외를 정당화하는 고전적인 방식 | 영화 「시카리오: 암살자의

예외를 정당화하는 고전적인 방식 | 영화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진짜 무력한 것은 어느 쪽인가. 법질서의 안정은 법질서보다 무력하며 민주주의의 수호는 민주주의보다 무력하며 혼의 정상화는 혼보다 무력하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목표로 내건 바를 결코 수행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가 아무리 심각하고 근본적인 해결이 아무리 요원해 보이더라도 야금야금 잠식하는 예외상태를 우리의 미래로 받아들여서는 안될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16년 01월 14일 11시 29분 KST
이미 복종한 자는 더더욱 복종하게

이미 복종한 자는 더더욱 복종하게 되리라

2022년 프랑스 대선에서 이슬람 정당의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가상적 상황을 그린 미셸 우엘벡의 『복종』은 마침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이 빠리에서 『샤를리 에브도』 지(紙)를 공격한 1월 7일에 출간되어 관심의 초점이 된 바 있다. 해가 바뀌기도 전에 빠리에서 다시금 경악스러운 테러사건이 벌어진 상황에서 이 소설은 존재 자체로서 스캔들이 되기에 충분한 듯 보인다.
2015년 11월 27일 12시 05분 KST
표절 논란, '의도'보다 '결과'가

표절 논란, '의도'보다 '결과'가 본질이라면

의도적 절도로서의 「전설」이나 상습범 신경숙을 단정했다가 그간의 논의를 통해 '의도'를 가정한 비난이 부적절하다는 점을 새삼 발견한 것이라면 스스로 그러한 비난에 얼마나 동조했는지도 솔직히 밝히는 게 옳다. 또한 그동안 신경숙의 '의도적 베껴쓰기'를 인정 안한다고 창비에 퍼부은 공격은 어찌되는 것인가. 창비가 다른 많은 것을 더 했어야 한다는 비판은 마땅히 감수해야 하겠지만 창비의 '묵언'과 '입장표명'은 '의도'에 대한 단정을 근거로 한 작가를 매장하는 일에 가담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니었던가. 신경숙의 사과에 대해 대다수 비판자는 의도적 베껴쓰기를 자백하지 않았으므로 진정한 사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공격을 계속했으며 창비의 머리글이 계속해서 비난받은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2015년 10월 10일 08시 15분 KST
삶을 기만하는 몇가지 방식 | 영화 「윈터

삶을 기만하는 몇가지 방식 | 영화 「윈터 슬립」

2014년 깐느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누리 빌게 제일란(Nuri Bilge Ceylan) 감독의 영화 「윈터 슬립」(Winter Sleep, 한국개봉 2015.5)이 다루는 문제는 결국 '얼마나 살아 있는가'라는 질문과의 대면이라 보고 싶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런 대면을 피하는 방식이 얼마나 여러가지인가 하는 것이다. 삶과 정면으로 만나는 일은 곧 자아의 욕망과는 또다른 '살아 있음'의 요구를 듣는 일이므로 마치 신탁과도 같은 엄중한 사건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실상 우리 대부분은 때로 오만하게, 때로는 겸손하게, 때로 허위로 또 때로는 정직으로 어떻게든 그 사건을 비껴가고 싶어하는 것이다.
2015년 05월 15일 15시 05분 KST
가 담은

가 담은 것

'희망'이라는 말과 마찬가지로 '사람다움' 역시 한층 풍성한 삶의 지평을 지시하기보다 더이상은 떠밀릴 수 없는 절벽을 연상시키는 점이 한국사회의 정직하고도 부끄러운 좌표이다. 소송의 탈을 쓴 린치에 다름 아닌 손배가압류라는 신종 폭력은 공공의 정치를 난폭하게 짓밟으며 강화되어온 노골적인 돈의 정치를 대표한다. 불과 며칠 전, 진상규명을 저지할 목적이라 볼 수밖에 없는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을 내놓으면서 보상금이 8억이네 11억이네 운운한 것과 정확히 동일한 성격의 폭력인 것이다.
2015년 04월 10일 13시 55분 KST
희망은 아래로부터 채워지는

희망은 아래로부터 채워지는 것

문제의 해결은 정확히 그 반대방향이어야 한다. 비정규직이 되어도 살 만할 때만 정규직의 삶이 안정될 수 있으며, 실업자가 된다 한들 버텨낼 만해야 비정규직의 삶도 개선될 수 있다. 누구든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말과 누구든 실업자가 될 수 있다는 말 가운데 어느 쪽이 더 현실적인 진술인지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복지에도 '낙수효과'란 없으며 우리의 삶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건 이런 의미로 해석되어야 한다. 바로 지금 어느 누구의 삶도 위태롭지 않으므로 나 또한 어떤 일이 일어나도 견딜 만하리라 확신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불안을 해소하는 궁극의 방법이며 삶의 연대가 시작되는 출발점이다.
2015년 03월 06일 09시 23분 KST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종북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종북 프레임

만들어진 경위가 어떠하든 '종북'이라는 용어가 남발되는 이유는 무엇보다 현재 그것이 갖는 효용이 매우 크기 때문일 것이다. 대개 이 그물에 걸리는 순간 해당 대상은 북한이 얼마나 열등한 사회인지 열렬히 비방해야 할 것 같은 압박을 느끼게 됨은 물론이고, 무엇보다 자신의 말과 생각과 행동이 북한과 연계되어 있지 않음을 서둘러 입증해야 한다.
2015년 01월 09일 06시 48분 KST
에밀리에게는

에밀리에게는 장미를

에밀리 가문에 버금가는 어느 '귀족' 가문이 마땅히 걸어야 할 쇠락의 뒤안길을 용케 피해 승승장구했다면, 그 가문의 후예인 가령 '에그밀리'라는 인물은 달랑 낡은 집 한 채 물려받은 에밀리와 달리 막대한 재산과 권력을 세습하여 여전히 이 공동체의 중심이라면, 그리하여 다른 의미의 난감한 존재로 공동체를 압박하고 있다면 '우리 마을 사람들'은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하겠는가?
2014년 12월 18일 10시 09분 KST
문화의

문화의 진보성?

나날이 새로워지고 나날이 세련되어가는 문화의 향유를 진보의 표지로 삼아온 세월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개인이 아니라 구조가 문제라고 읊었으면서도 조금 늦게 혹은 조금 어렵게 제도권에 진입하는 개인적 변화만 성취했을 뿐 정작 그 구조는 바꾸지 못한 많은 '진보'들에게 문화가 자주 손쉬운 변명이 되어준다고 생각한다. 내 삶을 실제로 꾸려가는 바탕이자 가치로서의 문화는 어떤 모습인가 묻지 않을 때 이 변명의 구조는 오래 지속될 것이다.
2014년 10월 30일 09시 46분 KST
살아 있는 각하들의

살아 있는 각하들의 이야기

<살아 있는 이중생 각하>는 극작가 오영진이 1949년에 발표한 작품으로, 극단이 의도한 대로 일제강점과 미군정이라는 고난의 시대를 오로지 자기이익을 좇아 살아왔고 정국의 혼란을 틈타 권력마저 탐하기 시작한 '이중생'이라는, 너무나 낯익은 '현재적' 인물을 매개로 어제의 풍자와 오늘의 비판을 연결하고 있다. 이제 와 돌이켜볼 때 눈길을 끄는 사실은 엉뚱하게도 그때는 그래도 돈과 권력을 위해 '댓가'는 치렀던 시대였구나 하는 것이다.
2014년 09월 25일 07시 11분 KST
괴물도 아닌, 광대도

괴물도 아닌, 광대도 아닌

우리가 저지른 잘못보다 잘못한 다음에 무엇을 하는가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더 잘 보여준다는 사실을 사무치게도 보여주는 요즈음이다. 군대에서 연일 들려오는 참담한 소식이 그렇다. 이미 일어난 사건으로 놀라고 분노한 가슴은 사건의 은폐와 무마 시도에 더해 '마녀사냥'이라는 왜곡마저 등장한 군 당국과 국방부의 대응 앞에서, 저렇게 하니까 그런 일도 일어났겠지,라는 판단에 이르게 된다. 세월호가 온 나라의 명백한 '현재형'일 때도 이런저런 추문을 만들던 사람들은 이제 '교통사고를 가지고......', '단식을 어떻게 했길래......'를 거쳐 '대다수 유가족은 협상 매듭과 보상을 원한다'는 이야기까지 아무렇지 않게 내뱉음으로써 추문이 곧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임을 증명하고 있다.
2014년 08월 14일 13시 53분 KST
'블랙 딜'로서의

'블랙 딜'로서의 민영화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을 필두로 의료영리화와 인천공항 매각 등을 끝내 단념하지 않을 태세면서도 절대 민영화는 아니라는 정부의 답변은 대운하는 아니라 했던 지난 정권의 얄팍한 해명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블랙딜」에서 다룬 태백시 상수도사업의 사례는 '뒷문으로' 들여온 민영화가 어떤 것인지 단적으로 일러준다. 환경공단이라는 그럴싸한 이름의 준정부기관에 수도사업을 위탁함으로써 민영화의 외양을 취하지 않은 채 향후 이 공단이 아무런 제약 없이 민간기업에 사업을 재위탁할 길을 마련하는 식이다.
2014년 07월 10일 08시 09분 KST
변화의 골든타임이 남아

변화의 골든타임이 남아 있다면

우리가 대통령에게 원한 것은 차라리 제대로 된 연기였는지 모른다. 일찍이 연기(playing)의 목적이 삶을 거울로 비추어 그 진정한 생김새를 보여주는 것이라 한 『햄릿』의 한 대목을 참조하면, 설사 '바람직한 정치인의 진정한 생김새'를 미처 못 갖추었더라도 그것을 보여주려 연기함으로써 그 생김새에 다가가려는 정치인이라면 충분히 존경받을 만한 인물이리라. 하지만 세월호 참사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실은 이 나라를 이끌고 간다는 이들이 각자 맡은 공적 역할을 충실히 연기하지 못하는 건 물론이고 기본적인 '사람노릇'마저 제대로 연기하지 못하는 부류라는 것이다.
2014년 05월 29일 06시 12분 KST
'대박' 통일을 위한

'대박' 통일을 위한 스파이론

모름지기 적의 의도를 미연에 탐지해 이쪽을 향한 공격을 좌절시키거나 적의 약점을 간파해 이쪽의 공격을 성공시키거나 하는 따위의 일이 스파이 본연의 임무이자 존재 이유라면, 그 적이 적대행위엔 통 관심이 없고 화해와 평화를 추진할 때 스파이는 어떻게 처신해야 하겠는가 말이다.
2014년 03월 26일 14시 33분 K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