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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송

〈계간홀로〉 발행인. 〈연애하지 않을 자유〉 저자.
읽고 쓰고 허송세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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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많이 배웠기 때문에

나는 많이 배웠기 때문에 페미니스트인가?

내가 '배운 여자'이기 때문에 나는 저학력의, 빈곤층 남성들의 젠더 감수성을 비판할 자격을 박탈당하는가? 어째서 '젠더'가 계급을 형성하고 여기에서 착취와 차별과 억압이 일어나고 있음은 은폐되는가? 다시 말하자면, 어째서 젠더의 계급-또는 여성성의 계급('창녀'와 '모성'의 스펙트럼 같은)은 계급의 문제로 논의되지 않는가? 블랙넛이나 정중식처럼, 소위 '루저' 감성의 혹은 실제로 남성성 경쟁에서 상대적 약자인 남성이 여성을 대상으로 착취나 비하, 혐오 발언을 할 때 이것이 논란이 되면 왜 그들보다 계급이 높은 여성을 기어이 '가정'하고, 여성이 반드시 약자는 아니라는 아무말 결론을 이끌어내는가?
2016년 12월 16일 07시 05분 KST
#팬덤내_사이버불링_아웃

#팬덤내_사이버불링_아웃

아이돌에 대한 성희롱과 성적 대상화에 대한 팬덤의 자성과 논의는 공적인 영역에서 이루어져야 할 일이지 그런 발언을 한 개인을 족치는 방식은 아니다. 그것은 다수의 이름으로 자행하는 폭력에 불과하며, 성적 대상화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문제를 비판하고 싶다면, 우선 개인에 대한 사이버 불링을 멈춘 후 논의와 토론의 장을 열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힘들다. 팬덤은 장르 불문 꾸준히 다른 목소리를 내는 소수를 색출하고 축출해왔기 때문이다.
2016년 12월 15일 10시 06분 KST
'개념국민의 착한 시위'라는

'개념국민의 착한 시위'라는 프레임

정치적 의사를 표시한 스티커는 '민폐'나 '무개념' 행동이 되는가? 의경들의 고충은 생각도 못한? 트위터에서 이미 여러 사람들이 지적한 말을 그대로 옮기면, 저것은 "대자보를 지저분하다고 떼는" 행위이기도 하다. 어째서 목소리를 시위대가 나서서 자진 철거하는지? 백도라지님의 말처럼 우리가 시위에 나가서 맞닥뜨리는 의경이나 방패, 물대포 등은 공권력이 육화한 것이다. 고 백남기 농민의 죽음의 책임을 엄밀하게는 그 자리에 없었던 강신명에게 묻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들에게 서사를 부여하고 공권력으로서가 아닌 개인으로서의 고충을 헤아리는 것은 행정적 책임자를 사적으로 해석하는 행위와 다를 바 없다.
2016년 11월 21일 09시 52분 KST
내가 사랑하는 문학은 그런 것을 지향하지

내가 사랑하는 문학은 그런 것을 지향하지 않는다

긴 싸움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아예 싸움조차 존재하지 않았던, 그러니까 머릿속이 꽃밭인 인간들에게는 '평화롭고 사이좋았던' 시절, 난데없이 여자들이 폭동을 일으켜 밥줄을 끊으려고 하고 커리어에 똥물 튀기는 걸로만 보이는 인간들이 만들어놓은 매끈한 세계보다 훨씬 낫다. 갈등 없는 세계는 정상이 아니다. 그리고 내가 아는, 내가 사랑하는 문학은 그런 것을 지향하지 않는다.
2016년 10월 26일 10시 32분 KST
임신할 자유, 임신을 중단할

임신할 자유, 임신을 중단할 자유

세상에는 애초에 논의의 대상이 아닌, 당연히 누려야 하는 권리가 찬반을 두고 다툴 수 있는 가치관의 문제로 오인되거나, 금기(박탈)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낙태죄가 그 중 하나로, 지금껏 국가가 여성의 몸을 어떻게 취급해왔는지 투명하게 드러내는 사안이다. 여성이 임신을 지속할 자유와 지속하지 않을 자유는 온전히 그 여성의 선택이어야 한다. 여기에는 어떤 헛소리도 첨언할 필요가 없다. 세상은 '베토벤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세포의 미래를 안타까워하지만 베토벤이 아니더라도 차곡차곡 자신의 생을 쌓아온 여성은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마리아도 아메바도 아니니 혼자 임신했을 리는 없는데, 지우면 지웠다고 낙태충 낳으면 낳았다고 미혼모 또는 맘충이다.
2016년 10월 16일 09시 40분 KST

"너 보라고 꾸민 건 아니지만"

나는 여자가 꾸미는 이유에 "타인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라는 항목이 아무렇지 않게 들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의미의 성 평등이 이루어진다면 그런 날이 오겠지. 이게 안 되는 건 항상 여자의 치장이 남자를 위한 것으로 프레임 짜였고 쓰였기 때문이고, '잘 보이고 싶은' 객체의 욕망보다 '보기 편한 것'을 선호하는 주체의 권력이 막강하기 때문이다. 온 세상이 발 벗고 나서서 '보편적 남성의 취향'을 벗어나는 치장을 후려치고 꾸미지 않은 여성을 조롱하고 멸시한다. 이런 사정이니, 여성들은 더 강박적으로 그것이 자신의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라고 강조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라도 해야 알아처먹을까 말까니까. "너 보라고 하는 거 아냐! 날 위해서야!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조크든요!"
2016년 09월 06일 06시 31분 KST
'하지 않음'의

'하지 않음'의 정치학

연애를 못하는 것인지 안 하는 것인지 감별하려는, 사실은 "못해요"라고 울면서 말하기를 바라는 시뻘건 눈들이 열심히 비연애 인구를 쫓아다닌다. 아 쫌, 못하든 안 하든, 그게 뭣이 중헌디? 우리의 무수한 선택과 취향, 의지, 욕망은 사회적인 것과 개인적인 것, 강요되는 것과 저항하는 것, 주입된 것과 선택하는 것으로 뒤엉켜 있다.
2016년 08월 08일 09시 59분 KST
우정과 전쟁

우정과 전쟁 10년사

다를 수밖에 없는 인간들이 모여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면 다투는 것은 당연한데, 인생의 대부분을 연애하지 않고 살아온 나를 보고 누군가는 "연애 안 하니까 속 썩을 일은 없겠다"라고 해맑게 웃었다. 그럴 땐 손을 들어보게 하라! 무엇을? 백년전쟁에 버금가는 나의 우정과 전쟁 10년사(史)를. C를 만난 것은 대학 OT에서였다. 우리는 (겉으로 보기에는) 금방 친해졌고 곧 단짝이 된 듯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거대한 착각인지 알아채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2016년 07월 17일 10시 21분 KST
연애와 안전의

연애와 안전의 상관관계

혼자 택시를 탔다가 위협을 느낀 여성들은 아무 남자에게나 전화를 걸어 통화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남자 목소리가 들리도록 소리를 최대한 키워서. 모르는 남자가 접근할 때 가장 효과가 좋은 방법은 "남자친구를 기다린다"였다. 여성들이 이 사건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남자친구들이 가장 많이 보인 반응은 "너는 내가 지켜줄게"였지만, 그런 식의 '사적인' 보호는 답이 될 수 없다. 한 성별이 다른 성별에게 일방적으로 안전을 '아웃소싱'해야 하는 사회는 모두에게 문제적이다.
2016년 06월 10일 06시 47분 KST
프레임을 짠 것은 여성들이 아니라

프레임을 짠 것은 여성들이 아니라 가해자다

사건 그 자체보다 이를 둘러싼 세상의 반응을 보면서 이것은 결코 한 정신병자의 난동으로 축소할 문제가 아님을 새삼 깨닫는다. 이 문제로 '남자친구'나 '남편'과 다투었다는 연락이 어제부터 끊이질 않는다. 참담하다. 한 생명의 죽음과, 성별이 곧 과녁인 생활을 살아가는 '사랑하는' 이들 앞에서마저 "잠재적 범죄자로 몰리는 내 억울함"이 우선인 언어들을 보며 나는 솔직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몰라도 되는 권력은 너무나 의연하고 뻔뻔스러워서, 백 번 눈높이를 맞춰서 설명하고 이야기해도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조금만 눈을 돌리고 귀를 열고 공부해보면 알 수 있는 건에 대해서 끊임없이 상대에게 팔짱을 끼고 "내 생각은 이런데 날 설득시켜봐"라는 태도를 취한다.
2016년 05월 20일 08시 39분 KST
봄이

봄이 좋냐고??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 이 노래는 봄을 즐기는 누군가에게, '그 좋음'을 아니꼬워하는 누군가 놓는 '일침'이다. '니 남자친구'라는 표현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노래가 저격하는 대상은 여성이다. 커플 전체가 아니라, (내가 아닌) 누군가의 여자친구. 가사를 보면 노래 속 커플들은 남자친구의 속도 모르고 착각에 빠진 여자와, 사실은 PC방에 가고 싶지만 참고 지겨워하는 남자로 구성되어 있다. 오지랖으로 남의 비연애 상태를 폄하하는 것만큼이나, 지레짐작으로 남의 연애를 비하하는 것도 무례한 일이다.
2016년 05월 08일 10시 00분 KST
외국 가면 다

외국 가면 다 연애한다던데?

그런 '카더라'가 있다. "외국 거주 경험이 있는 여성은 결혼정보 회사에서 감점당한다"라는. 이것은 우리 사회의 어떤 저열함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여성의 외국 거주 경험은 종종 성적 문란함으로 해석된다. 외국 남성과 연애했을 가능성 때문이다. 나는 외국의 낯선 도시를 혼자 여행할 때 가끔 현지인의 도움을 받았는데, 그때마다 한국인 남자들에게서 따가운 시선을 받았다.
2016년 04월 24일 09시 26분 KST
얼굴을 안 보는 사람은

얼굴을 안 보는 사람은 없다

아름다움은 확실히 취향을 탄다. 여기에는 누구나 공감한다. 그러나 못생김도 취향을 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단언컨대, 못생김에도 취향이 있다. 오랫동안 연애하지 않는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며 누군가는 "눈이 너무 높은 것 아니냐"고 핀잔을 주었다. 그 말에 내포된 메시지는, 뭐, 그런 거였다. "니 주제에 얼굴 따지냐." 한때는 "저는 얼굴 안 봐요" 하고 손사래를 치며 나의 결백함, '개념'을 인증하려고 했다. 지금은 그것이 얼마나 부질없고 허무한 시도인지 안다.
2016년 03월 27일 11시 43분 KST
대학 가서 미팅할래, 공장 가서

대학 가서 미팅할래, 공장 가서 미싱할래?

20대 초중반의 연애는 항상 '대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대학생'의 일상으로 가시화된다. 이것은 20대 초중반이 종종 '대학생'으로 뭉뚱그려지는 안이한 범주화와도 관련이 깊다. 미디어나 풍문 속 연애는 언제나 대학생들의 그것이다. 연애의 대상은 '복학생 오빠'거나, '새내기 여대생', '과 선배'의 기표로 등장하고 소비된다. 연애 자본은 이렇게 계급화된 학벌을 중요한 축으로 삼고 있다. 연애가 정말 그토록 자연스럽고, 지극히 좋은 것이며, 청춘이라면 누구나 참여해야 마땅한 가치라면, 어째서 이 사회는 청춘을 항상 '대학생'으로 소환하고 캠퍼스 러브 스토리를 이상적 로맨스로 제공하느냔 말이다.
2016년 02월 18일 11시 12분 KST
'연애 고자'는

'연애 고자'는 없다

깔끔한 위생 상태와 무난한 옷차림, 맥락 없는 거친 말은 주의할 것, 사소한 점을 칭찬하기, 상대의 말을 잘 듣고 호응해주기 등. 그런데 이것은 꼭 연애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인간관계 자체에서 필요한 기본 예의범절이기도 하다. 안타깝게도 이런 기본 예의조차 지키지 않으면서 자신과 만나주지 않는 환상 속의 그대를 욕하고 증오하는 이가 많다. 혹은 연애의 가능성이 있을 때는 그나마 성의를 보이다가, 상대에게서 건질 것이 없다고 판단한 순간(애인이 있거나/ 결혼했거나/ 구애를 거절하거나) 돌변해 욕설을 퍼붓는 경우도 흔하다. 그런 사람들은 '연애 고자'라기보다는 대인관계나 성격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므로 여기서는 논외로 한다.
2016년 02월 10일 08시 38분 KST
맨정신으론 왜 안

맨정신으론 왜 안 돼?

상대가 취했다고 동의 없이, 혹은 정신은 차리고 있는데 몸을 가누지 못할 때 혼자 멋대로 '뜨거운 밤'을 만들려고 하는 것은 썸도 데이트도 아니다. 그냥 엄연한 범죄다. 맨정신으로 정정당당하게 좀 하자. 못하겠거든 안 하면 된다. 이렇듯 술에 대한 사람들의 호불호나 태도, 꿍꿍이(!)는 다 천차만별이기 마련인데, 꼭 연애에 술이 필요하다면... 그냥 필요 없다고 전해라~.
2016년 01월 10일 08시 27분 KST
'기승전파스타'를 견디기

'기승전파스타'를 견디기 싫다면

다행히 대학 신입생은 연애 시장의 핫 매물이어서, 미팅과 소개팅 급행열차가 줄줄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올라탔다. 그때부터 끝없이 이어지는 파스타, 오, 파스타, 파슷...하! 지금이야 메뉴가 다양해지고 소개팅 방식도 다채로워졌지만, 그 무렵엔 그냥 기승전파스타였다. 적당한 분위기, 적당한 가격, 적당한 위치, 적당한 맛의 식당에는, 짐작할 수 있겠지만, 몇 테이블 건너 연애의 장에 나선 이들이 있다. 그들은 누가 봐도 소개팅 중이거나, 이제 두 번째 만나는 중이며, 공기가 참 어색하고 민망하고 어딘가 연극적이고 그렇다.
2015년 12월 27일 10시 00분 KST
오늘도 정의로운 싱글이 되게

오늘도 정의로운 싱글이 되게 해주세요

연애하지 않을 자유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면, 일단 몇 개의 산을 넘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눈을 홉뜨고 나에게서 어떤 '하자'를 찾아내려고 한다. 연애하기에 적절하지 않은 요소가 하나라도 포착되면, 그때부터 내가 하는 모든 말은 '열폭'이나 '정신승리'로 번역된다. "못하면서 안 하는 척한다"거나, "자유 되게 많을 것 같은데"라는 빈정거림도 간간이 들린다. 이렇게 상대방의 비연애 상태를 폄하하는 일은 매우 쉽다. 그것은 개그 프로그램과 같은 각종 미디어, 사람들 사이의 대화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진다. 하지만 '~하지 않을 자유'가 성립되지 않는 '~할 자유'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2015년 12월 20일 09시 07분 K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