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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

소설가
또 장정일이다! | 위안부 '전문' 연구자이신 강성현

또 장정일이다! | 위안부 '전문' 연구자이신 강성현 교수께

내 글은 '한겨레' 같은 신문으로 하여금 위안부 숫자를 마음대로 올릴 수 있게 만들고, 마음대로 내릴 수 없게 만드는 거수기(擧手機)가 민족주의라고 의심하고 있다. 이를테면 '한겨레'가 같은 기사에 통상 20만 설이 아닌, 연구자가 최소치로 잡고 있는 '8만'이라고 썼다면 절독을 하겠다는 독자로 난리가 났을 것이다. 내 글은 그 딜레마를 말하고 있다. 위안부 연구자와 활동가, 위안부 연구자와 언론, 위안부 연구자와 대중 사이에는 소통되지 않은 차이(gap)가 있다. 내가 확인한 여러 위안부 문제 연구자의 연구 결과나 초점은 특히 대중에게는 충분히 전달되지 않고 있다. 그 원인을 과거사 보도에서 '사실 경쟁'을 하지 않는, 혹은 할 수 없게 된 언론의 딜레마에서 찾아볼 수 있다.
2016년 07월 11일 11시 53분 KST
박유하 죽이기 | 정영환·이명원의

박유하 죽이기 | 정영환·이명원의 오독

『제국의 위안부』의 한국어판과 일본어판이 '동일한 서적'이 아니며, 바로 거기에 박유하의 간계가 숨어 있다는 식의 이런 음모론은 원래 이명원의 것이 아니라, 일본어판 출간 즉시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온 정영환 메이지가쿠인대학 교수의 것이다. "『제국의 위안부』의 핵심 주장은 일본어판을 읽지 않으면 모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 라느니, "두 책은 사실상 동일한 서적이라 보기 어렵다"고 말하는 것은, 좋게 봐서 오독이지만, 실제로는 '고의적인 거짓말'이다.
2016년 05월 11일 11시 57분 KST
에리히 프롬이 자본주의를

에리히 프롬이 자본주의를 찬양했다고?

프롬이 이 책을 쓰게 된 이유는 히틀러가 선거를 통해 권좌에 오르게 된 원인을 찾기 위해서였다. 자유와 개인주의를 무한히 확장했다는 자본과 시장은 공동체의 안정을 파괴함으로써 오히려 인간의 근원적인 불안을 증폭시켰다. 그 결과가 전체주의의 귀환이다. 이처럼 명료한 자본주의 비판서를 자본주의 찬양서로 둔갑시키다니?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앵거스 디턴의 <위대한 탈출>(한경비피·2014)이 자유기업주의자들에 의해 원서 자체가 훼손되었듯이, 왜곡의 달인인 이들이 국정교과서 사업의 배후라는 것을 주시해야 한다.
2015년 11월 20일 09시 45분 KST
작가의 '타고난 재능' 강조하는 순문학 시대 가고

작가의 '타고난 재능' 강조하는 순문학 시대 가고 있다

오쓰카 에이지는 대형출판사의 매출에서 만화와 순(정통)문학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면서, 만화와 같은 장르문학에 기대어 연명하고 있는 순문학을 향해 '불량채권'이라는 직격탄을 날렸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에서도 순문학과 장르문학 사이의 주도권 교체를 문학의 돌파구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오쓰카 에이지와 순문학계 사이에 세워진 긴장은 어느 장르가 오늘의 대세인가를 다투는 것에 있지 않다.
2015년 07월 17일 06시 46분 KST
사이코패스를 만드는

사이코패스를 만드는 방아쇠

그는 자신의 뇌를 찍은 사진이 사이코패스의 뇌와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것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고, 그 사실에 촉발되어 자신의 가계를 거슬러 올라가 보니 선조가 살인자투성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행적을 돌이켜보고, 가족과 친구들에게 냉정한 인물평을 구한 결과, 그 자신이 사이코패스였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그런데도 그는 어떻게 무지막지한 범죄자가 되지 않았을까?
2015년 06월 12일 12시 48분 KST
시대를 건너는 법,

시대를 건너는 법, "뛰지 말고 어슬렁거리자"

유곽에 숨었기에 그는 마르크스를 논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국학(國學)으로 돌아서는 것과 같은 변절을 피할 수 있었다. <게다를 신고 어슬렁 어슬렁>은 "나는 도무지 새로운 세계의 사상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다. 마침내 나는 세상에서 완전히 소외되고 말리라"고 눙치면서 군국주의 시대를 건넜던 작가의 변장술을 보여준다. 슬리퍼를 걸치자. 게다면 또 어떤가? 뛰지 말고 어슬렁거리자.
2015년 04월 24일 06시 17분 KST
이슬람 비판과 공포증

이슬람 비판과 공포증 분간해야

우파의 선동과 인종주의가 합쳐진 이슬람 공포증과 정당한 이슬람 비판을 분간하지 않으려는 좌파의 위선은 쿠아시 형제의 범죄를 무조건 인종차별과 계급갈등의 폭발로만 해석한다. 그러나 범행 직후 쿠아시 형제는 '알라는 위대하다!'고 외쳤지 '이슬람을 차별하지 말라!'거나 '우리에게 일자리를 달라!'고 외치지 않았다. 이슬람은 미개한 때문이 아니라 한때 너무 영광스러운 역사가 있었다는 것이 문제다. '옛날에 우리집 부자였어'라는 이들의 자원은 열등감이 아니라 턱없는 자긍심이다. 바보들만 이 역설을 모른다.
2015년 03월 24일 08시 11분 KST
이택광이야말로 어정쩡한

이택광이야말로 어정쩡한 좌파다

지제크는 이 책 서문에 "나는 철저한 무신론자"라고 밝혔다. 모두 알다시피, 무신론자가 곧 좌파는 아니지만, 급진 좌파의 '급진'을 뿌리까지(radical) 사유하게 되면, 거기에 가닿게 된다. 이런 사실이 샤를리 에브도 사건에 대해 말해 주는 진실은, 이택광처럼 어정쩡한 좌파와 달리 급진 좌파는 같은 사건을 계급갈등에 고착시키거나 제국주의로 환원시키지 않고, 더 멀리 나아간다는 것이다. '가짜 좌파/급진 좌파'가 이런 기준으로 나뉘는 것이라면, 이처럼 어리석은 사도(使徒)는 어느 방으로 모셔야 할까?
2015년 03월 19일 10시 26분 KST
박유하 논란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박유하 논란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

지난 2월17일,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가 출판금지 가처분 결정을 받았다. 그러자 이재명 성남 시장이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의 트위터에 "어쩌다 이런 사람과 하나의 하늘 아래서 숨 쉬게 되었을까"라면서, 지은이를 "청산해야 할 친일 잔재"로 몰아 세웠다. 그러면서 책을 읽어 보았느냐는 누리꾼에게 "똥은 안 먹고 냄새만으로 압니다"라고 일갈한다. 여러 우익 단체들이 아무 근거 없이, 단지 '냄새'가 난다는 직감만으로 그를 '빨갱이'라고 확신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2015년 03월 13일 06시 15분 KST
'이슬람 테러'에 온정적인 지식인들에 대한 지젝의

'이슬람 테러'에 온정적인 지식인들에 대한 지젝의 답변

"맥락을 고려하자는 사람들은 말한다. 샤를리 에브도를 공격한 형제들은 미국이 이라크에 주둔한 것이 너무 끔찍해서 놀랐다고 한다.(맞다. 하지만 그 형제들은 프랑스 풍자 잡지 대신 미군의 군사시설을 공격할 수 있었다. 왜 그렇게 하지 않았나?) 이슬람인은 사실상 서구에서 가장 착취당하고 대접받지 못한 소수라고 한다.(맞다. 그러나 아프리카계 흑인은 훨씬 더 심하다. 그러나 그들은 살인을 하거나 폭탄을 던지지 않는다.)" 방금 본 것처럼 지제크는 맥락을 고려하자는 사람들, 곧 쿠아시 형제에게 온정적인 좌파 지식인들에 대한 공박을 모두 괄호 처리했다. 괄호는 종종 '이런 것까지 가르쳐 줘야 해?'라는 가외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형식이기도 하다.
2015년 03월 06일 08시 44분 KST
'이슬람근본주의'와 '관용의 타락한 사용법'에

'이슬람근본주의'와 '관용의 타락한 사용법'에 대해

관용은 샤를리 에브도 사건 이후 가장 많이 들먹여진 용어다. 모두들 관용에 대해 한마디씩 하지만, 관용의 가장 타락한 사용법은 ①상대방을 아이로 취급하면서 상대방의 환상을 깨지 않으려는 태도이며, ②어떤 진리든 진리를 주장하는 것은 모두 폭력이라는 발상에서 출발한다. 즉 우리는 ①, ②의 태도와 발상을 간직한 채 이슬람을 '아이' 취급하고, 그들에 대한 이의 제기를 '폭력' 행사나 되는 양 자기 검열을 해온 것이 아닌가? 과격하게 말해, 비판이 필요한 근본적 차이를 문화적 차이와 생활 방식의 차이로 변질시키고, 미소 띤 얼굴로 표현의 올바름에만 신경을 써온 허다한 프랑스 지식인들의 타락한 관용이 풍자만화가들을 참극으로 내몬 게 아닌가?
2015년 02월 05일 12시 07분 KST
폭력성이 순화돼 왔다는 게

폭력성이 순화돼 왔다는 게 사실일까?

스티븐 핑커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사이언스북스,2014)는 작년에 여러 매체가 다투어 선정한 책이다. 아직 읽어 보지는 못했지만, 이 책에 대한 비판이 없는 것은 개운치 않다. 인간 본성 속의 천사가 내면의 악마에게 승리를 거두었다는 스티븐 핑커에게 무식한 질문을 하겠다. 당신은 돌도끼와 활로 무장을 했던 미개인보다 핵무기와 미사일로 무장을 한 현대인이 천사에 더 가깝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이 천사는 언제, 어느 지점에서 최신 대량 학살 무기에 대한 가없는 욕망을 멈추게 될까?
2015년 02월 03일 10시 08분 K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