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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영

역사가

역사가. 울산에서 태어났다. 서강대 사학과 박사 과정을 졸업하고, 몇몇 대학과 고등학교에서 시간 강사로 강의를 하기도 한다. 한국 근현대사를 주전공으로 하고 있으며, 죽음의 문제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밖에도 노동문제, 책, 음악, 영화, 스포츠, 술에도 관심이 많다. 앞으로 한 권의 책에 밑줄을 그은 몇몇 구절을 통해 다양한 글쓰기를 시도해볼 생각이다.
또 다시, 5월을

또 다시, 5월을 보내며

그 삼엄한 시대를 거치고서도, 고작 3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떨어져나간 '살점들'을 잊었다. 그리하여 전두환을 웃음으로 이야기하고, 심지어 누군가는 그때가 살기 좋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운 좋게 별 탈 없이 그 시대를 거쳐 살아있기 때문에 웃고 말하고 기억할 수 있다는 걸 잊은 채. 그 망각의 틈을 이용하여 누군가는 제멋대로 과거를 '회고'한다. 그 또한 그의 자유라고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과연 피해자와 소수자에게 어떤 권리와 자유를 주었는가?
2017년 05월 30일 12시 21분 KST
대통령이

대통령이 직업입니까?

슬프게도, 현 대통령은 자신이 차지하고 누리려는 것에 비해 세상이 너무나 고분고분하지 않는데도 좌절하지 않는 사람인 것 같다. 그러면서도 지금 바닥조차 보이지 않는 이 상황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말할 확신을 가진 것 같아 무섭다. 진심으로 묻고 싶다. 당신에게 대통령은 '직업'이냐고. 그 자리에 요구되는 최소한의 소명이 당신에게 있기나 하냐고. 언제나 그렇듯 당신은 답하지 않을 것이기에, 우리가 먼저 답을 해야할 것 같다. 대통령은 직업이다. 그것도 소명의식이 필요한 중요한 직업이다. 무능한 데다 부패하기까지 했다면, 물러나 죄에 맞는 처벌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 당신은 이미, 대통령이 아니다.
2016년 11월 18일 05시 06분 KST
브라질로 미래를, 아직 오지 않은 현재를

브라질로 미래를, 아직 오지 않은 현재를 상상하다

츠바이크를 읽으며, 나는 절망의 시대에 미래를 보는 이를 응원한다. 약자의 입장에서 혐오에 저항하는 이를 응원한다. 무언가를 바꾸려 행동한다는 그 이유로 급진주의자라 불리는 이를 응원한다. "올림픽이 끝났다"고 얘기들을 하지만, 여전히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페럴림픽에 참가 중인 선수들을 응원한다. 역사가 현실을 대변하는 보수적인 도구로만 사용된다면, 때로는 역사를 잊을 필요도 있다. 현재에 좌절하지 않고 미래를 상상하기 위해서, 우리는 "역사가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걸지도 모른다.
2016년 09월 07일 07시 44분 KST
표는 그렇게 죽지

표는 그렇게 죽지 않는다

'다 거기서 거기'라고는 하지만 그 똑똑하신 분들이 모를 리가 없다. 1번부터 두 자리 숫자의 번호를 받은 후보들이 모두 '똑'같지는 않다는 것을(심지어 정당투표는 스무 개가 넘는 정당이 등록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 스스로가 자주 하는 얘기지만 투표는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이렇게 똑똑하신 분들이 두려워 한다. 죽음을, '표의 죽음'을 두려워 한다. 이런 두려움은 똑똑하면서도 냉소적인 분들일수록 더 심한 것 같다.
2016년 04월 01일 07시 19분 KST
내가 정말 싫어하는

내가 정말 싫어하는 농담

황우여 교육부 장관이 "사학과나 민속학과 등 학생들이 과거 거리로 많이 나와 대학도 역사 과목을 많이 신경 쓰지 않았다", "이 때문에 역사 교육이 잘되지 않는 것 같다"라고 말씀하셨다는데, 이 말은 순서가 거꾸로 된 것이다. 학생들이 거리로 나와서 역사 과목에 신경을 쓰지 않은 게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다. 우리가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고 구라를 치거나, 하나로만 소급되는 역사 교육을 실시했기 때문에 학생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던 것이다. 원인과 결과의 순서를 뒤집은 황우여 장관의 말은 실패한 농담이며, 게다가 본인은 순서를 뒤집은 것조차 모르고 있으므로 내가 정말 싫어하는 농담이다.
2015년 10월 22일 07시 04분 KST
우리가 남이가? 그렇지,

우리가 남이가? 그렇지, 남이지.

나는 경상도에 큰 애정을 느끼지 못한다. 아니, 오히려 내가 그 지역 출신이라는 것을 굳이 이야기하지 않을 만큼 탐탁치 않아 한다. 원인은 여러가지일 것이다. 큰 목소리, '우리'를 강조하는 것, (특히 남성들의) 위악, 정치. 나의 이 기피증은 과연 '타당'한 것일까?
2015년 08월 19일 06시 59분 KST
세속화된 죽음, 성스러운

세속화된 죽음, 성스러운 근대

가족 중에 누군가가 죽었다고 생각해보자. 아마 직접 경험한 사람도 많을 것이다. 죽음의 처리 과정이 시작됨과 동시에 선택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실은 하나도 선택할 수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다. 과정이 시작됨과 동시에 '장례지도사'가 친절히 도와준다. 매뉴얼에 따라 해야 할 것들을 설명해준다. 그리고 관부터 시작해서 자질구레한 물건들까지 등급이 정해져있다. '장례지도사'가 유족의 곁에 와서 어떤 것을 '선택'하겠느냐고 묻는다. 이 현장에서 '흥정'을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건, 왜일까?
2015년 05월 29일 08시 01분 KST
우리 모두는 이주민, 그리고

우리 모두는 이주민, 그리고 노동자.

대체, 이런 삶이란, 이런 죽음이란, 어떤 것이란 말인가. 조안 씨가 잠시 일했고, 살았고, 그리고 죽은 곳은 대한민국이다. "2009년 조안 씨는 끝내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그의 남편과 딸은 비행기 편을 구하지 못해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타이완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어머니도 비자를 받을 수 없어 오지 못했다. 그의 사체는 병원비를 대신해 대학병원에 신체 해부용으로 기증됐다."
2015년 04월 03일 13시 09분 KST
우리 사회에서 '당사자'가 된다는

우리 사회에서 '당사자'가 된다는 것

여성 노동자가 처한 현실의 특징은 어떠한가. 우리는 아직도 이 부분을 너무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얼마 전 SNS를 뜨겁게 달구었던 페미니즘 논쟁(발화점을 생각해보면 논쟁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민망하지만)을 봐도 알 수 있듯이, 여성 문제는 여전히 중요하지 않은, 혹은 덜 중요한 문제로 여겨진다.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여성 노동자는 환영의 대상이지만, 조직 내에서 여성의 권리 혹은 차별 반대를 이야기하면 거시적인 안목 없이 분열을 조장하는 이기주의자로 낙인 찍는다. 특정 계급 혹은 성별이 극도의 차별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밥그릇 챙기기가 아니라 인간 보편의 권리 주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발언은 그 자체로 폭력이다.
2015년 02월 10일 10시 51분 KST
당신에게 1988년은 어떤

당신에게 1988년은 어떤 해입니까?

당신이 기억하는 1988년과 이 사회가 기억하는 1988년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그리고 그 기억이 10년 뒤에도 정확히 일치할까? 서울올림픽이든 뭐든 좋다. '나'로 범벅이 된 기억을 떠올리고 글을 쓰거나 말을 해보는 건 어떨까? 그리고 작년, 2014년은 '나'에게 어떤 해로 기억될까? 많은 것을, 잊어버리지는 않을까? 잊어버린다면, 내겐 중요하지 않은 일이였던 걸까? 과연 기억은 개인의 능력이나 의지만으로 형성되는 것일까?
2015년 01월 27일 06시 11분 KST
정치인이 '다 똑같은 놈들'이 아닌

정치인이 '다 똑같은 놈들'이 아닌 이유

정치인의 입에서 나온 이런 말들이 언론을 탈 때, 흔히 '실언' 또는 '망언'이라는 표현을 쓴다. 하지만 실은 이런 실언과 망언이야 말로 저들의 투명한 진심이다. 우리가 집중해서 들어야 할 말은 저들이 진지하게 하는 말들이 아니라 평소에 쉽게 하는 실언과 망언인 셈이다. 예전에 한국의 정치인들이 '진지하게 준비하고 한 말'과 '실언 및 망언' 중에 어떤 것이 더 행동과 일치했는지 생각해보자.
2014년 12월 31일 05시 48분 KST
냄새와

냄새와 기억

시각과 청각을 자극하는 온갖 것들에 둘러싸여 둔감한 인간으로 살아가지만, 후각이 찔러대는 그 힘 앞에서는 무력할 뿐이다. 토요일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의 문을 열었을 때, 소릇이 방 안을 채웠던 밥 냄새. 수요일 저녁 반주 한 잔을 하시고 들어오신 아버지의 작업복에서 배어나오던 바람 섞인 쇠냄새. 종이에 손을 베어 손가락을 입에 물고 지혈할 때 코로 올라오던 비릿한 피냄새. 수술 후 마취가 풀리는 순간에 접합 부분에서 오는 고통을 낮은 신음 소리로 눌러가며 참으시던 어머니의 땀내와 입냄새. 제초작업 시기만 되면 막사 부근을 뒤덮었던 풀 베는 냄새. 밤새 논쟁을 벌인 후 깨지는 머리를 잡고 일어날 때 입안을 가득 메우던 막걸리내.
2014년 11월 28일 06시 58분 KST
불가능하기 때문에 나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나는 믿는다

버스기사였던 저자 안건모의 '글'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버스회사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버스기사가 어떤 근로조건 하에서 일을 하는지 알기 힘들었을 것이다. 아니, 냉정하게 말해서 애초에 관심도 없었을지 모른다. 생각해보라. 버스기사들의 생활이 뭐가 그리 중요한가. 나 하나 먹고 살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그럼에도 이 책은 우리가 종종 듣곤 하는 불평불만의 수준을 이미 뛰어 넘고 있다. 왜? 저자 안건모가 투철한 계급의식을 가진 노동전사라서?
2014년 11월 21일 10시 47분 KST
공권력의 폭력은 러시안 룰렛과

공권력의 폭력은 러시안 룰렛과 같다

미술 선생님은 불려나온 우리 둘을 마주 세운다. "정일영, 너부터 뺨 한 대 때려." 처음엔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지 못한다. 그러나 곧 팔을 들어 친구의 뺨을 살짝 친다. "장난해? 세게 때려." 이번엔 친구가 나의 뺨을 때린다. 여전히 손에 힘이 들어가 있지 않다. 또 한 번 뒤에서 미술 선생님의 고함소리가 들린다. 조금씩 힘을 주면서 서로의 뺨을 때린다. 결국 몇 분간 서로의 뺨을 때리다 보면 남는 것은, 붉게 상기된 뺨과, 맞지도 않았는데 함께 상기된 얼굴과, 이상하게 그렁그렁대는 눈빛과, 그리고 어색함에 서로를 쳐다보지 못하는 두 명의 '친구'뿐이다.
2014년 10월 27일 06시 13분 KST
각자의 자리에서, 한 말씀만

각자의 자리에서, 한 말씀만 하소서.

인지상정이란 말은 흔해빠진 말이지만, 정말 중요한 말이다. 하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보통의 인정 또는 생각" 정도로 풀이할 수 있는 이 말이 엄청난 위기 앞에 서 있다. 수십 일을 단식하고, 목이 터져라 외치고, 마를 기미도 보이지 않는 눈물을 흘려가며 거리에서 잠드는, 비정상적인 일상을 살아가는, 살아갈 수밖에 없는 저 사람들이 비정상인가? 아니면 자식을 잃은 사람을 두고 보상금 운운하는 사람들, 그것을 상상하는 사람들이 비정상인가?
2014년 09월 05일 05시 29분 KST
일상으로의

일상으로의 복귀

일상은 평범하지만 소중하고, 또 그러면서도 비루하며 지리멸렬하다. 일상으로 돌아가자는 목소리가 들린다. 가족을 잃은 이들이, 사건의 진상도 알지 못한 채 다시 어디로 돌아가야한다는 말인가. 돌아갈 일상이 대체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좋다. 일상으로 돌아가자. 무언가 거대한 변화가 어렵다는 건, 계란으로 바위를 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는 건, 언제나 알고 있던 사실 아닌가. 돌아가자,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가자. 돌아갈 수 있다면, 아이들이 돌아올 수 있다면, 돌아갈 수 있다면, 폐쇄된 공간 속에서 비인간적인 폭력으로 서서히 죽어갈 수 밖에 없던 청년이 돌아올 수 있다면.
2014년 08월 07일 06시 15분 KST
꼭 5월이

꼭 5월이 아니더라도

소설가 한강이 올해 5월에 새로운 소설책을 냈다. [소년이 온다]라는 얼핏 서정적인 제목과는 달리, 1980년 광주의 이야기다. 이 소설은 소년과 소녀를 이야기한다. 정치나 체제보다는 개인을 이야기한다. 우리가 5월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이 사건이 한국사의 비극이기도 하지만 무수한 개인들의 비극'들'이기 때문이다. 요즘 인터넷 상에서의 "잊힐 권리"(right to be forgotten)가 화제다. 하지만 적어도 한국 현대사에서는 아직 "잊히지 않을 권리"가 우선해야 한다. 5월이 아니기에, 이 글을 쓴다. 5월이 아니기에, 이 책을 권한다.
2014년 07월 11일 05시 28분 KST
다행히, 상상력은 초능력이

다행히, 상상력은 초능력이 아니다

현실을 직시할 수 있고, 고통 받고 있는 이들과 공감하고 연대할 수 있는 능력. 이 사회에서 이런 능력은 초능력이 되어버린지 오래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때로 그 초능력은 없느니만 못하다고 생각될 때가 있다. 나와는 상관 없는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면 맘 편할 때가 많으니까. 하지만 나는 우리 모두가 아직 백색실명 상태라고 믿고 싶다.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건, 정의감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어쩌면 상상력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닐까.
2014년 05월 19일 05시 20분 KST
높은 곳에서만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것은

높은 곳에서만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작가이든, 역사가이든, 타인과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든.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자신감보다, 모르는 것이 대부분이라는 걸 인정하는 게 이해와 소통에 도움이 된다. 높은 산에 올라 풍경을 내려다보는 것도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방법이지만, 산에서 내려와 한 인간의 눈을 바라보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방법이다. 적어도 인간에 대해서는 그런 것 같다.
2014년 04월 01일 14시 53분 KST
죽은 사람들, 죽어가는 사람들, 언젠가는 죽을

죽은 사람들, 죽어가는 사람들, 언젠가는 죽을 사람들

의료행위 결정 과정에서 정작 당사자인 환자나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은 일방적으로 소외된다. 그들이 환자복을 입는 순간, 그가 가지고 있던 수많은 결정권, 심지어 자신의 건강과 목숨에 관련된 사안에 대해서도 모든 결정권을 박탈당한다. 순식간에 그들은 아이처럼 취급을 받고, 그들이 표현하는 모든 감정은 환자 특유의 생떼나 짜증, 민감함으로 받아들여진다.
2014년 03월 14일 13시 28분 K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