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규

한양대 에리카캠퍼스 글로벌다문화연구원 연구교수

소년은 영국 아이들로부터 집단 괴롭힘을 당했다

소년은 열한살이다. 그는 1학년 때부터 6학년 때까지 학교생활 내내 영국 아이들로부터 집단 괴롭힘을 당했다. 얼마 전에 소년이 크게 상처받는 일이 또 생겼고, 그의 좌절과 분노는 한계를 넘었다. 피가 날 때까지 손톱을 물어뜯고, '노'(No)라고 소리치며 잠꼬대를 했고, 밤마다 깨서 몸을 떨었다.
2017년 12월 07일 17시 25분 KST

추석날 하루

S가 자기 이야기를 해주었다. 둘째가 뱃속에 있을 때 도저히 살아갈 자신이 없어서 세살 난 아들을 데리고 절벽 끝에 섰단다. 그때 아들이 "엄마, 바다가 참 예뻐요"라고 말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안 그랬으면 큰일 날 뻔했다고. 그 아들은 이제 열한살이다.
2017년 10월 12일 10시 41분 KST

런던 그렌펠타워 화재와 세월호

불탄 건물에서는 이제 더이상 검은 연기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붕괴 위험 때문에 시신수습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시신을 발견해도 신원확인이 어렵다고 한다. 경찰은 실종자를 전원 사망자로 간주하고 현재까지 사망자 수는 79명이라고 추산했다. 사람들은 정부의 희생자 집계를 믿지 않는다. 희생자는 백명이 훨씬 넘을 것으로 본다. 가족과 친지들은 건물 밖에서 오열한다. 재난의 현장이 바로 눈앞에 있는데 아무도 들어가지 못한다. 들어가도 찾을 수 없다. 다 타버렸다. 애통해하는 주민들에게 정부는 책임 있는 설명도 상세한 경과보고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주민들은 분노에 차서 구청으로 몰려가고, 사람들은 거리로 나선다. 잔인한 기시감이다.
2017년 06월 22일 15시 49분 KST

기억하는 것은 죽은 이를 위한 것만이 아니다

이곳 '비치헤드'(Beachy Head)라는 바닷가 하얀 절벽 위에는 2차대전 참전 공군을 기념하는 비석이 있다. 돌에 새겨진 헌정사엔 이렇게 적혀 있다. "많은 이에게 비치헤드는 그들이 본 영국의 마지막 풍경이 되었다." 바람 부는 절벽 위에서 이 글을 읽으면서, 내가 보고 있는 이 절벽을 본 후 다시 돌아오지 못한 그들을 상상했다. 마지막 줄은 이렇게 끝난다. "그들을 기억하라"(Remember them). '그들을' 기억하라고 했다. 그들의 희생, 그들의 용맹함, 그들의 충성, 그들의 '무엇'이 아닌. 무엇을 기억할지는 기억하는 사람의 몫이다. 그와 내가 만나는 지점이 사람마다 시대마다 다를 터이니.
2017년 06월 21일 15시 11분 KST

두 광장 사이 비무장지대를 걸으며

아버지와 며칠을 지내는데, 그분 전화로 끊임없이 카톡 알림음이 울렸다. 그리곤 대통령을 구하자는 구국의 목사님과 집사님의 동영상 연설이 들렸다. 그 소리가 들리는데 마음속에서 짜증이 올라왔다. 그러다 문득 '아버지에게 하루 종일 온 카톡 중 내가 보낸 것은 몇개인가?'라는 질문을 나에게 하게 되었다. 별로 없다. 사람들과 관계 맺고 소통하고 싶어하는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을 텐데, 혼자 계신 아버지에게는 끊임없이 울리는 이 카톡이 그분을 세상과 연결시키는 문 같은 건 아닐까. 그 문은 내 것이 닫힌 만큼 더 크게 열리는 건 아닐까. 그날 이후 나는 아침마다 문안 카톡을 보낸다.
2017년 03월 09일 12시 41분 K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