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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산

황현산은 1945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기욤 아폴리네르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아폴리네르를 중심으로, 상징주의와 초현실주의로 대표되는 프랑스 현대시를 연구하는 가운데 ‘시적인 것’, ‘예술적인 것’의 역사와 성질을 이해하는 일에 오래 집착해 왔으며, 문학비평가로도 활약하고 있다. 저서에 『얼굴 없는 희망』, 『말과 시간의 깊이』, 『잘 표현된 불행』, 『밤이 선생이다』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랭세의 『프랑스 19세기 문학』(공역), 『프랑스 19세기 시』(공역), 디드로의 『라모의 조카』, 말라르메의 『시집』, 아폴리네르의 『알코올』, 발터 벤야민의 『보들레르의 작품에 나타난 제2제정기의 파리』(공역),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선언』 등이 있다. 번역과 관련된 여러 문제에도 특별한 관심을 지니고 이와 관련하여 여러 편의 글을 발표하였으며, 한국번역비평학회를 창립, 초대 회장을 맡았다. 고려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 퇴임하였으며 현재 명예교수이다.
더디고 더딘

더디고 더딘 광복

독재자들이 견디지 못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은 그것을 혼란이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렸지만, 따지고 보면 그 혼란은 인간 심성의 복잡함이자 그 인간들로 이루어진 사회의 복잡함이며, 거기에 토대를 둔 온갖 사회적 가능성과 창조력의 복잡함이었다. 박정희의 유신체제가 가장 두려워했던 것이 노래에서건 영화에서건 시에서건 모든 종류의 새로운 발상법이었다는 사실이 그 점을 증명하고도 남는다.
2017년 08월 18일 06시 56분 KST
풍속에 관해

풍속에 관해 글쓰기

나는 안경환씨가 이 책에서 남자의 성매매와 외도를 암묵적으로 용인하고 있다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에 불과하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안경환씨의 글에서 남자는 늘 하나 이상의 서사를 얻고 있지만 여자는 늘 여자일 뿐이라는 것이다. 남자의 서사가 손쉽게 만들어지는 것은 남자들의 행동거지가 부정적이건 긍정적이건 벌써 풍속의 가치를 얻기 때문이다. 풍속이 만들어주고 승인해주는 남자들의 습관은 자주 남자들의 생리나 본성과 혼동되기 때문에 반성을 해도 그 반성의 효과는 없다. 생리와 본성을 어떻게 철저하게 반성할 수 있겠는가.
2017년 06월 23일 06시 25분 KST
투표의

투표의 무의식

내가 지지했던 후보가 당선되지 못했을 때, 이를테면 박근혜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을 때, 나는 내가 죽인 난초 분들을 생각한다. 이 나라는 내 나라지만 내 의식과 같은 나라는 아니다. 이 나라는 지금도 살아 움직이는 어떤 역사를 살고 있지만,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그 역사의 의지와 같은 의지를 지닌 것이 아니다. 저 알 수 없는 사람들의 마음은 역사의 무의식과 같다. 그 무의식이 늘 투표를 통해 나타나니 어쩌면 행복한 일이기도 하다. 성급한 사람들에게는 투표가 '어느 세월에'라고 한탄하게 하는 영원히 가망 없는 일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마침내 꽃 피는 난초 분들이 있고, 잘 자란 아이들이 있다. 마침내 깨어지는 벽이 있다. 그래서 투표는 역사적 무의식이자 그 거울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투표는 저 역사적 무의식의 세포를 바꾼다. 확실하다.
2017년 04월 28일 09시 55분 KST
소녀상과 만국의

소녀상과 만국의 소녀들

또 다른 소녀들이 있다. 한국의 남자들도 이 죄악에서 자유롭지 않다. 한국군이 월남전에 참전하는 동안 저질렀던 이런저런 만행들을 우리는 이미 모르지 않는다. 한국의 소녀상이 중국 소녀상, 일본 소녀상, 베트남 소녀상이기도 할 때, 그 소녀상은 아베 같은 인간들이 돈다발 따위를 들고 감히 넘볼 수 없는 어떤 높이와 넓이를 얻을 것이다. 한국 소녀에게 참으로 절실하고 엄숙한 문제는 만국의 소녀들에게도 절실하고 엄숙한 문제다.
2017년 03월 03일 07시 01분 KST
닭 울음소리와 초인의

닭 울음소리와 초인의 노래

육사는 뛰어난 진보주의자였다. 진보주의를 삶의 방식으로만 말한다면 불행한 세계에서 행복하게 살기다. 한 사람의 진보주의자가 미래의 삶을 선취하여 이 세상에서 벌써 미래의 초인으로 살지 않는다면 그 미래의 삶에 대한 확신과 미래세계의 건설 동력을 어디서 얻을 것인가. 그의 존재는 이 불행한 세상에 점처럼 찍혀 있는 행복의 해방구와 같다.
2017년 01월 06일 05시 25분 KST
문단 내 성추행과 등단

문단 내 성추행과 등단 비리

문학과 예술을 직업으로 삼고 그 기예를 익힌다는 것은 좋은 아버지, 좋은 어머니, 좋은 아들이 되는 일이 아니며, 윤리적인 인간이나 좋은 시민이 되는 일이 아니다. 이것은 토마스 만이 그의 소설 '토니오 크뢰거'에서 그 주인공의 입을 통해 발설했던 말이다. 문학과 예술이 한 시대의 윤리에 지배되는 것도 아니고, 그 윤리를 위해 봉사하는 것도 아니라는 말은 빈말도 헛말도 아니다. 그러나 이 말은 문학과 예술이 비윤리적이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며, 윤리적 탈선을 진보적 윤리관으로 포장하는 데에 사용될 수 있는 말도 아니다.
2016년 11월 11일 06시 01분 KST
'여성혐오'라는 말의

'여성혐오'라는 말의 번역론

불행한 일을 당하면 누구나 그 불행을 책임져야 할 사람을 찾아내고 싶어 한다. 탓할 사람을 찾아내지 못한 불행은 지금 눈앞에 닥친 불행보다도 더 고통스럽다. 미국 사회에서 깊은 절망에 빠져 있는 중하류층 백인들에게 샌더스는 그 책임이 그들에게서 돈을 빼앗아간 월가의 부자들에게 있다고 말하고, 트럼프는 그들에게서 일자리를 빼앗아간 이민자들에게 있다고 말한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한국의 젊은 남자들은 잘나가는 여자들과 페미니스트들에게 그 책임을 돌리려 한다. 그러고는 다시 왜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는 여성혐오의 혐의를 둘러써야 하느냐고 묻는다.
2016년 09월 09일 05시 50분 KST
간접화의

간접화의 세계

세상에는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은 구의역의 수리공을 진실로 제 자식처럼 여기는 사람도 많고,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자신이 위선자가 아닌지 자문하는 사람도 많고, 그렇게 생각하지 못하는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사람도 많고, 비록 위선적일지라도 그 생각을 마음에 새기려고 애쓰는 사람도 많다. 그 많은 사람들은 제 생각을 버선목처럼 까 보일 수 없다. 그 사람들과 나향욱들은 끝내 만날 수 없다. 그것이 충격적이다. 거기에는 견해의 차이가 아니라 상상력의 차이가 있다.
2016년 07월 15일 05시 38분 KST
1700개의

1700개의 섬

어느 아파트의 경비원이 자기 몸에 불을 지르고 끝내 숨진 참사는 우리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울분을 참지 못한 동료들이 고인의 시신 앞에 망연히 서 있는 모습이 몇 차례 TV 뉴스에 떴지만 용역업체를 바꾸기로 결정한 이 아파트가 경비원들이나 환경미화원들의 고용을 승계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따지는 것으로 이 비극이 마무리되어 버릴 것 같다. 사과나 위로금 따위가 어찌 됐는지는 모르지만 인간의 마음이 바뀌지 않는 한 그 또한 무슨 소용이겠는가. 우리는 모진 사람들이 되었고 한편으로는 피곤한 사람들이 되었다. 그래서 제 사는 자리를 더욱더 섬으로 만들려 하고 거기에 철벽을 치려 한다.
2014년 12월 07일 04시 59분 KST
인문학의 어제와

인문학의 어제와 오늘

언론사의 대학평가가 시작되면서 학교는 교수들에게 1년에 최소한 논문 한 편씩을 쓰라고 독려했다. 특히 IMF 사태 이후에는 '교수 철밥통론'이 나오기 시작했다. 존경 받는 교수 같은 것이 없어진 것도 이 무렵부터다. 내가 아는 인문학 분야에서만 말한다면 교수들은 지금 내가 처음 교수생활을 할 때보다 10배 정도 논문을 더 쓴다. 그래서 인문학이 그만큼 발전했는가.
2014년 11월 11일 12시 24분 KST
한글날에 쓴 사소한

한글날에 쓴 사소한 부탁

한글과컴퓨터에 부탁한다. '한컴오피스 한/글'(2014년판)의 맞춤법검사기능은 매우 유용하다. 그런데 '감옥에 들어갔다'고 쓰면 '감옥'에 붉은 줄이 그어진다. '교도소'로 고치라는 것인데, 모든 감옥이 교도소는 아니다. '말은 하기 쉽다'고 쓰면 '하기'에 붉은 줄이 그어진다. '다음'이나 '아래'로 고치라는 것이다. 맞춤법검사기능을 좀 더 섬세하게 다듬어 주기를 부탁한다.
2014년 10월 12일 07시 16분 KST
어떤 복잡성

어떤 복잡성 이론

문제가 복잡할 수밖에 없다. 이 징병제 국가에서는 한 인간이 제 적성이나 희망으로 군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군대의 폐쇄된 환경에서는 아버지에게 맞고 자랐던 상처가 총기사건으로 폭발할 수도 있고, 학교에서 따돌림 받았던 기억이 한 젊은이를 목매달게 할 수도 있다. 그보다 더 작은 사건도 어떤 계산할 수 없는 과정을 거쳐 더 큰 사건의 씨앗이 될 수 있고, 끝내는 조직의 토대를 허물고 여러 사람의 목숨을 위기에 몰아넣을 수 있다. 군대의 지휘관들이 이 나라의 모든 상처와 기억을 그 계산할 수 없는 작용까지 함께 관리해야 하는 셈이니 복잡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모든 원인이 사병에게만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2014년 09월 15일 12시 44분 KST
어느 히피의 자연과 유병언의

어느 히피의 자연과 유병언의 자연

순천의 어느 매실 밭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유병언도 그 나름으로는 자연을 사랑하였던 것이 분명하다. 그는 값비싼 카메라로, 주제와 구성이 비록 상투적이긴 하지만, 자연 풍광과 숲의 생명들을 지속적으로 찍어 전시했고 책으로도 발간하였다. 그러나 그가 숨어 있는 별장에 수사관들이 들이닥쳐 조력자들이 잡혀가거나 도망가 버린 나머지 그가 혼자 남게 되었을 때, 자연이 그를 따뜻하게 품어 주지는 않았던 것 같다. 생명유지에 필요한 가장 작은 일까지도 시중드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왔던 그 귀한 사람은 그들의 손을 놓치자마자 더할 나위 없이 무능한 인간이 되었다. 그가 자연의 본성을 알게 된 것은 별장을 떠나 숲을 헤매다 매실 밭의 풀 속에 눕기까지 일주일이 채 안 되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2014년 08월 04일 10시 42분 K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