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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광수

닉네임 피터팬. 청년필름 대표. 연극영화과를 10년 동안 다녔지만 학과 공부는 팽개치고 학생운동만 했다. 1998년 청년필름을 만들어 <해피 엔드>, <조선명탐정> 시리즈, <의뢰인>,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 등을 제작했고 <친구사이?>,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등을 연출했다. 2006년 커밍아웃한 그는 성소수자 인권 운동에 앞장서 활동하고 있다.
어느 멋진

어느 멋진 날

우리의 결혼으로 세상이 당장 바뀌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 결혼은 대한민국 국민들의 생각을 조금은 바꾸었다. 이성애자들에겐 '한국에서도 동성 결혼을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했고 동성애자들에겐 '우리도 결혼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대한민국에서 동성 결혼은 이제 남의 나라 이야기 혹은 할 수 없는 것이 아닌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가 되었다. 게다가 우리의 결혼으로 대한민국이 조금 더 로맨틱해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2016년 10월 14일 12시 33분 KST
광수, 화니를

광수, 화니를 만나다

그날도 여럿이 모였고 게임을 할까 술을 마실까 분분한 의견을 조율하고 있었다. 그때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남자. 모두의 눈이 그에게로 쏠렸다. 이십 대 초반의 핸섬한 남자, 화니였다. 아, 그의 몸에서 광채가 났다! 후광! 그랬다. 사람들이 말하는 후광이란 걸 보았다. 그의 등장은 흡사 순정만화, 아니 순정만화 같은 영화, 왜 <늑대의 유혹> 같은 그런 영화 말이다. 딱 그 영화의 '강동원' 등장 신 같았다. 슬로우로 들어오는 그와 그의 뒤에서 빛나는 후광. 그런 그에게 반하지 않는다면 게이가 아니다!
2016년 09월 23일 11시 21분 KST
엄마, 난 남자가

엄마, 난 남자가 좋아요

아들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스스럼없이 대하게 될 때까지 엄마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으셨다. 밥을 짓다가 빨래를 개다가 길을 걷다가 문득 아들이 게이라는 생각에 울컥 눈물을 쏟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셨다고 하니 엄마의 고통이 어땠을지 짐작할 수 있다. 빨갱이 아들보다 게이 아들을 더 견디기 힘들어 한 엄마였다. 그러다 차츰 머리로는 이해하게 되셨다. 하지만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2016년 09월 08일 10시 19분 KST
올훼스의

올훼스의 창

며칠을 망설이다가 고백했다. 나는 니가 좋다고. 그 아이의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내 신발 끝만을 보면서 대답을 기다렸다. 콩닥콩닥. 몇 시간이 흐른 것마냥 긴 기다림 끝에 답을 들을 수 있었다. 나도 니가 좋아. 그런데 덧붙이는 한마디. 나 일주일 있으면 호주로 이민 가. 어쩌지? 이제 막 첫사랑을 시작한 소년들에게 주어진 시간이 일주일이라니!
2016년 08월 25일 11시 29분 K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