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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길영

문학평론가, 충남대 교수

문학평론가, 충남대 교수
지금은 민주공화국의 결정적

지금은 민주공화국의 결정적 국면이다

마키아벨리의 말대로 "어중간한 조치는 결코 피해야 한다." 여기서 머뭇거리면 앞으로 남은 1년 반 동안 민주공화국의 시민들은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군주'와 그의 부하들 때문에 전전긍긍할 것이다. 나는 국지전의 가능성까지도 있다고 본다. 그런 일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최고권력의 사퇴로 인한 '국정공백'이니 '헌정중단'을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개념은 정확하게 사용해야 한다. 묻는다. 지난 3년 반 동안 이 국가에 '국정'이란 게 있었나. '헌정'이 작동하고 있었나. 지금 사태의 본질은 민주공화국에서 허울뿐인 권력과 정부만이 있었다는 것, 국정과 헌정이 작동하지 않았고, 실질적으로 중단과 공백상태에 있었다는 것이다.
2016년 11월 04일 09시 04분 KST
손석희의

손석희의 집요함

나는 손석희 앵커가 진행하는 뉴스에서 보여주는 '집요함'에 감탄한다. 그런 뉴스를 본지가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세상사에서 옳기 때문에 이기는 경우는 드물다. '옳음'을 자임하는 건 아무 의미도 없다.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고, 버티는 쪽이 결국 이긴다. '악'한 자들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도 이것 때문이다. 악은 집요하다.(여기서 악의 근거가 무엇인지는 일단 논외로 한다) 악에 맞서려면, 악을 이기려면 더 집요해야 한다. 손석희 앵커는 좋은 의미에서 집요하다.
2016년 10월 25일 11시 53분 KST
그들의

그들의 사생활

남들이 상관할 일이 아니다. 하물며 대중에 대한 '배신' 어쩌고 할 문제가 아니다. 간통죄가 폐지된 이상 '불륜'은 성인들의 사적인 관계의 문제다. 두 사람의 문제는 이 일에 연계된 당사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원만하게든, 고통스럽게든 그들끼리 해결할 문제다. 가족이 겪어야 할 고통에 공감한다고 해서 제3자가 나서서 뭐라 할 일이 아니다. 왜들 그렇게 남의 가족사에 참견하길 좋아하나.
2016년 06월 23일 14시 00분 KST
작가는 '국가대표'가 아니다 | 한강의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수상소식을

작가는 '국가대표'가 아니다 | 한강의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수상소식을 듣고

작가는 국가나 민족의 '대표'가 아니라 개인으로서 글을 쓴다. 그 글쓰기에 여러 가지 것들이 담길 수 있겠지만, 그 성취는 그 개인의 것이다. 그러니 한 작가의 외국문학상 수상을 두고 국가와 민족의 이름을 들먹이는 촌스러운 짓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리고 이번 수상으로 한국문학의 수준을 인정받았다는 유치한 말도 그만하자. 작가는 그런 인정을 받기 위해 글을 쓰는 게 아니다. 국가와 민족을 대표해서 글을 쓰는 것도 아니다. 작가는 그냥 자기가 잘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쓸 뿐이다. 모든 것에서 자유로운, 한 개인으로서 글을 쓰는 작가가 좋은 작품을 쓴다.
2016년 05월 18일 05시 56분 KST
삶과 현실 통찰하는 아름다운

삶과 현실 통찰하는 아름다운 에세이스트

선생이 영면하신 뒤 누구는 선생의 글에서 배운 것이 없다고 밝혀서 논란이 되었다.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배우고 안 배우고는 그만의 자유다. 쟁점은 '배움'의 의미이다. 문학이론과 미학 등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나는 요즘 '이론'의 한계, 이론적 글쓰기의 한계를 느낀다. 이 한계는 선생이 보여준 에세이적 글쓰기의 의미와도 관련된다. 범박하게 말해 한국 사회가 '헬조선'이 된 것이 이론이 부족해서인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지식과 이론이라기보다는 그렇게 배운 것들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서 각자의 삶을 바꾸고, 조금이라도 세상을 바꾸는 그 무엇이 아닐까.
2016년 01월 27일 10시 07분 KST
'자비의 원칙'과 '비판의 원칙' | 창비 김종엽, 황정아 편집위원의 글을

'자비의 원칙'과 '비판의 원칙' | 창비 김종엽, 황정아 편집위원의 글을 읽고

자비의 원칙을 논하려면 남들에게 그 원칙을 들이대기 전에 김종엽 혹은 창비는 자신들에게 먼저 그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 김종엽은 "신경숙과 문학권력에 대한 비판자들이 자신의 동기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자비의 원칙을 지켰는지 의문"이라고 불평하지만, 그 말은 그대로 창비에게 되돌려 줄 수 있다. 창비는 그동안 비판자들의 비판에 대해 "필요한 자비의 원칙을 지켰는지 의문"이다. 비평에서 자비의 원칙은 중요하다. 그렇다면 본질적인 비판의 원칙은 어디 갔는가.
2015년 10월 10일 08시 09분 K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