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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이정

미술평론가
데미안 허스트 '베니스' 개인전: 난파선에서 건져 올린 욕망의

데미안 허스트 '베니스' 개인전: 난파선에서 건져 올린 욕망의 보물들

사업가처럼 미술을 다루는 데미안 허스트의 태도는 일개인이 온전히 감당하는 종래의 미술 개념과는 다른 차원에서 읽혀야 할 것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미술가 데미안 허스트에게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이 많지만, 세상의 변화와 함께 동시대 미술의 개념도 변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허스트의 개인전은 미래에 나타날 동시대 미술의 여러 조류 가운데 하나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2017년 10월 16일 07시 50분 KST
'슈즈트리'와 공공미술

'슈즈트리'와 공공미술 수난사

흉물 논란은 슈즈트리를 변호할 때 가장 큰 난관이다. 취향은 사람마다 다르다. 미적 취향과 정치 소신은 설득으론 돌려놓기 어렵다. 개인의 존재감과 연관된 가치관이어서다. 설령 공공미술이라 한들 만인의 취향을 충족시킬 순 없다. 군말 나오지 않게 하려면 광화문 이순신과 세종대왕처럼 위인상 혹은 포항 과매기, 영덕 대게, 금산 인삼, 청양 고추처럼 곧잘 웃음의 소재로 전락하는 지방 특산품 조형물같은 무색무취한 공공미술만 살아남는다. 있는 듯 없는 듯 무난한 조형물은 충격과 불편한 문제를 제기하는 예술의 본질과도 먼 거리에 있다.
2017년 06월 01일 11시 36분 KST
표절이라는 경솔한 낙인 | 최근 미술계 표절 논란에

표절이라는 경솔한 낙인 | 최근 미술계 표절 논란에 대하여

표절을 주장하는 측은 크게 이유 셋을 든다. 첫째 자기 작업이 많이 알려져서 상대가 몰랐을 턱이 없다. 둘째 문제가 된 작품의 외형/재료는 자기가 상대보다 먼저 발표했다. 셋째 상대가 예전엔 다른 작업을 했다. 이 논거 셋은 쉽게 논박될 수 있다. 자신의 작품을 모를 턱이 없다는 건 누구나 쉽게 빠지는 오만이다. 세상에는 무수한 유명 작가들이 활동하며 그들의 작품 전말은 평론가인 나도 모른다. 표절로 의심된 작품을 검색하면 해외에서 제작된 그와 유사한 작품들이 더 많이 잡힌다. 표절을 주장하는 이가 해외 작품을 표절한 걸까? 아닐 거다.
2017년 04월 12일 13시 18분 KST
미술 비엔날레 리뷰의 매뉴얼 | 2016 광주비엔날레, 부산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을

미술 비엔날레 리뷰의 매뉴얼 | 2016 광주비엔날레, 부산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을 보고

'비엔날레, 왜 이토록 많을까?' '미술의 사회적 역할' '관객 참여라는 신기루'라는 세 개의 화두는 매회 방문하는 국내외 모든 미술 비엔날레 전시장 안에서 털어낼 수 없었던 의문점들로, 이 낯익은 화두는 예외 없이 반복된다. 올해 비엔날레 전시장들을 지배한 것도 단연 세 화두였다. 이 같은 이유로 광주 부산 서울에서 열린 비엔날레 셋을 둘러보던 중, 비엔날레 리뷰를 올해 처음으로 다루지 말지 고민했다. 반복적으로 만나는 화두이되, 외부의 비판을 피하는 일종의 안전장치처럼 굳은 낯익은 화두에 대해 대동소이한 논평을 쓰는 건 무의미하게 느껴져서다.
2016년 11월 07일 09시 16분 KST
서용선 드로잉 | 계획에 없던 한 기록광의 일기

서용선 드로잉 | 계획에 없던 한 기록광의 일기 공개

드로잉은 작가적 신뢰와 진정성을 가늠할 때 외부인이 의존하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한 작가가 쌓아올린 드로잉 선집은 완성도 여부를 떠나 작가적 신뢰에 대한 증거처럼 믿어진다. 내가 주목한 건 그가 쌓아온 드로잉의 분량이 아니라 제작일을 기록하고 과거사를 보관하는 태도였다. 이쯤 되자, '흠. 역시 그랬구나.'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기록편집증. 전적으로 제3자를 염두에 두지 않고 자신을 위해 써나간 기록일 텐데, 그럼에도 언젠가 공개를 염두에 둘 수밖에 없는 성격의 자료다.
2016년 08월 25일 12시 43분 KST
'출구 앞 선물가게' 예술 대중화의 또 다른 이름 | 미스터 브레인워시MBW 국내 전시를

'출구 앞 선물가게' 예술 대중화의 또 다른 이름 | 미스터 브레인워시MBW 국내 전시를 보고

수려한 채색과 친숙한 도상을 뒤집어쓰고 관객의 호응을 받는 MBW류의 대중미술 전시에 나는 왜 인색한 평점을 주려 할까. '아무 생각 없이 즐기기'는 블록버스터 영화와 블록버스터 미술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관객 눈높이에 맞추고 심기를 거스르지 않아 관객을 알량한 왕 대접 해준 대가로, 이런 영화와 미술 전시는 거금을 벌어들인다. 상업적 대박을 꼭 비난의 이유인 양 지목할 순 없을 게다. 여기에 블록버스터 영화와 블록버스터 미술 간의 미묘한 차이점이 발생한다. 블록버스터 미술 전시는 주류 미술을 향한 대중의 위화감을 자극해서 반사이익을 얻는다.
2016년 07월 26일 08시 16분 KST
'일베 조각상'의 고차원

'일베 조각상'의 고차원 방정식

샤를리 에브도, 홍성담, '일베 조각상' 셋을 관통하는 논점은 '누군가의 마음에 상처가 될 가능성만으로, 어떤 표현이 제약될 수 있느냐'이다. 물리적인 상해나 인명 피해가 아닌 마음의 상처를 누군가 받을 가능성만으로 '다양한 해석의 층위'를 품은 예술 표현이 제약되어야 하냐는 게 관건이다. 요컨대 산 동물을 학대하거나 제 3자에게 물리적인 해악을 끼치는 걸 작품의 콘셉트로 포함시킨 작품이 있다면, 이는 표현의 자유를 논할 필요 없이 사법적 관리 대상일 것이다. 그렇지만 문제는 '누군가 불쾌하게 생각할 여지'만으로 예술 표현이 제약될 수 있느냐는 거다.
2016년 06월 27일 07시 15분 KST
조영남 대작사건을 읽는 법 | '관행'을

조영남 대작사건을 읽는 법 | '관행'을 해명한다

내가 평소 그토록 혐오했던 조영남의 전매특허가 대중추수주의였는데, 이제는 그를 비난하는 자들이 고스란히 그의 장기를 반격의 칼로 빼들고 있으니 아이러니다. 대중추수주의는 대중추수주의로 흥하다가 대중추수주의로 망한다. 미술계의 절대 다수가 홀로 작업을 감당한다는 건, '관행'을 두둔한 나 같은 평론가도 잘 안다. 그럼에도 왜 나는 '관행'을 계속 두둔할까? 동시대미술은 '미술'이라는 동일한 자장 안에서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제작 방식으로 구현된다. 홀로 작업하는 이가 절대 다수라는 현실로 인해 100명을 고용한 공장형 작가의 존재감이 평가절하되지 않는 것도 이런 다양성을 미술계가 시인하고 수용했기 때문이다.
2016년 05월 26일 05시 57분 K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