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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에이코믹스 편집장

대중문화평론가. <씨네21> <한겨레> 기자, 컬처매거진 <브뤼트> 편집장, 만화웹진 <에이코믹스>의 편집장을 거쳤다.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컬처트렌드를 읽는 즐거움> <전방위 글쓰기> <영화리뷰쓰기> 등의 책을 썼고 공저로는 <좀비사전> 등이 있다. 영화, 만화, 대중소설, 대중문화에 대한 글을 쓰고 글쓰기 강의도 하고 있다.
마블과 DC가 아닌 미국의

마블과 DC가 아닌 미국의 코믹스

〈사가〉의 매력은 완벽하게 평등한 존재들에 있다. 알라나와 마르코의 외양은 다르다. 인간과 비슷하지만 하나는 천사처럼 날개가 있고, 하나는 악마처럼 뿔이 달려 있다. 그들을 쫓는 킬러들, 프리랜서라 불리는 이들은 저마다 모습이 다르다. 윌은 우리 인간과 똑같아 보이고, 그가 사랑하는 스토크는 눈과 팔다리가 몇 개인지 한참 세 봐야 한다. 별 하나가 하나의 존재이기도 하고, 죽어 있는 존재들도 살아있는 이들과 대화를 하고 영적인 관계를 맺기도 한다. 나와 다르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혐오하는 것은, 당장 싸우고 있는 랜드폴과 리스뿐이다. 〈사가〉는 남자와 여자, 산 것과 죽은 것, 인간과 동물, 외계인 등 모든 존재를 같은 위치에 놓는다.
2017년 02월 08일 08시 39분 KST
싸우는 여성은

싸우는 여성은 아름답다

여성이 세상을 구하거나 대단한 일을 해내려면 보통 이상의 능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남성들은 그렇지 않았다. 원작 '고스트버스터즈'만 해도 네 명의 남자들은 그리 잘난 게 없었다. 리메이크의 여성들과 똑같은 보통의 인간들이다. 별 거 아닌 보통의 남자들은 그동안 세상을 구하고, 엄청난 일을 하면서 영화와 소설에 등장했다. 여성은 그렇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고스트버스터즈'는 별 것 아닌 역할교대로도 대단한 일을 한 것이다. 이제 보통의 여성들도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을 여기저기에서 보여주고 있으니, 남자들은 더욱 멋있어질 필요가 있다.
2016년 10월 06일 07시 56분 KST
'18금의 세계'와 '내 안의

'18금의 세계'와 '내 안의 음란마귀'

요즘 케이블에서 심야에 영화를 보면 짜증만 난다. 19금이라 붙이고 심야에 방영을 하면서도, 흉기와 담배에 블러를 하고, 욕을 묵음처리 한다. 등급제는 대체 왜 하는 것인가. 어차피 다 자를 것인데. 시간이 흘러도 한국은 여전히 위선적인 선비들의 사회다. 누군가는 어렸을 때 '은하철도 999'에서 메텔의 샤워 장면을 보고 흥분한 후, 청소년들이 불건전한 것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검열관이 되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측은하다. 한국사회는 여전히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면서 위선적인 도덕을 강조하는 사회가 되고 있다.
2016년 09월 05일 12시 28분 KST
화면 속 섹시한 그녀를

화면 속 섹시한 그녀를 보았다

흔히 사랑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공포를 이겨내기 위하여 사랑에 빠져든다고도 하고, 죽음의 순간을 대리 경험하기 위해 섹스에 탐닉한다고도 한다. 뭐든 좋다. 자신에게 절실하기만 하다면, 어떻게든 무엇에든 넘어가도 괜찮다. 그래서 지금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해보지 않는 것보다는 하는 게 낫다고. 하고 나서 엄청나게, 죽고 싶을 만큼 후회할지라도 가보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사랑도, 섹스도 피하는 것보다는 해보는 것이 낫다고 믿는다. 나이가 들면 망설이게 되니까. 그다음 어귀가 보이니까 굳이 가보지 않게 되는 경우가 많아지니까.
2016년 08월 26일 13시 18분 KST
글로 상상하는 포르노가 제일

글로 상상하는 포르노가 제일 야하다

신체적인 자극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진짜 쾌락은 뇌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뇌에서 상상하고 스스로 욕망을 이루어내는 것. 그런 점에서 본다면 소설은 느리지만 서서히 밀려드는 거대한 해일 같을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야설 이상으로 『크래시』, 『데미지』 같은 소설에서 묘한 흥분 같은 것을 느꼈다. 한 남자가 어떻게 한 여자에게 완벽하게 빠져들어 자신을 파괴할 수 있는가. 무생물에게 욕망을 느끼고, 죽음의 과정과도 같은 섹스를 통해서 어떻게 자기를 초월할 수 있는가.
2016년 08월 19일 11시 16분 KST
글로 상상하는 포르노가 제일

글로 상상하는 포르노가 제일 야하다

신체적인 자극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진짜 쾌락은 뇌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뇌에서 상상하고 스스로 욕망을 이루어내는 것. 그런 점에서 본다면 소설은 느리지만 서서히 밀려드는 거대한 해일 같을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야설 이상으로 『크래시』, 『데미지』 같은 소설에서 묘한 흥분 같은 것을 느꼈다. 한 남자가 어떻게 한 여자에게 완벽하게 빠져들어 자신을 파괴할 수 있는가. 무생물에게 욕망을 느끼고, 죽음의 과정과도 같은 섹스를 통해서 어떻게 자기를 초월할 수 있는가.
2016년 08월 19일 11시 16분 KST
성애만화를 찾는

성애만화를 찾는 모험

미네 후지코는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다. 아마도 만화 캐릭터 중에서는 처음으로 반한 여인이었을 것이다. 조연이기는 하지만 존재감은 루팡 3세 이상이었다. 자신의 매력을 너무나 잘 알고 있고, 그 점을 이용하여 루팡 3세와 모든 사람들을 홀리고 속이는 팜므 파탈. 안타깝게도 당시에 봤던 국내판 『루팡 3세』에서는 검열 때문에 미네 후지코의 몸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그녀의 나신에는 언제나 거친 펜 선으로 비키니나 가운이 입혀져 있었다.
2016년 08월 12일 11시 18분 KST
책으로 배운 어른들의 이야기 2)

책으로 배운 어른들의 이야기 2) 허슬러

영화를 보면서 한국을 떠올렸다. 마광수와 장정일 등등. 외설 혐의로 법정에서 재판을 받을 때, 그들은 기존의 문단에서 거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진보가 아니라 자유주의자라고 해도 절대적으로 지지해야 할 표현의 자유를 적극 옹호하기는커녕 작품의 수준이 안 되니까, 지지하면 한통속으로 묶이니까 등의 생각으로 외면했다. 작품의 질을 따져서, 상층이면 보호받아야 하고 쓰레기는 보호받을 가치가 없다는 생각이야말로 엘리트주의고 파시즘이다.
2016년 08월 05일 14시 17분 KST
책으로 배운 어른들의 이야기 1)

책으로 배운 어른들의 이야기 1) 플레이보이

'플레이보이'의 전성기는 1970년대였다. 70년대는 그야말로 흥청망청의 시대였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60년대 젊은이들의 시도는 실패로 끝났고, 시대를 뒤흔들었던 에너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들었다. 그중 하나는 섹스였다. 당시의 풍경을 그린 미국 드라마로는 앰버 허드가 나온 《더 플레이보이 클럽》이 2011년에 방영되었지만, 저속하다는 비판을 받으며 시즌 1도 채우지 못하고 7개의 에피소드로 끝나버렸다. 50년이 흘러도 세상은 여간해서 바뀌지 않는다.
2016년 07월 29일 10시 39분 KST
만화가게가 만화방이

만화가게가 만화방이 되기까지

서울역과 영등포역 근처에는 아예 숙식이 가능한 만화방도 생겨났다. 샤워실과 개인 락커가 있고, 수면실도 따로 있었다. 그런 만화방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가 본 것은 친구 때문이었다. 친구가 술집에서 일하다가 싸움이 났고, 상대가 부상당해 입원한 것을 알고는 도망쳐 다니고 있었다. 어떻게 연락이 되어 만나기로 했는데, 그때 그 녀석이 숨어 있던 곳이 서울역 앞 만화방이었다. 말로는 아주 좋다고 했다. 잠도 자고, 샤워도 하고, 마음대로 만화도 보고 TV도 볼 수 있다고 했다.
2016년 07월 22일 10시 40분 KST
커피 한 잔을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젊을 때의 우리들은 마담과 레지가 있는 다방이 필요 없었다. 당시의 카페는 칸막이로 되어 있는 곳이 많았다.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칸막이 안에서 많은 것을 할 수 있었다. 사회과학 세미나를 할 수도 있었고, 연인과 키스를 하거나 조금 더 나갈 수도 있었다. 그러니 다방을 갈 이유는 더욱 더 없었다. 모든 것이 개방되어 있는 공간은 90년대가 되어 보디가드 등의 카페 체인점이 생겨나면서 익숙해졌다. 통유리로 안과 밖이 훤히 보이고, 테이블마다 전화가 놓여 있어 걸려오는 전화를 받을 수 있고, 다른 테이블로 전화를 걸 수도 있는 공간.
2016년 07월 15일 07시 14분 KST
그곳에 가면 어른이

그곳에 가면 어른이 된다

그 후로 포르노잡지를 가끔 샀다. <플레이보이>, <펜트하우스>, <허슬러>도 사고, 북구의 포르노 사진집도 사 봤다. 고등학교 때에는 비디오도 샀다. 도시 전설처럼 떠도는, '세운상가에서 포르노 비디오를 샀는데 집에 가 보니 동물의 왕국이었다, 전원일기였다'는 말도 경험했다. 그런 영상은커녕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다음 날 다시 가서 따지고 바꿔서 받아왔다. 겁은 많았지만 오기 같은 건 있었다. 막상 그들이 완력으로 끌고 가거나 했다면 겁이 나서 도망쳤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얼굴을 찡그리면서 욕을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바꿔주기는 했다. 세운상가라는 공간이 점점 익숙해져 갔다.
2016년 07월 07일 10시 25분 KST
각자의 시대, 세대의

각자의 시대, 세대의 걸작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걸작이 된 영화나 노래를 보고 들으며 당시의 분위기가 어땠는지를 상상한다 해도 근원적인 한계가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오래 산 이들이 무조건 우월하고 깊이가 있다는 것은 전혀 아니다. 다만 각자에게는 각자의 시대가 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나왔을 때, 그들에게 열광하며 한 시대를 보낸 이들에게는 다른 세대가 이해할 수 없는 감각이 있다. 누구나 그렇다. 살아가면서 퀴퀴한 극장에서 과거의 영화를 보며 빠져든 경험이 모든 것인 사람도 있지만 대개는 당대의 문화예술에 매혹되며 자신의 일부를 내어주고 살아왔다.
2016년 04월 13일 14시 06분 KST
'프로듀스 101' 그들을 응원하는

'프로듀스 101' 그들을 응원하는 이유

다들 열심히 한다. 모든 사회가 그렇지만 경쟁이다. 결국은 누군가 성공하고, 누군가는 다시 돌아가야만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경쟁은 나쁜 것이 아니다. 경쟁 없는 조직이 얼마나 쉽게 부패하고 한가해지는지 봤고, 경쟁 없는 개인이 퇴보하는 것도 많이 봤다. 모두가 공평하고, 모두가 승리하는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경쟁을 없애는 것보다는 공정하고 합리적인 경쟁의 룰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악마의 편집이니 차별이니 해도, 이런 정도면 오히려 우리가 사는 사회보다 공정하고 합리적인 것 아닐까?
2016년 02월 23일 09시 03분 KST
어떤 악취미 | 일라이 로스의

어떤 악취미 | 일라이 로스의 영화들

세상이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나는 모든 것을 이루었고 좋은 사람이야, 라는 믿음도 허망하다.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사상누각 같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 아닐까. 일라이 로스의 영화가 그런 의미를 담았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지만, 그의 악취미는 눈에 확 들어온다. 사람들의 눈에 좋은 것, 절대 욕먹거나 비난 받지 않기 위해 이리저리 재면서 만들어지는 것들은 심심하고 잠시만 좋을 뿐이다. 의도적인 악취미도 나름 좋지 않은가. 직접 누군가를 공격하거나 피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피하고 외면하고픈 것들을 일일이 끌어내서 전시하는 위악은, 불편하지만 인상적이다. 가끔, 아주 가끔 위악이 필요한 것은 그런 이유다.
2016년 02월 02일 06시 37분 KST
아이돌을 보는

아이돌을 보는 이유

일본 엔터테인먼트업계를 장악한 국민 아이돌 AKB48의 전략 하나는 팬 투표에서 1등을 한 멤버를 센터에 세워 싱글을 내는 것이다. 응원하는 멤버에 이입하여 함께 성장해가는 시스템이지만 대신 팬은 음반을 많이 사서 투표권을 확보해야 한다. 놀라운 상술이지만 꿈을 사는 대가로 돈을 내는 것이니 그럴 수도 있다. 수십 명의 멤버들 사이에서 누구는 얼굴, 누구는 노래, 누구는 개그, 누구는 성실함 등으로 자신의 장기를 내세워 인기를 끄는 그것이야말로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2015년 10월 01일 10시 25분 KST
새 육체를 사시겠습니까? | 영화

새 육체를 사시겠습니까? | 영화 '셀프/리스'

현세의 부와 권력을 넘치도록 성취했다면 필연적으로 남는 것은 불사(不死)의 욕망인 것일까. 타셈 싱 감독의 <셀프/리스>는 영원한 생명을 얻은 남자의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다. 끊임없이 육체를 바꿔가면서 영생을 이룰 수 있다면 그는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 과거의 영광을 이어갈 것인가, 새로운 삶에 몰두해 또 하나의 인생을 살 것인가.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에서 죽지 않는 뱀파이어는 외로움과 허무함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를 무덤에 유폐시킨다. 영원한 삶이란 어쩌면 육체라는 감옥에 갇힌 영원한 고통일 수도 있다. <셀프/리스>는 기억과 영혼에 대한 질문으로 갈 수도 있었다.
2015년 09월 21일 10시 33분 KST
이방인의 사랑 |

이방인의 사랑 | 영화

제임스 그레이 감독의 <이민자>는 제목 그대로다. 타인의 땅에 와서 어떻게든 살아가야만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희망은 잠시뿐이다. 그곳에서도, 이곳에서도 에바는 이방인이다. 유일한 친척은 그녀를 외면하고, 억척같이 살아가는 이민자들 틈에서 살길을 찾아야 한다. 부잣집 상인이 아들을 데리고 와서 남자답지 못한 아들을 사내로 만들 여자를 원한다고 말한다.
2015년 09월 08일 07시 32분 KST
황비홍, 그 이름

황비홍, 그 이름 하나로

황비홍을 연기한 펑위옌은 환상적인 무협 영화에 가까운 <타이치 0>와 <타이치2>에 출연했지만 무술 고수는 아니다. 그래도 충실하게 무술 훈련을 했고, 무술 달인처럼 보이게 하는 홍콩영화계의 무술지도, 촬영·편집 테크닉과 특수효과가 있기에 그럴듯해 보인다. 흑호방의 보스로 출연한 홍금보와 신구 대결을 펼치는 것도 볼만하다. 다만 <황비홍>을 떠올리면 많이 아쉽다.
2015년 09월 04일 12시 59분 KST
'대학살'을

'대학살'을 보다

지금 나는 또 하나의 '대학살'을 보고 있다. 세월호. 이건 분명 학살이다. 분명한 가해자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의 살의가 분명하게 드러난 것은 아니지만, 이건 학살이다. 선장이, 언론이, 정부가 엉망진창으로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배에 갇힌 이들의 구조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미 죽은 자를 다시 죽이는 언론과 게시판의 글 그리고 책임 있는 자들의 망언이 있었다. 이건 우리가, 한국이라는 국가가 저지른 대학살이었다.
2014년 04월 23일 12시 46분 K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