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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25일 06시 43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0월 25일 14시 12분 KST

에펠탑이 안 찍히는 사진기?

리스트릭타는 위성항법장치(GPS) 칩을 내장했다. 카메라를 들고 거리를 나서보자. 리스트릭타는 내가 가는 곳마다 거기서 얼마나 많은 사진이 찍혔는지 알려준다. 근방에서 찍은 사진이 너무 많다면, 카메라는 자동으로 뷰파인더를 닫고 셔터를 잠근다. 알고리즘이 스스로 촬영을 중단하도록 조작하는 것이다.

카메라 리스트릭타

솔섬은 하나였지만, 찍은 이는 둘이었다. 그게 문제였다. 먼저 찍은 이는 그것이 자신의 자산이라 주장했고, 다른 이는 그것이 모두의 자산이라 반박했다. 법원은 뒷사람의 손을 들어줬지만, 찜찜함은 남는다. 비슷한 분쟁은 언제고 반복될 테니까. 오늘도 경기도 양평 두물머리에선 카메라를 멘 이들이 앞다퉈 새벽 물안개를 향해 셔터를 누른다.

'카메라 리스트릭타' 프로젝트는 이런 논란을 향해 가볍게 돌을 던진다. 리스트릭타는 카메라다. 그런데 좀 색다른 카메라다. 일단 리스트릭타를 손에 쥔 이들은 규칙을 따라야 한다. 간단하다. 먼저 '찍은' 사람이 임자란다.

리스트릭타는 위성항법장치(GPS) 칩을 내장했다. 카메라를 들고 거리를 나서보자. 리스트릭타는 내가 가는 곳마다 거기서 얼마나 많은 사진이 찍혔는지 알려준다. 근방에서 찍은 사진이 너무 많다면, 카메라는 자동으로 뷰파인더를 닫고 셔터를 잠근다. 알고리즘이 스스로 촬영을 중단하도록 조작하는 것이다.

사진작가는 똑같은 장면을 놓고도 셔터를 수십 번은 족히 누른다. '궁극의 한 장면'은 그렇게 탄생하기도 한다. 리스트릭타는 거기에 대고 묻는다. 디지털 사진 쓰레기 더미, 이거 낭비 아닌가. 별 뜻 없이 셔터부터 촤르르 눌러놓고는 정작 필요할 땐 사진이 어디 있는지 찾기조차 어려운 게 요즘 사진을 대하는 우리 태도 아니던가. 지금도 당신은 의미 없는 사진을 무심코 찍어놓고 이내 잊어버리지 않는지.

리스트릭타는 최근의 정치적 논란에서 영감을 얻었다. 유럽의회는 지난 7월, 공공 건축물이나 상징물에 대해 공개 장소에서 촬영을 금지하는 법안을 표결에 부쳐 논란을 일으켰다. 지적재산권이 있는 건축물을 사진으로 찍은 뒤 이를 유료로 판매하는 행위를 막겠다는 심보였다. 예상대로 반발은 거셌다. 온라인 청원 웹사이트 '체인지닷오아르지'(change.org)에선 유럽의회의 얄팍한 의도에 반대해 '사진 촬영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청원에 55만5천여 명이 서명했다. 의회 표결 결과도 다르지 않았다. 전체 의원 751명 가운데 40명만 찬성표를 던지며 부결됐다.

리스트릭타는 일부 상업자본의 이런 속물근성에 해학으로 화답했다. 카메라는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은 장소에 가면 이를 소리로 알려준다. 카메라 구조는 별것 없다. 시제품 본체는 3D 프린터로 찍었다. 카메라 내부엔 스마트폰을 넣었다. 카메라 셔터나 GPS, 데이터 연결과 액정화면 모두 사실상 스마트폰이 맡는다. 프로젝트팀은 리스트릭타 카메라를 위해 별도의 웹 응용프로그램(앱)을 만들어 스마트폰 화면에 띄웠다. '판박이 사진'을 찾아내는 데이터베이스는 플리커파노라미오를 활용했다. 위치정보를 기반으로 근처 사진을 찾아주는 기술은 오픈소스로 공개했다.

웃자고 얘기하는데 죽자고 덤벼들진 말자.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굳이 이 카메라를 살 필요는 없다. 소프트웨어만 판올림하면 누구나 자기 스마트폰을 리스트릭타 카메라로 만들 수 있으니까. 이 카메라가 던지는 질문은 두 가지다. 상업화에 물든 정치적 검열이 올바른가. 또한 우리가 지금 사진 찍는 행위를 한번 돌아보면 어떨까. 디지털이 일상화된 세상에서 우리는 너무 쉽게 풍경을 담고, 그만큼 무심히 풍경을 버리진 않는지.

'기술 복제 시대'의 첨병, 디지털로 넘어오며 촬영 비용은 '제로'에 가까워졌다.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는 일은 쉬운 만큼 미련도 없는 행위가 됐다. 손실에 대한 상실감도 줄어들었다. 이런 사회에서 리스트릭타는 역발상으로 질문을 던진다. 이봐, 그렇다면 먼저 찍은 사람이 주인이 되면 어때?

리스트릭타를 쓰려면 어쩔 수 없이 발품을 팔아야 한다. 프랑스 파리 에펠탑이나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를 사진으로 담을 엄두는 애초부터 내지 않는 것이 좋다. 그 대신 '어쩌다보니' 누구도 찍지 못했던 풍경을 담게 되는 행운은 덤이다. 센스쟁이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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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한겨레21>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