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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8월 02일 08시 05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8월 02일 14시 12분 KST

님아, '액티브X'를 두드리지 마오

액티브X를 향한 정부의 구애는 포만감도 모르나보다.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은 마침내 웹브라우저와 한 몸처럼 '플러그인' 돼버렸다. 애달픈 정부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연인의 옷자락을 붙들고 외친다. "액티브X 좀 더 쓰게 해주세요, 제발." 이런 한국 정부를 매정하게 걷어찬 이는 마이크로소프트(MS)다. MS '윈도10' 심장엔 이름마저 폼나는 '엣지'란 웹브라우저가 들어섰다. 이 엣지에 액티브X 따윈 안중에도 없다. MS는 '정부' 대신 웹표준이란 '본처'에게 돌아갔다. 구글도 매한가지다. 구글은 9월부터 크롬 웹브라우저에서 'NPAPI'를 아예 막아버릴 심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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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깊이 잠겨본 이들은 안다. 시도 때도 없이 귓가를 울리는 그 종소리의 정체를. 가슴 터지도록 그리움을 불어넣어도 끊임없이 밀려드는 그 갈증의 원인을. 그리하여 마침내는 상대방 없이는 빈 껍데기가 돼버릴 것만 같은 불안감에 휩싸인다. 그 가슴 벅찬 사랑, 이 땅에서도 열심히 시전 중이다. 그만 못내 즈려밟고 가도 될 것을, 구차하게 미련을 못 버리고 있더란다. 담벼락에 몰래 써놓은 이 누구더냐. '한국정부♡액티브X'라고.

액티브X를 향한 정부의 구애는 포만감도 모르나보다.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은 마침내 웹브라우저와 한 몸처럼 '플러그인' 돼버렸다. 애달픈 정부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연인의 옷자락을 붙들고 외친다. "액티브X 좀 더 쓰게 해주세요,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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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티브엑스 폐지 서명운동(NoActiveX) 제공

이런 한국 정부를 매정하게 걷어찬 이는 마이크로소프트(MS)다. MS '윈도10' 심장엔 이름마저 폼나는 '엣지'란 웹브라우저가 들어섰다. 이 엣지에 액티브X 따윈 안중에도 없다. MS는 '정부' 대신 웹표준이란 '본처'에게 돌아갔다. 그나마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에 대한 마지막 배려일까. '인터넷 익스플로러(IE)11'로 인연의 흔적만 남겼을 따름이다. 구글도 매한가지다. 구글은 9월부터 크롬 웹브라우저에서 'NPAPI'를 아예 막아버릴 심산이다. NPAPI는 '넷스케이프 플러그인 API'다. 쉽게 말하면, 다른 웹브라우저에서 윈도용 프로그램을 불러올 수 있게 중개해주는 녀석이다. 좋은 일을 하는 것 같지만, 자칫 음험한 악성 프로그램을 침투시킬 위험도 지녔다.

크롬이 막상 NPAPI를 버리니 당장 정부가 대략 난감하게 됐다. 주로 금융 서비스에 필요한 기능들은 이 녀석의 도움으로 보급해왔기 때문이다. 당장 국내 금융 서비스가 식물인간 될 판이다. 다른 기술로 바꾸자니 시간도 준비도 턱없이 부족하다. 애가 탄 정부는 지난 6월30일 '대응방안 세미나'까지 열어가며 구글에 읍소를 섞은 협박에 나섰다. "NPAPI 지원을 연장해달라"고. 한국 정부를 위해 구글이 글로벌 정책을 순순히 바꿀까. 순진하거나, 안일하거나.

액티브X든 NPAPI든, 본질은 '플러그인'이다. 웹브라우저에 붙여 쓰는 확장 프로그램 말이다. 정부가 인터넷뱅킹을 도입하던 1990년대 말엔 이 플러그인이 꽤 유용했다. 개발도 적용도 쉬웠던 까닭이다. 하지만 치명적 결함이 뒤따랐다. 보안 문제다. 언제 어디서든 무조건 '예'를 눌러야 했기에, 악성 프로그램이 PC에 침입하기 쉬웠다. 이를 깨달은 웹브라우저 업체들은 플러그인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따로 프로그램을 설치하지 않아도 웹 그 자체로 기능을 온전히 수행할 수 있는 '웹표준'을 만들었다. 액티브X 기술을 만든 MS도 2009년 'IE8'을 내놓으며 액티브X를 밀쳐내고 웹표준을 따르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한국 금융 당국과 금융권은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우리는 바뀔 기회를 스스로 차버렸다.

액티브X가 MS IE를 위한 기술이라면, NPAPI는 IE가 아닌 웹브라우저를 위한 플러그인이다. NPAPI도 액티브X처럼 나온 지 20년은 족히 된 낡은 기술이다. 군더더기 프로그램을 덕지덕지 붙여야 한다는 점도 똑같다. 그 과정에서 보안 구멍도 숭숭 뚫린다. 구글은 이미 크롬에서 NPAPI를 막는 기능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오는 9월부터는 아예 NPAPI 지원을 중단한다. 구글은 이미 2년 전부터 이 사실을 공지했다.

아직도 웹 바깥에서 구애할 요량이신가. 미련을 버리자. 온전히 사랑에 빠질 수 있는 대상은 웹 안에 있다. 가까이 있는 연인을 놔두고 왜 유독 우리만 시시껄렁한 늙다리 'exe'에 애처롭게 매달리는 걸까. 뜻 맞는 연인끼리 사랑하면 될 걸, 왜 정부는 한사코 중매하려 나서는 걸까. 더구나 부모도, 주변 누구도 축복하지 않는 그 사랑을. 집착은 사랑이 아니다. 액티브X는 빈껍데기 구애 상대일 뿐이다. 억척스레 두드리면 마지못해 시늉은 하겠지만, 사랑의 결실은 결코 맺히지 않는.

* 이 글은 <한겨레21>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