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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7월 05일 05시 54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7월 05일 14시 12분 KST

저작권에 관한 얕은 인식

저작권의 견고한 벽을 허물려면 스스로 공공성과 도덕성을 담보해야 한다. 피키캐스트는 그도 아니다. 저작권을 가볍게 무시하고 퍼나른 콘텐츠에 이들은 버젓이 가두리를 쳤다. 심지어 자기네 플랫폼에 올라온 콘텐츠는 쉽게 퍼가지 못하도록 마우스 오른쪽 단추도 막아뒀다. 저작권을 무시하며 동시에 저작권을 움켜쥐려는 이중적 태도라니. 최소한 일관성이라도 견지하길 기대한다면 무리한 요구일까.

이희욱의 휴머놀로지

고루한 지식은 비루하다. 모름지기 지식은 끊임없이 선순환되고 재창조돼야 마땅하다. 그 길을 가로막는 장벽은 저작권이다. 저작권은 저작자와 저작물을 보호하자는 순수 의도를 넘어, 탐욕을 위해 남용되기도 한다. 그런 이유로 저작권의 완고한 울타리를 허물려는 운동도 잇따른다. '크리에이티브커먼스'(CC)가 저작물을 되도록이면 공유재로 널리 나누자고 말하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스웨덴 해적당은 아예 저작권 있는 파일도 합법적으로 온라인으로 내려받게 하자며, 저작권법은 저작물의 상업적 이용에만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작권 개념은 앞으로 자연스럽게 소멸될 것이다. ...현재 SNS 공유를 통해 수많은 콘텐츠들이 제대로 통제되지 않고 있다. 뉴스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이런 상황에서 저작권을 주장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그래서 지난 2월 위키트리 창간 5주년 공개 강연회에서 공훈의 위키트리 대표가 한 말은 얼핏 그럴싸해 보인다. 그러나 저작권에 대한 저항이 낯 두꺼운 지식 도둑질을 변호하는 도구로 포장돼선 곤란하다. 저작권을 거부하며 스스로는 탐욕을 채우는 괴이한 사고방식 말이다. 이런 행태가 요즘 가장 뜨겁게 발현되는 곳이 있다. '피키캐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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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키캐스트 광고 화면 갈무리

피키캐스트를 수식하는 말은 여럿이다. '모바일 큐레이션 플랫폼'은 점잖은 정의에 속한다. 누군가는 '넓고 얕은 지식의 보고'라며 환호하지만, 다른 쪽에선 '도둑질 미디어'라고 손가락질한다. 이들은 모바일 시대에 맞게 가볍고 얕고 재미있는 정보를 휘발성으로 소비하도록 유도한다. '우주의 얕은 지식'을 스낵처럼 가볍게 바삭바삭 즐기자고 주장한다. 뭘 그렇게 따져? 부담 없이 가볍게 즐기자는데. 재미있잖아.

지표도 이에 호응한다. 피키캐스트 모바일 응용프로그램(앱) 이용자 수는 530만 명에 이르고, 콘텐츠 하나당 평균 시청 수도 20만 건에 육박한다. 올해 3월에는 50억원을 투자받기도 했다. 그 폭발력이 현금으로 치환된 것이다. 국내 콘텐츠 전문 기업으로선 드물게 큰 투자 액수다.

한데 정작 피키캐스트 자체를 들여다보면 전혀 가볍고 부담 없지 않다. 오히려 심각한 수준이다. 핵심은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다. 피키캐스트는 웹에 널린 지식을 마구 주워다가 '얕은 재미'를 채운다. 이 과정에서 원작자에게 허락을 구하는 수고로움은 가볍게 건너뛴다. 이들은 주인 있는 밭에 들어가 아무런 양해도 구하지 않고 농작물을 따고 이를 되팔아 지갑을 채운다. 그러면서 얘기한다. 이것이 모바일 시대 큐레이션이니.

저작권의 견고한 벽을 허물려면 스스로 공공성과 도덕성을 담보해야 한다. 피키캐스트는 그도 아니다. 저작권을 가볍게 무시하고 퍼나른 콘텐츠에 이들은 버젓이 가두리를 쳤다. 심지어 자기네 플랫폼에 올라온 콘텐츠는 쉽게 퍼가지 못하도록 마우스 오른쪽 단추도 막아뒀다. 저작권을 무시하며 동시에 저작권을 움켜쥐려는 이중적 태도라니. 최소한 일관성이라도 견지하길 기대한다면 무리한 요구일까.

저작권은 '천송이 코트'처럼 '선언'만으로 무너지지는 않는다. 미국이 미키마우스를 보호하기 위해 법 따위 손쉽게 손질하고 다른 나라에도 강요하는 꼴을 우린 봐왔잖은가. 저작권, 그리 허술하지 않다. 저작권의 성채를 허무는 일은 오랜 싸움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금까지 지치지 않고 저항해올 수 있었다. 이 응축된 저항을 희석시키는 물타기 행위에도 마땅히 칼을 들어야 한다. 훔친 곳을 이실직고한다고 해서 장물이 합법화되진 않는다. '큐레이션'이란 모호한 장막부터 걷어내야 한다. 정보 도둑이 혁신가 코스프레를 해선 곤란하다. 급식복지를 '무상'급식이란 이름으로 왜곡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유튜브는 서비스 초기, 이용자들이 무단으로 퍼나른 동영상들 때문에 골치를 썩다가 꾀를 냈다. 유튜브는 불펌을 무작정 막는 대신 그 사실을 저작자에게 알려주고, 저작권자가 허락하면 불펌조차 허용하고 그 위에서 수익을 도모하는 모델을 내놓았다. 내 눈에는 그런 유튜브가 피키캐스트보다는 훨씬 급진적이고 합리적으로 보인다. 급진과 탐욕을 혼동하지 말자. 문제는 '우주의 얕은 인식'이다.

* 이 글은 <한겨레21>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