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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1월 20일 07시 05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1월 21일 14시 12분 KST

30억쌍 염기서열 모조리 분석 '풀시퀀싱 유전자 검사'를 받다

맞춤형 정밀의료로 표현되는 유전자 검사시대가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특정 질병 유전자 한두개만 찾는게 아닙니다. 인간의 유전자를 구성하는 30억쌍의 염기서열을 모조리 분석하는 이른바 풀시퀀싱(full sequencing)을 말합니다. 예전엔 인간게놈사업이라 불렸던 대단히 거창한 프로젝트였습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다국적 컨소시엄에서 인체게놈사업을 시작하던 90년대 초만 해도 한 사람 분석을 위해 수백명이 매달려도 10년 이상의 기간과 1,000억원 이상의 비용이 소요됐습니다. 그러나 NGS(차세대 염기서열분석) 등 관련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했습니다. 2011년 스티브 잡스가 췌장암 치료를 위해 풀시퀀싱 유전자 검사비로 10만달러, 즉 1억원을 썼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1,000 달러 즉 백만원 이내로 가능하며 수년내 100달러, 즉 10만원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검사기간도 반나절이면 충분합니다. 집에서 쓰는 프린터만 한 크기의 장비만으로 가능합니다.

NGS 유전자 분석기술이 어디까지 왔을까요? 제가 직접 체험해보기로 했습니다. 우리나라 기자나 피디 등 언론인 가운데 최초가 아닌가 싶습니다. 서울대의대 생물정보학교실 김주한 교수님의 프로젝트에 참여했습니다. 절차는 매우 간단했습니다. 종로구 연건동에 위치한 교수님의 연구실을 찾았습니다. 조교 선생님으로부터 연구 목적과 절차를 설명 들었습니다. 그리고 분석결과의 학문적 활용에 동의한다는 내용에 사인한 후 10cc 정도의 피를 뽑는 게 전부였습니다. 피실험자로 연구에 참여했으므로 비용은 무료였습니다. 실제 들어간 비용은 60만원 정도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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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써모피셔 사에서 만든 3억원 남짓한 NGS 장비를 사용해 분석했습니다. 30억쌍의 염기서열 가운데 실제 단백질 합성에 관여하는 엑손 부위의 염기서열만 분석했습니다. 보름 후 결과를 통보 받으러 갔습니다.

꽤나 설레고 두근거렸습니다.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나의 유전자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서입니다. 고약한 질병 유전자라도 발견되면 몹시 걱정되고 속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염기서열을 모두 밝혀내는 유전자 검사를 받아도 언론에서 보도하듯 질병 발생 확률을 척척 찾아낼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30억쌍에 달하는 염기 서열의 조합만 알아낼 뿐 이들이 구체적으로 몸에서 어떤 단백질을 만들고 이 단백질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아직 모르기 때문입니다. 인류가 지금까지 밝혀낸 것은 1%도 안됩니다. 1% 내에서 이것저것 조합해보니 폐암과 치매, 대장암, 낭포성 섬유화증이란 질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5%일지 10%일지는 모르지만 제가 평균 이상 특정질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썩 좋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담배를 끊었지만 20년 이상 피웠던 과거가 몹시 후회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곤 한 권의 제법 두툼한 책이 주어졌습니다. 사실 이것이 제가 받은 유전자 검사의 하이라이트였습니다. 이번 연구의 주요 목적이기도 한 약물 부작용과 효능에 관여하는 유전자 분석결과였기 때문입니다. 흔히 처방되는 6,000여종의 약물 대사 유전자를 분석했습니다. 분석은 김주한 선생님이 개발한 통계 툴입니다. 특정 약물의 대사에 관여한다고 밝혀진 유전자 변이를 찾아내 부작용 위험도를 객관적 스코어로 평가하고 인종별 분포를 %로 산출해 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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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설명해보겠습니다. 똑같은 진통소염제라도 누구는 아스피린이 잘 듣는데 누구는 부루펜이 잘 듣습니다. 이유는 개인이 지닌 유전자의 차이에 있습니다. 지금까지 의학은 이러한 유전자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의사의 경험을 통해 처방이 이뤄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에게 가장 효과가 좋고 부작용이 낮은 약을 선택적으로 골라내지 못했습니다. 진통소염제는 위중한 질병 때 쓰는 게 아니므로 약간의 개인간 들쭉날쭉한 차이는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항암제로 오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자신의 유전자에 어울리지 않은 항암제가 투여되면 극심한 부작용에 시달리다 자칫 죽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13번 염색체 위에 있는 NUDT 15란 유전자가 있습니다. 여기에 변이가 생기면 항암제의 일종인 티오퓨린이란 약물대사를 방해합니다. 정상적인 대사가 이뤄지지 못하므로 체내에 쌓이게 되고 이로 인한 고용량으로 백혈구 감소증이나 탈모 등 부작용이 속출하게 됩니다. 부모 중 한쪽에서만 NUDT 15의 변이가 있는 경우 통상적 용량보다 절반으로 줄여 투여해야 안전합니다. 만일 부모 양쪽에서 모두 NUDT 15 유전자 변이를 물려받았다면 티오퓨린이란 약 대신 아예 다른 약물로 교체해야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유전자 변이의 인종간 차이가 심하다는 것입니다. 백인의 경우 0.4% 내외로 드물지만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사람들에겐 17.5%나 된다는 것이 김주한 교수님의 설명입니다. 대부분의 신약은 다국적 제약회사에서 개발되며 서구인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거치게 됩니다. 따라서 서구인에겐 안전한 티오퓨린이 아시아인에겐 부작용이 심한 약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다행히 지금은 유전자 검사를 통해 NUDT 15 변이를 미리 찾아내 티오퓨린 부작용을 차단할 수 있습니다.

김주한 교수님은 약물을 모두 14개 그룹으로 나눠 유전자를 분석했습니다. 그리고 부작용과 효능 등을 약물대사를 고려한 결과를 객관적 스코어로 산출했습니다. 1에 가까우면 나의 유전자와 어울리는 약물이며 0에 가까울수록 부작용이 많고 효능이 떨어지는 약물입니다. 이 스코어가 0.2 이하로 나오면 처방하지 말 것을 권유한다고 합니다. 동일 인종간 상대적 순위의 분포도도 %로 산출했습니다. 100%에 가까울수록 좋은 것이고 0%에 가까울수록 나쁜 것입니다.

아래 테이블은 제 결과입니다. 전체적으로 스코어가 별로 좋지 않습니다. 항생제나 천식, 고혈압치료제에선 비교적 좋은 결과를 보였지만 대부분 평균 정도입니다. 우울증치료제나 항불안제에선 결과가 나빴습니다.

스코어는 0.3과 0.38이지만 상대 분포가 0.6%와 0.0%로 거의 꼴찌에 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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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그룹별로 알아보았습니다. 먼저 콜레스테롤 치료제를 알아볼까요. 가장 널리 사용되는 아토바스타틴(상품명 리피토)는 0.2로 나옵니다. 로수바스타틴(상품명 크레스토)는 0.13으로 나와 처방해선 안되는 약물로 나옵니다. 반면 페노피브레이트 계열 약물은 1.0으로 제 유전자와 가장 적합한 콜레스테롤 약물로 나옵니다. 저는 아직 고지혈증은 아니지만 고지혈증에 걸린다면 페노피브레이트를 복용하는 게 좋겠다는 결론입니다.

진통소염제는 어떨까요? 저는 나프록센(상품명 낙센)이 스코어 0.91로 가장 좋았습니다. 반면 아스피린은 0.65로 그저 그렇네요. 셀레콕시브(0.05)나 멜록시캄(0.06)은 저와 궁합이 맞지 않은 진통소염제로 드러났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과거 제 경험으로도 낙센이 잘 듣지 않았나 싶습니다.

왜 이런 결과들이 나왔을까요? 메커니즘을 조금 따져봤습니다. 제 경우 ABCC4나 SLCO1B1 등 세포막에서 약물을 밀어내는 수송체 유전자 변이가 심각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스코어가 10의 마이너스 5승이라 합니다. 대단히 특이한 체질입니다. 문제는 이런 타입의 유전자는 항암제 독성을 증가시킨다고 합니다.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닌 게 우리 인생이지만 저는 특히 암에 걸리면 안되겠구나 혹은 암에 걸리더라도 항암제 투여는 신중해야겠구나라고 생각해봅니다.

전체적으로 약물대사와 관련한 제 유전자는 좋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약물 이외 식품이나 영양소 등 다른 성분과의 궁합은 어떠할까요?

예상대로 술이 셌습니다. 알코올 스코어가 0.64인데 이 경우 동일인구 상대분포가 98%나 됐습니다. 100명 가운데 2등 안에 들 정도로 제 알코올 대사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입니다. 제 술 실력이 유전자로 검증된 셈입니다.

커피(카페인)는 0.43(81.5%), 담배(니코틴)는 0.31(42.2%)로 중간 정도는 되는 듯합니다.

그런데 비타민D가 문제입니다. 스코어가 0.14 밖에 되지 않습니다. 상대분포는 45.4%로 중간 정도 순위입니다. 집사람과 똑같은 양의 비타민 D 영양제를 매일 먹는데 혈액 검사를 해보면 집사람보다 낮게 나오는 이유를 이제야 알았습니다. 제 유전자는 비타민 D와 어울리지 않나 봅니다. 좀 더 많이 먹든지 아니면 햇볕으로 피부에서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이라면 이런저런 약물과의 유전적 궁합을 위해 유전자 검사를 받아 보실 용의가 있으신지요? 물론 김주한 교수님의 방법이 완벽한 것은 아닙니다. 앞으로도 객관적 타당도를 입증하기 위한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약물에 착안한 유전자 검사란 아이디어는 대단히 훌륭해 보입니다. 사실 암을 제외한 질병에 대해 유전자 검사는 실익이 적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암은 안젤리나 졸리의 사례에서 보듯 미리 유방을 잘라내는 등 이런저런 대처방법이 있습니다. 그러나 당뇨나 비만, 고혈압 같은 경우는 유전자 검사로 이런저런 실마리를 찾아냈다 해도 현실적으로 해줄 게 없습니다. 늘 들어왔던 금연과 운동 이외 새로운 수단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약물은 먹지 않는 사람이 드물 정도로 흔합니다. 이 경우 기왕이면 나의 유전자와 맞는 약물을 선택하는 게 올바르기 때문입니다.

물론 유전자 검사에 대한 환상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큽니다. 얼마 전 만난 한 유명대학 암병원 원장님은 "아직 모르는 게 너무 많은데 상업적으로 유전자 검사가 과대포장되고 있어 걱정"이라고 말씀하시더군요. 규제왕국이라 불리는 우리나라답지 않게 최근 정부에서 패스트 트랙으로 병원뿐 아니라 민간회사에서도 일반인에게 직접 NGS 기술을 이용한 풀시퀀싱 유전자 검사를 돈을 받고 시행할 수 있도록 허가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 생명공학 발전을 위해 이러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너무 많은 기대를 해선 안됩니다. 일부 매체나 기업의 상업적 과대포장과 달리 미리 알아낼 수 있는 질병이 아직 그리 많지 않은 게 첫번째 이유입니다. 풀시퀀싱 결과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직도 모르는 게 너무나 많습니다. 둘째 한두 개 질병 관련 실마리를 발견한다 한들 일부 암을 제외하곤 내가 현실적으로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습니다. 이 경우 마음이 약한 분들이나 건강 염려증이 있는 분들에겐 유전자 검사가 긁어 부스럼이 될 수 있습니다. 작은 수치 하나로 벌벌 떨 수 있으니까 말이죠.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질병 발생은 유전자만 관여하는 게 아니란 것입니다. 나의 습관과 환경이 오히려 더욱 중요할지 모릅니다. 그리고 타고난 염기서열 이외 후천적으로 형성되는 이른바 후성유전이란 분야도 존재합니다. 꼭 유전자만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란 뜻입니다.

결론적으로 비용이 10만원 이내로 떨어지고 염기서열 분석으로 유전자 변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충분한 데이터가 쌓일 때까지 조금 기다렸다 받으실 것을 권유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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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의학전문채널 <비온뒤> 홈페이지(aftertherain.kr)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