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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9월 04일 06시 15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9월 04일 14시 12분 KST

온라인에 연재하고, 데뷔하다 | 프랑스의 만화 블로그들


프랑스에서 만화 블로그가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한국보다 다소 늦은 2000년대 중반이었다. 프랑스의 만화 블로그도 초기 한국의 디지털 만화 성장에 큰 역할을 했던 블로그들과 비슷한 행보를 걸어왔다. 출판이나 지면을 통해 자신의 작품을 알리기 어려웠던, 혹은 데뷔가 힘들었던 작가들에게 기회의 창이 되었던 점과 아마추어 작가도, 프로 작가도 자신의 작품을 공개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공간을 확보했다는 점 그리고 기존 만화 독자 외에 인터넷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하여 독자의 폭을 넓혔다는 점 등이다. 다만 한국처럼 여러 작품을 모아 정기적으로 서비스 되는 연재 플랫폼의 시스템은 안착되지 않아 (플랫폼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나, 현재까지 의미 있는 성과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부분 유명 만화 블로거들은 (물론 매체를 통해 연재를 하기도 하고, 출간도 한다) 직접 운영하는 블로그를 통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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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씨코의 블로그 책 표지



그리고 여기 프랑스 초기 만화 블로그 붐에 일조했던 한 블로그가 있다. 바로 '프랑씨코의 블로그(Blog de Frantico)'이다. (http://www.zanorg.com/frantico/) 이 블로그는 2005년 1월 1일, 상당히 의미심장한 이 날! 오픈하여 같은 해 5월 31일까지 매일 포스팅 한 뒤, 중단되었다. 이 후 10월 중순까지 7개의 추가 포스팅이 이루어지지만 결국 그 해 12월 15일 잠정적으로 블로그는 문을 닫는다. 블로그에서는 한 성적 편집광 남자의 일상에 대한 이야기로 그야말로 '일상툰'이 공개 되었는데, 작가는 인터넷의 익명성을 활용하여 '프랑씨코'라는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 내고, 그의 일상을(그리고 그 일상은 진실일 수도 허구일 수도 있는, 이 만화 역시도 만화가 이야기하는 인물과 일상은 일종의 픽션이었다) 만화로 그려냈다.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는 전형적인 블로그 만화의 모델이자 그 시초다. 물론 이런 형식의 블로그로 '프랑씨코'가 최초는 아니었지만, 독자들에게 블로그 속 만화 인물과 실제 인물, 즉 만화가에 대한 환상을 불러일으켜 도대체 진짜 작가가 누군지에 대한 지대한 관심으로 이어져 문화적,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된 경우는 없었다. 겨우 5개월 간 유지된 이 블로그의 인기에 힘입어 2005년 11월 출판사 '알방 미쉘(Albin Michel)'을 통해 블로그 만화 최초로 단행본 출간이 되는 기록을 세웠다. 블로그 콘텐츠도 보수적이고 벽이 높은 프랑스 만화 출판 시장에 접근할 수 있는 하나의 통로가 됨을 보여준 중요한 사건이었다. 또한 프랑스의 '르 몽드(Le Monde)'나 '리베하씨옹(Libération)' 같은 주요 미디어 매체에서 이 작품과 작가에 대해 다루며 블로그 만화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데 한몫을 하였고, '프랑씨코의 미스터리(Mystère de Frantico)'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블로그가 문을 닫은 이후에도 인기는 수 년간 지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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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의 주인이 루이스 트론데임(Lewis Trondheim)이라는 힌트(?)가 되는 에피소드. 01 번은 한국에 도착해 '예' '아니오' 등의 한국말을 배우는 내용이고 02 는 관계자들과 갈비집으로 회식을 갔던 단상을 그렸다.



현재까지도 블로그의 주인, 즉 작가가 누구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가장 유력한 인물로는 1980년대 후반 데뷔하여 수차례의 수상경력을 가진, 2006년 앙굴렘 페스티벌 대상을 포함 앙굴렘에서만 세 번의 상을 수상했으며 『라피노(Lapinot)』 시리즈와 『돈존(Donjon)』 시리즈로 유명한 작가 '루이스 트론데임(Lewis Trondheim)'을 꼽는다. 정체가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은 데는 당시 함께 활동하던 다른 만화 블로거들이 독자들의 궁금증과 혼란을 더욱 가중시키는 힌트를 주는(?) 나름의 역할을 했기 때문인데, 재미있게도 이런 과정에서 만화 블로그 작가들 사이의 유대감, 그리고 독자들과의 긴밀한 유대감이 형성되어 블로그라는 매체에서 활동하는 작가들과 독자들에게 하나의 공동체(프랑스에서는 이를 '블로고스페어(Blogosphère)'라 부른다) 의식을 갖게 하는 큰 계기가 된다. 작가가 '루이스 트론데임'임을 확신하는 큰 이유 중 하나는 '프랑씨코의 블로그'의 후반부 보너스 편에서 찾을 수 있다. 바로 한국 여행 에피소드인데 실제로 비슷한 시기인 5월 말 '트론데임'이 서울을 방문했었기에 더욱 힘을 실어주고 있다.

만약 그가 정말 이 블로그의 주인이 맞다면? 심지어 이미 출판 만화로 데뷔한, 어찌 보면 아쉬울 것 없는 기성 작가가 인터넷 블로그를 통해 작품을 발표하는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점에서도 이 블로그가 갖는 의미가 깊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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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레(Boulet)의 블로그 게재 작품을 모아 출간한 『노트』



'프랑씨코'와 같은 2000년대 중반 초기 만화 블로거 1세대로 꼽히며 지금까지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작가가 바로 '질 후셀(Gilles Roussel)' 필명 '불레(Boulet)'이다. (http://www.bouletcorp.com/) 프랑스의 젊은 작가군(참고로 그는 1975년생이다. 그 역시 블로그를 만들기 이전인 90년대 후반 만화 잡지 『쵸(Tchô!)』를 통해 데뷔한 기성 작가였다.), 디지털 만화를 기반으로 활발히 활동하는 작가들의 중심 격인 그는 디지털 만화 강국인 한국에도 관심이 많아 2010년 SICAF 디지털만화공모전에 작품을 공모하여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 이력이 있다. 국내에서는 미메시스에서 출간된 『타인들의 드라마(원 제목 Les autres gens)』 시리즈에 참여한 작가 정도로만 알려져 있지만 프랑스에서 그의 명성은 그야말로 명불허전이다. 2004년 7월 오픈한 블로그는 하루 3만 명 이상이 방문하며 블로그를 통해 지금까지 다양한 만화를 꾸준히 시도하고 있는 작가이다. 여타 만화 블로그 작가들과 다양한 협업을 통해 블로그 만화의 가능성과 그 영역을 확장한 작가이기도 하다. 그는 『메모들(Notes)』이라는 제목으로 블로그에 올렸던 만화를 묶어 출간하고 있는데, 아주 최근인 11월 그의 9번째 『노트』가 출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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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롭 바기유의 『조세핀(Joséphine)』시리즈 단행본 표지들과 제작된 동명의 영화 포스터.



마지막으로 소개할 블로그는 '내 삶은 너무나 매력적이야(Ma vie est tout à fait fascinante)'를 운영하는 작가 '페넬롭 바기유(Pénélope Bagieu)'의 블로그이다. (http://www.penelope-jolicoeur.com/ ※ 2007년 10월까지는 http://penelope-jolicoeur.blogspot.kr/ 를 통해 활동했다.) 일견 '만화' 블로그로만 보기는 조금 어렵지만,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애니메이터, 만화가인 그녀의 블로그는 다채로움 그 자체이고 그야말로 '이미지' 블로그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위에 언급한 작가들과는 반대로 블로그를 통해 유명세를 얻어 만화계에 데뷔하게 된 케이스. 블로그에서 오직 만화만을 다루지 않는 것은 오히려 블로그에 연재하는 만화의 독자층을 넓히는 데도 기여하였다. 블로그는 작가의 생활을 그림, 사진 등을 혼합한 형태로 이야기하는 일상툰도 있고, 특정 캐릭터를 만들어 만화 작업을 하기로 하는데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인 『조세핀(Joséphine)』 시리즈는 2013년 동명의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또한 블로그를 통해 정치, 사회적 이슈를 만화라는 매체로 목소리를 내며 블로그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작가 중에 한 명이다.



글_ 이지은/누룩미디어 PD


* 이 글은 에이코믹스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