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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4월 22일 08시 28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4월 23일 14시 12분 KST

보이텔스바하 원칙에 비추어본 세월호 계기수업 논란

연합뉴스

보이텔스바하 원칙에 비추어본 세월호 계기수업 논란

글 |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아직도 흥겹다. 총선 후 1주일이 지났지만 민주주의가 여전히 나를 고동치게 하고 춤추게 한다. 모처럼 '위대한 국민의 승리'가 정치수사를 넘어 현실이 됐다. 결정적인 순간에 국민의 집단지성이 빛을 발했다. 99% 보통사람들이 정권의 무능과 독기를 심판하고 정치권 전체를 혼쭐냈다. 일반시민들이 만들어낸 현저한 여소야대국면으로 퇴행일로의 한국 민주주의가 새로운 반전의 계기를 맞이했다.

모든 시끌벅적한 비관적 예측을 뛰어넘는 총선결과로 내로라하는 정치평론가와 사회과학자, 여론전문가와 시민운동가의 코가 모두 납작해졌다. 여당의 압도적 승리를 하루 종일 떠들어대던 종편방송의 단골구라들도 잠시 야코가 죽었다. 이런 상황에서 분명히 드러난 진실이 있다. 전문가라 일컫는 사람들이 시민을 일방적으로 교육하고 훈수해온 시대를 끝장내야 한다는 진실 말이다. 국민이 더 스마트한데 누가 누굴 가르친단 말인가.

주입과 훈수, 교화를 목적으로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전통적인 의미의 교육은 이제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 특히 가치와 규범교육, 인성과 시민성교육에서 그렇다. 일방통행식 교육에선 교사나 강사가 지식을 이용해서 우월적 지위에 선다. 전문적 지식과 복잡한 데이터에 입각해서 설명과 예측을 무기로 학습자를 훈수 두고 때때로 조종한다. 학습자와 달리 교사는 이미 정답을 알고 있다는 듯 그것을 일방적으로 들이붓는다.

세상일에 대해서 이런 방식의 교육이 행해지면 가르치는 이의 지식은 권력으로 바뀌고 배우는 이의 삶과 경험은 뒷전으로 밀려난다. 학습자의 생생한 삶의 단면들이 강사의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지식체계에 갇히고 재단된다. 교수자의 견해가 은근히 정답으로 행세하며 학습자의 질문과 토론을 봉쇄한다. 자신의 경험 세계에 비추어볼 때 흔쾌히 납득할 수 없는데도 감히 묻지를 못하고 의견을 내지도 못한다.

거꾸로 되어야 한다. 이론의 세계에 현실의 세계가 주눅들 것이 아니라 현실의 세계가 이론의 세계를 이끌어야 한다. 그래야만 이론의 세계가 학자의 모래성이 되지 않는다. 지식과 이론의 전문가는 모름지기 자기 삶과 현장의 전문가인 모든 시민들을 아하!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하는 역할을 수행하면 된다. 그래야만 책의 지식이 삶의 지식을 질식하지 않고 그래야만 추상적 당위가 생생한 현실에 눈감지 않는다.

학교교육과정으로 얘기를 옮겨간다면 가르치지 않는 교육의 1차적 적용 대상은 정치, 경제, 역사, 윤리, 도덕, 철학 교육이 될 것이다. 이런 광의의 민주시민성교육과 관련하여 가장 보편적인 지침이 되는 것이 1976년 독일의 보이텔스바흐 협약(Beuttellsbach Konsens)이다. 독일의 초중고 교육은 이 협약 이전과 이후로 구별된다고 할 정도로 독일교육의 지향과 방법을 바꾼 획기적인 사회적 합의다. 이 협약은 독일공교육을 관장하는 연방정부와 주정부, 교육위원회, 그리고 학교와 사회에서의 정치교육에 두루 적용된다.

우리사회와 마찬가지로 그때까지만 해도 독일사회는 정치교육을 어떻게 할지를 놓고 자주 충돌과 갈등을 겪었다. 학교에서 행해지는 정치교육의 원칙과 기준도 주별로 어떤 정당이 집권하는지에 따라 들쭉날쭉 차이가 났다. 독일이 오랜 공론화과정을 거쳐 전사회적으로 합의해낸 보이텔스바흐 협약은 몹시 단출하다. 각 한 문단으로 구성된 세 가지 원칙이 전부다. 첫째, 학생제압 금지 또는 교화금지의 원칙, 둘째, 논쟁성 재현의 원칙, 셋째, 이해상관성의 원칙이 그것이다.

민주시민교육에서 교화 및 주입 금지의 원칙은 학생을 교사의 압도적인 영향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사회적 쟁점사항에 대해 학생이 잘 모르거나 준비 안 된 상태에서 교사가 무엇이 바람직한 견해인지를 노골적으로 또는 은근슬쩍 알려주거나 강요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교육의 목적은 학생 스스로 독립적인 판단을 하도록 지원하는 데 있지 특정견해를 주입하는 데 있지 않기 때문이다. 교사의 특정견해 주입은 민주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요구되는 교사의 역할과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선언되었다.

지성적, 정치적으로 논쟁적인 사안은 수업시간에서도 반드시 논쟁적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두 번째, 논쟁성 재현의 원칙은 사실상 첫 번째 주입금지의 원칙을 실천하는 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다양한 견해, 특히 비판적이고 대안적인 의견을 균형 있게 제시하고 논의하지 않으면 슬그머니 주입과 교화로 가는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이 원칙은 세상에서 격렬하게 논쟁이 이뤄지는 사안에 대해서는 학생도 비당파적 논쟁을 통해 알아야 한다는 원칙으로 조금 확장적으로 이해된다.

세 번째 원칙은 정치교육이 학생의 개인적 이해관계에 무게를 둬야 한다는 이해상관성의 원칙이다. 학생들은 현실의 정치 상황에서 어떻게 자신의 개인적 이해관계가 영향을 받는지를 분석, 평가하는 것은 물론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어떻게 그런 정치 상황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다양한 수단과 방안을 탐색할 수 있어야 한다. 정치교육은 단순한 지식교육을 넘어 불의에 대한 저항과 연대에 필요한 시민행동의 기술을 익히는 선까지 나아가야 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민주주의의 인지적 토대는 공동선과 공익에 대한 다양한 견해라고 할 수 있다. 학생들은 어떤 정치 상황에서도 다양한 견해를 가감 없이 접하고 그 중 자신과 공동체의 이익에 제일 균형 있게 봉사하는 견해를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이런 점은 특히 과거에 전문가의 영역으로만 치부되어온 외교, 안보, 통일 영역이나 과학기술 영역에서도 관철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북한의 핵무장에 대해 미국의 핵우산에 기댈 것인지, 독자핵무장을 할 것인지, 비핵 군사억지력을 강화할 것인지 등 고난도 문제도 얼마든지 학교에서 논쟁적으로 다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적절한 전문가의 지원과 데이터가 제시될 경우 일반시민들이나 학생들은 영역과 분야를 가리지 않고 소통하고 참여하는 가운데 자신의 견해를 형성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며 자신의 견해를 수정할 수 있다.

물론 보이텔스바흐 협약도 몇 가지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도 교사의 중립성이 과연 학교현장과 교육현장에서 관철될 수 있는지에 대해 근본적 질문이 제기된다. 문명사적 대변혁이 진행되는 현재 시점에서 적실성을 갖기 위해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최소한의 형식적 기준이기 때문에 모든 정파가 합의에 이를 수 있었고 유럽연합 국가들에서 보편적으로 수용될 수 있었다.

비판하는 입장에서는 시민교육을 민주주의문화의 필수불가결한 구성요소로 본다는 부분이 빠져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시민교육을 통해서 민주적 구조와 제도를 공고하게 한다는 내용이 안 보인다는 것이다. 만약 이런 원칙을 넣게 될 경우 헌법과 민주주의에 대한 충성, 즉 헌법애국주의의 고취라는 목적이 좀 더 뚜렷해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협약은 정치교육의 다양한 분야에 대해 좀 더 적극적이고 실천적인 지침을 제공하지 않는 한계도 있다. 이런 한계를 보완하는 차원에서, 예를 들어, 2015년에 저명한 민주시민교육자들이 중심이 돼 만들어진 프랑크푸르트선언에선 지속가능성 교육에 좀 더 실천적 지침을 제시하는 등 다방면의 보완작업이 시도된다.

우리 사회에선 민주시민교육이나 정치교육이 이른바 계기수업의 이름으로 행해지곤 한다. 후쿠시마 5주년이었던 지난 3월에는 탈핵 계기수업을 둘러싸고, 세월호 2주기인 금년 4월에는 세월호 계기수업을 둘러싸고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전교조에서는 세월호 2주기 추모주간에 세월호 계기수업을 진행할 방침을 세우고 세월호 교과서라고 불리는 부교재를 선보였다. 교육부는 전교조의 세월호 교과서가 정치적으로 편향성을 보인다는 이유로 세월호 교과서를 사용하는 세월호 계기수업을 금지했다. 강행하는 교사에 대해 징계하겠다는 방침을 공표한 것도 여느 때와 판박이다. 심지어 매년 가을에 해왔던 독도 계기수업을 세월호 추모주간에 진행하라는 공문까지 내려 보냈다. 시대착오적 코미디다.

교육의 당파정치 중립성에 반대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전교조의 계기수업에 대해 무조건 정치적 중립성을 이유로 게거품을 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정치적 중립성의 허울 속에서 행해지는 교육부 주도의 계기수업에는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얼마든지 국가주의적 편향성을 드러낼 수 있는데도 입을 다문다. 국가나 사회의 중대 사안에 대한 계기수업이 교육적으로 바람직하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어느 쪽도 토를 다는 것 같지 않다.

실제로 정치경제의 쟁점 현안에 대해 학생들만 알지 못하게 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학교에서 균형 있고 성찰적으로 학습하지 못하면 학생들은 인터넷이나 언론매체, 주변 어른이나 또래의 논의를 통해서 접한 사실이나 견해를 무분별하게 따라갈 위험성이 더 높다. 사회와 국가의 쟁점 사안들에 대해 학교교육에서 교육적으로 다뤄주는 편이 바람직한 이유다.

보이텔스바흐 협약과 같은 민주시민교육의 원칙은 간헐적으로 행해지는 계기수업에서는 물론이고 공식적 교육과정에서 두루 관철되어야 한다. 특히 정치, 경제, 역사, 철학, 윤리 수업에서 더 먼저 더 집중적으로 그럴 필요가 있다. 세상의 논쟁적 현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다루되 비당파적, 비편향적으로 다룰 수 있는 수업혁신이 전면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이런 교과목에서는 교사의 견해 제시나 주입은 최소화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신 다양한 논점과 견해를 최대한 균형 있게 소개하고 성찰과 대화, 토론을 진행하고 집단지성과 집단책임감을 일깨우는 편이 바람직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민주시민교육의 원칙과 기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시점에 와있다. 그래야 계기수업을 둘러싸고 되풀이되는 쓸데없는 갈등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래야 학생들을 우민화하지 않을 수 있고 그래야 한국 민주주의를 민주시민성으로 충전할 수 있다. 세월호 이후 교육이 요구하는 최종적, 불가역적 교육패러다임의 변화가 바로 민주시민성 강화다. 이것이 바로 공교육 정상화의 핵심이다. 이것이 바로 고동치고 춤추는 민주주의로 가는 지름길이다.

마침 학생과 교사, 예산의 85%를 진보교육감 13인이 책임지는 제2기 진보교육감시대가 진행 중이다. 제1기 진보교육감시대가 학생인권과 학교민주주의를 초보적으로 선보였다면 제2기 진보교육감시대의 임무는 민주시민교육의 원칙과 기준에 관해, 보이텔스바흐 협약 같은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마침 총선 결과로 입법 환경이 좋아졌으니 협약을 넘어 입법으로 결실을 맺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독일이 40년 전에 해낸 것을 이제라도 우리사회가 해내야 한다. 몹시 늦었지만 지금이 최적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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