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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3월 09일 11시 55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3월 10일 14시 12분 KST

실력주의 사회에 대한 오해

빌 게이츠를 비롯한 세계적인 갑부가 자신의 실력을 토대로 모은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데 관대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실력이라고 생각한 상당한 부분이 우연적 요소에 의해 결정된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가 모은 재산은 실은 자기 것이 아니라 우연히 자기가 관리하게 된 것이라는 깨달음, 학교가 아이들을 이러한 깨달음을 향해 이끌어갈 때 실력주의 사회의 그림자는 옅어질 것이다.

Gettyimage/이매진스

실력주의 사회의 기본 가정 및 비실력적 요인에 대한 생각 해체돼야!

글 | 박남기 (광주교육대학교 교수/ 전총장)

1. 들어가며

'교육개혁을 위해 던져야 할 바른 질문'이라는 글에서 "실력주의사회가 우리가 바라는 사회인가?"라는 질문과 함께 실력주의에 대한 착각을 간략히 소개한 바 있다(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보시려면 다음의 사이트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 http://21erick.org/bbs/board.php?bo_table=11_5&wr_id=100300&page=3). 여기서 말하는 실력주의사회란 마이클 영이 말한 실력(타고난 능력+노력)에 의해 보상이 좌우되는 사회(meritocracy)를 의미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능력주의사회라는 말을 널리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 용어는 타고난 능력에 노력이 더해져 만들어진 실력이 보상을 결정한다는 의미를 제대로 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칫 타고난 능력이 보상을 좌우하는 것으로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마저 있다. 그 오해의 결과로 대입전형에서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눈에 보여도 측정이 어려운 쌓아온 실력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잠재능력'을 측정하겠다는 시도까지 하게 되었다. 업적주의라는 용어도 보편적으로 사용되고는 있지만 교수업적평가의 경우처럼 개인이 가지고 있는 실력이라는 의미보다는 그 실력을 가지고 산출한 결과물이라는 의미가 더 크기 때문에 이 또한 정확한 이해를 방해할 수 있다. 그래서 능력주의나 업적주의라는 용어 대신 실력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을 제안한다.

향후 몇 번의 글을 통해 실력주의사회에 대한 우리 사회의 착각을 상세히 분석하고, 실력주의사회를 구현하겠다며 실제로는 '신세습주의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는 우리 사회의 실상을 밝히며, 나아가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는 '신실력주의사회'에 대한 내 생각을 하나하나 생각을 펼쳐가고자 한다.

이 글에서는 우리가 실력을 재화분배의 기준으로 삼는 사회가 공평한 사회라고 생각하게 된 이유를 분석하고, 그 이유의 타당성을 해체해보며, 나아가 실력의 근원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필요성과 효용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2. 실력주의사회 성립의 기본 가정

사회적 재화 배분과 관련하여 실력주의사회가 꿈꾸는 사회, 정의롭고 공평한 모습은 어떤 것일까? 개인의 능력과 노력의 결과로 만들어진 실력이 개인의 부와 지위를 결정하는 사회이다. 그럼 어떤 사회가 불공평한 사회라고 생각할까? 개인의 실력이 아니라 타고난 배경이 개인의 사회적 지위와 부를 좌우하는 사회, 즉 비실력적 요인이 사회적 재화 배분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 신분과(이나) 부가 세습되는 사회이다. 그래서 박근혜 정부는 '학벌타파를 통한 능력주의 사회 구현'을 기치로 내걸고 있다. 이러한 믿음에 대한 타당성 여부는 별도로 분석하고 여기서는 비실력적 요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의 본질과 비실력적 요인이 실력 형성에 미치는 영향, 비실력적 요인 통제 가능성 등을 살펴보겠다.

만일 어떤 사람이 태어나보니 지적 능력이 떨어지고, 집중 능력도 좋지 않아 높은 실력을 갖추기는 어려웠지만 다행히 부모가 경제적 부를 축적하고 있어서 재산은 물려받을 수는 있었다고 해보자. 이 경우 실력주의사회에서는 능력을 타고난 사람이 능력 덕에 부유하게 살아가는 것은 공평한 것이고, 재산만 타고난 사람이 그 재산으로 살아가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생각한다. 능력과 재산 둘 다 부모로부터 타고난 것이라는 점에서는 같음에도 불구하고 왜 능력이 바탕이 된 실력을 토대로 한 재화 분배는 공평한 것이고, 사회경제적 지위에 의한 재화 대물림은 불공평한 것(금수저)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이러한 생각의 바탕에는 두 가지 가정이 깔려 있다. 하나는 노력은 개인의 순수 의지에 의한 것이므로 실력형성은 개인 책임이고 따라서 실력에 따른 차별적 보상 또한 개인의 책임(개인책임론)이라고 보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타고난 능력에는 개인 간에 큰 차이가 없고, 혹시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노력을 통해 차이 극복이 가능하다는 생각(노력무한가능설)이 바탕에 깔려 있다. 그렇다면 두 가지 가정은 타당한 것인가?

3. 노력의 개인책임론 해체

아무리 뛰어난 능력(잠재력)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개인이 노력을 통해 계발하지 않으면 실력으로 변화되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만일 노력하고자 하는 의지(동기)와 집중력 등도 유전적인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면 실력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타고난 부분의 영향력이 크게 될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실력이 개인의 자율적 노력에 의한 것이므로 실력에 따른 재화배분은 타당한 것이라는 실력주의 믿음의 근간은 취약해진다. 여기서는 노력이 효과가 없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노력이라는 것도 우리 생각과 달리 순수 개인 책임만이 아니라 타고난 부분도 상당하다는 것을 밝히고자 한다.

최근 진행된 연구들에 따르면 개인이 타고난 지적 신체적 능력 등에서만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노력에 영향을 미치는 집중력, 수면 시간 또한 차이를 보인다. 비록 인구의 1-3%에서 나타나지만 하루 4시간 이하의 짧은 시간만 자도 하루 종일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을 잠이 없는 사람(short sleeper)라고 한다.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대학교의 인간유전학자 푸 잉 후이 박사는 2009년 연구를 통해 잠이 없는 사람들은 'hDEC2'라는 유전자변이를 가지고 있음을 밝혀냈다(Beck, 2011). 변형된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뇌는 깨어있는 시간동안 만들어진 독성을 일반인들보다 훨씬 짧은 수면 시간 안에 해독할 능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뇌과학자들은 심지어 노력하고자 하는 의지력마저도 일정 부분 타고난 것임을 밝혀내고 있다. 우리나라 학생이라면 좋은 성적을 받아 부모님과 주위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어 한다. 그런데 자리에 앉아 집중하려고 하면 집중하기 어려운 학생들이 많다. 반면에 별로 노력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공부를 하려고 마음먹으면 쉽게 집중할 수 있는 학생들도 있다. 물론 그러한 수준에 이르기까지 노력하여 얻은 결실일 수도 있지만 타고난 집중력에도 유전적인 차이가 있다고 한다. ADHD(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 치료약물인 리탈린(Ritaline)은 집중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집중력이 단순한 개인의 자율 의지가 아니라 뇌와 호르몬에 의해 영향을 받고 있음을 시사해준다. 개인 노력 정도를 전적으로 유전자가 결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생각한 것처럼 철저하게 개인의 자유의지에 달려 있는 것 또한 아니다.

널리 알려진 '1만 시간의 법칙'을 주창한 말콤 글래드웰(2009)은 성공에 있어서 개인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주위 환경의 중요성 또한 일깨워주고 있다. 그가 주장하는 1만 시간의 법칙은 심리학자 안데르스 에릭손(K. Anders Ericsson)이 1990년대 초에 수행한 '재능 논쟁의 사례 A'라는 연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에릭손과 그의 동료들은 베를린 음악 아카데미학생들을 1) 세계수준의 솔로 주자가 될 수 있는 학생들(엘리트), 2) 그냥 잘한다는 평가를 받는 학생들, 3) 프로급 연주해본 적이 없고 공립학교 음악교사가 꿈인 학생들(미래 음악교사) 등 세 그룹으로 나누었다. 이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들 대부분은 다섯 살 전후에 연주를 시작하였고, 초기 몇 년간은 일주일에 두세 시간씩 연습을 하여 연습 시간에서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연습시간 차이는 여덟 살 무렵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잘하는 아이들은 훨씬 더 열심히 연습을 하고, 그렇지 않은 학생들은 연습시간이 상대적으로 적어 이들이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연습시간을 계산해보니 엘리트는 1만 시간, 잘하는 학생은 8천 시간, 미래 음악교사는 4천 시간 정도인 것으로 나타났다(Gladwell, 2009: 55). 에릭손의 연구는 다른 사람이 시간을 쪼개어 연습하고 있을 때 노력하지 않고 정상에 올라간 연주자는 발견하지 못했음을 밝히고 있다. 신경과학자 다니엘 레비틴(Daniel Levitin)도 어느 분야에서든 세계 수준의 전문가, 마스터가 되려면 1만 시간의 연습이 필요하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Gladwell, 2009: 56).

1만 시간은 실로 엄청난 시간이다. 하루 세 시간, 일주일(7일)에 스무 시간씩 10년간 쉬지 않고 연습해야 1만 시간이 된다.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어린 아이가 스스로의 의지에만 기대어 그 정도의 연습을 하는 것은 거의 어렵다. 격려해주고 지원해주는 부모가 필요하다. 김연아도 어려서부터 많은 연습을 할 수 있도록 계획을 세우고 이끌어간 어머니가 없었더라면 1만 시간의 연습시간을 확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가정 형편이 어려울 경우에는 가사를 돕느라 연습시간을 확보하기 어려운 것 또한 사실이다.

따라서 실력은 개인의 순수한 의지적 노력에 의한 결실이라는 우리의 믿음은 상당 부분 과장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노력을 순수 자유의지에 의한 것으로 가정하고 실력을 갖추지 못한 것을 개인책임으로만 돌리는 것은 유전학적인 입장에서 뿐만 아니라 환경 여건이 미치는 영향의 차원에서 볼 때에도 우리가 믿는 것보다 논리적·실제적 타당도가 떨어진다. 이러한 관점은 자기가 얻은 것은 자기 노력에 의한 것이므로 모두 자기 것이고, 따라서 어떻게 사용하더라도 실력주의사회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라는 착각에서 벗어나도록 도울 것이다.

4. 노력을 통한 타고난 능력 차이 극복 가능(노력 무한가능론) 신화 해체

앞에서 제기한 문제는 노력의 '순수 개인의지 정도' 즉, 개인 책임 정도에 대한 것이다. 여기서 제기하고자 하는 문제는 노력의 가능성과 한계에 대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타고난 능력에서 개인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노력을 하면 그 차이는 극복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이를 노력무한가능설이라고 명명하고자 한다. 이러한 믿음이 없다면 노력의 의지가 꺾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사실과 다른 과도한 믿음은 헛된 노력을 하도록 이끌거나 실력에 따른 과도한 보상의 차이를 합리화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누구나 할 수 있다'는 말은 노력을 하면 능력 차이를 극복할 수 있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조지 W 부시(전 미국 대통령), 톰 크루즈(영화배우), 존 체임버스(CSCO 회장) 등은 심지어 난독증 환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노력을 통해 극복함으로써 각 분야에서 최고가 되었다는 것을 예로 들기도 한다(이지훈, 2014). 이러한 예들은 노력 무한가능론의 근거로 이용되고 있다.

뇌학자들의 설득력 있는 가설에 따르면 난독증은 좌뇌와 우뇌의 균형적인 발달이 실패한 결과 나타나는 현상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우뇌가 창의적 사고를 하려고 할 때 좌뇌가 이를 제어하여 균형을 잡아주는데 난독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 중의 일부(10-20%)는 좌뇌가 그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한 탓에 우뇌의 자유로운 사고를 제어하지 못해 결과적으로 창의성과 천재성이 두드러지게 된다. 즉, 난독증에도 불구하고 개인이 고난을 이겨내고 노력한 결과로 일반인보다 뛰어난 창의적인 천재가 된 것이 아니라 타고난 결함이 천재성으로 이어지는 측면이 강하다.

세계 최대의 인터넷 장비회사 시스코(CSCO) 회장 존 체임버스는 자기 회사가 주최한 '아이를 직장에 데려오기' 행사에서 한 소녀에게 질문을 했다가 학습장애로 답변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그 소녀를 격려하기 위해 실은 자신도 난독증으로 인한 학습장애가 있다고 공식 석상에서 고백하였다(중앙일보, 2010.06.19). 그는 아직도 보고서를 비서가 읽어주어야 이해할 수 있다. 그는 부족한 독해능력을 보완하기 위해 부단히 경청하였고, 그 결과 1년 전 사석에서 들은 통계 수치를 기억할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노력에 의한 것만이 아니라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난독증 증세를 보이는 사람의 뇌가 가지고 있는 특성으로 인해 뛰어난 기억력을 갖게 된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그는 글로 써서 찾아가도록 하면 찾아갈 수는 없지만 지도에 점을 찍어 위치를 표시해주면 그 누구보다도 빨리 찾아갈 능력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의 뇌는 문자를 해독하는 데에는 불리한 난독증이라는 특성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행히 큰 그림을 이해하고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특성도 동시에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난독증 환자의 예를 상세히 기술한 이유는 개인의 노력만이 아니라 타고난 능력도 있어야 어려움 극복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난독증 환자의 80 퍼센트 이상은 난독증만 두드러질 뿐 다른 능력은 나타나지 않아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그러한 그들에게 다른 사람은 비록 난독증 환자이지만 노력을 통해 오히려 더 창의적인 사람이 되었는데 당신들은 노력하지 않아 실력을 쌓지 않았다며 그들의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5. 비실력적 요인이 실력에 미치는 영향

어떤 결실을 얻는 데에는 타고난 능력과 노력을 바탕으로 한 실력뿐만 아니라 비실력적 요인도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비실력적 요인이 직접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비실력적 요인이 다양한 경로를 통해 실력 향상에 직접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맥나미와 밀러(McNamee & Miller, 2015: 14)는 부모의 경제적 자원과 가족의 계층 배경, 부의 세습, 특권의 대물림, 우수한 교육, 사회적 자본과 문화적 자본, 행운, 차별적 특혜, 태어난 시기, 시대적·사회적 상황 등을 비실력적 요인(nonmerit factors)의 예로 들고 있다. 비실력적 요인 중에서 행운, 태어난 시기, 시대적·사회적 상황 등이 개인의 성패에 영향을 미치는 것에 대해서는 억울하다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불공평하다며 사회에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는다. 이는 우리 인간이 인위적으로 조작할 수 있는 통제 범위를 벗어나는 신(자연)의 영역이라고 생각하여 체념하고 받아들인다. 이하에서는 먼저 인간의 통제 범위를 벗어나는 비실력적 요인이 실력과 개인의 성공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살펴보겠다.

비실력적 요인 중에서 우리가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인간의 영역에 해당하는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 부의 세습과 특권 대물림, 우수한(불공평한) 교육, 사회적 자본과 문화적 자본, 학벌에 따른 차별적 특혜 등이다. 이는 통제 가능한 영역으로 얼마든지 공평하게 바꿀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이러한 믿음은 타당한가? 그리고 통제가능한 비실력적 요인은 실력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 이하에서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도 찾아보겠다.

가. 운의 영향

떠도는 말 중에 '운 좋은 사람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 있다. 과장된 표현이기는 하지만 운의 중요성은 세상을 살아본 사람이라면 부정하기 어렵다. 기업의 흥망성쇠에도 운이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 미국 석유 독점재벌이었던 록펠러는 램프용 기름을 염두에 두고 석유 독점을 시작했는데 전기를 사용하는 전구가 개발되면서 예상과 달리 램프용 석유 수요가 급감하여 거의 파산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즉, 뛰어난 사업가적 수완과 큰 흐름을 읽었던 그도 전구 개발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운이 따랐다. 파산 직전 유럽에서 중유를 사용하는 엔진이 개발되어 널리 사용되면서 석유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 세계적인 부자가 되게 되었다. 이러한 일화는 참으로 많다.

말콤 글래드웰(2009)도 '아웃 라이어'에서 성공에서 실력 이외의 요인이 좌우하는 부분이 클 뿐만 아니라 비실력적 요인이 실력 형성에 영향을 미쳐 개인 삶의 성공 여부를 좌우함을 보여주고 있다. 실력주의 사회라고 하더라도 인간의 노력으로 운의 영향을 제거할 수는 없다. 우리가 실력으로 거두었다고 생각하는 결실의 상당 부분은 실력의 결과가 아님을 깨달을 때 그 결실에 대한 소유욕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다. 자기 노력의 결과라고 착각하며 모든 것을 움켜쥐고 내놓으려 하지 않는 사람에게서는 모래를 움켜쥔 주먹에서 모래가 빠져나가듯이 운이 빠져나갈 수 있음을 깨닫게 하는 것은 교육이 해야 할 역할이다.

나. 태어난 달과 해, 그리고 장소가 실력 형성에 미치는 영향

말콤 글래드웰은 태어난 달(Gladwell, 2009: 34-49)과 해(Gladwell, 2009: 74-85)가 실력 형성과 미래 성공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예시적으로 보여준다. 캐나다 최고 중의 최고로 구성된 엘리트 하키 선수팀들의 선수는 거의 예외 없이 1-3월생이 약 40%를 차지하고 10-12월생은 약 10%에 불과하다. 이는 캐나다가 1월 1일을 기준으로 나이를 헤아리고 그에 맞추어 하키 클래스를 짜기 때문에 빚어진 결과이다. 사춘기 이전에는 열두 달이라는 기간이 엄청난 신체 발달의 차이를 가져오므로 다른 아이들보다 몇 달간 더 숙달될 수 있는 기회를 누린 1-3월생 소년들이 더 크고 보다 재능이 있어 보이게 된다. 그러면 주로 생월이 빠른 아이들이 후보군으로 선발되고, 이 아이들은 훌륭한 코치 밑에서 강도 높은 훈련을 하면서 더 많은 경기를 할 기회도 갖게 된다. 출발점에서는 그저 몇 개월 일찍 태어난 것에 불과했지만 결국 훗날 실력에서 큰 차이를 보이게 된다. 9월 1일을 기준으로 하고 있는 영국의 경우에는 1990년 프리미어 리그 출전 선수 중에서 288명이 9-11월생이고, 136명이 6-8월생인 것으로 나타났다.

출생 월은 운동선수만이 아니라 일반 학생들의 성적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학자인 켈리 베다드(Kelly Bedard)와 엘리자베스 듀이(Elizabeth Dhuey)는 TIMSS 성적과 그 시험을 본 아이들이 태어난 달을 비교한 결과 4학년 학생들 중 일찍 태어난 학생들이 늦게 태어난 학생들에 비해 4-12% 포인트 더 좋은 점수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지적으로 동등한 4학년 학생들을 학년 기준일의 양쪽으로 나눠 세우면, 일찍 태어난 학생들은 상위 18%에 속하는 반면 늦게 태어난 학생들은 상위 68%에 머문다. 이러한 경향은 초등학교뿐만 아니라 4년제 대학교에서도 나타났다. 같은 연령대 중 나이가 어린 학생들의 성적이 약 11.6% 낮게 나왔다. 출발 단계에서의 숙련도 차이가 사라지지 않은 셈이다. 이를 사회학자들은 '누적적 이득'이라고 부른다. 이 결과를 보면 생월이 늦은 아이들의 경우 그 다음 해에 초등학교에 입학시키고자 하는 학부모들의 생각에도 일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엘리자베스 듀이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정말 이해할 수가 없어요. 학년을 나누는 날짜에 따라 아이들을 분류하는 것이 이토록 장기적인 차이를 낳는데 아무도 거기에 신경을 쓰지 않잖아요." (Gladwell, 2009: 44)

또한 그는 태어난 해와 장소(국가)의 중요함을 보여주기 위해 '포브스'가 선정한 인류 역사상 가장 부유한 75인 명단을 예로 든다. 이들 중 무려 14명이 19세기 중반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이다. 그에 따르면 1860-70년대의 미국 경제가 역사상 가장 큰 변화를 겪었다. 철도 건설, 월스트리트 탄생, 공업 생산으로의 전환 등등이 그것이다. 1840년대 후반에 태어난 사람은 시대변화 이점을 누리기에는 너무 어리고, 1820년대에 태어난 사람은 너무 나이가 많아 결국 1830년대에 태어난 14명이 1-3월에 태어난 캐나다 아이스하키 선수가 누리는 것과 같은 특별한 기회를 누렸다는 것이다. 그는 빌 게이츠(1955년 10월 28일 생), 스티브 잡스(1955년 2월 24일 생) 등등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여러 사람들이 1975년이라는 개인컴퓨터 혁명의 여명기의 이점을 누릴 수 있는 최적의 시점과 최적의 장소에서 태어난 사람들임을 보여주고 있다. 타고난 능력이 있더라도 태어난 연도와 장소가 맞아떨어지지 않으면 그들의 잠재력이 개발되기가 어렵고, 최고의 실력자가 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빌 게이츠를 비롯한 세계적인 갑부가 자신의 실력을 토대로 모은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데 관대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실력이라고 생각한 상당한 부분이 우연적 요소에 의해 결정된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가 모은 재산은 실은 자기 것이 아니라 우연히 자기가 관리하게 된 것이라는 깨달음, 학교가 아이들을 이러한 깨달음을 향해 이끌어갈 때 실력주의 사회의 그림자는 옅어질 것이다.

다. 가정과 사회 환경이 실력 형성에 미치는 영향

아이의 타고난 잠재력이 씨앗이라면, 가정과 사회 여건은 이 씨앗이 얼마나 잘 클 수 있을지를 결정하는 토양이고, 부모와 마을사람들은 씨앗을 가꾸는 농부이다. 천재성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라고 하더라도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게 되면 가시덤불 위에 떨어진 씨앗처럼 제대로 크지 못한 채 스러지게 된다. 보통의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가 좋은 가정에서 성장한다고 하여 엄청난 천재성을 가진 사람이 되기는 어렵지만 타고난 능력을 최대한 계발할 수는 있을 것이다. 어느 경우이든 토양의 비옥도에 해당하는 가정과 사회 환경, 그리고 농부에 해당하는 가족과 마을사람들이 아이의 성장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경제학자 브루스 새서도트(Bruce Sacerdote)가 미국과 영국에 입양된 아이를 대상으로 한 '경제적 성과의 선천성과 후천성'이라는 논문에 따르면 "입양한 부모가 친부모보다 보통 머리가 더 좋고, 교육 수준이 높으며, 수입도 더 높았다. 하지만 입양한 부모의 이점은 아이의 학교성적과는 거의 관계가 없었다. 그런데 입양된 아이가 성인이 되자 이들은 IQ만으로 예정되었던 운명을 급격히 벗어났다. 비슷한 상황에 있으면서 입양되지 않은 아이들과 비교하여 입양된 아이들은 대학에 가서 좋은 직장을 얻고, 안정적으로 20대에 결혼할 확률이 훨씬 더 높았다"(Levitt and Dubner, 2005: 232). 이 연구는 입양 부모의 노력이 아이의 학교 성적 향상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지만 문화자본 즉, 문화실력으로 인해 더 성공적인 사회구성원이 될 수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말콤 글래드웰은 랭건과 오펜하이머라는 두 명의 천재 비교를 통해 삶의 성공에 문화실력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 둘은 타고난 천재였지만 가난한 집안의 크리스 랭건(Christopherl Langan)은 끝내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 채 평범한 농부로 삶을 마쳤고, 맨해튼의 부유한 집안 출신인 오펜하이머(Robert Oppenheimer)는 핵무기 개발의 주역으로 역사에 남았다. 오펜하이머는 랭건과 달리 성장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그가 세상으로부터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데 필요한 방법 즉, '실용지능(practical intelligence)'을 갖추고 있었다. 실용지능이란 사회가 사랑하는 인간의 요건으로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누구에게, 언제, 어떻게 말해야 최대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등을 아는 것'이다.

로버트 스턴버그(Robert Sternberg)는 자신을 합리적으로 표현하고 상대를 설득하는 데 쓰는 특정한 기술을 '실용지능'이라고 명명했다. IQ와 비교해보면 IQ는 선천적인 능력의 척도인 반면 실용지능은 후천적으로 습득해야 하는 지식(knowledge)이고, 이 지식은 대부분 가족에게서 배운다(Gladwell, 2009: 124-125). 아이들이 알아서 성장하고 스스로의 재능을 계발하도록 방치할 경우 시간을 창의적으로 사용하고 독립심이 강한 아이로 성장하기도 하지만 '사람에 대한 불신, 거리를 두는 법, 의심하는 법' 등을 배우게 된다. 이는 사소한 차이인 것 같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데 커다란 차이를 가져오게 된다.

세상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실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천부적 재능이라는 필요조건뿐만 아니라 글래드웰이 '사회가 사랑하는 인간의 요건'이라고 표현한 실용지능이라는 충분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최근에 유행하는 '인성이 실력이다'라는 말이 와 닿는다. 실용지능(실용 실력)은 개인의 노력보다는 가정을 포함한 성장 환경이 결정하므로 타고난 능력이 탁월하더라도 '세상에 적합하도록 그들을 준비시켜줄 가족과 공동체가 부족'하면 탁월한 재능은 끝내 빛을 보지 못하게 된다. 부모와 가정, 그리고 지역공동체가 실용지능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점을 감안할 때 가정과 사회의 교육력 회복에 더욱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라. 교육자와 후원자로서의 부모의 영향

아이 교육에서 부모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는 누구나 알고 있다. 학교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부모와 가정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아이 성장에 한계가 있음은 교단에 선 교사들뿐만 아니라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알고 있다. 원래 자녀교육은 부모의 권리이자 책임이었는데 공교육제도가 도입되면서 공교육기관이 학부모의 위임을 받아 교육을 실시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실력주의 사회 구현에 있어서 부모의 영향력이 문제인 것처럼 이야기한다. 심지어 부모의 영향력을 줄여야 한다는 모순적 주장을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부모가 자녀교육을 직접 수행하거나 지원하는 것은 불공정한 것인가? 누구나 공감하듯이 부모가 자녀교육의 1차적 책임자이고,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에 교육학자들과 우리 사회는 부모의 교육력 강화가 학생 교육을 위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공정 경쟁이라는 관점에서는 자녀에게 더 나은 교육을 제공하기 위한 부모의 노력은 부당한 것으로 매도하거나 심지어 과외금지조치 등을 통해 그러한 지원이 불법이 되도록 하기도 했다. 부모 자신이 직접 자녀의 인성이나 지식과 기능적인 역량을 길러줄 때의 부모는 '자녀교육자로서의 부모'이다. 직접 교육을 시키기보다는 타인에게(학교 포함) 자녀교육을 의뢰할 때의 부모는 '교육 후원자로서의 부모'라고 명명할 수 있다. 후원자로서의 부모 역할 중에서 사회가 문제시하는 것은 공교육(모두를 위한 교육)이 아닌 우수교육이나 사교육 후원자로서의 역할이다. 교육자와 후원자, 이 두 가지 역할에 대해 우리 사회가 상반된 입장을 취하는 것은 타당한가?

교육자로서의 부모 역할은 공정성 관점에서는 사람들도 문제시 하지는 않는다. 부모 영향력을 배제하기 위해 모두 공공탁아소에서 길러야한다는 극단론자들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실용지능이나 사람에 대한 사랑과 감사 등을 자연스럽게 배우는 데 있어서 가정보다 나은 기관은 없고, 이미 공산주의 탁아소 실험 등은 실패한 것으로 판명되어 이를 주장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렇다면 부모가 직접 교육을 시키는 것은 괜찮고, 돈(시간과 노동을 팔아 획득한 것)을 가지고 자녀교육을 후원하는 것은 불공정하고 비도덕적인 것일까? 일부 학부모들이 공동체를 만들어 자기가 잘 하는 과목이나 기능을 품앗이 형태로 서로의 자녀에게 가르쳐주는 형태의 공동체형 직접교육도 존재한다. 이 경우는 돈을 교환 수단으로 삼는 대신 노동을 직접 교환하는 물물교환 형태를 띨 뿐 자녀를 학원에 보내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품앗이 형태는 교육공동체라며 권장하고, 학원에 보내는 것은 비교육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것은 타당한 것인가? 실제로 품앗이 교육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자녀를 저렴한 학원에 보내야 하는 사람들보다 가정 여건이 더 나은 경우가 대부분인데도 말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아이의 타고난 능력은 씨앗이고, 가정환경은 씨앗이 자라기 위한 토양이며, 부모는 씨앗을 기르는 농부이고, 실력이라고 하는 것은 씨앗이 성장하여 이룬 결실이다. 만일 자녀를 위한 부모의 노력과 후원 자체가 비실력적 요인이라고 간주한다면 실력 자체가 본질적으로 비실력적인 것이라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부모의 교육자, 그리고 후원자로서의 역할을 억제하거나 통제하려 하는 것은 사회구성원의 실력을 최대한 길러 자신과 사회발전에 기여하게 하려는 실력주의 사회의 취지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그리고 가족제도를 유지하려고 하는 한, 그리고 생물학적 유전자(gene)와 함께 문화유전자(meme)도 전파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을 제거하지 않는 한 이러한 시도는 성공할 수도 없다. 실력을 기준으로 한 사회 재화 배분은 우리 믿음과 달리 본질적으로 공평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이 얻은 결실을 전체 사회 구성원과 공유하는 것이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또 하나의 기준임을 받아들이도록 교육시키는 것, 그것이 교육이 할 수 있는 역할이다. 그리고 실력에 따른 과실의 차이가 너무 커지지 않도록 제도를 보완하는 것, 그것이 사회 영속성을 위해 국가와 사회가 할 수 있는 역할이다.

마. 우수한(불공정한) 교육은 비실력적 요인?

맥나미와 밀러(McNamee & Miller, 2015)는 비실력적 요인에 '우수한 교육'을 포함시키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우수한 교육'이란 부유층을 위한 별도의 교육, 즉 불공정한 교육을 의미한다. 부유층을 위한 우수한 교육(명문사립학교 교육), 사교육은 실력주의 사회에서 실력의 잣대가 되는 실력을 갖추도록 하기 위해 비실력적인 요인(부모의 재력)을 활용하여 불공정한 경쟁을 꾀한다는 점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마이클 영(1958)은 영국의 사립학교를 시장 질서를 교란시키는 '암시장(black market)'에 비유하기도 부른다. 그렇다면 우수교육은 정말 비실력적 요인인가?

우수한 교육과 다른 비실력적 요인은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다른 비실력적 요인은 실력이 아닌 요인이 사회적 재화 배분에 직접 영향을 주기 때문에 실력주의 사회를 교란시킨다는 비판을 받아도 타당하다. 하지만 우수한 교육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실력 자체를 향상시켜 개인이 실력을 갖추게 하고, 사회는 그 실력을 기준으로 재화를 배분하므로 실력주의의 근본 원칙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학교와 교육이 불평등을 대물림하는 잔인한 매개체'(McNamee & Miller, 2015)로 비춰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학교와 교육이 실력주의 사회가 원하는 실력을 키워주는 현존하는 기관 중에서 가장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관점은 학교가 실력을 쌓아주는 곳이 아니라 졸업장을 주어 계급을 재생산하는 곳이라는 학벌주의 관점이다. 이 관점은 실력과 학교는 무관하다는 가정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학벌주의 해체'에서 상세히 다루겠다. 만일 학벌주의자들이 주장하듯이 학교 자체가 '비실력적 요인'의 하나라면 제대로 된 실력주의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학교를 없애야 한다. 학교를 없애면 제대로 된 실력주의 사회가 구현될까?

학교 졸업장이 아닌 자격증을 실력의 기준으로 하고자 하면 자격증을 따도록 돕는 기관을 필요로 한다. 필기시험이 아닌 면접이나 실무 능력을 실력의 기준으로 하고자 하더라도 이를 길러줄 기관은 필요하다. 그렇다면 어떤 기관 혹은 제도를 통해 실력을 기르게 하면 학교보다 더 공평하게 부모의 영향을 최대한 배제하면서 실력을 쌓도록 할 수 있을까? 실력을 길러줄 학교가 아닌 제2의, 제3의 기관이 생겨나더라도 높은 사회경제적 지위를 가지고 있는 부모는 자녀를 위해 '우수한 제2의 기관'을 만들거나 그러한 기관에 자녀를 입학시킬 것이다. 마이클 영(Yong, 1958)이 이야기한 것처럼 실력주의 사회에서는 그 기관이 무엇이 되었든 실력을 길러주는 기관을 향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실력주의 사회에서 부모의 영향을 배제할 수 있는 실력 향상 기관은 만들어질 수 없다. 그리고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자녀교육(사회가 필요로 하는 실력을 기르는 활동)은 1차적으로 부모의 책임이자 권리인데 부모의 직간접적 영향을 배제한다는 것 자체가 자녀교육의 본질을 무시하는 것이다.

맥나미와 밀러는 실력주의 사회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사립학교만큼 좋은 공립학교를 만들고, '입학이나 채용, 승진 절차를 가능한 한 공개적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McNamee & Miller, 2015). 이는 1970년대 이후 우리나라가 걸어왔던 길이다. 사립학교를 준공립화하여 공교육의 질을 유사하게 만들고, 중요한 실력 잣대가 되는 대학 입학을 공정하고 투명하게 하기 위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제도를 총동원하는 등의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렇게 한 결과 우리사회는 보다 공정한 실력주의 사회가 되었는가?

대입 판단의 잣대(실력)를 보다 공정하고 투명하게, 그리고 타당하게 하기 위해서는 실력 판단 잣대를 그만큼 복잡하고 치밀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그 복잡해진 기준을 고등학교가 준비시켜줄 수 없기 때문에 부모의 추가적인 지원이 더욱 중요해진다. 즉, 보다 치밀한 잣대를 만들어 보다 완벽한 실력주의 사회를 구현하고자 하면 할수록 부모의 영향력은 커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대학 입시가 실력을 제대로 측정하지 못한다는 비판에 따라 입학전형요소를 다양화하고, 이를 측정할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하면서 부모의 배경이 더욱 중요해져 가고 있는 것이 그 예이다. 이것이 바로 '실력주의 패러독스'이다. 실력 측정 잣대를 더욱 치밀하게 만들어 실력주의를 완벽하게 구현하고자 하면 할수록 비실력적 요인이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뿐만 아니라, 실력 잣대를 향한 경쟁과 그로 인한 사람들의 고통은 더 커지게 된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실력주의 사회가 지속되는 한 실력의 잣대가 되는 기관(활동)을 향한 경쟁 과정에 부모의 영향력을 배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경쟁이 치열한 사회에서는 불공정한 경쟁을 줄이기 위한 노력 또한 성공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 시행해온 사교육 대책이 실패한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6. 실력을 기준으로 한 재화 배분시 고려할 점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는 세습사회에서 귀족으로 태어난 사람들이 자신의 부와 권력, 그리고 명성이 자기 노력에 의해 얻어진 것이 아니므로 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사회에 대해 책임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세습이 아니라 실력으로 모든 것을 획득한 실력주의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들에게 사회를 위해 나눔과 봉사를 실천하도록 요청하는 근거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그 핵심의 하나는 성공한 그들이 가장 혜택을 보고 있고, 인류가 더 나은 대안을 찾기도 어려운 실력주의 사회의 그림자가 너무 짙어져 결국 붕괴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실력주의는 결실의 책임을 개인에게 귀속시키려는 경향을 보인다. 그리할 경우 상대적으로 쳐진 능력을 갖고 태어난 사람은 철저하게 소외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나아가 실력이 없는 것은 개인이 노력하지 않은 결과이므로 도덕적으로도 자신을 방어할 수 없는 취약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반면에 실력을 갖추어 사회적 부와 명예, 그리고 지위를 획득한 사람은 모든 것이 노력의 결실이라고 생각하여 자기가 차지한 것은 자기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연예인이나 갑부들이 섬을 통째로 빌려 하룻밤에 수십억 원짜리 파티를 열면서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노력을 통해 타고난 능력에서의 개인차를 어느 정도 극복할 수는 있다. 그러나 타고난 능력의 개인차를 무시하기는 힘들다. 사람들이 다양한 능력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자기가 잘 하는 분야에 집중하면 누구나 잘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이는 사실일 수 있지만 그 잘 하는 분야가 실력주의 사회에서 높은 보상을 받는 분야가 아닐 경우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실력에 따른 보상체제를 도입할 때 누구나 노력을 하면 할 수 있다는 과장된 믿음을 바탕으로 실력 차이에 따른 보상의 과도한 차이를 합리화시키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이에 더해 비실력적 요인이 실력과 재화 배분에 직간접적으로 미치는 영향 또한 지대하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물론 모든 것이 타고난 것이니 실력의 결과는 자연(신)과 사회의 책임이고 개인의 책임은 아니라고 하는 것 또한 극단적인 주장이다. 인간의 약 1%를 차지하고 있는 싸이코패스는 뇌의 전두엽 이상으로 인해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한다. 이들이 잔인한 범죄를 저질러놓고 자기 탓이 아니라 뇌가 그렇게 만들어진 탓이니 뇌를 벌하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범죄학은 인간이 범죄의 순간 그 범죄를 저지를지 여부를 결정할 자율권은 최소한 가지고 있다고 전제하고 있다.

개인이 이룬 성취가 오롯이 개인의 노력 결과만이 아니라 상당 부분 타고난 능력 과 노력적 특성에 따른 결과이고 비실력적 요인의 영향임을 깨닫도록 교육시킬 때, 모든 개인들이 '노력 순수 개인책임론'과 '노력 무한가능론'에서 벗어나 자신의 성공을 사회와 나누도록 어려서부터 교육시킬 때, 실력을 바탕으로 사회적 부를 거머쥔 개인은 그 부의 상당 부분이 자연(신)으로부터 주어진 것임을 깨닫고 사회와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게 될 것이다. 그리고 국가도 갑부들의 선한 의지에만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노력으로 얻어진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사회와 공유하도록 하는 분배제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개인의 노력이 아니라 부모로부터 물려받은(타고난) 재산에 대해서는 소득보다 더 높은 상속세를 물려야 한다는 논리와 일맥상통할 뿐만 아니라 실력으로 얻은 고소득에 대한 누진세제도 도입의 논리적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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