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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2월 05일 13시 15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2월 05일 14시 12분 KST

국정교과서의 반대말은 대안교과서가 아니다

연합뉴스

국정교과서에 대한 대안은 진보교육감의 대안교과서가 아니라 역사교사들의 자율성이다

글 | 권재원 (성원중학교 교사)

역사교과서의 국정화가 확정되고 교육부는 집필진 구성까지 완료하여 개발에 들어갔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모든 것이 안갯속이다. 집필 기준도 공개되지 않았고, 집필진도 공개되지 않았다. 마치 우리가 답을 정해 놓을테니 너희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책 나오면 무조건 외우라고 하는 강짜처럼 보인다.

여기에 대항하여 몇몇 진보교육감들을 증심으로 대안적인 역사교과서, 혹은 역사 보조교재를 개발하겠다는 소식도 들린다. 정식 교과서는 아니고 보조교재지만, 일선 학교에서는 이 역시 상당한 압력으로 느낄 수 있다. 만약 교육부가 발간한 역사교과서와 교육감이 발간한 보조교재가 상반된 이야기를 하고 있다면 일선 교사들은 상당히 곤혹스러워 할 것이다.

물론 국정교과서는 잘못이다. 역사교과서는 이미 검인정 체제가 정착됐고, 더 나아가 자유 발행제까지 바라보는 시점이다. 그런데 2016년에 역사교과서를 국정교과서로 단일화 하겠다고 하니, 퇴행도 이만저만한 퇴행이 아니다. 국정교과서가 잘못인 까닭은 '국정' 교과서이기 때문이지 그 안에 친일미화, 독재미화 등의 내용이 들어 있을 가능성이 커서가 아니다. 따라서 보조교재라는 이름을 달고 나오겠지만 몇몇 교육감들이 공동으로 개발하여 역사교재를 일선학교에 보급한다면 설사 그 내용이 항일, 민주화로 가득하다 하더라도 역시 잘못이다. 역사교과서 문제는 내용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공권력이 역사를 독점하거나 그 해석에서 더 우월한 위치에 설 경우의 위험에 대한 문제다. 교육부나 교육감이나 역사교사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기는 마찬가지다.

역사교육은 올바른 과거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사실 그럴 수도 없다. 우리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한 해석도 합의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역사는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를 파편적으로 남아있는 몇몇 사적이나 사료들을 이용하여 재구성한 것이다. 당연히 해석의 여지가 많으며 합의 가능한 "올바른" 사실들을 가려내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예컨대 "세종대왕은 훌륭한 군주다."라는 내용조차도 이론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확정적이진 않다. 하물며 올바른 사실들만 간추려서 200쪽 남짓의 책으로 정리해서 그것만 가르치자는 주장은 역사교육을 하지 말자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제대로 된 역사라는 교과는 도대체 뭘 가르치는 과목일까? 나라마다 시대마다 다르겠지만, 대부분의 나라들은 역사 교과의 목적을 과거(전통과 문화)의 전승과 재창조, 역사로부터 오늘의 교훈 획득, 그리고 "역사적 사고력" 함양을 목표로 한다. 역사적 사고력은 주어진 자료들을 바탕으로 자기 자신과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공동체를 시간과 연관 지어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래서 오늘날 역사교육은 과거의 증거, 자료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해석), 이 증거들을 논리적으로 연결하여 역사적 사건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과 이야기를 구성하는(재건) 능력을 갖추도록 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마디로 과거 사실을 밝히는 과정 속에서 세상을 보는 안목을 기르는 과정이다. 역사 교과서 역시 이런 과정에서 활용할 다양한 과거의 자료들을 모아놓은 것이지, 조국과 민족에 대한 자부심을 키울 수 있는 자랑스러운 과거 사실들을 모아놓은 것이 아니다. 세상을 보는 안목을 기르기 위해서는 자랑스러운 과거 사실뿐 아니라 부끄럽고 감추고 싶은 사실 역시 골고루 다루어야 하기 때문이다.

2015 개정 교육과정에도 적시되어 있다. 교육과정에 따르면 역사과의 목적에는 "우리나라와 세계 각국이 발전해온 과정을 종합적, 체계적으로 파악함으로써 현재와 미래 사회에 대한 안목을 기르고", "학습자 스스로 역사적 자료를 활용하며 비교, 분석, 종합하는 능력을 향상시키고 과거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시각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분명히 포함되어 있다. 또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오늘날의 사회가 직면한 문제의 역사적 배경과 상호 관련성을 파악하여 현대 세계와 우리나라에 대한 이해를 확대하고", "다양한 역사 자료를 비교, 분석하고 유추하여 역사적 사실을 종합적, 맥락적으로 이해하고", "스스로 문제의식을 가지고 다양한 역사 자료를 검토하는 비판적 사고와 문제 해결 능력을 기름."이라는 구체적인 목표도 명시되어 있다. 그 어디에도 나라사랑, 조국에 대한 자긍심 등등의 말은 나오지 않는다. 국정교과서를 반대하는 진보사학자들의 주장이 아니다. 국가가 편찬하고 공인한(그것도 소위 진보정권이 아니라 보수정권 아래서) 국가수준 교육과정에 나와 있는 그대로다.

그렇다면 역설적으로 국정교과서뿐 아니라 역사를 어떤 특정한 교과서를 통해 가르치는 것 자체가 교육과정을 위반하는 것이 된다. 분명 학생들은 다양한 역사자료를 비판적으로 비교, 검토할 수 있어야 하고, 역사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시각을 경험해야 하는데, 국정 및 특정 교과서에 나와있는 해석과 시각이 아무래도 다른 자료에 나와있는 것들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기 쉽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학생들은 결국 해당 교과서에 나와있는 해석과 시각만 공부하게 되고, 교육과정상의 목표는 달성하기 어렵다.

교육과정대로라면 검인정 교과서 체제의 가장 큰 문제는 역사교과서가 여러 종류가 있었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8종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아무리 8종의 교과서가 있어도 소용없다. 이것들을 모두 수업에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학생들은 이 중 하나의 교과서로 공부해야 하며, 이는 심각한 위반이다.

결국 학생들이 역사적 사실에 대해 폭넓은 해석과 시각을 경험하고, 이를 비판적으로 검토하여 역사적 사고력을 키울 수 있으려면, 사실상 교과서라는 책의 존재 자체가 걸림돌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학생들이 8종 교과서를 가방 가득히 넣어가지고 다닐 수도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해답은 역사 교사에게 있다. 역사 교사가 최대한 엄정하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가능한 다양한 시각과 해석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들을 제공하고, 학생들이 이것들을 스스로 비판적으로 분석, 검토하여 결론에 이르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만약 역사교과서가 필요하다면 이런 자료들을 일일이 찾아다닐 수고를 덜어주는 간편 자료집 수준에서 필요할 것이다.

국정교과서의 반대말은 대안교과서가 아니다. 국정교과서의 반대말은 역사교사의 자율적인 교육과정 재구성이며, 학생들의 비판적 탐구를 격려하는 수업혁신이다. 진보교육감들은 진정 진보적이라면 국정교과서 반대편에서 또 다른 교과서를 만들어서는 안된다. 일선 학교의 교육과정 재구성의 재량권을 넓히고, 교사들의 수업혁신을 지원하는 일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정 대안 역사교과서를 만들고자 한다면, 그 책의 성격이 단지 여러 자료들 중 하나이며 단지 하나의 해석에 불과함을 명시해야 한다. 그것이 국정교과서를 이기는 길이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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