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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1월 26일 06시 30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1월 26일 14시 12분 KST

교권과 인권은 제로섬이 아니다

SBS 뉴스 캡처

교권과 인권은 제로섬이 아니다

글 | 권재원 (성원중학교 교사)

고등학교 교실에서 학생이 교사를 폭행하고 모욕한 뒤, 이를 같은 반 학생들이 동영상으로 돌린 사건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을 충격적인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늘 그래왔듯이 그 순간 흥분하고 격앙되었던 목소리는 벌써 사라지고 이 사건은 잊혀진 사건이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지금이야말로 사건 직후의 흥분을 가라앉히고 본질적인 문제를 성찰해야 하는 시점이다.

그동안 이 사건에 대해서 주로 목소리를 높인 쪽은 한국교총 등 보수단체였다. 그런데 그들은 교권의 침해를 개탄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실제로는 학생인권을 공격했다. 학생인권에 대한 과도한 강조가 교권을 위축시켜서 이와 같은 참변이 일어나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교권과 인권은 제로섬 관계다. 교권이 강조되면 인권이 희생되고, 인권이 강조되면 교권이 실추된다.

그렇다면 진보쪽은? 놀랍게도 전교조 등 진보단체는 반박 대신 침묵하거나 논점을 돌렸다. 그들은 이 사건을 교권침해 사건이 아니라 지나친 경쟁교육, 입시교육, 규제와 통제의 교육의 부작용 정도로 규정하면서 사실상 가해학생에게 면벌부를 내어 주었다. 다른 일각에서는 피해자의 신분이 기간제 교사였음을 들어 이 문제를 학교 내 비정규직 문제로 돌리면서 노동문제로 둔갑시켰다. 진보쪽 역시 교권 강화가 인권을 후퇴시킨다는 제로섬 사고를 했기 때문에 교권이란 단어를 선뜻 꺼내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교권과 인권은 서로 제로섬 관계가 아니다. 교권과 인권은 서로 다른 차원의 권리다. 교권은 다음 세대 젊은이들에게 공동체의 가치를 대변하는 교육자로서 가지는 권위다. 이러한 권위는 그들이 다음 세대 시민들을 양성하도록 공동체, 즉 국가로부터 위임받은 것이다. 국가는 그들에게 그만큼의 전문성과 책무성이 있다고 인증했기 때문에 그러한 권위를 위임했다. 따라서 교권은 무소불위의 것이 아니라 교사가 국가의 공적인 가치, 즉 대한민국의 헌법을 대변하고 있을 경우에만 정당화된다. 그런데 대한민국 헌법의 가장 기본적인 정신은 인권을 기본권으로서 보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대한민국 교사의 교권은 인권과 제로섬이긴 커녕 오히려 인권의 든든한 동반자다.

그렇다면 교권은 언제 제한받을까? 교사가 헌법의 기본정신을 위반하는 교육을 한다거나, 교권을 누릴만한 전문성이 부족하다고 판단될 경우이다. 이 제한은 전자의 경우는 시민적 규제를 통해, 후자의 경우는 전문가 집단, 전문가 공동체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 두 가지가 아닌, 단지 교육의 과정이나 결과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혹은 자신이나 자기 자녀에게 불리하다고 교사에게 압력을 행사하거나 진행 중인 교육의 중단 혹은 변경을 시키려 한다면, 이때 바로 교권침해가 발생한다. 따라서 교권과 제로섬 관계에 있는 것은 학생의 인권이 아니라 교육에 대한 부당한 간섭과 통제다. 학생이 아니라 교장, 교감, 관료 등 이른바 관리자들, 그리고 일부 학부모들이 바로 교권침해의 주범들이다. 이들에 대해 침묵하고 학생에게만 목소리를 높이는 교권수호자들은 비겁하다.

한편 인권은 사람으로서 마땅히 받아야 하는 '존중'을 받을 권리다. 나는 이 '존중'을 남에게 양도할 수 없지만,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의 '존중'을 무시하거나 침해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인권과 가장 극명하게 제로섬 관계에 있는 것이 바로 폭력임을 확인할 수 있다. 폭력은 이유가 뭐가 되었건 간에 그것을 행사하는 순간 이미 다른 사람을 존중받을 인격이 아니라 힘을 가해야 하는 대상으로 만들어 버린다. 폭력의 대상이 되는 순간 그 사람은 더 이상 존중받을 사람이 아니라 사물이 된다. 만약 보수단체에서 학생인권과 교권을 자꾸 제로섬 관계로 생각한다면, 이는 그들이 그동안 학생에게 마음껏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교권으로 착각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주장하는 교권은 교권이 아니라 폭력이다.

이제 문제의 사건을 보자. 이 사건은 교권침해인가? 한눈에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사건의 피해자가 기간제 교사인지, 정규교사인지, 혹은 교사인지 학생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 사람이 누구건 간에 빗자루로 얻어맞고, 신체적 약점인 대머리를 공격당하면서 모욕적인 발언을 들었다면 이는 폭력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사건은 교권침해 사건이 아니라 학교폭력 사건이며, 한 마디로 인권침해 사건이다. 이 사건이 일어나는 동안 학급의 학생들은 그를 교사로 인정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았으며, 다만 조롱과 화풀이의 '대상'으로 사물화 했다.

놀랍게도 이런 일이 학교에서는 드물지 않다. 이 교사가 기간제 교사였다는 것은 문제의 한 단면에 불과하다. 정교사라 하더라도 신체적, 정신적으로 유약하다고 판단되는 순간 학생들의 모욕과 폭력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남학생들로만 이루어진 중고등학교에서 젊은 여교사에게 가해지는 성적인 희롱과 모욕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들은 교사가 아니라 여성을 희롱한다. 문화적 소수자인 원어민 영어교사가 학생들의 집단 따돌림 때문에 사임한 경우도 있다. 이런 사건들은 학생들이 교권을 존중하지 않아서 생긴 일이 아니라, 인간을 존중하지 않아서 일어난 일이며, 왕따 등 각종 학교폭력 사건의 연장선상에서 일어난 일이다. 인간을 존중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교권을 존중할 수 있을까? 전혀 기대할 수 없다.

따라서 이번 교사 폭행사건과 같은 사건이 다시 일어나지 않으려면 그 답은 교권의 강화가 아니라 인권교육의 내실화에서 찾아야 한다. 인권교육은 교권과 제로섬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교권이 존중받을 기초를 튼튼히 하는 것이다.

이는 지금까지 인권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진 각종 교육을 재 점검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그동안 인권교육이라고 하면 "권리"를 찾는 것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그 모든 권리들에 앞서 "인간존중"이 인권교육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다른 사람을 존중할 준비는 전혀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자기 권리만 따박 따박 요구할 수 있는 학생이라면 인권교육을 잘 받은 학생이 아니라 되바라진 학생이다. 인권교육은 그런 되바라진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사실 누구도 인권교육을 그런식으로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런 되바라진 이미지의 발언들이 학생인권을 옹호하는 대표적인 발언처럼 유포되게 만든 책임은 진보쪽에서 무겁게 느껴야 한다.

인권교육은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법을 배우는 교육이다. 그리고 권리에 대해서도 나의 권리 침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권리 침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인권감수성을 기르는 교육이다. 그리고 그 마무리는 어떤 폭력도 용납하지 않는 평화로운 학교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교권을 지키고 교사를 지키는 근본적인 해법이다.

근본적인 해법은 그렇다 치고, 그럼 당장 이번 사건의 가해 학생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히 교칙뿐 아니라 법에 의해서도 엄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인권 감수성은 다른 사람을 존중하지 않고 권리를 침해하면 준엄한 처벌을 받는다는 정의실현 경험을 통해 더 민감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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