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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30일 11시 35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2월 30일 14시 12분 KST

민주주의와 학교

연합뉴스

학부모시민이 바뀌면 학교와 지역사회, 세상이 바뀐다!

글 |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벌써 연말이다. 한 해를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다. 메르스 사태로 두어 달 뒤숭숭하게 보내고 시대착오적인 국사교과서 국정화 회귀와 친기업적 노동개악에 저항하다 2015년이 지고 있다.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를 만들어놓고 예산과 인력을 안 주는 식으로 특조위를 무력화하고 조사를 방해하다 이제야 간신히 청문회가 시작됐다. 대선무효소송은 법에 정한 6개월은커녕 3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대법원은 꿈쩍 안 하고 야당은 관련 대법관 탄핵안조차 내지 못한 채 19대 국회를 마감 중이다. 어느 한 해 달랐으랴만 금년은 유독 피로감이 더하다.

교육계로 좁혀보면 3~5세 누리과정 재정 부담으로 유초중고 교육재정이 파탄으로 내몰리고 있다. 부산대학교 교수 한 분은 대학 총장 직선제를 문자 그대로 죽음으로 지켜내셨다. 조희연 서울교육감은 억울하게도 1심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았으나 2심의 일부무죄 및 선고유예 판결로 기사회생했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공교육과 교육청 조직이 터무니없는 검찰기소로 일대 위기와 혼란에 빠졌었다. 조교육감이 어쩔 수 없이 몸조심하느라 개혁과 혁신의 속도가 늦춰졌다. 그 와중에서도 서울에선 오디세이 학교가, 경기도에선 아이들이 학교를 만들어보는 꿈의 학교 프로젝트가 출범했다. 서울에선 혁신교육지구사업이 활기를 띠면서 지역사회 활동 공간이 커졌다. 인성교육진흥법이 시행되면서 교원의 인성교육 직무연수가 의무화되었고 인성교육의 이름아래 보수교육 진영이 결집 중이다. 내년의 자유학기제 전면 실시를 앞두고 중학교는 그 준비에 한창이나 갈피를 못 잡는 데도 많다.

돌이켜보면 87년 6월의 뜨거운 함성 이후 28년이 훌쩍 지났다. 93년 2월의 문민정부 이후 민주정부 시대도 23년이 흘렀으며 97년 말의 외환위기와 98년 2월의 수평적 정권교체 이후에도 18년이 지났다. 대망의 새 천년이 시작된 지 16년이 지났고 21세기가 시작된 지도 15년이 지났다. 그 사이에 민주화가 진척돼 웬만한 법과 제도, 기구와 절차를 갖췄으며 1인당 국민소득은 2만5천 달러를 넘어섰다. 대한민국의 경제기적은 성장 측면에서는 외환위기 이후에도 간단없이 계속된 측면이 있다. 치열한 민주화 투쟁과 주기적 정권교체, 높은 교육열이 부패비리를 억제하며 경제성장과 선순환을 이룬 덕분이다.

그 사이에 우리 사회는 정보화, 세계화, 고령화, 온난화라는 문명사의 대격변기를 눈으로 보고 몸으로 겪어내는 중이다. 과학기술과 정보통신의 혁명적 발전을 목격했다. 금융과 자본의 세계화로 전례 없는 규모로 한편에선 경제통합과 문화퓨전이, 다른 한편에선 경제전쟁과 문명충돌이 진행 중이다. 정보통신기술혁명은 거래비용과 조직비용을 낮춤으로써 직접민주주의와 공유경제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젖혔으나 다른 한편에선 새로운 경제공룡의 출현을 불러냈다. 한계생산비용이 제로에 가까워 창의와 혁신으로만 돈을 버는 새로운 지식정보경제시대가 미증유의 기회와 벤처의 창을 열어놨기 때문이다. 중국과 인도의 경제적 부상으로 지구적 차원의 자원경쟁이 격화되었으며 기후변화가 누구라도 체감할 수 있을 만큼 뚜렷해졌다. 이와 더불어 부와 소득의 양극화와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었으며 새로운 사회경제체제의 변화 동력에 보통사람의 관점에서 대처하지 못하는 민주주의의 위기와 무력화를 도처에서 목도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재벌금고에는 700조의 이윤이 쌓인 반면 가계금고에는 1200조의 부채가 쌓였다. 청년층은 3포, 5포 시대를 넘어 N포 시대까지 왔다. '저녁이 있는 삶'은 아직도 국민 대다수에게 요원하다. 노조조직률이 10%에 지나지 않는데다 비정규직이 절반에 육박하고 반듯한 일을 그만두는 현실의 정년이 50대 초반인 상황이라 특단의 대책이 없으면 양극화 추세는 계속될 전망이다. 지표상의 경제성장이 보통사람의 삶의 질과 상관없는 전형적인 분배실패 세습자본주의사회로 접어들었다. 민주주의와 삶의 질 관련 국제비교평가로 드러나는 국격도 참여정부 말년인 2007년에 정점을 찍고 계속 미끄럼을 타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여야 모두가 부르짖지 않을 수 없었던 사회경제적 배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선이 끝나자 양극화에 맞서는 경제민주화 정치는 기지개도 켜지 못한 채 실종상태다. 그 결과 양당기득권정치에 대한 일반시민의 혐오는 깊어만 간다. 구조적인 민생문제 해결에는 무능하면서도 자기들 밥상을 챙기는 데는 귀신이니 다른 도리가 없다. 그럼에도 제1거대야당은 총선을 불과 120일 앞두고 내분으로 지리멸렬한 모습을 보이다 결국 한축이 떨어져 나갔다. 내년 총선을 통해서 정권의 일방독주와 권력남용을 견제할 수 있을 만큼 야권이 강해질 전망은 전무하다.

보통사람들의 관점에서 볼 때 한국의 민주주의가 지난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거둔 정치부문의 성적표와 경제부문의 성적표는 초라하다. 5년 단임 대통령제 덕분에 5년 주기로 간단없는 '개혁'의 시대를 살아왔는데도 그렇다. 지금으로서는 한국 민주주의의 활로를 어디에서 찾을지 막막하다. 그나마 2010년 이래로 진보교육감 시대가 열리지 않았더라면 도무지 희망을 발견하기 어려울 정도다. 한국 민주주의는 어딘가 단단히 잘못돼있고 무언가가 결정적으로 빠져있는 게 틀림없다. 그것이 무엇일까.

민주주의의 기본이론에 따르면 정치권력을 남녀노소에게 평등하게 1인 1표로 나눠주고 치열한 정당경쟁과 선거를 통해 대표자를 선출하고 나면 입법, 행정, 사법 권력 간의 균형과 견제가 일어나서 보통사람을 위한, 보통사람이 주인 되는 세상이 만들어진다. 정부와 정치, 경제와 시장이 다 그렇게 돌아가게 돼있다. 정당, 노조, 이익단체와 시민단체가 형성되어 어지간하게 권력을 감시하고 통제한다. 부패와 비리는 최대한 통제될 것이고 공익과 공동선은 최대한 추구될 것이다.

그러나 피와 땀으로 쟁취한 민주주의가 도입된 세상은 이미 경제권력과 사회권력에서 판이하게 차이나는 세상이었지 권력의 진공상태나 '무지의 장막'에 가려진 평등한 세상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망국과 식민지배, 전쟁으로 기득권이 극심하게 흔들리고 약화된 사회였기 때문에 그나마 민주주의의 발전에 유리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민주시민성을 먹고 자란다. 다시 말해서 민도가 일정수준에 오르기 전까지 민주주의는 가짜와 껍데기로 시늉만 내게 돼있다. 민주주의적으로 구성된 권력이 시민과 동떨어져 시민 위에 군림해도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 없이는 제대로 통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발전은 어디서나 공교육과 평생교육 이수율과 높은 시민참여로 나타나는 시민 수준에 비례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높은 교육열은 개도국을 빨리 벗어나는 데 기여했지만 고도의 선진화와 복지국가화에 필수적인 능동적인 민주시민성은 몹시 미흡하다.

의무교육 단계의 학교교육은 보통사람을 위한 보통사람에 의한 보통사람의 민주주의가 기댈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수단이다. 여기서 민주시민성을 기르느냐 못 기르느냐에 따라 민주주의의 속살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청소년기의 학교교육보다 더 영향을 미치는 것은 언론환경이다. 중앙에서 언론을 통제하면 누구도 세상을 달리 볼 힘을 갖기 어렵다. 독재국가가 예외 없이 언론장악에 나서는 이유다. 그렇다 할지라도 학교기간 중에 비판적이고 실천적인 민주시민성을 체득하고 세상에 나오면 언론의 일방적 영향력도 제어할 수 있는 힘이 생기게 마련이다.

크고 작은 모든 권력 중에 선출직의 권력만을 민주주의적 1인 1표로 구성하고 교체한다. 다른 권력은 보통사람들의 1인 1표와는 아무 상관없이 성립하고 유지되며 사라진다. 보통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뿐 영향을 받지 않는 권력들이다. 재벌과 사용자의 권력이 그렇고 관료와 검찰, 판사의 권력이 그러하며 학자와 전문가, 문화예술인의 권력도 같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미 2004년에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개탄했을 정도로 민주주의적 권력은 힘이 약하지만 그래도 보통사람이 기댈 곳은 민주주의적 권력밖엔 없다. 민주주의적 권력을 활성화하고 실질화하는 힘은 오직 보통사람들인 주권자, 흔히 유권자라고 부르는 일반시민들로부터 나온다.

역설적으로 들릴지 몰라도 일반시민의 힘이 강하지 않으면 민주주의적 권력, 즉 선출직의 권력은 다른 권력에 비해 약하게 마련이다. 일반시민이 공동선과 공익, 그리고 보통사람의 권익을 위한 시민정신과 시민행동으로 무장하고 있지 않으면 민주주의의 핵심기관인 선출직의 힘은 재벌과 대기업, 관료와 검찰, 전문가와 엘리트의 힘을 당해낼 수 없다. 야당이 강해야 여당도 강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선출직이 부패비리를 일삼는다면 그것은 선출직이 돈 주는 사람과 유착해서 돈의 부정적 힘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뿐만 아니라 선출직이라는 정치의 세계를 보통사람의 권익에 복무하게 붙잡아두려도 일반시민의 힘이 강해야 한다. 그래서 제대로 된 민주주의의 정치인이라면 보통시민의 힘, 민주시민성을 기르는 데 제1차적 사명을 느껴야 한다. 그래야만 정치인이 부패비리에 빠지지 않을 수 있고 그래야만 정치권력이 다른 사회경제권력을 제대로 제어할 수 있다.

민주주의의 토대인 민주시민성을 강화하지 않고는 부패에 물들지 않고 양극화에 맞서는 강력한 민주정치를 활성화할 길이 없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면 눈길은 자연스레 학교로 향하게 마련이다. 학교에는 학생뿐 아니라 교사와 학부모가 모여 있다. 학부모는 20대 중후반에서 50대 초중반에 이르는 보통시민들의 가장 보편적이고 가장 중요한 존재 양식 중 하나다. 학부모는 예외 없이 생업종사자고 경제활동기의 시민이며 핵심 유권자 층이다. 학부모는 자녀교육에 대한 관심 덕분에 학교교육에 대한 관심을 가질 수 있고 그 덕분에 배후의 공공세계에 대한 이해를 늘릴 수 있다. 최소한 학부모가 아닌 생업종사 시민보다는 학교를 매개로 지역사회와 국가의 공공세계를 이해해야 할 유인과 기회를 더 가질 수 있다. 만약 적극적인 학교운영 참여를 통해서 그동안 무관심했던 학부모를 보다 능동적인 참여시민으로 진화시킬 수 있다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비약적으로 민주시민성을 충전 받고 활성화될 것이다.

공교육에 종사하는 교사는 공교육이란 것이 본디 민주주의를 위한 민주주의에 의한 민주주의의 공교육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다른 어떤 직종종사자보다도 민주주의에 대한 직업윤리적 이해관계가 크다. 공교육의 교사는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과 실천이 다른 직종보다는 남달라야 할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먼저 자신의 교실과 학교에서 작은 민주주의를 구현하며 민주주의의 가치와 신념을 체득해야 할 직업적 필요가 있다. 이런 교사만이 학생을 민주시민성을 갖춘 개방적이고 합리적인 자세로 더불어 살기를 실천하는 민주시민으로 길러낼 수 있다. 절대다수의 교사들이 이렇게 적극적 시민성을 발휘하며 학교와 교무실, 교실을 시민성의 공론 장으로 바꿔놓을 때 교사들이 정치기본권을 쟁취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여기서 그리듯이 학부모와 교사가 먼저 민주시민성으로 각성하면 학생들 역시 그렇게 될 것이다. 학교를 통해 교육의 3주체인 학생, 교사, 학부모가 모두 시민의 덕성과 역량을 갖춘 주권자적 시민으로 거듭나려면 시간이 걸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만큼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확실한 방법은 없다. 그때 비로소 한국의 방전된 민주주의가 충전되고 양극화에 맞서는 힘 있는 민주주의가 가능할 것이다.

마침 기회가 와있다. 진보교육감이 전국의 학생과 교사, 학부모의 무려 85%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진보교육감 시대다. 이미 전국적으로 1천 개가 넘는 혁신학교를 중심으로 학교혁신이 불붙고 있으며 서울을 중심으로 많은 시군구에서 혁신교육지구가 지정되어 지역사회와 학교의 협력과 융합이 활성화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중학교의 자유학기제와 인성교육진흥법도 잘 활용하면 학생, 학부모, 교사에게 새로운 교육과 훈련의 기회를 제공하는 순기능을 할 여지가 있다. 진보교육감들은 이런 일을 최우선 순위로 추진해야 할 책무와 자원, 의지를 갖고 있다. 그러니 섣불리 절망하지 말자. 멀리 보고 희망을 세우자. 학부모건 교사건 학생이건 사람에서 시민으로 제2의 탄생을 경험하며 전인적으로 성장하는 것, 이것이 민주주의를 위한 우리 각자의 진검승부라는 각오를 다지자. 보통사람을 위한 보통사람에 의한 보통사람의 세상을 향해 우리 모두 상호 배움과 상호 각성, 상호 성장을 위한 작은 징검다리를 놓고 희망의 불씨가 되자.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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