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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14일 13시 51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0월 14일 14시 12분 KST

'올바른 역사교과서'란 명칭에 드러난 사관(史觀) 주입 의도

역사 서술에서의 중립은 오직 지배적 힘을 가진 집단의 입장에서 볼 때 중립일 뿐이다. 어떤 수준의 서술이 '올바른'이고 어떤 수준이 '올바르지 않은' 것인가? 올바름의 판단 기준은 무엇이고 누가 정할 수 있는가? 누가 올바름을 일방적으로 판단한다면 이는 '폭력'에 해당된다.

연합뉴스

'올바른 역사교과서'란 명칭에서 드러난 사관(史觀) 주입 의도!

글 | 이찬승(교육을바꾸는사람들 대표)

교육부는 앞으로 국정 교과서를 '올바른 역사교과서'로 명명하기로 했다고 한다. 국정이냐 검정이냐의 싸움은 어떤 것이 옳고 그름을 떠나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이젠 국정이란 표현 대신 '올바른 한국사 교과서'로 부르기로 했다는 뉴스를 접하고 나도 모르게 긴 한숨이 나왔다. 이는 국격을 떨어뜨리는 수준의 유치한 발상 때문이다. '올바른 역사'란 무엇을 의미할까? 이는 너무 극단적인 이념으로 덧칠한 교과서를 만들지 말자는 정도의 의미가 아닐까? 그런데 이념 중립적인 교과서가 지구상에 단 한 권이라도 존재할 수 있을까? 이런 교과서가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역사 서술에 관해 지독한 무지를 나타낼 뿐이다. 역사 서술에서의 중립은 오직 지배적 힘을 가진 집단의 입장에서 볼 때 중립일 뿐이다. 어떤 수준의 서술이 '올바른'이고 어떤 수준이 '올바르지 않은' 것인가? 올바름의 판단 기준은 무엇이고 누가 정할 수 있는가? 누가 올바름을 일방적으로 판단한다면 이는 '폭력'에 해당된다. 비폭력 대화 이론을 창시해 전 세계에 널리 전파한 로젠버그는 학교에서 아동들에게 "옳다/그르다; 맞다/틀리다; 정상이다/비정상이다; 공손하다/불손하다; 머리가 좋다/머리가 나쁘다; 해야 돼/하면 안 돼"와 같은 판단을 하는 것은 모두 폭력이라고 규정한다. 역사관도 주입하려하면 이것도 폭력이다.

또, 국정을 밀어붙인 보수 정부나 이를 반대하고 있는 야권 및 진보진영 모두 비판적 합리주의자 포퍼(Popper, 1902-1994, 영국의 철학자)의 다음 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포퍼는 "내가 틀리고 당신이 옳을지 모른다. 함께 노력한다면 우리는 진리에 더 가까이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오류를 범할 수 있는데, 그 오류는 자신에 의해서나 타인의 도움으로 교정되어 간다. 비판적 합리주의는 비판을 통해 배우며 오류를 제거함으로써 더 발전해 갈 수 있다."란 유명한 말을 남겼다. 포퍼가 말하는 비판적 합리주의에 기반을 둔 사회는 특정한 이데올로기의 독점적 지위나 지배를 인정하지 않는다. 또한 그런 사회는 비판을 허용할 뿐 아니라 상호 비판과 토론에 의해 오류를 교정하려고 노력한다. 이런 사회를 그는 '열린 사회(open society)'라 부른다. 이런 열린사회와 반대되는 사회는 '닫힌 사회'로서 전체주의적인 사회라고 규정한다.

역사 교과서가 검정에서 국정으로 회귀한 것은 '닫힌 사회'의 전형적인 행태다. 보수든 진보든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와 생각만 옳고 상대의 가치와 생각은 틀렸다는 독선과 자기 과신을 내려놓아야 한다. 남의 비판에 귀 기울이고 잘못을 고쳐 나갈 줄 아는 겸허한 태도가 필요하다. 이러한 자세가 보편화될 때 합리적 비판이 가능하고, 그 비판을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일 때 상호 간에 신뢰가 구축되며 진정한 의미의 대화와 토론도 가능해진다. 검정제를 그대로 두었어야 했다. 검정제 속에서 서로의 이념 주입 싸움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상호 노력하는 과정이 있었어야 했다. 이번의 성급한 국정화, 일방적인 국정화 결정은 큰 후유증을 남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번 국정화 사건은 열린 민주주의 발전에도 큰 후퇴로 기억될 것이다.

'올바른 역사관을 심어주기 위해'란 표현의 '심어주기'는 위험한 발상이다. 이는 특정 사관을 '주입'하겠다는 것을 제목에서부터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또 이는 '닫힌 사회'의 발상이고 로젠버그의 정의에 의하면 폭력적 접근이다. 바른 역사 수업은 역사관을 '심어주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시각으로 자유로운 토론을 통해 '이끌어 내는' 것이다. 역사 해석의 최종 판단은 개인의 몫이다. 이것은 2015개정 교육과정이 추구하는 열린 교수학습이기도 하다. 역사관까지 '올바른' 즉 '정답'이 있다는 식의 현 정부의 발상은 누구도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올바름'을 국정 교과서 집필진이 결정할 수 있다는 발상도 심각한 문제다. 얼마 후 생각해보면 '올바른 역사교과서'란 이름은 너무 유치한 발상이며 역사관을 주입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이름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전체주의적 발상이란 비판을 받지 않고 역사 교과서로 인한 사회적 갈등을 줄이기 위해서도, 열린 역사교육을 위해서도 이런 부끄러운 수준의 이름을 쓰지 말아야 한다. 아울러 '역사 교과서 국정화' 결정 역시 철회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에 사는 것이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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