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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9월 24일 11시 07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9월 24일 14시 12분 KST

사람에서 시민으로 | 제2의 탄생을 돕는 공교육

Shutterstock / hxdbzxy

진짜 민주주의

글 |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지난 8월말 저는 어느 국제인권회의에 참석해서 동남아와 인도 대륙 여러 나라들의 인권과 민주주의 현황을 들어볼 기회를 가졌습니다. 안타깝게도 거의 모든 나라들이 껍데기만 있는 가짜 의회, 가짜 인권위, 가짜 민주주의로 몸살을 앓고 있었습니다. 필리핀, 한국, 인도네시아가 차례로 민주화되던 8,90년대와 달리 양극화 세상 속에서 민주주의의 퇴조가 두드러지는 시기에 살고 있는 셈입니다.

요즘 부쩍 정당 경쟁과 선거 등 정치민주주의를 통해 국가와 사회의 민주화, 특히 경제의 민주화를 도모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지난 역사에서 쟁취한 민주제도와 기구라는 것들이 민주시민성의 뒷받침을 받아 끊임없이 충전되지 못하는 이상 얼마나 취약한 것인지 새삼 절감합니다. 어느 나라에서나 선거로 구성된 의회가 입법권과 행정감독권을 행사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정부패와 정치 불신이 사라지질 않습니다. 검경과 군부는 물론 관료제도 그대로고 대기업도 바뀌지 않습니다. 가짜 정당과 가짜 언론이 판치고 관료제가 부패한 상황에서는, 더욱이 대다수의 경제시민에 대한 생사여탈권을 대기업이 가진 상황에서는 정쟁과 선거, 의회로 표상되는 민주주의는 불신과 조롱의 대상이 될 뿐입니다.

보통사람을 위한다는 민주주의, 보통사람에 의한다는 민주주의, 보통사람이 주인이라는 민주주의가 보통사람들에게 철저하게 외면당하는 민주주의의 역설의 이유, 즉, 가짜 민주주의가 만들어지는 이유는 민주주의가 요구하는 주권자적 시민이 너무나 드물기 때문입니다. 투표행위와 정치 조롱만으로 민주시민의 역할을 다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일반시민을 위한 일반시민에 의한 일반시민의 국가와 정부, 법과 제도라는 민주주의의 이상이 현실이 되기 위해서 요구되는, 공동체의 일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주권자적 시민이 너무나 드물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렇게 된 이유는 반드시 공교육까지 거슬러 올라가야만 찾아낼 수 있다고 봅니다. 보통사람의 의식과 가치관은 일반적으로 5살부터 18살까지 누구나가 다니는 학교생활을 통해서 형성됩니다. 누구든지 학교생활과 수업시간을 통해서 이 기간 중에 사람에서 시민으로 제2의 탄생을 경험하지 못한다면 민주주의는 그만큼 취약해질 겁니다. 반면 제2의 탄생을 경험하며 민주시민성을 갖추게 된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나라의 민주주의는 강하고 내실 있게 운영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한마디로 좋은 학교가 좋은 시민을 만들고 좋은 시민이 좋은 정부를 만든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대부분의 아이들은 학교에서 민주시민성의 세례를 받지 못한 채 학교를 떠납니다. 지금도 대부분의 학교에서 실제로 체득하는 가치는 민주주의라기보다는 엘리트주의와 능력주의, 경쟁주의와 시장주의, 국가주의와 권위주의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것이 실제로 우리들의 사회적 DNA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대부분의 보통사람들이 민주시민성과 거리가 먼 의식구조와 가치관을 갖고 살아가게 됩니다. 민주시민 없이 민주국가는 작동할 수 없습니다. 민주시민성의 뒷받침 없이는 민주제도와 기구가 생명력을 갖지 못합니다. 불과 7,8년 사이에 민주주의제도들이 영양실조에 걸리고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는 작금의 현상은 필경 공교육이 제2의 탄생을 못 시킨 결과입니다. 민주시민성 교육에서의 공교육의 실패는 곧 한 나라의 민주주의의 실패로 이어집니다.

일단 학교 문을 나오고 나면 관료제적으로 운영되는 정부·기업부문이나 레드오션 자영업의 세계에서 생업을 영위하느라 민주시민성을 체득할 기회가 전혀 없습니다. 직장과 생업세계는 민주시민성을 가르치고 체득하는 데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가정에서 민주시민성을 교육받는 것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가정에서는 사랑의 인성을 배울 뿐입니다. 만약 학교에서 교육받지 못하는 이상 가정이나 생업의 세계에선 도무지 기대할 수 없는 것이 민주시민성이라면 학교교육의 첫 번째 책무는 민주시민성 교육에 있다고 할 것입니다.

민주시민성을 학교에서 체득한 깨어있는 시민이 없는 상황에서는 의회, 언론, 노조, 학교, 인권위 등 민주주의 기구들이 발붙이기 어렵습니다. 민주주의의 사회적·인적 기반이 약하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힘겹게 쟁취한 민주주의제도들이 다 껍데기만 남게 됩니다. 이런 가짜 민주주의 현실은 아무리 현실을 개탄해도 민주시민성의 강화 없이는 바뀌지 않습니다. 공교육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군대, 경찰, 관료제, 법원, 국가, 통치, 법, 이런 건 옛날부터 있어 왔습니다. 반면 의회는 20세기 중후반 들어서야 보편화된 민주주의제도입니다. 노조와 공교육도 19세기 초반부터 시작해서 20세기 초중반에야 보편화된 민주주의제도입니다. 약자의 호민관, 국가인권위는 20세기 종반의 산물이자 아직도 보편화 중에 있는 민주주의제도입니다. 유엔은 너무 멀리 있고 너무 약한 국가중심 글로벌 민주주의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의회 등 민주주의제도들은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으로 충전되지 않으면 좀비처럼 살아있는 송장으로 전락합니다. 그나마 몇 안 되는 민주주의제도들이 맥을 못 차리면 민주주의와 상관없이 옛날 옛적부터 있어왔던 전통적 통치기구들이 살판이 납니다. 억압, 부패, 착취, 수탈이 현대화된 모습으로 계속되며 보통사람의 민생을 파괴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취약하기 짝이 없는 의회, 정당, 노조, 인권위 등 몇 안 되는 민주주의제도들에 숨을 불어넣는 것은 깨어있는 시민밖에 없습니다. 공교육이 깨어있는 주권자적 민주시민을 만들어내느냐 마느냐에 민생과 민주주의의 미래가 달려있습니다. 학교를 살아있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체험학습장으로 바꿔내지 못하면 민주주의와 민생의 미래, 진보의 미래가 없다는 얘깁니다.

요컨대 일반시민을 위한 일반시민에 의한 일반시민의 민주주의는 오직 학교에서만 교육되고 체득될 수 있는 시민성이라는 제2의 인성을 먹고 자랍니다. 학교가 모든 아이들의 시민으로의 제2의 탄생을 돕지 못한다면 세상에 작은 아이히만들을 길러 내보내는 결과가 됩니다. 친밀한 영역에선 도덕적인데 공적 영역에선 그렇지 못한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는 모두를 도덕적 인간-부도덕한 사회의 딜레마와 죄수의 딜레마로 몰아넣으며 공동선과 공익에 눈감는 사람으로 바꿔냅니다.

이런 상황을 돌파하려면 공교육이 모든 아이들을 시민으로 제2의 탄생을 경험하게끔 길러내야 합니다. 민주주의는 민주시민성을 먹고 자랍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고 갈파한 노대통령은 이 점을 누구보다도 절절하게 깨달았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깨어있는 시민양성에 실패하고 경쟁과 성공만 노래하는 공교육은 사교육의 연장일 뿐 민주사회의 공교육이 될 수 없습니다. 깨어있는 시민과 민주주의는 학교교실과 수업시간에 자라납니다.

공교육의 성패기준을 민주시민성 교육에 둘 때 비로소 어느 나라에서나 가짜 시민의 문제가 해결되고 가짜 민주주의 시대가 막을 내릴 수 있습니다. 공교육이 민주시민성 교육에서 성공할 때에만 취약한 민주주의에 희망과 활력이 생깁니다. 민주주의의 희망과 활력은 민주주의제도 자체보다는 그것을 떠받쳐주는 민주시민성에서 나옵니다. 지금의 정치와 법현실에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마십시다. 답도 희망도 분명히 있습니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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