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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8월 21일 11시 29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8월 21일 14시 12분 KST

인성교육진흥법, 용두사미가 예정된 법률만능주의적 접근

인성교육진흥법의 각종 의무와 책임을 새로 짊어지게 된 학교현장이 인성교육진흥법의 인성교육을 어떻게 수용하고 소화할지는 안 봐도 비디오다. 인성교육 실시계획은 문서로만 남을 것이며 실적 역시 보고서에서만 찾아볼 수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인성교육역량 강화를 위한 교사연수도 형식적으로 제목만 바꿔달 가능성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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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곽노현(전 서울시교육감)

학교폭력대책의 일환으로 인성교육 실시 횟수와 시간 등 실적을 보고하라는 교육청 공문을 받고 고민 끝에 "모든 교과시간"이라고 기재해 보냈다는 학교선생님을 알고 있다. 아마도 교육청이 요구한 것은 학교에서 특별히 실시한 충효예절교육이나 극기수련시간의 합계시수였을 것이다. 교직경력이 짧지 않은 그 선생님이 그걸 몰랐을 리 없다. 다만 인성교육이란 것이 마치 특별교육시간을 통해서만 이뤄지는 것처럼 교육청이 가정한 부분에 대해 교사의 양심상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금년 1월20일 국회에서 여야합의로 통과하고 지난 7월21일부터 시행중인 인성교육진흥법이 인성교육을 파악하는 방식도 동일하다.

인성교육진흥법에 대해서는 여기저기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진보진영에서는 인성교육진흥법이 규정한 8대 핵심인성가치와 역량이 21세기 민주시민성과는 거리가 멀다고 반발한다. 진보적 교육단체들은 한발 더 나아가서 국가가 법의 형식으로 특정한 인성교육의 진흥을 도모하는 것은 그 자체로 헌법이 보장하는 양심과 내면 형성의 자유에 반한다는 입장이다. 교육계에서는 과연 인성이 법과 제도에 따른 계획과 평가로 함양될 수 있는 것인지 회의적 시각이 지배적이다. 특히 학교현장의 교사들은 냉소적이다. 법으로 강제하기 때문에 기껏해야 보고서용 인성교육이나 구태의연한 충효예절교육이 다시 활개칠 것으로 본다. 인권운동과 시민교육 진영은 간신히 자리 잡아가던 인권교육과 민주시민교육이 학교현장에서 설 자리를 잃을 것으로 우려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성교육진흥법에 따라 금년 하반기 중 교육부장관은 인성교육 5개년 종합계획을 수립할 것이고 시도교육감은 2016년 인성교육시행계획을 내놓을 것이며 학교장은 그것을 구체화해서 2016년 학교인성교육실행계획을 짜고 그에 따라 인성교육을 실시할 것이다. 이제 교육부 지정기관은 인성교육전문기관과 인성교육프로그램을 인증하기 바쁠 것이고 그렇게 인증된 인성교육 전문가와 인성교육프로그램이 학교를 휘젓게 될 것이다. 교사들 역시 인성교육역량 강화연수를 받느라 바빠질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해서 우리학생들의 인성이 바르게 함양되고 대한민국이 인성교육의 세계적 선도국가가 될 수 있을지는 지극히 의문이다.

학교폭력사태 대응책으로 시작된 보수진영의 인성교육진흥법 제정운동은 세월호 사태로 큰 탄력을 받아 결국 입법에 성공한다. 그렇지만 세월호 사태는 인성교육진흥법의 인성교육과 특별한 연관성이 없다. 공적 권한을 사적 이익을 취하는 데 악용한 세월호 관련 관피아들이 학교에서 협의의 인성교육을 못 받아서 생겨난 것은 아니다. 이들의 인성이 특별히 나쁘다고 볼 근거도 없다. 모르긴 해도 해수부와 해경 관피아들도 인성교육진흥법이 함양하고자 하는 8대 핵심인성-예와 효, 정직과 책임, 존중과 배려, 소통과 협력-에서 일반인보다 못하진 않았을 것이다. 세월호 사태는 굳이 얘기한다면 협의의 인성교육이 아니라 민주시민성교육을 요구한다고 할 수 있다. 세월호사태로부터 예와 효, 정직과 책임 등 인성교육의 필요성을 읽어낸 것은 합목적성이 떨어진다.

인성교육진흥법이 규정한 인성이 과연 인간됨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지도 논란의 여지가 크다. 예와 효, 정직과 책임, 존중과 배려, 소통과 협력 등 인성교육진흥법의 인성요소들은 한편으로는 시공을 초월한 보편적인 가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체제와 구조, 권력에 중립적인 한계를 갖는다. 한나 아렌트의 관찰에 따르면 아이히만도 이런 의미의 인성에서 뒤떨어지지 않았다. 협의의 인성은 사회체제와 구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악의 평범성과 공존할 수 있는 반쪽 인성에 지나지 않는다. 사회적 관심과 참여, 정의감과 연대감, 체제비판과 저항의식, 인권의식과 생태감수성 등 공동체의 건강을 지켜주는 민주시민성이 통째로 빠져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국가와 지자체, 경제와 기업 등 공적 영역에서 공포와 부패, 위계질서가 지배적인 나라에서는 민주시민성으로 확장되지 못한 협의의 인성은 발 뻗을만한 유효공간이 기껏해야 친밀성이 확보된 사적영역으로 국한된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민주시민성과 결합된 인성만이 우리 삶의 사회적 성격과 조건을 규정짓는 공적세계에서 공포와 부패, 권위주의를 깨고 공동선과 공익을 확보할 수 있다. 한마디로 인성교육진흥법이 진흥하고자 하는 개개인의 품성 중심 인성은 민주적 공동체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는 너무나도 함량미달이다. 여기서도 합목적성의 결여가 두드러진다.

인성교육진흥법의 각종 의무와 책임을 새로 짊어지게 된 학교현장이 인성교육진흥법의 인성교육을 어떻게 수용하고 소화할지는 안 봐도 비디오다. 인성교육 실시계획은 문서로만 남을 것이며 실적 역시 보고서에서만 찾아볼 수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인성교육역량 강화를 위한 교사연수도 형식적으로 제목만 바꿔달 가능성이 적지 않다. 결과적으로 인성교육은 진정성 없는 슬로건이나 구태의연한 충효예절교육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인성교육을 정규교육과정과 별도로 외부전문가가 특별프로그램의 형태로 실시해야 하는 어떤 것으로 상정하는 당연한 결과다.

실제로는 인성을 흔히 인간성 좋다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개인적 품성 세트로 한정하건 그와 함께 민주시민성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확장하건 상관없이 인성교육은 모든 교과시간에 시나브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모든 수업시간에는 교사가 교과지식뿐 아니라 바람직한 인성, 특히 본인의 인성을 전수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성교육을 강화하려면 무엇보다 정규교육과정을 충실히 운용하고 수업방식과 학교문화를 비교와 경쟁 대신 존중과 배려, 소통과 협력이 두드러지는 방식으로 바꾸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인성을 법과 제도, 특히 특정프로그램을 통해서 심화, 발전시킬 수 있다는 발상 자체에 있다. 이는 인성 형성의 사회적, 문화적 기제를 도외시한 단견이다. 학생 인성은 학교현장의 문화와 학교구성원 간의 관계가 얼마나 수평적이고 민주적인지에 따라 큰 차이가 난다. 더욱이 법으로 진흥한다는 것은 법적 강제와 관료제의 개입을 거친다는 뜻이다. 법적 강제는 겉모습을 따라오게 할지는 몰라도 속마음까지 변화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관료제의 개입 역시 모든 것을 형식화하기 십상이라 종이 위의 실적만 쌓일 뿐 실질적 변화를 가져오진 못한다.

문제의 근저에는 법률만능주의가 놓여있다. 입법의 한계에 대한 인식 없이 당위성만으로 법을 제정해선 안 된다. 인성교육진흥법은 선언적인 당위성은 있을지 몰라도 구체적인 합목적성이 의심스럽다. 만약 교육이란 것이 법과 계획, 행정으로 진흥할 수 있는 성격이라면 인성교육진흥법도 괜찮은 입법일 수 있다. 그러나 지방자치와 학교자치, 교사자치를 활성화할 때만 교육이 제대로 살아날 수 있다면 인성교육진흥법은 선의의 오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듯이 한국교육의 병폐가 대부분 교육과 학교의 과도한 국가주의와 관료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면 그것을 부추길 법적 개입은 최소화되는 것이 마땅하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극단적으로는 학교현장에 부족하다 싶은 모든 바람직한 교육영역, 예컨대 진로교육, 민주시민교육이 다 입법사항이 될 것이고 학교현장은 형식적인 계획과 보고, 평가의 악순환에 빠져들 것이다. 형식적으로는 안 하는 게 없는데 실질적으로는 바뀌는 게 없는 학교현장의 모습은 이미 넘치게 보아온 터다. 학교가 법적 강제에 놓여 자율공간을 침해받는 정도에 비례해서 교육은 반드시 후퇴한다. 교사가 보고공문 작성에 시간을 쓰는 정도에 비례해서 교육은 반드시 후퇴한다. 인성교육진흥법에 따른 인성교육은 학교현장에서 또 하나의 잡무로 천덕꾸러기 신세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물론 인성교육은 몹시 중요하다. 인성이 희망이고 인성이 자산이다. 민주시민성을 포함한 올바른 인성함양이야말로 공교육의 가장 중요한 목표라고 할 수 있다. 모두를 위한 공교육은 무엇보다도 민주시민성을 포함한 인성교육에서 성공해야 한다. 다행히 이 목표는 입시경쟁교육과 달리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수단이 인성교육진흥법이라는 데는 회의적이다. 여기서도 답은 혁신학교가 보여주는 전방위적 학교혁신이다. 혁신학교는 무엇보다도 정규교육과정과 다양한 자치활동을 통해 아이들의 인간성과 시민성 교육에서 성공한 학교다. 요컨대, 인성교육이 급하다고 해서 인성교육진흥법을 만드는 식의 입법만능주의적 대증요법으로는 용두사미 이상의 결과를 얻지 못한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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