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2016년 12월 23일 09시 36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12월 24일 14시 12분 KST

학교생활기록부 종합전형(학종)을 위한 변명

뉴스1

글 | 권재원 (성원중 교사/실천교육 교사모임 고문)

요즘 온통 탄핵 이야기가 가득하다. 교육계에서도 박근혜 대통령 뿐 아니라 국정교과서 등 박근혜표 교육정책도 탄핵되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분분하다. 여기서 그런 이야기를 더 보탤 필요는 없을 것 같으니, 여느 때 같았으면 한창 이슈가 되었을텐데 탄핵 때문에 가려져 있는 주제를 꺼내어 본다. 다름아닌 대학 입시다.

대통령 탄핵 표결을 바로 앞둔 12월 7일은 대입 수능 성적표가 나오는 날이었다. 또 지금 서울대학교를 필두로 수시 합격자 발표가 속속 나오고 있다. 이달 말부터는 아직까지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지 못한 수험생들이 정시 모집에 지원할 것이다. 이렇게 용어 뜻만 가지고 말하면 마치 특별한 일부의 지원자만 수시로 뽑고 나머지 대부분은 정시로 뽑는 것처럼 들린다. 어른들 정서에는 수능 점수를 가지고 한 줄 세워서 커트라인으로 자르는 정시가 제대로 실력을 겨루는 대학 입시처럼 보이며, 이런 저런 서류 제출하고 면접해서 뽑는 수시는 제대로 실력을 볼 수 있을지 의심스럽기만 하다.

그런데 현실은 반대다. 서울대학교는 거의 75%를 수시로 뽑는다. 그나마 85%까지 늘렸다 다소 줄인 것이다. 고려대학교는 장차 수시 선발 인원을 80% 이상으로 늘린다고 공언했다. 수시가 정식 선발이며, 정시가 오히려 추가 선발 정도의 부수적인 위치에 있다. 해마다 수능 시험일이 되면 전국이 계엄상태가 되지만, 의외로 수능은 대학입시의 주연이 아니다. 수능의 기능은 1차적으로는 수시모집이 요구하는 등급 컷 통과용, 그리고 수시에서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을 경우 정시에도 도전하기 위한 일종의 보험이다.

어느새 우리나라의 대학입시가 사실상 바뀌었다. 학력고사든 수능이든 시험을 쳐서, 그 시험 점수로 줄을 세우는 전통적인 입시는 이제 20% 남짓한 지분만 남은 구시대의 유물이 되었고, '서류전형(학교 생활기록부, 자기소개서, 추천서 등) + 구술/면접/실기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수시가 가장 전형적인 대학입시가 되었다. 흔히 일반인과 언론은 이를 학종(학교 생활기록부 종합전형)이라고 부른다. 학종은 내신성적뿐 아니라 생활기록부 전반을 두루 검토하고, 학생의 자기소개서, 교사의 추천서 등을 참고하여 해당 학생의 적성, 자질, 리더십, 학교생활, 인성, 기타 모집단위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특기나 가치 등을 종합적으로 파악하는 평정 방식을 말한다.

그런데 최근 학종에 대한 학교 안팎의 공격이 거세다. 안에서의 공격은 주로 정시로 입학한 학생들이 수시로 입학한 학생들을 무시하거나 혐오하는 방식으로 나타났다. 우선 이른바 명문대학에 수능정시로 입학한 학생들이 수시로 입학한 동료학생들을 공격했다. 서울대학교에서는 일부 정시 합격생들이 수시의 한 종류인 지역균형선발 입학생들을 '지균충'이라는 혐오표현까지 사용하며 멸시함으로써 사회적 공분을 일으켰다. 자기들은 수능 네 영역 모두 1등급을 받고 들어왔는데, 소위 수시충들은 생활기록부에 이런저런 기록 좀 집어 넣고, 면접 때 말 좀 잘하고서는 겨우 수능 세 영역 2등급으로 들어왔으니 같이 취급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들의 일그러진 자부심을 질타하는 진보 언론 역시 학종을 공격하면서 결과적으로 정시를 옹호하는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보여주었다. 정시는 공부 열심히 해서 시험 잘치면 "개천에서 용날 수" 있는 기회를 주지만, 수시는 부유층 학생들에게 유리하다는 것이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구술 면접은 각종 인문학 독서, 토의토론, 스피치 훈련을 받은(주로 사교육을 통해) 학생이 유리하고, 학종은 생활기록부에 다양한 볼거리, 즉 스펙을 많이 넣을 수 있는 특목고나 자사고 학생들이 유리하다는 것이다.

이런 식의 공격이 이어지다 보니 학종을 부잣집 아이들이 시험이라는 관문을 피해 쉽게 명문대학 가는 지름길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시험 쳐서 대학가는 방식으로는 가난한 학생들과 같은 조건에서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돈이 없어서 사교육을 못 받으면 감당할 수 없는 방법으로 대입을 바꾸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거리가 멀다. 학종이 아니라 학력고사 시험 한 번으로 대학 입학을 결정짓던 시절에도 이른바 강남 8학군 학생들의 진학률은 다른 지역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높았다. 서울대학교를 예로 들면 전체 신입생 중 강남 8학군 출신 학생의 비율이 가장 높았던 시기는 학종도 없고, 사교육도 없었던 1985년으로 1만명 당 서울대 입학생 숫자가 전국 평균의 4배나 되었다. 이 비율은 각종 수시입학이 확대되면서 사교육이 활성화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5배 정도로 줄어들었다. 시험 점수로 줄을 세우는 방식의 입시야말로 가장 '강남친화적'인 방식이었던 것이다.

이런 문제를 떠나 우선 대학입시의 목적을 따져 보아도 학종에 대한 비난은 지나치다. 대학입시의 목적은 개천에서 용나게 하는 것이 아니다. 명문대학에 입학했다고 해서 용이 되는 것 자체가 이미 잘못이다. 대학입시의 목적은 그 분야의 공부를 잘 할 소양이 있는 학생을 선발하는 것이다. 대학은 고등 교육기관이며 전문 교육기관이다. 대학은 시민으로서 갖춰야 할 일반적인 소양을 갖춰주는 곳이 아니라, 그 시대가 요구하는 분야의 실력있는 전문가를 길러내는 곳이다. 이 때 실력은 단순한 학업성취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주도적 학습능력, 자기관리능력, 사회적 상호작용 능력 등을 모두 포괄하는 것이다.

이런 능력들이 수능과 같은 시험이라는 방법으로 평가될 수 있을까? 시험이 실력을 평가하지 못한다는 비판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런 능력을 평가하려면 실제 그 학생이 학습하는 과정, 생활하는 과정, 문제에 직면해서 이를 해결하는 과정을 관찰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학 입학사정관이 미리 어떤 학생을 점 찍어 놓고 몇 년간 관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학교 교사가 몇 년에 걸쳐 관찰하고 기록한 생활기록부를 통해 확인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학종이 등장한 것이다. 물론 기록만으로 학생을 완전히 파악할 수는 없으니, 좀 더 정밀한 평가를 위해 구술, 면접, 기타 각 모집분야별로 특색있는 평가방법을 활용하는 것이다. 어느 경우에나 시험은 그 대안이 될 수 없다.

학종 초창기에 부유층 학생이나 자사고, 특목고에게 유리한 빈틈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지금도 그들이 정보력을 동원해 빈틈을 계속 노릴 수는 있다. 하지만 지속적인 점검을 통해 그런 부분들을 해결하면 될 일이며,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 예컨대 부유층 학생들이나 특목고에 유리한 각종 올림피아드 수상 실적 따위는 아예 생활기록부에 기록하지 못하며, 자소서 등에서 이를 언급하거나 암시하면 아예 0점 처리한다. 또 정보력과 돈을 이용한 스펙을 방지하기 위해 학교 바깥에서 이루어진 활동이나 수상내역은 생활기록부에 기록하지 않는다. 심지어 교내외를 막론하고 수상기록 자체를 반영하지 않는 학교도 있다. 독서활동 기록 역시 고액의 독서논술 사교육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상세하게 독후감을 기록하는 방식에서 저자명과 책 제목만 쓰는 것으로 바뀌었다. 생활기록부를 알차게 채우기 위해 값비싼 사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실상 학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지레 짐작으로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학종에서 유리한 생활기록부를 만드는 방법은 별다른 것이 없다. 학교 생활을 충실히 하는 것, 시험에 들어가는 것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비교과 활동에도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교사, 특히 자신이 진학하고자 하는 분야의 교과 교사와 적극적인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다. 사교육을 많이 받은 학생, 특히 선행학습을 많이 한 학생은 오히려 학종에 불리하다. 아무래도 학원 때문에 학교의 각종 활동을 등한시하기 쉽고, 미리 배운 내용 때문에 수업시간에 소극적이거나 비참여적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학종에서 이런 저런 문제가 발생할 수는 있다. 아직 10년도 되지 않은 제도이니 안정화되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수능 하나로 줄세우던 그 방식으로 돌아가자거나, 정시를 확대하자는 주장만큼은 절대 해서는 안된다. 애초에 학종은 실력은 없으면서 시험 점수만 높은 학생들이 막상 실력이 필요한 순간에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등장한 것이다. 시험으로는 실력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고, 21세기가 요구하는 실력과 역량은 시험과 점점 더 거리가 멀어지고 있음이 분명한데도 단지 개천에서 용 날 가능성 때문에 그런 구시대적 방식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한다면 이는 교육을 다른 것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반교육적 발상이다. 더구나 시험으로 줄세우는 방식은 개천에서 용 나기 유리한 방식도 아니었으며, 사교육을 줄이는 방식도 아니었다. 학종이 최선의 대입제도라고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이를 계속 수정 보완하여 정착시키는 것이 현재로서는 최선의 선택일 것이다. 설사 다른 대안이 나오더라도 이는 시험으로 한 줄 세우는 방식은 아닐 것이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2016-05-19-1463620041-3526653-.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