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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9월 06일 07시 27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9월 06일 14시 12분 KST

'썸' 남발 시대에 부쳐

팜므팥알은 연애 중

처음 '썸'이라는 말이 등장했던 때를 생각해보면, 그것은 생각만으로도 우리를 벅차게 만드는 산뜻하고 신기한 신조어였던 것 같다. 연애하기 직전 간질간질한 감정과 사건을 떠오르게 하는 그런 것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어떤 노래가 유행하더니, 온갖 방송과 미디어에서 이 단어를 이상하게 남발하기 시작했다. '썸'이라는 미명 아래 연애라는 뜨겁고 복잡한 것을 지극히 가볍고 하찮고 얄팍한 것으로 만들어버리기 시작한 것이다. 관계 안에 진지함은 사라졌고, 순간의 휘발적 설렘만 남았다.

long

일러스트레이션/ long

키스하면 썸이고 손만 잡으면 썸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놈의 썸이 도대체 무엇이며, 어느 정도까지 진행돼야 썸인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키스하면 썸이고 손만 잡으면 썸이 아닌 것인가? 사람 간의 관계라는 것이 인터넷 카페 자동 등업 기능도 아니고, 데이트나 전화 통화 몇 회 이상 달성하면 별 색깔이 은색에서 금색으로 바뀌면서 저절로 썸이 되고 연인이 되고 하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나와 상대가 마음을 정하지 않은 그 내 거냐 네 거냐 알 수 없는 애매모호한 관계가 마치 이 시대의 트렌드를 지배하는 양 착각에 빠질 때가 많다. 그 쿨한 관계가 결국에는 당신을 울게 만들 수도 있는데 말이다.

혹시 썸꾼이세요?

왜냐하면 이 썸은 악용될 때가 종종, 아니 꽤 많이 있기 때문이다. 연애하면서의 달달함, 그리고 스킨십은 누리고 싶지만 연인으로서 관계를 이어가고 책임지는 것은 피하고 싶은 비겁한 이들에게 말이다. 이런 썸꾼들은 우리 주변에 생각 외로 꽤나 다양하게 포진되어 있다. 착실한 교회 오빠도, 순진한 눈망울의 동아리 후배도, 늘 이성적인 '남사친'(남자 사람 친구)도 얼마든지 순식간에 썸꾼으로 변모할 수 있다. 새벽 무렵 클럽의 에어컨 앞에서 지분대는 클럽남들만 가벼운 것은 아니란 거다. (물론 남녀 반대의 경우도 상당수 있다.) 서로의 감정을 인정하고 존중하지 않는 이라면 그 사람의 평소 행실이 어쨌건 간에 썸꾼이 되어 당신과 얄팍한 관계만을 이어가려 할 수 있음을 기억하라. 당신이 그렇게 썸꾼과 썸만 실컷 타고 난 뒤 '이럴 거면 그러지 말지'라며 홀로 처연한 엔딩을 맞이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껍데기뿐인 썸이여 가라

지금 달달하고, 잠깐 외롭지 않으면 만족스럽고, 굳이 관계를 지속하거나 진전시키고 싶지 않은 썸꾼들. 정확하게 치고 빠지며 밀당을 수준급으로 구사해내는 당신들은 그래, 뭐 일단 '대다나다'. 두 사람 모두가 이렇게 야트막한 관계로도 충분히 만족스럽다면 문제가 아니겠지만, 그래도 어느 한쪽은 진지하게 상대방을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만약 그런 경우라면 정확하게 당신 마음을 돌아보고 제대로 처신하는 것이 좋다고 말하고 싶다. 나와 그 사람이 동시에 이 관계에 책임을 가지고 애정을 갖지 않으면 스킨십이 어디까지 갔느냐, 데이트를 몇 번 했느냐와는 상관없이 그 관계는 그 무엇으로도 이름 붙여지기 어렵다. 지금 당장은 이것이 가볍고 머리 아프지 않아서 좋다고 말할지 몰라도, 분명 언젠가는 공허함이 찾아온다. 머리는 아무리 아니라고 말하고 생각해도 마음이라는 것은 늘 '진심'을 갈망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찾아올 당신의 진짜 사랑을 위해서, 껍데기뿐인 썸은 그만 보내주시길.

* 이 글은 <한겨레21>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