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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8월 23일 07시 29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8월 23일 14시 12분 KST

조금의 확신, 그거면 돼

팜므팥알은 연애 중

결혼을 일찍 하고 싶었던 적은 없었다. 어릴 적부터 '막장 드라마'와 <사랑과 전쟁>을 열혈 시청한 탓에, 결혼을 떠올리면 달콤한 로맨스보다는 시월드와의 파이트 한판이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기도 했고, 여중생 시절에 읽은 양귀자 선생님의 소설 <모순>은 당시 중2 소녀에게 신혼의 단꿈을 와장창 깨버리기에 충분했다. 아무튼, 그렇기에 내게 결혼은 문과생에게 미적분과 같은, 그저 머나먼 딴 세상 이야기였다. 그랬다. 그 소녀가 스물아홉 살이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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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long

아홉수 따위를 믿지는 않지만, 왜 그 스물아홉이 엿 같은지는 정말 뼈저리게 알 것만 같다. 그 나이가 되자 거짓말처럼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 내게 엿을 선물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자꾸만 내게 청첩장을 쥐어줬고, 사소한 말다툼이라도 일어날라치면 가족은 내게 "얼른 시집이나 가버리라"는 폭언을 했다. 그러나 나를 가장 참을 수 없이 만드는 것은 이렇게 단순하게 한 번 빡치고 마는 사건들은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내 옆에 있는 그 남자친구가 내게 결혼 이야기를 전혀 꺼내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나를 아홉수를 처절하게 맞은, 세상에서 가장 비참하고 초조한 여자로 만들고 있었다.

결혼이란 것이, 더 이상 해피엔딩을 위한 예쁜 그림 한 컷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한국에서 결혼을 준비하는 남자가 갖는 부담감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짐작이 가고. 지옥 같은 취업 전쟁을 겨우 넘은 최근의 몇 년 벌이가 얼마나 깃털같이 가벼운지도 너무 잘 안다. 그래서 쉽사리 그 무거운 '결혼'이라는 이야기를 꺼낼 수 없다는 것, 충분히 이해한다. 여자도 마찬가지다. 역시나 잔고는 텅텅 비어 있고, 빚지고 싶은 마음도 없고 또 겁도 난다. 그런데 우리 세대가 아무리 '삼포세대'라도, 다 포기한다 쳐도 말이다. 그래도 우리는 사랑하는 서로를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닐까. 적어도 그동안 우리가 그토록 뜨겁게 이야기한 사랑의 모습은, 힘들다고 포기하자고 말하는 그렇게 손쉬운 것은 아니었지 않은가.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에 목숨을 걸자는 것은 아니다. 결혼하지 않는다고 상대방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단정짓는 억지를 부리고 싶은 것도 아니고. 그러나 스물아홉에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 이야기를 하고 싶은 그 마음은, 불안정한 그 시기의 내가 사랑하는 당신에게 평생을 함께해도 좋을 사람이라는 인정을 받고 싶다는 마음이다. 그만큼 깊이 나를 생각하고 있다는 확신이 절실한 것이다. 당장의 사정과 상황을 무시하고 무리해서 일을 벌이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힘들어도 이 흙탕물에서 기꺼이 함께 물장구를 쳐보지 않겠느냐고, 너랑 함께라면 그것도 버틸 만한 엿인 것 같다고 마주 보고 웃고 싶은 것. 스물아홉의 연인이 가장 바라는 것은 그 어떤 호화스러운 결혼식보다도 당신의 이런 진심 한 토막이다.

연애킹 <섹스 앤드 더 시티>의 캐리도 웨딩드레스를 입고, 천하무적 이효리 언니도 제주도 무슨 댁이 되어 온화한 얼굴로 앞치마를 두른다. 그러나 언니들이 어쨌건 간에 나의 답은 정해졌다. 앞치마를 두르든 아이언맨 슈트를 입든, 무엇을 한다면 나는 당신과 함께하겠노라고. 그리고 당신도 나와 같은 마음이라면, 내가 몇 살이든지 내 호적이 어떤 상태이든지 상관없이 조금 더 용기를 내보겠노라고. 그러니까 당신도 내게 조금은 확신을 주면 좋겠다고. 삼포세대를 지나는, 소심한 남자친구를 둔, 스물아홉 여자의 결혼에 관한 결론은 그러하다.

* 이 글은 <한겨레21>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