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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1월 24일 11시 20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1월 24일 11시 46분 KST

[허프인터뷰] 작곡가 진은숙이 서울시향을 떠난 이유를 직접 해명하다 -1

진은숙이 사임했다.

진은숙은 2004년 그라베마이어상, 2005년 아놀드 쇤베르크상, 2010년에는 피에르 대공재단 음악상 등 최고 권위의 상을 잇달아 수상했으며 최근에는 아시아 최초로 '비후리 시벨리우스 상'을 수상한 인물이다. 그가 작곡한 곡은 세계 유명 오케스트라를 통해 공연되는 등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곡가이기도 하다.

다른 한편으로 진은숙은 서울시향에서 "돈 안 되는" <아르스 노바>를 10년 넘게 운영하고 있다. 12년이라는 시간 동안 상임 작곡가로 활동하는 등 '특혜논란'에 선 인물이다.

지난 2016년 정명훈에 이어 진은숙 작곡가까지 차례로 서울시향을 떠났다. 둘 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음악인이지만 그 끝은 좋지 못했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 남은 말은 대체로 비슷하다. 고액연봉 논란, 자리 채우기 논란, 명성을 이용한 특혜 논란, 부도덕한 처신 등. (정명훈과 관련된 내용은 여기에서 자세히 알아볼수 있다)

진은숙 작곡가는 자신과 서울시향을 따라다니는 온갖 오해들을 해명하기 위해 직접 입을 열었다. 그가 밝힌 사임의 이유는 어느 한 가지를 대표해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길고 복잡하다. 하지만 인터뷰를 지켜본 결과 그가 떠난 이유는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 관행처럼 굳어진 사회의 부조리, 정치적 이해에 따라 달라지는 결정, 그리고 미디어의 자극적인 보도.

아래는 “왜 그는 서울시향을 떠났는가?”, “서울시향에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가”에 대해 홍형진 소설가가 묻고 진은숙 작곡가가 답한 내용이다. 그리고 이는 우리사회 여러 곳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부조리’들의 내막을 엿볼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소설가 홍형진은 음악 애호가로서 오랜 시간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허프포스트 등에 관련 글을 기고해왔다.

[관련 기사] '아르스 노바' 10년치 성적표를 받아 든 서울시향

[관련 기사] 정명훈에 이어 진은숙을 떠나보내며

- 편집자 주

홍형진 |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나는 당신의 사임을 예상하지 못했다. 지난해 11월 3일에 베를린 필이 당신의 신작을 연주했는데, 그날 실황이 담긴 디지털콘서트홀 영상에는 당신의 인터뷰도 있다. 거기서 당신은 인터뷰의 상당 부분을 서울시향의 성과와 미래를 홍보하는 데 할애했다. 적어도 몇 년은 더 함께할 분위기였다. 그래서 올 초의 사임 소식이 꽤 의외로 다가왔고, 어쩌면 급작스러운 계기가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도 든다. 사임을 결정한 배경이 있나?

진은숙 | 많은 분에게 나의 사임이 갑작스럽게 보일 수 있으나 사실 지난 4~5년간 꾸준히 마음의 준비를 해왔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이유로 떠나더라도 좋은 마음과 모습으로 떠나겠다고 꾸준히 다짐했었다.

바깥에는 얘기하지 않았지만 작년 9월경에 시향을 떠날 때가 왔다는 것을 감지했다. 그래서 11월에 서울을 방문했을 때 아무도 모르게 신변을 정리했다. 언급한 베를린 필과의 비디오 인터뷰를 찍을 때도 이미 나는 연말에 시향을 떠나게 될 것을 알고 시향을 대외에 선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십분 활용한 것이다. (웃음)

만약의 경우를 위해 작년 9월 말에 전체 단원 앞에서 마지막 인사를 했다. 내가 시향을 떠날 것이라고는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그동안의 내 역할과 음악적 비전을 설명하고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시향에 대한 나의 진정성은 잊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언론에 밝힌 바와 같이 11월 서울 방문 때 사임을 발표하고 지인들에게 최소한의 인사라도 할까 고민했지만, 상임 작곡가로서의 계약이 남아있는 12월 31일까지는 시향을 향한 마음의 문을 닫고 싶지 않았다. 또 성급한 사임 발표가 연말에 있을 시향의 2018년 예산 심의에 혹 영향을 끼칠까 하는 우려도 있어 기다리기로 결정했다.

시향 사무국 직원들과 사전에 조율하진 않았지만 많은 직원이 짐작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1월 2일 새해 첫 출근에 사임 소식을 접하고 심히 충격을 받았을 것 같아 많이 미안하다. 하지만 내가 사무실 직원들에게 그걸 미리 알리고 대외에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를 논의했다면 그 과정이 서로에게 얼마나 힘들었겠나. 또 많은 업무를 맡은 직원들이 내 일로 시간을 허비하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보도자료를 혼자 만들어 모든 분들께 직접 발송했다.

내가 시향을 떠나기로 결심한 이유는 극도로 복합적이라 언론을 통해 모든 것을 설명하기는 불가능하다. 수년간 여러모로 어려움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결국 떠난다는 결정은 스스로 했다. 공연기획자문과 상임 작곡가로서의 계약이 각각 9월 말과 12월 말로 종료됐다. 계약 연장을 비롯해 앞으로의 거취를 논의하고 결정할 권한이 있는 대표이사 자리가 공석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렇게 사임을 결정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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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형진 | 마음의 준비를 했다고는 하지만 12년간 몸담은 곳을 떠나는 것이니만큼 생각이 복잡할 것으로 보인다. 시향을 떠난 지금의 심경은 어떠한가?

진은숙 | 12년 동안 몸담은 곳을 떠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동안 시향은 나에게 하나의 ‘직장’을 넘어서 나의 음악적 정열을 불사른 곳이었다. 사임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나를 아끼는 주변 분들에게 조언을 들었고 특히 가족과 많이 상의했다. 지난 12년 동안 시향은 우리 가족에게도 인생의 너무나 중요한 부분이었고, 시향이 이뤄낸 성과는 내 가족에게도 큰 보람이었다. 하지만 끊임없이 지속된 여러 문제가 우리 일상에서 기쁨을 앗아갔다.

내 아들 리윤은 네다섯 살 때부터 내가 시향 일로 한국에 올 때마다 항상 동행했다. 그에게 시향은 엄마가 속해 있는 '변할 수 없는 가족'과 같은 존재였다. 그동안 내가 시향을 떠날 것 같은 위기가 있을 때마다 "엄마는 시향에 속한 사람 아니냐?"며 떠나는 것을 만류해왔다. 하지만 이번엔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린다"며 마음을 접는 문자를 보내왔다.

스스로의 결정으로 시향을 떠난 지금은 상상외로 담담하고 마음이 편하다. 떠나기 직전의 몇 개월이 너무나 힘들었기 때문인 것 같다. 특히 시향을 마지막으로 방문한 지난 11월의 2주 동안은 정말 힘들었다. 그래서 11월 20일에 있었던 베를린 필의 내한 연주에 참석하지 말고 일찍 돌아올까 고민도 했었다. (이날 베를린 필이 진은숙의 신작 ‘코로스 코르돈’을 연주했다. – 홍형진) 당시 내가 처한 현실과 베를린 필 연주라는 거창한 자리 사이의 괴리감이 너무 크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스터 클래스를 비롯한 시향에서의 모든 일정과 베를린 필 연주까지 계획했던 대로 다 마치고 왔다. 그렇게 하기를 잘한 것 같다.

시향을 떠난 지금의 심경이 어떻게 좋기만 할 수 있겠는가? 나도 한 인간으로서 그동안 겪은 여러 어려움과 부조리한 상황에 엄청난 분노와 참담한 회한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가 스스로 해결해야 할 마음의 짐이다. 언론을 내 한풀이를 하는 데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실제로 12년간 시향에서 겪은 일 중에는 좋은 기억이 더 많았다. 시향을 떠난 지금으로서는 오로지 좋은 기억만을 간직하고 싶다.

2005년 법인화 이후 10년간 많은 분이 자의 또는 타의로 시향을 떠나갔다. 그중 대다수가 시향에 대한 섭섭함과 원망, 심지어는 한에 맺혀 복수심을 불태우며 떠난 것으로 알고 있다. 지난 수년간 가장 공포스러웠던 것이 그렇게 시향을 떠나는 나의 모습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동안 겪은 어려움이 거꾸로 나로 하여금 이 어려운 상황을 잘 견뎌 나갈 수 있는 힘을 갖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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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형진 | 당신이 떠남으로써 서울시향은 예술감독, 대표이사에 이어 상임 작곡가까지 공석이 됐다. 자연히 리더십 부재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서울시향 내부의 실제 분위기가 어떤지, 그리고 앞으로의 방향에 대한 나름의 청사진은 갖고 있는 상황인지를 알고 싶다.

진은숙 | 내가 떠남으로써 현재 서울시향의 모든 요직은 공석이 되어버렸다. 이미 둘이 부재한 상황에서 나까지 나가는 상황은 막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유감이다. 하지만 달리 보면 위기가 거꾸로 좋은 기회일 수 있다. 조만간 새로운 대표이사가 선임될 것이고 이런 상황은 오히려 (새로 올 대표이사가) 과거의 잔재 없이 새로운 미래를 쌓아나갈 수 있는 좋은 여건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누가 될지는 모르지만 그분이 나의 거취나 역할을 둘러싼 공방이나 공격 등 과거의 유산을 넘겨받아 어려움을 겪으며 운신의 폭이 좁아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아무도 없는 현재 상황이 진정한 새 출발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했고 그래서 그분이 임명되기 전에 시향을 떠난 것이다. 시향의 모든 향후 계획이나 미래의 청사진도 새로운 대표이사와 차기 상임 지휘자가 만드는 것이다. 나는 시향을 떠난 사람이기 때문에 이 이슈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홍형진 | 마이클 파인이 사임하며 공백이 생기자 그를 메우기 위해 1년 남짓 공연기획자문역도 겸직했다. 정기공연 전반의 기획을 관장하며 해외의 지휘자, 협연자와 긴밀하게 교류하는 중요한 포지션이다. 이 부분에서도 다시 공백이 생길 것으로 보이는데 대안이 마련된 상황인가? 이제 서울시향에는 국제적 명망과 네트워크를 가진 인력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진은숙 | 정명훈 전 음악 감독의 사임 후 공연기획자문역의 마이클 파인도 떠나갔다. 당시 대표이사였던 최흥식 대표(현 금감원장)가 공연기획도 맡아달라고 부탁했을 때 처음엔 고사했다. 나 자신도 시향에 남을지 떠날지를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 서울에 들어와 시향의 절박한 상황을 보고서 두말하지 않고 달려들었다. 처음 3~4개월 정도는 무보수로 자원봉사를 했다. 나의 새로운 역할에 대한 계약을 행정적으로 풀어나가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무엇보다 시간이 많이 소요됐기 때문이다.

사실 오래전부터 좀 더 폭넓은 프로그래밍을 하고 싶기도 했다. 그동안 ‘아르스 노바’를 기획해오며 현대음악 분야가 좀 좁다고 느꼈을 뿐 아니라 나 자신도 클래식으로 음악에 입문했고 현재도 클래식을 더 많이 듣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좋은 기회를 얻게 된 것을 감사히 생각하고 너무 힘들었음에도 최선을 다했다.

오케스트라에선 공연기획자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특히 상임 지휘자가 없는 상황에선 더더욱 그렇다. 지휘자와 협연자를 섭외하고, 큰 그림을 가지고 전체 프로그램을 만들고, 해외 투어를 기획하고, 또 향후 어떤 방향으로 오케스트라가 나갈 것인지에 대한 청사진을 만들어나가는 일이다. 내가 베를린 필과의 인터뷰에서 언급했듯이 시향의 2017~18년 프로그램은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을 만큼 훌륭했고 난 그것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 그 외에도 여러 해외 투어를 기획했고, 두 수석 객원 지휘자와 계약할 때 메신저 역할을 담당했으며, 새로운 시스템인 ‘올해의 음악가’ 제도를 도입해 이안 보스트리지를 초청하기도 했다. 이토록 중요한 자문 역으로서의 계약이 아무런 대책도 후임도 없이 9월 말로 끝나버릴 경우 야기되는 혼란을 우려해 나름대로 많이 노력도 하고 여기저기 호소도 했다. 하지만 공연계 업무의 특수성 때문인지 공감대를 형성하기가 어려웠다.

공연기획을 맡았을 때 어떻게 하면 시향이 위기를 극복하고 안정된 미래를 위한 초석을 다질 수 있는지에 대한 나름의 비전이 있었고 다 같이 힘을 합하면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어차피 나의 역할은 다음 상임 지휘자가 올 때까지 과도기를 채우는 것이었기에 오래 있을 생각은 없었다. 양질의 프로그램과 좋은 프로젝트로 몇 시즌 잘 해나가면 국제 음악계에 우리의 존재를 크게 부각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공연기획에서 손을 놓아야 했을 때 걱정을 많이 했다. 상임 작곡가로서 기획한 아르스 노바가 위축되는 것보다 오히려 공연기획자문역을 사임하는 것이 더욱 우려됐다. 전체 시즌 플랜을 꾸리는 것이 훨씬 광범위하고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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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형진 | 현재 해외에서 서울시향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떠한가? 저명한 예술감독과 상임 작곡가의 연이은 사임 같은 이슈가 국제무대에서 활동하는 오케스트라에 특별한 영향을 미치나? 시향은 지휘자와 협연자를 섭외하는 것부터 해외 투어, 음반 발매 등에 이르기까지 해외 음악계와 긴밀하게 교류해야 한다. 자연히 평판과 이미지가 중요할 텐데 근래의 이슈가 악영향을 미칠까 걱정된다.

진은숙 | 지휘자, 협연자 등을 외국과 교류하지 않고 자급자족하는 나라는 없다. 핀란드같이 자국 출신의 훌륭한 지휘자가 많은 나라조차도 외국 지휘자를 초청한다.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는 필연적으로 국제 음악계와 연결될 수밖에 없다. 시향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외부에 어떤 이미지를 보이느냐가 지휘자와 협연자 초청부터 그 밖의 모든 이슈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지난 수년간의 논란과 정치적 공격, 그리고 그 결과물인 정명훈 전 감독의 사임은 국제 음악계에서 시향과 한국 음악계의 이미지를 크게 떨어뜨렸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시향에 남기로 결정했고 그동안 국제 음악계에서 시향의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서 내 힘닿는 데까지 노력해왔다. 국제 음악계가 나라는 작곡가에게 선사하는 믿음이 시향의 대외 이미지에 어느 정도는 영향을 끼쳤다 할 수 있다. 시벨리우스상을 받을 때도 베를린 필과 연주할 때도 나는 서울시향의 상임 작곡가로서 무대에 오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요직이 비어 있는 현재 상황을 외국의 파트너들이 혼란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지금의 이 상황이 진정한 새 출발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새로 임명될 대표이사와 서울시향이 이 기회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잘 해나갈 것이라 믿는다.

홍형진 | 상임 작곡가로서 기획한 핵심 콘텐츠가 '아르스 노바' 다. 상설 현대음악 프로그램으로 교육, 훈련 등의 성격을 띠고 있다. 상임 작곡가가 자신의 작품을 내세우지 않는 콘텐츠라는 게 특징이다. (자신의 이름을 내세우기보다는) 청중에게 현대음악을 소개하고 악단을 조련했으며, 국내의 다른 작곡가에게 작품을 발표할 기회를 주고 유망한 전공자를 직접 지도했다. 이런 방향을 택한 이유나 취지를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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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숙 | 지난 12년 동안 아르스 노바의 취지나 의미에 대해서는 여러 자리에서 너무도 많이 이야기했다. 그 모든 내용이 작년에 출간된 10주년 기념 책자에 다 실려 있으니 참고하길 바란다.

상임 작곡가 제도를 어떻게 운용해야 한다는 국제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케스트라에 따라 운영에 대한 방침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상임 작곡가 제도가 있는 오케스트라 또한 그 임기가 천차만별이다. 1년인 악단도 있고 더 긴 악단도 있으며, 핀란드처럼 한 작곡가가 20년 이상 한 오케스트라에 몸담고 있는 경우도 있다. 그 제도를 어떻게 운영하느냐는 절대적으로 각 오케스트라의 결정에 의한 것이다.

‘다른 오케스트라의 상임 작곡가 임기는 3년이다’는 주장이 있는데 실제로 런던 필 등이 그렇게 운영한다. 3년 동안 상임 작곡가의 작품 여러 개를 정기 연주회에서 연주하고 매해 신작을 위촉해 초연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형태의 상임 작곡가 제도는 시향에선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시향의 상임 작곡가 제도는 LA 필과 시카고 심포니의 시스템을 본따 만든 것이다. 자주 얘기했지만 나는 시향의 상임 작곡가 제도를 나 자신의 커리어를 쌓는 데 이용하고 싶지 않았다. 내 작품 연주야 다른 오케스트라와도 얼마든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르스 노바를 통해선 한국 청중에게 다양한 음악을 선보이고 젊은 작곡가들에게 기회를 주는 역할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굳이 유학을 통하지 않고도 외국 무대에 서는 것이 가능하도록 해주고 싶었다. 내가 학창 시절 꿈꿨던 것이 그들에겐 현실이 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홍형진 | 12년간 이어온 아르스 노바의 성과를 스스로 평가한다면? 청중으로서의 나는 악단 역량의 비약적인 향상을 피부로 느낀다. 또한 아르스 노바를 거친 젊은 작곡가들이 국제무대에 진출하는,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 현실화되는 것도 지켜봤다.

진은숙 | 아르스 노바의 성과도 10주년 기념 책자에 상세히 실렸다. 그 성과란 앞서 이야기했듯 일반 청중에게 폭넓게 현대음악을 접할 기회를 제공하고, 젊은 작곡가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들어보고 또 발표할 기회를 만들어주고, 그들이 아르스 노바를 통해 국제무대에 진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나는 외국에서 내 작품이 연주되는 음악회 대부분의 프로그램을 직접 짠다. 그리고 여기저기에서 신작 위촉이나 젊은 작곡가 초청 프로그램에 사람을 추천해달라는 문의를 받는다. 그런 기회가 올 때면 마스터 클래스 출신 한국 작곡가들을 소개한다. 그래서 지난 몇 년간 많은 작곡가가 파리, 암스테르담, 이탈리아, 일본, 오스트리아 등 외국 무대에서 자기 작품을 발표할 수 있었다. 외국에서 유학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한국 작곡가가 그 나라에 유학 가서 10년 또는 20년을 살아도 오르기 힘든 무대들이다.

물론 모든 작곡가가 이런 혜택을 받을 수는 없다. 서울시향 예산이나 제반 상황에 한계가 있고 외국에서의 기회 역시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길은 누구에게나 열어뒀다. 아르스 노바 연주회를 참관하고 마스터 클래스에 신청만 하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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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나를 찾아)온 학생은 일단 야단을 쳐서 보내고, 그런데도 다시 찾아오면 그때부터 그를 깊게 관찰하고 관심을 두기 시작한다. 그 후 그가 수년간 지속적으로 마스터 클래스에 참가하면서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면 비로소 리딩세션 기회를 제공하고 그게 잘 되면 위촉을 준다. 다시 말해 오래도록 지켜보며 상황에 맞는 도움을 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나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은 오직 작품의 질이다. 나는 내가 그들에게 그런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사실로 그들과 나 사이에 주종관계가 성립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리고 누가 좋은 작품을 내놓지는 않으면서 나에게 잘하려고 하는 경우 극도의 불편함을 느낀다.

마스터 클래스를 통해 젊은 작곡가들이 받은 도움은 대한민국의 모든 젊은 작곡가에게 열려 있었다. 하지만 음악회에 오지 않고 마스터 클래스에도 신청하지 않는 사람을 내가 쫓아다니지는 않는다. 나는 그들의 존재를 모르기 때문이다. 복권에 당첨되려면 최소한 복권을 직접 사기는 해야 한다. (웃음)

(최근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위촉 작곡가로 선정된 신동훈 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나와 동료들이 진은숙이란 존재와 아르스 노바를 통해 누린 혜택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녀가 떠난 지금 난 한국의 후배 작곡가들을 생각한다. 진은숙의 부재는 무엇보다 작곡가를 꿈꾸는 어린 그들에게 재앙이고 저주다”라고 말했다. - 홍형진)

성과 중 또 하나는 아시아 최고의 현대음악 프로그램으로 성장한 아르스 노바가 전체 시향의 이미지에 끼치는 영향이다. 사실 세계의 대다수 오케스트라가 고전/낭만 레퍼토리를 기본으로 연주한다. 베를린 필이나 비엔나 필같이 특출한 오케스트라도 그렇다. 서울시향 또한 고전/낭만 레퍼토리는 기본적으로 잘해야만 한다. 하지만 거기에 다른 레퍼토리가 더해지면 성과는 배가된다.

시향은 2005년부터 정명훈 전 감독의 지휘 아래 급성장해 국제무대에서 그 존재감을 키워왔다. 기존 레퍼토리로 쌓아 올린 눈부신 성과에 아르스 노바의 성과가 더해지면서 참신하고 진취적이며 미래의 비전을 가진 단체로 대외에 새겨졌다. 나는 이 점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나의 업적이 아니라 서울시향의 업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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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프인터뷰] 작곡가 진은숙이 서울시향을 떠난 이유를 직접 해명하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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