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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1월 07일 12시 01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1월 07일 12시 01분 KST

한국 최초로 '월경컵' 허가 받아낸 소셜벤처의 이야기

지난 12월7일 국내에선 처음으로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허가를 받은 ‘생리컵’(월경컵)이 탄생했습니다. 생리컵이란, 질 내에 삽입해 생리혈을 받아내는 제품인데요. 의약외품으로 분류된 생리컵을 유통·판매하기 위해선 사전에 품목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그동안 국내에선 생리컵을 살 수 없어 소비자들은 ‘해외직구’ 등을 통해 구입해야 했는데요. 이르면 올해 2월부터 국내에서도 생리컵을 살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미국 펨캡의 생리컵 ‘페미사이클’을 수입해 국내 첫 품목허가를 받은 소셜벤처 ‘이지앤모어’ 안지혜 대표에게서 지난 1년여간의 과정을 들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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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평생 40년간 매달 겪는 월경을 위생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월경용품을 사용한다. 하지만 한국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월경용품은 일회용생리대나 면생리대, 그리고 탐폰 정도. 2017년 5월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발표한 설문조사에 보면, 월경을 하는 여성 가운데 80.9%가 일회용생리대를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정의당 심상정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2016년 기준 국내 생리대 시장은 유한킴벌리(57%)·엘지유니참(21%)·깨끗한나라(9%)·한국피앤지(8%) 등이 점유율 90% 이상을 차지하는 과점 구조다. 통계청 조사 결과, 2010년 7월부터 2017년 7월까지 7년 동안 생리대 가격은 26.3% 올랐다. 같은 기간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13.2%)의 2배 수준이다. 경제적 부담은 고스란히 여성들에게 돌아왔다. 특히 일회용생리대 값을 감당하지 못한 저소득층 청소년들이 신발 깔창, 휴지, 양말 등을 생리대 대체품으로 사용하면서 각종 질병에 노출되고 있었다. 2016년 3월 생리대를 기부하는 소셜벤처 이지앤모어를 창업한 계기도 이런 문제를 알게 되면서다. 우리가 판매하는 제품을 사거나 리뷰를 작성하면 기부포인트가 적립되고, 포인트가 일정 수준 쌓이면 생리대를 기부할 수 있다. 2017년 12월 현재,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 560명에게 한달에 한번씩 생리대를 지원하고 있다.

이지앤모어 창업 초기, 우리가 제공한 서비스는 소비자가 일회용생리대를 구입하면 같은 양만큼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생리대를 기부하는 방식이었다. 여성들은 매달 필수적으로 생리대를 구입해야 하니 구입과 동시에 기부가 된다면 지속가능한 지원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큰 착각이었다. 소비자가 기부할 생리대 가격까지 부담하다 보니, 시간이 지나면서 재구매율이 하락했고 매출은 떨어졌다. 기부에 초점을 맞춘 나머지, 여성들이 겪을 경제적 부담을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월경 문제를 해결해주는 서비스 혹은 제품을 제공한다면 지속가능한 월경용품 지원도 가능할 것이다’라는 가설을 세웠다. 여성들을 만나고, 설문조사를 하면서 중요한 월경용품 문제를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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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이지앤모어가 연 ‘우먼스데이’ 행사에 참여한 여성들이 50여종의 월경컵을 직접 살펴보고 있다.

2016년 10월, 20~40대 여성 4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는 이랬다. 응답자 91%가 일회용생리대를 사용하고 있는데 그중 87%는 일회용생리대로 인해 불편함을 경험하고 있었다. 불편함을 호소한 여성 중 66%는 또다른 브랜드의 일회용생리대를 선택함으로써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답했다. 뭔가 아이러니했다. 일회용생리대로 인한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또다른 일회용생리대를 선택한다? 일회용생리대로 인해 느끼는 불편함은 ‘피부 짓무름’과 같은 질환인데, 이는 생리대 커버가 피부와 직접적으로 닿아 쓸리는 경우가 많아 발생하는 증상이다. 그러니까 다른 브랜드 제품으로 바꾼다고 해서 이러한 불편함을 없애긴 어려워 보였다. 하지만 우리에겐 선택지가 별로 없다. 여성들이 겪고 있는 피부 질환과 번거로움, 비싼 비용을 해결해줄 월경용품은 없을까? 곧바로 조사를 시작했다.

국외에는 신기한 월경용품들이 가득했다. 월경컵·해면탐폰·스펀지탐폰·월경팬티…. 미국의 경우 탐폰이 월경용품 시장의 60% 이상을 차지할 만큼 질 안에 삽입하는 제품이 많았다. 의료용 실리콘으로 만들어진 월경컵은 국외에서 5~6년 전부터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었고, 세계적으로 20개가 훌쩍 넘는 브랜드가 있었다. 그동안 국내에서 월경컵이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질 안 삽입형 월경용품에 대한 두려움이 크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또다른 문제가 있었다. 2016년 국내에서 월경컵을 제조·판매하다 중단한 업체를 찾아갔다. 이 업체는 식약처로부터 월경컵 판매는 위법이며 판매를 중단하라는 공문을 받았다고 했다. 왜 월경컵 판매가 위법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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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간에는 ‘대기업이 힘을 써 식약처가 고의로 월경컵 판매를 막고 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월경컵은 ‘생리혈의 위생처리’를 목적으로 하는 생리대처럼 의약외품으로 분류돼 유통·판매를 하기 위해선 식약처로부터 품목허가를 받아야 한다. 2017년 1월, 식약처에서 진행한 ‘생리컵 수입·제조업자를 위한 간담회’ 자리에서 월경컵이 국내 시장에 나오지 못한 진짜 이유를 알게 됐다. 그건, 바로 ‘임상실험’. 월경컵은 국내에서 아직 한번도 허가를 받은 적이 없고, 장시간 인체에 삽입하여 사용하는 제품인 만큼 안전성을 확인하기 위한 ‘임상실험’ 절차가 필요했다.

이러한 임상실험은 ‘의료용 실리콘으로 만들어진 월경컵이 인체에 사용해도 무해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과정이었으므로, 맨 처음 월경컵을 제조하거나 판매하는 회사만 진행하면 된다. 식약처에서 제시한 임상실험 방식은 피실험자 50여명이 6개월 주기로 월경컵을 사용한 뒤 인체의 변화를 보는 것이었다. 여러 업체에 확인해본 결과 실험 비용만 최소 1억원이었다. 여러해 사용할 수 있는 월경컵 특성상, 한번 판매가 이뤄지면 재구매율이 낮아 투자 대비 수익을 창출하기 어렵다. 월경컵과 유사한 탐폰의 경우 국내 월경용품 전체 시장의 17% 정도만 차지하고 있어 월경컵 시장성도 불확실했다. 이러한 까닭에 어느 업체도 월경컵 품목허가를 받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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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식약처로부터 첫 품목허가를 받은 생리컵인 페미사이클.

일회용생리대 유해성 논란 이후 규모가 큰 기업에서도 월경컵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2017년 초만 해도 월경컵을 제조하거나 수입하려고 하는 업체들은 대부분 스타트업이거나 중소기업이었다. 누군가 먼저 임상실험을 하고 품목허가를 받지 않는 이상 국내에서 월경컵 시장이 만들어지기엔 어려워 보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딱 이때 사용하는 말인 것 같다. 이 일은 우리밖에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수십년간 일회용생리대가 군림해온 국내 시장에서 월경컵 시장을 열면, 좀더 다양한 월경용품이 개발되는 첫 단추가 될 것이라 믿었다. 2016년 11월부터 우리는 세계 50여종의 월경컵을 만져보며 사용자와 비사용자 간 경험·정보를 공유하는 오프라인 모임 ‘월경컵수다회’를 열기 시작했다. 이러한 활동을 기반으로 새로운 월경컵 개발에 나섰다. 2017년 4월 크라우드펀딩 ‘블랭크컵 프로젝트’를 통해 5900여만원의 개발비도 마련했다.

굳이 ‘페미사이클’을 수입한 까닭

월경컵 개발과 별도로, 좀더 빨리 시장을 만들어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의약외품 제조·수입에 대한 자료를 조사하고 식약처 직원과 여러차례 미팅을 통해 대안을 찾았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은 이미 임상실험을 완료한 월경컵을 수입하는 것이었다. 만약 외국 학술지에 등재된 임상실험 자료가 있다면 국내 임상실험 자료로 대체 가능하기 때문에 비용과 시간을 모두 줄일 수 있다. 이러한 임상실험 자료가 있는 월경컵은 미국 펨캡사에서 제조하는 ‘페미사이클’밖에 없었다. 산부인과 여성 전문의가 개발한 페미사이클의 경우, 2014년 125명을 대상으로 임상실험을 진행한 자료가 국외 학술지에 공개돼 있다. 이 제품은 미국·유럽 등 10개국에서 판매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브랜드다. 다른 월경컵과 구분되는 고리형 모양으로, 뭉툭하고 말랑해 초보자들이 사용하기엔 다소 어렵다는 평가가 있기도 하지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페미사이클 수입 준비를 시작했다. 식약처에 허가를 신청함과 동시에 새로운 고난이 닥쳐왔다. 제출해야 하는 서류들은 너무 생소했고 단어는 어려웠다. 여러 대행업체들에 상담을 받아봤지만 ‘알아보겠다’는 답변이 많았고, 수수료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우리는 직접 서류를 준비하기로 했다. 식약처에서 요청하는 자료가 생길 때마다 해당 자료를 찾고, 미국 펨캡사에 요청·정리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또 미국에서 받은 자료만으로는 식약처에서 요청한 안전성을 충족시키지 못해, 국내 연구기관에 실험을 의뢰하기도 했다. 이 실험 자료를 토대로 서류를 작성해야 하는데 도대체 감이 잡히질 않았다. 좌절하고 있는 우리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블랭크컵 프로젝트’를 보고 품목허가를 받기 위한 서류 작업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했다며, 자원봉사를 해주겠다는 전문가가 나타난 것이다. 이렇게 값진 도움을 받은 끝에, 2017년 12월7일 국내에선 처음으로 월경컵에 대해 품목허가를 받았다.

안전성 확보, 앞으로가 중요하다

현재 품목허가가 완료된 페미사이클은 법에 따라 보건환경연구원에서 최초 수입검정(국내에서 최초로 수입되는 의약품 등 품목에 대한 품질검사)을 받고 있다. 오는 1월31일 완료 예정인 검사에서 적합 판정을 받으면 국내에서 월경컵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게 된다. 일회용생리대 유해성 논란 이후 월경컵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많은 기업이 수입하거나 제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월경컵은 인체에 삽입하여 사용하는 제품인 만큼 반드시 인체에 무해한 등급의 의료용 실리콘을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육안으로는 의료용 실리콘인지, 공업용 실리콘인지 확인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안전성 확보를 위해선 무엇보다 식약처 역할이 중요하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에서는 1~2달러짜리 값싼 월경컵이 판매되고 있다. 이러한 제품은 미국 식품의약국(FDA) 인증을 받았다고 표기돼 있지만 확인할 방법이 없다. 가격 경쟁을 위해 저렴한 원재료로 제품을 만들어 국내 시장에 들어올 가능성은 굉장히 크다. 더는 월경용품으로 인해 여성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식약처의 각별한 허가 절차가 따라야 할 것이며, 무조건 수익만을 보고 원재료로 장난을 치는 업체가 생겨나지 않길 바란다.

‘왜 너희는 월경·월경컵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니?’ 많은 분들로부터 받는 질문이다. 우리는 월경을 월경이라 부르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월경을 감추기 위해 ‘그날’ ‘마법’과 같은 신비한 단어로 월경을 감춰왔다. 생각을 해보면 눈물을 흘리는 것, 콧물을 흘리는 것, 방귀를 뀌는 것 모두 생리 현상이다. 그럼에도 눈물·콧물이라는 이름이 불린다. 하지만 월경은 생리 현상이라는 단어의 줄임말인 ‘생리’, 그리고 이를 더 숨기기 위한 단어들로 불려왔다. 이런 사회적 인식 속에서 여성들의 월경 문제, 생리대 문제가 감춰질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월경이라는 이름을 찾아주는 것부터 시작해야 여성들의 문제를 좀더 세상 밖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